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누가복음52강(제목: 누가 낙원에 가고 누가 음부에 떨어지는가?)
2025-08-24 10:34:26
김성철
조회수   15

누가복음52

제목 : 누가 낙원에 가고 누가 음부에 떨어지는가?

본문 : 누가복음16:25~31

 

오늘 말씀은 사복음서 중에 유일하게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기 전에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비유의 핵심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것입니다. 즉 덧없고 속되고 사라지는 재물을 가난하고 어렵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돕고 그들을 구원으로 이끄는데 사용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다는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으므로 재물을 사랑하지 말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잘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의한 청지기 비유의 결론을 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반응에 대해서 14절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비웃습니까? 그들이 이해하는 성경적 가르침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달라도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재물에 대한 가르침이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돈을 좋아했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은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로 생각했고 부자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부자는 천국에 가고 가난한 자는 지옥에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제자들도 이런 생각에 동의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부자였습니다. 신명기 28장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 결과 물질적으로 부자가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율법에 능통했던 바리새인들의 신학적 틀로 보면 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 잘 산 자이므로 내세에도 틀림없이 낙원에 들어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보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부자는 틀림없이 낙원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 부자는 음부에 떨어지고, 이 땅에서 지옥의 삶을 경험하고 있는 거지 나사로는 낙원에 들어가 있는 것을 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의 신앙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가난한 나사로의 신앙의 진실됨은 무엇입니까? 오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바리새인들과 동시에 제자들도 들어야 하는 주님의 음성은 무엇입니까? 도대체 누가 낙원으로 들어가고 누가 음부에 떨어집니까?

 

19-21절에서 말씀을 보겠습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부자는 아브라함을 아버지라 부르고, 아브라함은 그를 향해 얘야 하고 부르는 것을 볼 때 그는 유대인이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고 건강의 복과 많은 물질적인 복을 받았습니다. 특별의 그는 엄청난 재물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입은 자색 옷은 사실 왕이나 귀족들만이 입을 수 있는 그 당시 흔하지 않는 값비싼 옷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1평방 미터의 자색 옷감을 만들기 위해 약 4만 마리의 뿔 고동을 잡아야 했고 사람들이 일일이 그 고동에서 자색의 염료를 축출해야 했습니다. 이 부자가 자색 옷을 입었다는 것은 당대 최고의 부자였음을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고운 베옷을 내복으로 입었는데 당시 서민들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비싼 것이었습니다. 이 부자는 얼마나 부자였는지 날마다 호화롭게 인생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 온갖 잔치와 풍류를 즐기는 것이 그의 일과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풍족한 재물로 온갖 사치를 누리고 잔치와 풍류를 즐기고 쾌락적 삶을 살다보면 염증을 느낄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솔로몬은 모든 것을 가졌고 모든 것을 누리면서 살아보면서 점차 삶에 대한 염증을 느꼈고 고민하여 전도서를 써서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솔로몬의 고백입니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2:11) 사실 사람은 물질의 풍족함으로 모든 것을 채울 수 없는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채울 수 없는 영혼의 비곤함 앞에서 세상의 그 어떤 풍족함과 쾌락과 배부름도 결국은 허무주의를 가져옵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자신의 인생을 즐기고 육신의 만족을 채우는 일에 염증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이 부자의 잘못은 그가 하나님을 알았지만 사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풍족한 재물을 의지하면서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었기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주신 양심의 경고의 소리도 듣지 않고 정욕과 욕구를 채우는 일에 도취하면서 살았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그 주위에는 가난한 사람이 있었지만 그들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부자는 거지 나사로를 외면하고 한 숟가락의 밥도 주지 않았습니다. 부자는 나사로를 섬길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한 번도 그 기회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은 그 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복을 흘러 보내는 축복의 통로가 되고자 하나님이 주실 복을 사모합니다.

 

반면에 나사로는 히브리어로 엘르아살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나사로는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것을 볼 때 그가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는 진실한 믿음으로 살았지만 가난하고 병이 났습니다. 그는 돈 한 푼 없는 가난한 사람이었고 더더구나 돈이 없다 보니 치료를 제때 못 받아 그의 몸은 온갖 병으로 만신창이 되었습니다. 그의 주거지는 부자의 대문 앞의 땅 바닥에 누워 지내는 것이었고 그의 음식은 부자의 상에서 떨어진 쓰레기 음식이었습니다. 심지어 피부에 염증이 생기고 고름이 터져 동네 개들이 와서 그의 헌데를 핥을 정도였습니다. 이보다도 더 비참한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사실 그의 이름대로 하나님이 도우셨다면 이렇게 비참하게 살면 안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한 부자에게는 아무런 이름도 붙이지 않고 나사로에게는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뜻깊은 이름을 붙여 준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사로는 가난했지만 부자가 갖고 있지 않는 뭔가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부자는 자기가 갖고 있는 재물을 의지한 반면에 나사로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처럼 비참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라보면서 하루하루 인내하며 소망 중에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부자는 지옥으로 가고 나사로는 낙원으로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대체로 건강하고 물질적인 복을 받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도 마음이 안타깝지만 우리에게 가난과 병을 주셔서 훈련하시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부르실 때가 있습니다. 나사로는 부잣집 대문에 누워 개처럼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었습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배를 채울 수 없었습니다. 개들이 와서 그의 몸의 상처를 핥았습니다. 그렇지만 나사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힘들수록 더욱 하나님 가까이 나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품에 안긴 신앙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는 알곡 신앙이 있었습니다. 알곡은 키에서 까부르면 더 안으로 가듯이 그는 고난 중에 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갔습니다. 이것이 나사로의 신앙의 진실성입니다.

 

두 사람의 삶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 본문 22~24절을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죽음 이후 삶은 완전히 역전되었습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 둘 다 죽었습니다. 나사로는 생전에 멸시 천대 속에 지냈고 죽었을 때도 우는 사람 한 명 없이 사람들이 거적때기로 덮어 초라하게 매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육신은 초라하게 취급받았을지 몰라도 그의 영혼은 천사들의 수종을 받으면서 낙원으로 들어갔고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잠시 후에 부자도 죽었습니다. 그는 죽어 장사되매라고 했습니다. 그가 죽자 평소 사귀었던 친척들과 친구들이 왔고 그의 가족들은 피리 부는 자들과 곡하는 자들을 고용해서 아주 화려한 장례식을 치러주었습니다. 그리고 무덤도 경치 좋은 명당에 묻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부자의 영혼은 죽음 이후 불꽃이 꺼지지 않고 타는 음부로 갔습니다. 그는 너무나 갈증이 심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행복하게 미소 짓는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죽은 다음 그의 육체가 거적때기로 덮어 초라하게 매장했든 화려한 무덤에 안치되었든 중요한 것은 죽음 이후 그의 영혼이 어디를 갔느냐입니다.

 

살아생전 부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아서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당시에 모든 사람들은 부자는 당연히 천국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자신이 낙원에 가지 않고 음부로 온 것에 대해서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해서 현세에서 저주받은 지옥같은 삶을 살았던 나사로가 낙원에 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4가지 영적교훈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죽음 이후 우리는 반드시 낙원과 음부로 간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의 재림하기 전까지 성경은 죽은 영혼이 낙원과 음부로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재림의 때에 부활의 몸을 입고 다시 영원한 거처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고 합니다. 죽음에 대한 3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먼저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죽음 이후 천국에 가든 지옥에 갑니다. 반면에 불교나 힌두교는 죽은 사람은 현생의 업보에 의해 미래에 새로운 생명으로 환생한다고 설명합니다. 무신론주의자들은 인간이 죽으면 존재가 완전히 소멸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성경의 말씀을 믿습니다. 우리는 복음이신 예수님을 믿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내가 믿느냐?” 아멘 믿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영원한 부활의 천국의 삶을 소망하면서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삶에 흔들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두 번째 낙원에 가는 사람과 음부에 가는 사람이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천국 갈 줄 알았는데 지옥 가고 거지 나사로는 지옥 갈 줄 알았는데 천국에 갔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신앙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겉으로 볼 때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 된 사람들이 다 천국 갈 것 같은데 아닐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세상에서 고난을 많이 받고 하는 일도 잘 안 되어서 하나님의 복을 못 받는 잘못된 신앙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천국에서 상이 더 클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신앙이 진실 되는가? 에 의해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길이 달려 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할 때 사람의 인정 칭찬에 너무 매달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단독자로 설 때 하나님께서 나의 신앙의 무게를 달아볼 때 과연 하나님 앞에 통과할 것인가? 이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이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를 중심을 보느니라고 했습니다. 중심을 드리는 신앙생활이 중요합니다.

 

세 번째로 낙원과 음부는 이곳의 삶으로 결정 되며, 결정된 후 그 운명을 바꿀 수 없습니다.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나사로 손끝에 물을 찍어 자신의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는 너무 고통스러워 조금이라도 이 고통을 면하고 싶었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부자가 조금만 자신의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는 이 요청을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그와 나사로 사이에는 큰 구렁이 있어서 건너갈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죽은 후에 지옥과 천국은 왕래할 수 없습니다. 낙원이나 음부의 삶이 한번 결정되면 그곳에서 영원히 옮길 수 없습니다. 음부에서는 회개할 기회가 없습니다. 누가 낙원과 음부에 가느냐는 것은 이 세상의 삶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가톨릭에서 말하듯이 낙원과 음부 사이 중간에 연옥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죽은 자를 위해서 기도하거나 헌금하면 연옥에 있는 자들이 낙원으로 가는 그런 일 없습니다.

 

왜 부자가 음부에 떨어졌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재물로 사치하면서 고통하는 형제 자매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돌보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럼 천국과 지옥에 가는 것은 가난한 자를 돕는 선행으로 결정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의해서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것이 결정된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면 가난한 자를 돌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영은 사랑의 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이웃을 돕듯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이런 자는 죽은 믿음, 심지어 귀신의 믿음을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지 않고도 가난한 자를 돌보는 선량한 사람이 많습니다. 이들은 인본주의자들입니다. 안타깝지만 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면 지옥에 갑니다. 만약에 예수님 믿지 않고 선행한 자들이 천국에 다 간다면 가난한 자만 도우면 되지,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는데 이 예수님의 말씀과 모순이 됩니다. 인간은 다 죄인이요, 죄의 결과는 심판이고,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뿐이라고 하는 것이 기독교의 기본진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가 그가 예수님을 진실로 믿지 않았고 그 결과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거지 나사로는 왜 천국에 갔습니까? 단지 이 세상에서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천국에 간 것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가난하게 살다 지옥에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난하다고 천국 가면 가난한 사람은 예수 믿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가난한 자 중에도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만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 믿고 열심히 사는데 가난하고 병들고 실패하고 알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사는 많은 신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알곡처럼 더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여기에서 말씀을 믿지 못하면 그 어떤 기적을 보아도 결국 지옥에 갑니다.

부자는 자신의 형제를 사랑했습니다. 부자는 나사로를 자신의 살아 있는 다섯 형제에게 보내어 그들이 회개하고 이 음부로 오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가면 부자인 형제들이 회개하고 가난한 사람을 도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사로를 형제들에게 보내달라는 부자의 요구도 거절했습니다. 모세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합니다. 모세와 선지자는 성경입니다. 성경이 지옥과 천국을 증거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나 전도자들이 성경을 통하여 천국과 지옥을 증거 해줄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가르치는 전도자들의 선포된 말씀을 듣지 않으면 죽은 자가 살아나서 증거 해도 듣지 않습니다. 하나의 환상으로 치부할 것입니다. 헛것을 본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지 기적에 감동을 받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여 사는 것이 진짜 기적입니다. 믿음은 깨달음으로 노력으로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실 때 갖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믿어지고 두렵고 떨림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고자 하는 마음이 존재한다면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서 받은 복중에 가장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금 물질적인 복 덜 받아도 세상의 성공 못 이루어도 그것 때문에 실망하지 마십시오. 거지 나사로가 현세에서 받았던 고난의 아픔을 이겨내고 하나님이 주신 진실한 믿음으로 영원한 낙원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부유하게 될 수도 있고 가난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부유하게 되기를 원하시지만 우리가 부유하게 되면 하나님을 떠날까 봐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 해석이 안 되는 고난의 환경을 배열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 때에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졌다면 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오늘 본문의 거지 나사로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자란 이름을 가졌고 누구보다 신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그의 상황은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에서 멀어지지 않았습니다. 더욱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자라는 이름답게 끝까지 중심을 지켰습니다. 그 결과 세상 사람들이 충격을 받을 정도로 하늘나라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서 아브람의 품에 안기는 영원한 복을 받았습니다.

 

바울사도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얻기 위해 세상의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그는 오직 주님을 얻는 일에 모든 힘을 쏟았습니다. 그는 주와 복음을 위해 고난을 많이 겪고 늘 가난하게 살았지만 이렇게 고백합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음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을 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자로다”(고후6:9~10) 오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다시 한번 내가 가진 믿음이 진품인지 살펴보면서 부유함 속에서도 겸손할 줄 알고 가난함과 고난 속에서도 모든 것을 가졌다는 믿음을 가지고 감사하면서 신실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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