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56강
제목 : 누가 천국에 가고 누가 못 가는가?
본문 : 누가복음 17:20~30
크리스찬서적에서 출판한 합동측 신성종목사님의 ‘내가 본 지옥과 천국’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분은 총신대 대학원장도 하시던 이름있는 신학자요, 장로 대통령이셨던 ‘김영삼 전대통령’이 다니셨던 합동측 대표교회인 충현교회를 담임했던 분이시기도 합니다. 이분이 자신 대신 선교사로 가셨던 2분이 선교지에서 순교했습니다. 그래서 은퇴 후 자신도 선교사로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있을 즈음에 주님께서 선교사가 되라고 8일 동안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매일밤마다 시리즈 환상을 보여주셨던 것을 기록하여 책으로 낸 것이 바로 ‘내가 본 지옥과 천국’입니다.
예전에 이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았는데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다시 읽고자 찾아도 없어서 이분이 주안장로교회에서 간증한 내용을 다시 한번 들었습니다. 그중에 특별히 지옥에 가있는 목회자들의 대한 간증 내용이 있었습니다. “지옥의 1층 서관에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적지 않게 있었는데 이들은 주님의 영광을 가로챘고, 교인들에게 축복해 준다는 빌미로 많은 재물을 착취했으며, 필요 이상으로 호화롭게 살았고, 주변의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난당하는 모습을 외면했고, 교인들에게 진정한 비전을 주지 않고 세상에서 번영만을 설교했다. 그들의 행함의 근본 이유가 자기들의 탐욕에 있었기 때문이며 이는 우상숭배에 해당된다고 하였다”는 주님의 음성을 간증했습니다. 목회자인 저에게 정신이 번쩍들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구원에 대한 확신은 있지만 아직 확인은 못했습니다. 확인은 죽음 이후에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설 때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대한 확신은 갖되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완성해 나가는 신앙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습니다. 혹시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나에게는 있는지, 지금 죽어도 천국 갈 수 있는지 늘 깨어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D.L 무디 목사는 그의 설교집 ‘하늘나라’에서 사람이 천국에 가면 세 번을 놀란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분명히 천국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살인강도들이 와 있는 것에 놀라고, 둘째는 분명히 와있어야 할 선한 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이 없음에 놀라며, 마지막으로 자기가 와 있는 것에 놀란다고 합니다. 반대로 지옥에 가도 마찬가지로 세 번 놀란다고 합니다. 첫째는 분명히 지옥에 있어서는 안 될 교회 직분 자가 있음에 놀라고, 둘째는 성도들에게도 무시 받던 병든 거지 같은 사람들이 지옥에 없음에 놀라며, 셋째는 자기가 그 곳에 와 있는 것에 놀란다고 합니다.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으며 우리는 이 둘 중 한 곳에 갈 것입니다. 신앙생활 잘해야 합니다. 오죽했으면 한국 최고의 신학교인 총신대학교에서 대학원장까지 하신 저명한 신학자가 잘못하면 신비주의자라고 돌팔매질 당할 각오를 하고 자신이 8일 동안 환상 중에 본 주관적 경험을 기초로 ‘내가 본 지옥과 천국’이라는 책을 썼겠습니까?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천국과 지옥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누가 천국에 가고 누가 못 가는가를 명확히 깨닫고 우리 성도님들은 단 한 분도 예외 없이 다 천국에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혹시라도 교회 잘 다녔던 그 분이 왜 천국에 없는지 놀라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누가 천국에 갑니까?
첫째로 현재 나의 내면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고 있고,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사람이 천국에 갑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합니까?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평소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자주 말씀하셨고, 그 나라가 이미 임하였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20~21)
당시 바리새인들뿐 아니라 대다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될 정치적, 유대인 중심의 민족적 왕국으로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서 로마 정부를 몰아내고 독립 이스라엘을 세우면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한다고 하십니다. 대신에 하나님 나라는 지금 너희 안에 있다고 하십니다. 이 말의 의미에는 두가지 뜻이 숨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는 지금 여기 우리 마음속에 임해있다는 뜻입니다. 다시말해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잘 먹고, 잘 마시고, 좋은 옷 입고, 형통하고, 성공하는 그런 눈에 보이는 나라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어떤 현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인식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병고침을 받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시험에 합격하고 좋은 직장에 가면 하나님의 나라가 내게 온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업이 잘되고, 가정에 문제가 없고, 자녀들이 형통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은혜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성령 안에서 우리의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쁨과 평안과 죄사함을 받은 나라입니다. 우리 안에 주님이 거하시고 성령님의 뜻을 따라 살면 어떤 환경, 조건 가운데서도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는 나라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하나님 나라입니다. 시편 131:2절을 보면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뗀 아이와 같도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내 심령에 임하면 내 영혼이 평온하고 기쁨이 차고 넘치게 됩니다.
더불어 사단의 나라도 우리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사단이 우리 마음을 다스리면 우리의 마음 속에 두려움이 생기고, 불안하고, 염려가 생기고, 미움과 다툼이 생깁니다. 원망과 불평이 생깁니다. 만약 내 안에 두려움이 가득차고, 불안하고, 미움과 불평이 가득하다면 사탄이 내 마음을 통치하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 속에 역사하고 있는 사탄의 나라를 기도와 말씀으로 물리치고 다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믿음의 성도들 사이에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즉, 우리 가운데라는 말은 우리가 관계 맺고 살아가는 그 관계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서로 사랑하고, 허물을 용서하고, 지지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그 관계 속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 안에서 여기가 천국이구나! 하고 기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서로 따뜻하게 품어주고, 사랑하고, 보듬어주는 모습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위로하고, 신뢰하고, 격려하고, 헌신하면 자녀들이 가정에서 천국을 느낍니다. 이처럼 사람과의 관계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정과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희미하게라도 맛보고 보여주는 사람이 될 때 죽어서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지금 여기의 삶의 현장에서 먼저 내 안에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할 수 없다면 죽어서도 천국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여기의 삶의 현장에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없이 맨날 미워하고 분노하고 뒷담화하고 상처 주고 헐뜯고 한다면 어떻게 죽어서 천국의 문이 열리겠습니까? 지금 여기서 내 안에 그리고 성도와 관계 속에서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사람이 죽어서도 천국에 들어갑니다.
둘째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사 나의 죄 값을 치루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처럼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면서 신앙생활하는 성도가 천국에 갑니다.
22-25절을 보십시오.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지금 여기서 내 안에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언젠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완성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후에 부활하시고 40일 후에는 감람산에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신 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재림하십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는 완성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의 때가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번개가 하늘 이쪽에서 번쩍하여 하늘 저쪽까지 비침같이 그렇게 모든 사람이 동시에 볼 수 있게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어느 순간에 갑작스럽게 예기치 않게 이루어집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나라는 여기 저기라는 공간에서 부분적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모든 공간에 순식간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림하신 메시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하는 거짓 메시야의 말에 속지 말아야합니다. 지금 한국에는 100여명의 메시야가 있습니다. 통일교에, 하나님의 교회에, 신천지교회에...구원파 교회에, 영생교에, 이재록 교회에 예수님이 영으로 재림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교주가 있는 곳에 하나님 나라가 있다고 합니다. 이들의 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이 일이 없음이라”(행4:12) 예수님 외에 다른 구원자는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전에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고난 받아 죽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데 가장 방해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선포하셨습니다. 인간의 죄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세대에 버림받아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천국에 갈려면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내 죄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선포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2:20)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내 죄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해야 합니다. 죄는 내가 주인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 저기로 가지 말고 지금 내가 주인되고 내가 왕이 되어 살아가는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처럼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면서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죽어서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셋째 육성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 천국에 갑니다.
26~27절 말씀입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예수님은 과거에 있었던 노아 시대의 심판을 근거로 하여 앞으로 올 심판의 날을 알기 쉽게 설명하십니다. 주님의 재림의 때도 노아 시대의 구원과 심판과 유사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노아시대의 사람들이 멸망 당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그들과 결코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 때문에 심판을 받고, 그것 때문에 멸망 당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우리들의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롯의 때에 소돔과 고모라가 불과 유황의 심판을 받은 때의 상황을 주님의 재림의 심판의 예표로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들도 노아 시대와 똑같이 심판을 받기 전의 상황이 같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도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지으며 열심히 일상의 삶에 열중했습니다. 이게 뭐가 문제인가요?
중요한 것은 노아시대도 롯의 시대도 문제는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집짓고 하는 일 외에 다른 거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짐승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짐승들도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목이 마르면 마실 물을 찾습니다.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짝짓기를 해서 새끼를 낳습니다. 짐승들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잘못되었다고, 그렇게 사는 것이 죄를 지으며 사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요? 짐승이기 때문입니다. 짐승은 그렇게 살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사람은 짐승과 다릅니다. 짐승과 같은 수준으로 살면 안 됩니다. 노아 시대에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 외에 관심이 없는 그들을 향해 주님이 한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여기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고깃덩어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육체적 생명으로만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육신을 가졌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영이신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3:11절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로 위로는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이웃을 사랑하면서 사명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인간은 세상사람들이 추구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쫓으면서 육성을 따라 살면 안 됩니다. 특별히 믿음의 사람이라면 더욱더 깨어서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목적을 깨닫고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명을 따라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재림의 때가 가까이 올수록 너희는 세상의 일상에 파뭍혀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에서 멀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롯의 처는 천사가 심판의 날에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집에 두고 온 귀중품과 보석들이 생각났는지 모릅니다. 그녀는 세상에 대한 미련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롯의 처는 구원받지 못하고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때도 유사합니다. 사람들은 맛있는 것을 찾아 먹고 마십니다. 장가가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심고 집짓고 돈 버는데 열을 올립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말씀을 들어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을 들어도 시큰둥합니다. 당장 먹고사는 것이 바쁜데 매일 매일 신경 쓸 일이 얼마나 많은데 죽음 이후 가야 할 두 곳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관심 가질 여유가 없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심지어 죽은 후에 하나님 나라와 심판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의 기독교의 교리 정도로 여깁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천국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지’하고 재림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한 번 예수님을 믿었으면 세상을 뒤돌아보지 말고 하나님 나라만 바라보며 살아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골로새서 3:1~4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마지막에 잘 죽는 것입니다. 잘 죽는 것은 하루 아침에 준비되지 않습니다. 내 인생 전체를 잘 살아야 마지막에 잘 죽을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매일 지금 여기서 내 마음속에 천국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더불어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천국을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또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일상의 삶에 함몰되어 육체의 욕망이 나를 이끄는 노아 시대의 사람들처럼 롯의 시대의 사람들처럼 짐승의 수준으로 살면 안 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만 추구하는 육체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천국 가서 놀라고 지옥에 가서 놀라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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