2025년 온세대 예배
제목 : 분노를 다스리는 성경적 방법
본문 : 사무엘상 25:9~13
오늘 말씀은 ‘분노를 다스리는 성경적인 방법’입니다.
화병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서양에는 없는데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화가 많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성 장애를 겪는지 미국 정신과협회도 문화증후군으로 등록된 단어입니다. 우리사회는 갈수록 분노조절장애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분노가 조절이 안 됩니다. 감정의 온도보다 더 뜨거운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화 많은 세상은 펄펄 끓습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팀이 올 4월 15~21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조사를 했습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54.9%가 울분 고통이 지속되는 장기적 울분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러닌까 한국 사람 100명중 55명이 장기적 울분 상태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불공정하고 불의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오는 울분입니다.
정말 세상 살다 보면 화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작년 12.3 비상계엄령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울분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최선을 다했는데 사업이 안되는 것, 말 안 듣는 고집 센 남편, 이기적인 동료들, 무시하는 말, 교통사고, 갑작스런 질병의 발견, 친구의 괴롭힘, 잘 안되는 시험성적, 대학에 떨어짐, 친구가 약속을 어긴 것 내 뜻대로 안 되는 세상... 이 모든 일들이 화가 나는 일들입니다. 분노가 솟구치면 두통, 얼굴 화끈거림, 어지럼증, 가슴 두근거림, 목과 가슴에 덩어리, 답답함, 소화불량, 불면증, 우울증으로 이어집니다. 마침내 이 화가 조절되지 않아 분출되면 가정에서 직장에서 부부관계에서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엄청난 파장을 가져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도 하마터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자신의 미래를 망칠뻔했습니다. 왜 다윗이 그토록 화가 난 것입니까? 나발의 무시한 말 때문입니다. 어떻게 다윗을 무시했습니까? 사건의 전후 사정은 이렇습니다. 마온이라는 지방에 나발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가진 가축은 양 떼가 삼 천마리, 염소 떼가 천 마리였습니다. 아주 잘사는 마온의 이름난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는 부자였지만 미련한 자였다고 합니다. 고집이 세고 행실이 포악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이해심도 많고 용모도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미련하지만 현명한 아내를 얻은 나발은 정말 복 받은 자입니다.
이런 나발이 양 털을 깎는다는 소식을 다윗이 들었습니다. 목축업자에게 양털 깎는 날은 추수의 날이요 축제의 날이며 잔치하는 날입니다. 이 날은 이웃들과 가난한 자들에게도 자신이 얻은 풍성한 소출을 기쁨으로 나누면서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다윗은 자기 부하 가운데 젊은이 10명을 뽑아 그에게 보내 은혜를 구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부하들 600명이 마온에 주둔해 있는 동안 양과 염소를 약탈해 가는 도둑떼들이 감히 나발의 양 떼와 염소를 약탈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다윗의 부하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자들로서 나발의 양치기들을 조금도 겁주거나 해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목축업이 잘되도록 막아주고 보호해 주는 역할까지 한 것입니다. 이 사실은 나발의 목동들이 잘 알고 있고 나발도 들어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감을 가지고 나발에게 문안하고 축복하면서 은혜를 구했던 것입니다. 다윗의 명령대로 부하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의 주인장 다윗께서 나발 어른께 만수무강을 빌라 했습니다. 늘 평강 하시고 집안이 모두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나발 어른의 모든 소유도 번창하고 잘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좋은 날에 왔으니 당신의 아들 다윗에게 성의를 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예의를 갖추어 나발을 문안하고 그의 가정과 사업을 축복하면서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무엇입니까? 10~11절입니다.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이 말에는 다윗을 깍아 내리고 무시하고 멸시하고 조롱하는 투가 담겨져 있습니다. “다윗이 누구냐? 이새의 여덟째 아들 별볼일 없는 양치기 출신이 아니냐? 요즈음 주인을 배신한 종들이 많은데 너도 주인 사울 왕을 배신하고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싹아지 없는 도망자가 아니냐? 가만히 보니 목축업자들을 위협하여 돈이나 뜯어내는 건달이나 불량배 같은 수작을 부리고 있구나! 사울 왕에게만 세금을 내면 됐지 왜 내가 주인을 배신한 자요 협박해서 돈이나 뜯어내려는 양아치 같은 근본 없는 너에게 도움을 주겠느냐” 이런 말투였습니다.
다윗이 10명의 부하들로부터 나발의 이처럼 무시하고 모욕하는 말을 전해 듣자 격한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즉시로 나발을 죽일뿐만 아니라 그의 온 집안의 남자들을 다 죽이고자 400명의 무장한 군사들을 이끌고 나발을 향해 떠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 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 맹세까지 합니다. 그 만큼 다윗의 분노는 자신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차고 넘쳐났습니다. 이번 나발 사건만큼은 다윗의 인격과 영성으로 제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사건이 있기 전 24장의 이야기는 다윗이 원수 사울을 살려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집요하게 추적했습니다. 그러다 엔게디 광야 한 동굴로 숨었는데 그 동굴에 사울이 혼자 들어왔습니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가만히 베었습니다. 그러고도 마음이 찔려서 고통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이면 모든 고통이 끝나지만 하나님께 심판을 맡기고 용서와 사랑을 베풉니다. 사울은 이런 다윗을 향해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안다”라고 다윗의 미래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24장에서 다윗은 원수 사울을 용서하고 사랑해 줌으로서 너무나 아름다운 믿음의 승리를 거둡니다. 24장에 나오는 다윗의 인격은 예수님을 닮은 인격이고 거룩하고 흠없는 너무나 고귀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25장 1절에 보면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 장사했다는 장면이 나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사무엘을 이어서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때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더 다윗이 기대가 되고 미래에 다윗을 쓰실 하나님이 기대가 되는 구절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다윗을 새로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연단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울 왕은 버림을 당했고 이제 새로운 지도자 다윗을 택하여 하나님 구속사에 존귀히 쓰고자 하나님께서 현재 다윗의 인생을 이끌고 계십니다. 25장쯤에 와서는 다윗의 광야훈련이 거의 끝날 무렵인 군대생활로 말하면 말년병장에 들어선 광야훈련 시기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기대가 되는 다윗의 인생의 성장기에 예기치 못한 나발 사건으로 지금 다윗은 분노조절장애을 일으켜 나발과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를 죽이려고 400명의 부하를 이끌고 가는 중입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10여 년을 쫓아 다녔던 원수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용서했던 그가 왜 나발에게는 이토록 과민반응을 보입니까?
우리는 이것을 영적인 눈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에베소서4:26,27절 말씀입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성경은 우리가 인간인지라 분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감정이 상하고 화가 나도 그 분을 하루 이상을 품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노가 지속되면 마귀에게 틈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탄 마귀가 들끓는 분노를 에너지로 사용하여 수많은 사람을 해치고 하나님의 구속사를 무너뜨리고 그 자신마저 파멸시켜 버리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하는 일은 한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입니다.
사탄은 다윗의 영적 눈을 감기게 하고 오직 나발이 자신을 무시했던 무례하고 조롱한 그 말만 생각나게 했습니다. 주인을 배신한 자요 남을 협박해서 돈이나 뜯어내는 양아치 수준으로 비하한 나발의 말에 대해서 참을수 없을 만큼 격분이 일어난 것입니다. 다윗의 명예가 땅에 떨어지고 이제까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아왔던 자신의 삶이 너무나 비참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다윗은 어린 시절에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 받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입니다. 불순종한 사울 왕때문에 하나님의 구속사가 무너지려 할 때에 다윗을 통해서 다시 새로운 하나님의 구속사를 실현하려는 하나님의 비밀 무기였습니다. 아무리 미련한 나발이 다윗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나불거려도 다윗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 희망 그리고 앞으로 이스라엘 왕이 되어 감당해야 할 사명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이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막아 버린 것입니다. 화가나면 붕어아이큐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분노로 뚜껑이 열리면 어린아이 수준의 행동을 합니다. 왜냐하면 정상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분노는 합리적인 생각을 잃어버리게 합닏. 이 때 사탄이 역사합니다. 우리의 삶에 사탄이 들어오는 통로는 생각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다윗의 생각이 무너졌졌을 때 하나님은 지혜로운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을 급히 보냅니다. 아비가일은 종으로부터 자초지종 전후 사항을 듣고 미련한 남편과 의논하지 않고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송이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준비하여 다윗을 만나러 갑니다.
다윗을 마주치자 그녀는 즉시로 나귀에서 내려 그의 발 앞에 엎드리며 입을 열었습니다. 아비가일은 먼저 다윗을 ‘내주’로 치겨 세우고 자신을 ‘당신의 여종’으로 낮추며 다윗의 진노를 달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남편 나발을 안중에도 두지 말아 달라고 간구합니다. 자신의 남편 나발은 이름 그대로 미련한 자에 불과하니 지혜가 총명한 다윗이 상대할만한 자가 아니라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이 선포합니다.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주도 살아 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26절) 그녀는 자신이 다윗 앞에 서게 된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 다윗으로 하여금 친히 보복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나님 편에서 이 일을 보도록 돕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임을 선언합니다. 아비가일은 여호와께서 반드시 다윗을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실 것이며(28절), 그가 의롭기에 여호와께서 이 일을 꼭 이루실 것이라며 남편의 무례한 말로 망가진 다윗의 자존심과 명예를 회복시켜 줌으로서 다윗의 불편한 심기를 가라앉혀 영적인 분별력을 회복하도록 도왔습니다. 결국 다윗의 감정이 가라앉고 하나님의 뜻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결국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늘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라...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결국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평안을 되찾습니다. 분노는 사라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나발을 하나님 손에 맡깁니다. 이 후 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심으로 나발은 10일 후 죽게 되고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되어 나발의 모든 재산이 다윗의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 다윗의 유다지파에 속한 나발과 그의 가족에 대한 살인극을 막음으로 나중에 이스라엘 왕이 되어 하나님의 구속사의 존귀한 자로 살게 하십니다.
우리에게도 다윗같이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되는 분노조절장애를 일으키는 상황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때 오늘 본문을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사탄은 우리의 분노를 일으키는 상황에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그런데 감정은 생각의 노예입니다. 아무리 감정이 용광로처럼 들끓어도 생각을 바꾸면 감정은 소멸됩니다. 오늘 본문처럼 다윗이 아비가일을 만나 하나님 편에서 이 사건을 볼 때 분노가 사라지고 평안이 왔습니다. 결국 생각 한 조각에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생각 한 번 잘못하면 내 인생 통째로 사탄에게 받치게 됩니다. 그러나 생각 한 번 잘하면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쓰시고 축복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사탄도 생각을 통해 역사하지만 하나님도 생각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잠언 4:23절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했는데 여기서 마음을 지키라는 것은 결국 생각을 지키라는 것과 동일합니다.
내 감정을 조절하기 힘든 상황이 왔을 때 사실입니까? 생각입니까? 느낌입니까? 스스로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이 생각과 느낌과 함께 섞이게 되면 사실은 사라지고 내 느낌만 있게 됩니다. 느낌은 내 입장 내 기준 내 생각에서 나오는 감정입니다. 제가 아는 세상의 빛 김종완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이 한 번은 주일예배 마치고 앞으로 지나가는 어떤 안수집사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인사도 받지 않고 무표정으로 지나가더랍니다. 그럴분이 아닌데 왜 인사도 받지 않고 저렇게 냉냉하게 나를 대하나 일주일 내내 이 문제로 고민이 되었습니다. 내가 잘못한게 있나? 무엇이 서운한가? 때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다음 주일에 솔직하게 물었습니다. 집사님 앞 주에 인사했는데 왜 인사도 받지 않고 그렇게 무표정하게 지나갑니까? 제가 서운하게 한 일이 있나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더니 목사님 제 시력이 마이너스입니다. 안경을 벗으면 앞이 잘 안 보여요. 그날은 안경을 착용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실은 안경을 착용하지 않아 앞이 보이지 않아서 목사님의 인사한 것을 못 본 것입니다. 저 분이 나를 무시했다는 화난 감정은 김종완 목사님의 생각과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그 일이 왜 화가 납니까? 그 일이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내가 화내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과 느낌을 빼고 사실을 사실로만 보는 사고력이 있어도 감정은 누그러집니다. 우리는 사실을 사실로 보지 않고 내 생각과 느낌을 넣어서 내 기준으로 사실을 섞어서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 안 됩니까?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까? 당신은 한 번도 안했습니까? 당신은 되는데 왜 다른 사람은 안됩니까? 대다수 일은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자기 기준 때문에 화가 난 것입니다. 사탄 마귀가 역사하는 세상에는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보십시오. 그것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음을 인정하십시오. 예수님만큼 무시 받았습니까? 예수님만큼 침뱉음 받았습니까? 예수님만큼 명예훼손 당했습니까? 예수님만큼 거절당했습니까? 예수님만큼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까? 예수님도 당했던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고 해서 분노할 일이 아닙니다. 무시당할 수 있고 조롱당할 수 있고 명예훼손 당할 수 있고 억울한 일 당할 수 있습니다. 나도 남에게 상처 주는 일이 많았지만 기억하지 못할 뿐입니다.
화가 날 때 사실과 생각과 느낌을 분리시키고 하나님 편에서 지금 이 상황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하시는 영역이 있고 이 상황에서 내가 믿음으로 응답해야 하는 내 선택의 영역이 있습니다. 그리고 환경은 하나님이 바꾸어주실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자유의지로 지금 여기서 선택할 수 영역으로 하나님을 무한 신뢰하고, 틀림없이 무슨 뜻이 있게지 수용하고, 잘 되면 감사 안되면 더 감사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환경변화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구속사지향적인 사고입니다. 다윗이 나발로부터 무시 받고 양아치 취급 받을 때 아비가일은 당신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존귀한 자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될 분입니다. 미래에 큰 일을 하실 분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습니다. 나발같이 어리석은 자의 말에 휘둘리지 마십시오. 이 때 다윗의 생각이 깨어나고 생각과 느낌으로 사로잡힌 마음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나발의 문제는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러자 나발의 문제는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하게 처리하셨습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남이 어떤 무례한 말을 할지라도 여러분은 창세전부터 택함받은 보배롭고 존귀하고 가치있고 사랑받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황공주 황태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지불하고 죄와 사망 권세에서 구원받은 예수님짜리 인생입니다. 현재 사건의 주인은 나입니다. 내가 이 사건의 주인공입니다. 내가 싸워야 할 것은 상황과 환경에서 오는 부정적인 생각 즉 사탄의 역사입니다. 사람이 환경이 상황이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말속에서 때로는 마귀가 역사하고 있음을 분별하십시오. 내 생각 속에 마귀가고 활동하고 있음을 분별하십시오.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았고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신의 신분을 기억하고 수많은 화날 상황에서도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면서 언약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생각을 지키고 감정을 잘 조절하여 풍성한 구원의 열매를 맺으시길 기도합니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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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 온세대예배말씀(제목:분노를 다스리는 성경적 방법) | 김성철 | 2025-06-30 | 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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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 누가복음43강(제목: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 김성철 | 2025-06-11 | 33 | |
59 | 누가복음42강(제목: 열매를 찾으시는 하나님) | 김성철 | 2025-06-01 | 39 | |
58 | 누가복음41강(제목: 타인의 불행을 볼 때 우리가 할 일) | 김성철 | 2025-05-25 | 6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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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 성찬식주일말씀(제목: 함께의 복음, 함께하는 믿음) | 김성철 | 2025-04-14 | 81 | |
53 | 누가복음39강(제목 : 받은 세례는 받을 세례로 완성됩니다) | 김성철 | 2025-04-06 | 100 | |
52 | 누가복음38강(제목: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 김성철 | 2025-03-30 | 78 | |
51 | 누가복음37강(제목:염려하지 마세요 아버지께서 아세요) | 김성철 | 2025-03-23 | 86 | |
50 | 누가복음36강(제목: 영혼이 돌아갈 곳 준비되셨나요?) | 김성철 | 2025-03-16 | 122 | |
49 | 하가다시리즈 5강 (제목: 경건이 습관이 되신 예수님) | 김성철 | 2025-03-09 | 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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