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48강
제목 : 찾을 때까지 찾으시는 하나님
본문 : 누가복음15:1~7
5월 초에 박은주 간사님의 어머님 되시는 이춘자 권사님께서 별세하셨습니다. 그리고 장례예식을 치루는 모든 과정에서 한 영혼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바로 5월 18일에 우리 교회에 등록하신 김미숙 성도님입니다. 이 분이 오랫동안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이춘자 권사님의 장례예식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와야겠다고 결심했고 우리 교회에 등록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김유환 집사님 어머니이신 염귀숙 권사님이 별세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번 장례식을 지켜 보던 김유화 집사님 아버님께서 감동을 받고 우리 교회에 나오시겠다고 했습니다.
5월 11일에는 박상욱 송은경 젊은 부부가 우리 교회에 등록했습니다. 최정숙 권사님께서 오랫동안 기도하시면서 섬겼던 분들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인데 주님께서 찾기까지 찾으시고 우리교회로 불러주셨습니다. 그 외에도 지송열 박순례 권사님의 자녀인 지선희 성도님이 마침내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또한 스스로 등록한 김선옥 성도님도 우리 교회에 등록하여 다니고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 교회에 이렇게 잃은 영혼들이 돌아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기쁜지 그 감사와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목회하는 기쁨이 이런 것이구나! 때때로 여러 가지 교회의 일로 지치고 힘들어도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는 영혼들을 볼 때 목회할 힘을 다시 얻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생명이 살아나고 회복되고 치유되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감사하고 가치있고 감동이 되고 기쁜 일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5장에는 세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첫째는 잃은 양의 비유입니다. 둘째는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잃어버린 둘째 아들 돌아온 탕자의 비유입니다. 이 세 가지 비유의 핵심은 구원하시는 주도권이 잃은 자를 찾기까지 찾으시는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우리의 공로나 노력에 있지 않고 찾을 때까지 찾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있음을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의 힘이 죄인들에게 미쳐서 잃은 자들이 돌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잃은 자를 찾기까지 찾으시는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의 힘에 의해서 광주동광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나고 똑똑하고 선하고 무슨 공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일에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처럼 의인의 심정이 충만하여 죄에 찌든 잃어버린 영혼을 섬기는 것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근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왔습니다. 왜 이들이 나온 것입니까? 사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굉장히 부담스러울 정도로 과격했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6~27) 그러면서 주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우선순위를 지키면서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많은 무리가 주님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세리와 죄인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더욱더 가까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은 진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세리들과 죄인들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드셨습니다. 유대인에게 식사를 한다는 것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하나가 되고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당시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은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세리와 죄인들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상종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율법 중에는 죄인들을 가까이하지 말라는 교훈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잠언 1:15절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을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했습니다. 또한 시편 1:5절을 보면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라”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율법의 근본정신은 죄인일지라도 그 생명을 살리는데 있습니다. 에스겔 33:11절 말씀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율법의 핵심인 사랑을 완성하기 위함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지속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1~32) 예수님은 죄로 망가진 잃어버린 영혼을 찾고자 오셨고 진실로 모든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실 바리새인도 서기관도 잃어버린 영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도 찾고자 그들이 식사 초청하면 꺼리킴 없이 가셨고 그들과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도 죄인이다! 너희도 하나님의 잃어버린 소중한 영혼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비난하고 죽이고자 했습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그들 안에 교만함이 있었고 위선과 탐욕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눅11:39절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명예에 관심이 많아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기뻐했습니다’(눅11:43)또한 누가복음 18:11절을 보면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이 아니하고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자신들의 의를 자랑했습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그들도 세리나 창녀와 똑같은 죄인이었고 오히려 그들 안에 있는 탐욕과 명예심과 의로운체 하는 위선은 훨씬 더 무거운 죄였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세리나 죄인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리나 죄인들을 소중하게 대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죄인을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잃은 양을 찾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태초부터 지금까지 달려오시는 분이십니다. 집념의 하나님, 열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주님은 잃은 영혼을 찾기까지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4~6절까지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내가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어떤 목자에게 양 100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마리가 잃어버린 바 되었습니다. 왜 이 양은 99마리의 무리를 떠났을까? 목자의 책임입니까? 아니면 스스로 미혹을 받아서 목자의 돌봄이 있는 곳을 떠난 것입니까? 아마도 이 양은 자신의 욕심과 탐욕 때문에 목자의 보호와 인도하심이 있는 안전한 양 떼들의 무리를 떠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양이 비록 미혹 받고 자기 욕심을 좇아 무리를 떠났다 할지라도 혹시 실수하여 목자가 돌보는 양의 무리에서 떠났다 할지라도 목자는 그 양 한 마리의 가치 때문에 반드시 양을 찾으러 간다는 것입니다. 그 양이 어떤 연유로 떠났든지 목자는 그 이유를 따지지 않고 오직 한없는 용서와 사랑의 마음을 품고 찾아 나선다는 것입니다.
오늘 한 양을 잃어버린 목자는 즉시 이렇게 행동한다고 합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목자는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찾으러 갑니다. 긴박성입니다. 그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애타는 사랑입니다. 마치 자식을 광장에서 잃으면 곧바로 길거리를 미친 듯이 찾아 나서는 어머니처럼 즉시로 찾아 나섭니다. 여기서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라는 뜻은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들판을 헤매면서 찾아다닌다는 것입니다. 혹시 낭떨어지로 떨어지지는 않았을까? 혹시 사나운 짐승에게 해를 입지는 않았을까? 혹시 방황하다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있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찾을 때까지 찾아 나선다는 것입니다.
사실 양 100마리를 치던 목자가 1마리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할까요? 99마리를 위험한 데 두고 1마리를 찾아다니는 것은 정상적인 목자의 행동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 비유의 내용이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처럼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렇게 하지 않겠느냐? 면서 질문을 하십니다. 무슨 뜻일까요? 99마리의 양들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99마리의 양을 들에 놓아두어도 뭔가 안전장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목자는 99마리의 양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만약 한 마리 양을 찾아왔는데 99마리 양 중에 또 어떤 양을 잃어버린다면 이 목자는 속성상 그 한 마리 양 때문에 새로운 슬픔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없습니다. 본문에서 99마리 양은 안전하게 그대로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목자가 잃은 양 하나를 찾고자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긴급히 찾아 나섰다는 것에 이 이야기의 핵심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99마리보다 1마리로 인해 더 기뻐한다는 표현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에 대한 강조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사랑하는 주님이십니다. 교회의 지도자인 목자는 교인들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에 대한 관심입니다. 교회에 사람이 많아져도 지도자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관심을 세밀하게 가져야 합니다. 한 사람이 실족하고 열 사람이 새로 교회에 나오면 아홉 명이 늘었으므로 실족한 한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이 없다면 그것은 주님의 마음을 버린 삯꾼 목자의 마음입니다. 진정한 주님의 마음을 가진 선한 목자라면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가슴을 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한 사람을 업신여기는 우리 시대의 물량주의 풍조에 엄청난 경각심을 울려주는 말씀입니다. 한 사람의 중요성에 대한 역사적인 이야기입니다. 앤 설리번의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앤 설리번은 어려서 눈이 보이지 않는 맹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정신질환까지 있어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부모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육체와 영혼이 병든 장애아였습니다. 아무 쓸모 없는 맹수와 같은 자였습니다. 그런데 한 나이 많은 자원봉사자가 그녀를 헌신적으로 돕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의 투정을 다 받아주고 섬겨주고 사랑을 베풀어 주자 6개월 만에 앤의 마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나중에는 맹아학교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하여 우등생이 되었습니다.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수술을 받아 마침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앤은 자신이 받은 은혜를 갚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보았습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한 소녀를 도울 사람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 소녀가 헬렌 켈러입니다. 앤 설리번 여사는 헬렌켈러를 찾아가서 돕기 시작하였습니다. 1,2년이 아니고 무려 48년 동안 헬렌 켈러와 함께 먹고 함께 자며 그녀를 헌신적으로 도왔습니다. 그 앤 설리번 여사의 섬김과 사랑으로 말미암아 인류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헬렌 켈러 박사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3중고를 겪는 쓸모없는 잃은 양이었던 헬렌 켈러를 한 사람을 앤 설리번 여사가 영접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섬겼을 때 위대한 인물이 탄생 된 것입니다. 사실 이름없는 자원봉사자 한 사람의 희생적 섬김으로 앤 설리번이 살아났고, 앤 설리번이 살아나서 48년 동안 헬렌켈러를 섬겼을 때 인류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헬렌켈러의 인생이 창조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이런 것입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천하보다 소중합니다. 하나님 편에서 한 영혼은 독생자 예수님의 피 값을 주고 살만한 보배롭고 존귀하고 가치있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한 존재가 회복될 때 기적이 일어나고 인류 역사가 바뀌고 새역사가 창조됩니다.
교회는 한 영혼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늘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기까지 찾아 나서는 주님의 사랑을 재현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품을 떠나 방황하고 있는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 나서는 사랑과 헌신과 섬김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지적장애를 가진 한 영혼을 중학교 때부터 만나 13년 동안 매주 한 번 만나 성경 공부하고 축복 기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느덧 장성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 영혼을 섬기면서 제가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교회 일로 피곤하고 인간관계로 지칠 때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그 한 영혼을 섬기는 일이 때로는 버거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그 영혼을 섬기고 나면 오히려 내가 치유되고 회복되어 묵은 때를 벗겨 내고 순수한 원점에서 다시 목회를 시작하는 새 마음을 얻고 있음을 많이 느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 한 영혼을 13년 동안 섬기게 하셨는가? 한 영혼을 찾기까지 찾으시는 목자의 마음을 저에게 심어주시기 위한 주님의 배려임을 배우게 됩니다. 성철아 한 영혼을 사랑하는 목자의 마음을 잃지 말아라! 지적장애를 가진 한 영혼을 섬길 때마다 주님께서 저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목자가 마침내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목자는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양 떼들에게 옵니다. 뿐만아니라 양 떼들과 함께 집으로 가는 길에서도 계속해서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옵니다. 왜 잃어버린 양을 어깨에 메고 옵니까? 그 양이 지쳐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못 걸을 정도로 기진맥진한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왔다는 것은 잃은 양에 대한 징계가 아니라 환영과 돌봄과 사랑과 섬김의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집 나간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탕자를 맞이하는 모습과 유사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에 대해서 징계를 준비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으로 환영을 준비하고 계심을 말씀해 줍니다. 6절에서 잃은 양을 찾은 목자가 집에 돌아와 너무 즐거워서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잔치 비용을 따진다면 잃은 한 마리의 양보다 더 값비싼 비용이 들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말씀하고자 한 바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잃어 버린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주님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생명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십니다. 죄인 한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와 구원받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반어법으로 의인 99명 때문에 누리는 기쁨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기쁨이 더 크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망한 것은 의인 한 사람이 없어서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의인을 찾고 찾으시면서 그들을 만나주시고 그들 때문에 인류의 심판을 지연하기까지 합니다. 의인은 그만큼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의인 99명에 대한 기쁨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그 기쁨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잃은 양을 찾기까지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다 지옥 불에 떨어질 자들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찾으시는 그 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감리교 신학자요 목회자인 김영봉 목사님의 ‘알고보니’ 라는 기도내용입니다. “제가 아버지를 찾는 줄 생각했습니다. 알고보니, 아버지께서 저를 찾으셨더군요 / 제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줄 알았습니다. 알고보니,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셨더군요 / 제가 아버지께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제게 오셨더군요. 저는 저 아버지는 아버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알고보니, 아버지 안에 제가 있고 제 안에 아버지께서 계시더군요 / 감사합니다 아버지!
잃어버린 양은 절대로 스스로의 힘으로 주님의 품으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오직 찾기까지 찾으시고 마침내 찾아서 지치고 기진맥진한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아버지 집으로 들어오시는 주님의 강권하시는 사랑 때문에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이 그림을 잃지 맙시다. 주님의 품을 떠나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헤메고 헤메다 지치고 쓰러져 죽어가는 우리를 찾기까지 찾아 만신창이 가 된 우리를 어깨에 메고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이 번 한주는 내 주변에 방황하고 있는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가 밥 한 끼 대접하든, 전화로 위로하든, 따뜻한 위로의 문자를 보내든, 아니면 조용한 시간에 그 영혼을 품고 중보기도하든... 예수님의 마음으로 지친 한 영혼을 칭지격동하는 한주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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