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47강
제목 :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세 가지 각오
말씀: 누가복음 14:25-35
오늘 말씀은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에게 굉장히 부담스러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단순히 교회만 왔다 갔다 하면서 예배만 드리는 신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25절 말씀입니다.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무리를 몰고 다녔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행하시는 분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로 충분히 인정받을만한 능력과 권세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자를 고치고, 죽은자를 살려냈으며,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였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공생애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고자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계십니다. 이번 예루살렘 여행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자신의 공생애를 마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로마의 압제자들로부터 자신들을 자유롭게 할 정치적 메시야로 믿었습니다. 제자들조차도 이 땅에 메시야 왕국이 곧 오리라고 생각했고 누가 주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을 것인가 신경전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딴 생각을 하면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여기면서 따르고 있는 수많은 무리들을 향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오늘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세 가지 각오’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이 시대의 예수님의 참 제자의 삶에 대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에게는 사랑의 질서가 분명해야 합니다.
26절 말씀입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예수님은 지금 무리들에게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굉장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얼핏 들으면 이 말씀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이웃사랑과 가족사랑에 대해서 충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십계명 중 이웃사랑에 대한 첫 번째 사항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딤전5:8절에서 바울 사도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라고까지 했습니다. 성경은 철저히 이웃사랑과 가족사랑 부모 사랑을 가르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핵심은 ‘미워하지’라는 단어의 해석에 있습니다. 여기서 ‘미워하지’로 번역된 헬라어는 ‘미세이(μισει)’로 실제로 미워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조금 사랑하다, 덜 사랑하다’는 뜻입니다. 즉 어떤 대상보다 상대적으로 사랑의 정도가 약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즉 사랑의 질서의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가장 사랑해야 할 대상의 첫 번째가 하나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2:37절에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랑의 질서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부모님, 가족, 자녀를 힘써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내 생명도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사랑도 해야 합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남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배롭고 존귀하고 가치있고 사랑받을 만한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걸작품으로 천하보다 소중한 존재로 우리를 창조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양이요 예수님의 피 값이 지불된 나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사랑이 하나님 사랑보다 더 앞서면 안 됩니다. 아내나 남편이나 자녀 사랑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됩니다. 부모님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됩니다.
사랑의 질서에서 언제나 하나님이 첫 번째입니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행복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현실적인 삶은 사랑의 질서를 지켜 행복하게 안정된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오히려 죄로 말미암아 왜곡되어 무분별한 사랑을 함으로써 오류와 혼돈과 슬픔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가장 안정감을 느낄 때가 언제입니까? 내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때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때입니다. 내가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인생의 의미가 있는지 내 삶의 목적을 알 때입니다.
저는 사춘기 방황하던 시절에 내가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내가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키우다 늙어 죽으면 소멸되는 인생이라면 왜 결혼해야 하는지, 왜 자녀를 낳고 길러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사는 것이 허무했습니다. 왜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든가? 내가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학 2학년 때 예수님을 만났고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이 말씀이 해석이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창조한 존재구나!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되었구나!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구나! 이 세상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고 나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구나! 이러한 나의 존재 목적이 깨달아질 때 저의 삶은 안정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죽음이 이후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오셨습니까? 죄로 말미암아 무분별한 사랑을 하는 인간들에게 사랑의 질서를 회복하라고 오셨습니다. 타락은 하나님을 내 삶의 창조주로 왕으로 주인으로 주권자로 여기지 않고 내가 주인이 되고 왕이 되는 삶에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의 첫 번째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까?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시고, 불변하고, 영원한 진리이시고, 항상 머무르는 존재자이시고, 그 사랑은 변하지 않으며, 그 생명은 영원하고, 그분의 지식은 완전한 진리이며, 그 분은 절대선이고, 그분의 영광과 존귀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모든 피조물은 시간적이고 가변적이고 쇠퇴하고 무상하고 변질되고 사라지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세상을 사랑하면 행복했다가도 미래는 늘 두려워집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것을 붙잡는 행복이 왜 불안합니까? 내가 붙잡은 행복이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고, 머무르지 않고 흘러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내가 획득한 행복의 기쁨은 잠시 잠깐이고 언젠가 이 행복을 빼앗길지 모를 거라는 불안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불변하고 영원한 진리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소유할 때 가능합니다. 변하고 한시적이고 썩어지고 부패하고 제한적인 것을 사랑할 때 우리의 인생은 불안하고 분열되고 혼돈스럽고 공허합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 쉴 때까지는 편안하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랑의 질서를 지킬 때 우리의 존재는 안정적이고 행복하게 되고 분열 되거 흩어지지 않고 푯대를 향해 힘있게 달리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무질서한 사랑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사랑의 첫 순위에 두고 그 다음 자기 사랑 가족사랑 이웃사랑 만물 사랑으로 가야 합니다. 가변적이고 사라지고 흘러가 버리는 한시적 것을 덜 사랑하고 영원한 행복의 실체이신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가장 많이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삶의 행복은 보존되고 지켜지고 안전해질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런 사랑의 질서를 지키는 것이 제자의 삶에서 우선순위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 부인과 자기십자가를 결단해야 합니다.
27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누가복음 9:23절에서는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사실 자기부인과 자기십자가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왜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까? 구원은 받았지만 우리 안에는 여전히 과거에 즐기던 죄의 본성이 덕지덕지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죄의 누룩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을 때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 있습니다.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없는 구원은 있을 수 없습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회개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두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메타노이아(μετανοια,회개)로 메타(μετα, 함께, 뒤에)와 누스(νους, 마음, 생각)의 합성어입니다. 이것은 마음이나 생각이 변화되는 것을 뜻합니다. 또 하나의 회개의 단어가 있는데 ‘에피스트레포(έπιστρεψω, 돌이키다)입니다. 에피(έπι, ...향하여)와 스트레포(στρεψω, 돌아서다)의 합성어로 ’...향하여 돌아서다‘는 의미로 방향의 전환을 뜻합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먼저는 내적으로 마음과 생각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즉 내 생각 내 경험 내 기준 내 가치관 세계관을 버리고 말씀 중심의 생각, 말씀 중심의 기준, 말씀 중심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 중심의 마음과 생각과 기준으로 변화되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내적인 변화 곧 지적이고 감정의 변화만 회개가 아닙니다. 외적인 삶의 변화까지 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옛 삶의 질서와 습관과 행위에서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세례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했습니다. 회개란 지,정,의가 동반되는 변화된 삶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지적변화와 감정의 변화와 행동의 변화까지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지만 우리 안에는 끊임없이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자기 영광을 구하고, 자기 유익과 세상 쾌락을 추구하고자 하는 옛 자아가 있습니다. 바로 이런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첫 사람의 아담이 왜 무너졌습니까? 첫 사람 아담을 무너뜨렸던 세 가지 통로가 있습니다. 바로 먹음직도 한 육신의 정욕, 보암직도 한 안목의 정욕, 지혜롭기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것을 추구하는 이생의 자랑이었습니다. 사탄은 이 세 가지 통로로 아담을 유혹했고 결국 죄를 짓게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통로로 역사하는 사탄과의 영적 전쟁을 날마다 자기 부인으로 싸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죄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대해서는 살아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중심적인 자기, 육신적인 자기, 이기적인 자기, 안일과 정욕을 사모하는 자기,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자기중심성을 회개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22-24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자기 부인이란 한마디로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 한 번의 결심이나 노력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 순간 순간 자기와의 내적인 싸움을 싸워야만 합니다.
날마다 자기부인을 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너무나 어렵습니다. 육신을 가진 예수님도 힘들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자기를 이길 수있는 힘을 주십니다. 자기부인이 되면 우리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 담임목사님으로 제가 감당해야 할 자기부인과 자기 십자가가있습니다. 새벽 4시면 일어나서 목욕제기하고 넥타이 매고 새벽기도 가는데 이 시간이 저의 출근시간입니다. 토요일이면 교회에서 자면서 주일말씀 준비합니다. 어떤 때는 집이 낯설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일에 대해서 모두 책임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머리속에는 늘 우리교회의 미래를 향해 기도하면서 올바른 방향을 잡고자 주님께 구합니다. 교회의 애경사, 성도들의 위로와 격려 모든 것이 자기부인과 자기십자가입니다. 버거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감당해야 합니다. 기도없이 성령님의 기름부음 없이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이사역을 맡기신 주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 충성되게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 시무장로님들에게도 자기부인과 자기십자가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과 함께 협력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라고 부르신 직분입니다. 성도들보다 더 헌신해야 합니다. 최소한 주일예배 오후찬양예배 수요예배의 공 예배의 자리는 지켜야 합니다. 왜 성도님들이 장로님인데 존경하지 않냐고? 왜 무시하냐고?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는 성도들에게 높은 수준의 신앙의 본을 보여주었는지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장로는 성도들의 신앙의 본을 보이면서 이끌어야 하는 교회의 지도자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자리입니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영성을 유지하면서 교회를 섬기는 자리입니다. 또한 구역장 권찰들도 자기부인과 자기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이번 주에는 구역모임 주간입니다. 우리 구역장님들 권찰님들 꼭 구역모임을 하시길 바랍니다. 여러 가지 할 수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부인을 하십시오. 자기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결단하십시오. 구역원들을 섬겨주십시오. 교사 선생님들에게도 자기부인과 자기십자가 있습니다. 이 짐을 감당하려면 토요일에 맡겨준 영혼을 위해 꼭 전화하시고 기도하십시오. 주일공과 토요일에 미리 준비하십시오. 그리고 일찍 주무십시오. 여러분의 자기부인 자기 십자가입니다. 성가대 봉사도, 방송실봉사도, 식당봉사도 자기부인 자기십자가의 자리입니다. 이것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잘 감당하면 주님으로부터 잘했다 충성된 종아 칭찬 받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제자는 고난받을 각오가 되어 있는 자입니다.
오늘 본문 28-32절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 비유를 드시고 계십니다. 첫째는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 때 미리 비용을 계산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둘째는 누가 전쟁할 때 상대를 이길 수 있는지 헤아리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건축을 하고, 전쟁을 할 때 아무 생각없이 막무가내로 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비용도 계산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건축했다가는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아무 생각없이 상대방에게 싸움을 걸었다가는 큰 코 다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출발하고자 할 때도 마음에 각오를 하라는 것입니다. 악한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사탄 마귀와 치열한 전쟁을 치루고자 결단하라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조국의 독립을 꿈꾸며 많은 광복군 후보들이 중국으로, 연해주로 몰려 들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단단한 각오를 하고 온 자들도 있었지만, 그저 광복군이 되면 웬지 멋있게 보일 것 같아서 찾아온 청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자들을 불러 놓고 면접관이 세 가지를 물어 봤다고 합니다. “첫째, 굶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 “둘째, 얼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 “셋째, 맞아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느냐?” 조국의 광복을 위해 일본군과 싸우고자 할 때 기꺼이 목숨을 버릴 각오, 죽을 각오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정신이 있었기에 일본군보다 무기는 열악했지만 청산리전투 등에서 승리하고 일본군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출발하고자 할 때에 마음에 분명한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로 고귀한 삶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에 자기부인의 아픔이 있고 자기십자가의 고통이 있다 할지라도 그 끝은 영광입니다. 승리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삶입니다. 주님과 세세토록 왕 노릇하는 삶입니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No Pain No gain! 고통 없이 얻는 것도 없습니다. No Sweat No Sweet! 땀 흘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행복도 없습니다. 아픔이 있기에 그 영광도 큰 것입니다. 고난이 있고, 희생과 헌신이 있기 때문에 그 열매가 달콤한 것입니다. 피와 땀과 눈물이 있기 때문에 그 끝이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이 시간 우리 성도님들이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아 내기 위해서 내가 지불해야 할 고난의 대가는 무엇인가? 계산해 보시길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위해 내가 세상에서 미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내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했는데 내 삶에서 자기부인이 가장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자기십자가를 지라고 했는데 내가 회피하고 있는 내 십자가는 무엇인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1년에 한 번만 자기부인 자기십자가를 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이번 한 주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나는 오늘 사랑의 질서를 지키면서 하루를 살았는지... 또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잘 따랐는지 단 1분 만이라 하루를 돌아보는 성찰기도를 하고 주무시는 한 주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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