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55강
제목 : 감사를 미루지 말자
말씀 : 누가복음 17:11~19
오늘 말씀은 ‘감사를 미루지 말자’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이나 부족한 것을 더 잘 찾아내는 특성이 있습니다. 사실 감사할 일이 더 많고 기뻐해야 할 일이 더 많음에도 그런 것은 당연시하고 없는 것 부족한 것에 대해서 실망하고 불평하는 삶의 DNA가 있습니다. 첫 조상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주신 에덴에서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으라는 무한한 자유에 대해서 감사하기 보다 딱 하나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그 금지사항에 서운함을 느꼈던 것처럼 그래서 끝내는 사탄의 유혹을 받아 따먹고야 마는 그런 아담의 DNA가 우리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삶을 살고 있음에도 나에게 주신 것에 감사하기보다는 안 주신 것에 대해 오히려 하나님께 서운함을 더 많이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들을 헤아려 본다면 그 놀라운 은혜에 매일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 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찬송429) 세상 풍파 속에 불평과 원망의 마음이 들 때, 내 뜻대로 안 되는 삶이 지속 될 때, 기도해도 응답이 지연될 때, 믿음으로 살아도 상황이 더 나빠질 때, 하나님이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보는 삶의 자세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내 인생 속에 베풀어주신 주의 크신 복이 수없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안 해서이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감사제목이 열 가지, 백 가지, 천 가지, 만 가지도 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사랑의 하나님을 믿고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항쉬범의 신앙생활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감사를 미루지 않고 지금 여기의 매일 삶의 현장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회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11~12절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공생애 마지막 시간으로 예루살렘을 향해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발걸음 하나 하나가 지상에서 마지막 여행길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10명의 나병환자들이 격리되어있는 외곽지역으로 갔습니다. 틀림없이 의도적으로 그 곳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찾아오시는 사랑입니다. 출애굽기를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내 백성의 고통을 내가 분명히 보고, 그들의 부르짖는 기도소리를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고난으로부터 건져내고,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듣고, 알고, 내려오셔서, 건져내시고, 선한 방향으로 인도하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내가 주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이 먼저 내 삶 속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다 이런 은혜를 받고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 속에 찾아오셔서 나를 구원해주신 그 사랑을 단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나병환자들이 격리되어있는 곳 가까이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자 10명의 병자들이 예수님께 나와 멀리 서서 소리 높여 부르짖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병은 연골조직이 떨어져 나가고 피부가 떨어져 나가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무서운 병입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나병은 전염병이어서 가족과 이웃과 격리되어야 했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나병은 부정한 병으로 규정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부정한 나병환자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한 길을 가다가도 일반 사람이 자신들을 향해 오면 윗입술을 가리우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침으로 자신이 나병환자인 것을 알리고 외인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했습니다.
10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는 즉시 예수님께 달려왔지만 더 이상 예수님께 가까이 오지 못하고 멀리 서서 예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예수 선생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외쳤습니다. 나병 환자가 큰 소리로 외치면 성대결절로 성대가 나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대가 망가질지라도 최선을 다해 큰 소리로 부르짖은 것입니다. 왜 이런 무도한 도전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나병을 고쳤다는 소문을 들었고 자신들의 나병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박하게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은 영.육간에 하나님께도 버림받고, 사람에게도 버림받은 죽은 자와 다름없는 정말 불쌍한 자였습니다. 그들은 불쌍한 자신을 인식하고 긍휼을 베풀어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불쌍한 자신을 발견하고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이 기도는 참으로 좋은 기도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 이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입니다. 귀신들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인도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외쳤습니다. 두 명의 소경도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세리도 가슴을 치며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기도했습니다. 은혜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은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발견한 것은 그들은 완벽한 신앙의 지식, 해박한 신학적 지식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을 보면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지식은 불완전했습니다. 그런다 할지라도 그들은 낫기를 포기하지 않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불완전한 신앙의 지식을 가진 미숙한 기도일지라도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지식이 부족해도, 믿음이 연약해도, 신학적 지식이 미숙해도, 기도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진심 어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예수님은 ‘불쌍히 여겨달라’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14절) 예수님은 불쌍한 그들을 보셨고,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와 질병으로 고통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병을 치료할 때 당장 현장에서 고쳐주시지 않고 그들에게 나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예전에 예수님은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순서를 바꾸셨습니다. 고치시지도 않고 가서 제사장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고침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암 환자에게 여전히 암 덩어리로 고통하고 있는데 암에서 치유되었다는 건강진단서를 끊으러 의사에게 가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는 참으로 순종하기 힘든 명령이십니다.
놀라운 사실은 10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병에서 깨끗함을 받게 될 것을 믿고 순종하여 제사장에게 갔습니다. 10명 중에 한 사람도 불신에 빠지지 않고 다 순종했습니다. 그들이 가는 도중에도 얼마 동안 병이 낫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병이 나아가는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지속적으로 순종하여 나갔습니다. 현재 상황이 어떠하든지 그 말씀을 믿고 계속하여 나갔습니다. 위대한 순종입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사장에게로 가는 도중에 갑자기 그들의 나병이 치료되었습니다.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그들은 감격했습니다. 환호했습니다.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춤을 추었습니다. 이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더이상 길을 가면서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고 능력을 베푸십니다.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말씀을 믿으십시오.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체험할 것입니다. 내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믿음을 받으시고 우리의 순종을 축복해주십니다. 이들은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15-16절 말씀입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열 명은 모두 나병이 나았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지금까지 열 명의 나병환자는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병이 나은 후에 한 명과 아홉 명이 나뉘었습니다. 나병환자 중에 아홉은 제사장에게 나은 몸을 보이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동안 꿈꾸었던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러 갔습니다. 이제는 일도 할 수 있고 인생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시 받던 사마리아 사람 하나만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할렐루야’ 찬양하며 예수님 발아래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왜 아홉명은 감사하지 않고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 감사한 것입니까? 어떤 목사님의 설교에서 감사함이 없는 아홉 명의 변명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홉 명 중의 한 사람은 나은 것이 확인됐을 때 ‘의사에게 가서 정밀 검사를 해야겠다’고 병원에 갔을 것이다. 둘째 사람은 ‘혹 재발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니 며칠 두고 봐야지’ 하고 신중한 태도를 취했고, 세 번째 사람은 ‘내 병은 본래 문둥병이 아닌 좀 특이한 피부병 정도였던가 보다’ 라고 생각했으며, 또 다른 사람은 ‘내 병은 나을 때가 돼서 나았을 거야’ 자연현상으로 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또 한 사람은 병 걸리기 전에 가졌던 부동산이 그대로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급히 가버렸고, 또 한 사람은 식구들 특별히 아내가 지금도 날 기다리고 있는지 궁금해서 가버렸고, 또 한 사람은 예수님께서 안수해 준 것도 아니고 어루만져준 것도 아니고 약을 준 것도 아니고 그냥 가서 제사장에게 보여라 말 한마디 밖에 안 했는데 뭐! 별거 해준것도 없는데... 그래서 감사하러 안 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한 사람은 이 몸으로 갈 수 없잖아 목욕이라도 하고 선물이라도 준비해 가지고 가야지 미적거리다가 안 갔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다 그럴듯한 핑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감사하러 온 사마리아인 한 사람에게 질문합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예수님께서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물으시면서 돌아오지 않는 아홉 사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찾으셨습니다. 왜입니까? 무슨 대가와 사례를 받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더 좋은 선물을 주시고자 하심입니다. 감사하러 온 그 한 사람에게 예수님은 어떤 선물을 주셨습니까? 19절 말씀입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예수님께 감사하러 온 그 한 명에게는 구원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육신의 건강뿐만 아 아니라 영원한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작은 것에 감사하는 자에게는 더 큰 감사할 일을 주십니다. 안타깝게도 감사하지 않는 아홉 명은 육신은 고침 받았지만 영혼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감사하러 온 사마리아 한 사람만 구원받은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설교 중에 했던 말입니다. “우리에게 별빛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러면 달빛을 주실 것입니다. 달빛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러면 햇빛을 주실 것입니다. 해빛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신령한 빛 영원한 빛을 주실 것입니다” 감사는 더 좋은 감사를 낳습니다. 예수님은 작은 것에 감사하는 자들에게 더 큰 감사를 할 수 있는 감사의 열매를 주십니다.
사실 우리의 주변에는 감사할 일이 수두룩 빽빽합니다. 경상도 사투리로 ’천지빼까리‘입니다. 정말 작은 감사제목들이 주변에 널려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자유롭게 숨을 쉬고 있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오늘 당장 병원 중환자실에 가보십시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고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하루 살아있음에 감사하십시오. 오늘이 바로 어제 죽어가던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던 내일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숨 쉬면서 살아있는 삶 자체가 감사가 될 수 있습니다.
“네잎 크로바의 행운보다 세 잎 크로바의 행복이 더 소중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희소한 네 잎 크로바의 행운을 찾기보다 오늘의 일상의 삶에 널려있는 새 잎 크로바의 작은 감사제목들이 진정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것에 감사함으로 성공한 사람을 꼽으라면 누구나 주저하지 않고 오프라 윈프리를 꼽을 것입니다. 그녀는 가난한 미혼모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외할머니 손에 자랐습니다. 그는 10살을 갓 넘은 나이에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14살에 임신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2주 만에 죽었습니다. 이 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마약을 복용했습니다. 마약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살이 찌는지 107Kg이 되어 모든 것을 포기한 폐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그녀에게 삶의 놀라운 전환점은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부터입니다. 그녀는 매일 성경을 읽고 암송하며 영혼의 양식을 먹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감사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날마다 5가지 감사제목을 찾아 적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감사 일기입니다.
첫 번째 오늘도 잠자리에 거뜬히 일어나게 하신 것 하나님의 감사합니다.
두 번째 유난이 눈부시고 파란 하늘을 보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세 번째 오늘 점심에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게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네 번째 얄미운 직장 동료에게 화내지 않았던 저의 참을성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다섯 번째 좋은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써 준 작가에게 감사합니다.
아주 평범한 일 작은 일에 그녀는 매일 감사했습니다. 그 작은 감사가 쌓이고 쌓일 때 그의 인생이 성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녀의 토크쇼 인기가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상을 휩쓸었습니다. 세계적인 토크쇼의 여황 오프라 윈프리가 세상에 등장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매일 다섯 가지 감사제목을 적는 삶을 실천하기를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더 큰 복을 주십니다. 작은 것에서 감사를 찾는 자에게 더 큰 감사의 복을 주십니다.
흔히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바위에 새긴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원한은 물에 새기고 감사는 바위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묻혀진 감사가 너무나 많습니다. 미루고 있는 감사제목이 너무나 많습니다. 선포해야 할 감사제목이 너무나 많습니다. 흔히 사람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내가 받은 은혜는 너무나 잘 잊고 서운한 것만 기억해 내는 이기적인 존재가 우리 인간입니다. 출애굽 1세대들처럼 말입니다. 애굽에서 10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고, 홍해를 가르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매일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고 느끼면서도 마라의 쓴물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홍해를 건넌지 삼일 밖에 되지않아 그들은 불평했습니다. 신광야에서 식량이 떨어질 때 또 원망 불평했습니다. 광야에서 물이 없다고 모세를 돌로 쳐 죽이려 했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힘들 때마다 의심했습니다. 사실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살다보면 우리에게도 매일 매일 원망 불평할 일투성입니다. 결핍되고 부족한 것이 왜 이렇게 많은지요?
그러나 진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영적아이큐가(SQ) 높은 사람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은혜를 잊으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영적아이큐가 높아져야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감사가 생깁니다. 성경읽고 기도하고 하가다하면서 영적 아이큐를 높이세요! 늘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모든 불평 원망하는 인간적인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님께 복종시킬 때 감사가 나옵니다. 잘되면 감사 안되면 더 감사할 수 있는 영적 지능이 높아질 때 우리는 불평 할 수밖에 없는 이 세상살이에서 감사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말하십시오. 노래는 부를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며,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감사는 표현할 때까지 감사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감사를 표현하면 인생의 상처에서 온전히 치유됩니다. 감사했던 사마리아 사람은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건강해지고, 영혼까지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감사는 육신의 치유를 넘어 영혼의 문제까지 연결됩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면 더 큰 감사제목이 생깁니다. 더 이상 감사를 미루지 마십시오. 오늘부터 감사제목 다섯가지를 매일 주님께 올려드리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로 더 풍성하고 더 부요한 신앙생활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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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 누가복음53강(제목 :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성숙한 신앙) | 김성철 | 2025-09-02 | 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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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 누가복음47강(제목: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세 가지 각오) | 김성철 | 2025-07-21 | 6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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