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누가복음54강(제목: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2025-09-07 06:41:25
김성철
조회수   60

누가복음54

제목 :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본문 : 누가복음17:5-10

 

우리는 앞 주에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한다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실족은 무례함과 악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의 믿음을 무너지게 하는 결과를 말합니다. 아무리 보잘것 없는 작은 자라도 무례하게 대하거나 혹시라도 악한 행동으로 그 영혼을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천하보다 소중한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성육신하셨고 십자가에서 그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대속의 값을 치루셨습니다. 송명희 시인의 나 하나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 하나만 있더라도 세상을 지으신 주, 나 하나가 죄를 짓더라도 십자가에 죽으신 주, 나 하나가 있더라도 천국을 마련하신 주 주님에게 한 영혼은 세상보다 크고,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로 소중하며, 그 한 영혼을 위해서라도 천국을 준비하시는 신실하신 주님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힘없고 약한 자, 가난한 작은자 하나가 실족하는 것쯤 신경도 쓰지 않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한 영혼의 소중함에 대해 주님과 동일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한 영혼의 소중함에 대해서 또 다른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용서하라”(4) 이 말씀 속에도 한 영혼의 소중함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한 영혼이 너무나 소중하기에 그가 공동체에 어떤 큰 해를 끼쳤든지 아니면 너희 각자에게 어떤 큰 죄를 지었든지 그가 회개만 한다면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내가 회개하니 용서해 달라고 한다면 너희는 무한히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한 영혼이 천하보다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 사도들이 충격을 받고 주님께 간구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NIV영어성경에는 “The Lord, increase our faith” 주여! 우리의 믿음을 더 크게 증가시켜 주십시오! 제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현재의 믿음으로는 도저히 작은 자들을 실족시키지 않을 만큼 신실하게 사랑하면서 살 자신이 없었습니다. 더불어서 자신들에게 죄를 범하는 악한 자들을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부족한 것을 절감하고 우리의 믿음을 더 크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의 간청을 듣고서는 그들의 기도의 내용이 틀렸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5)

이 말씀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작은 일을 할 때는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 필요하고, 조금 큰 일은 수박만한 더 큰 믿음이 요구되고, 상상할 수 없는 큰 일은 태산만한 어마어마한 큰 믿음이 필요하다는 제자들의 전제에 대해서 주님은 믿음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겨자씨 만큼 작은 믿음이라도 그것이 참 믿음 진짜 믿음 완전한 믿음이라면 불가능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뽕나무 뿌리를 뽑아 바다에 심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스라엘의 뽕나무는 우리나라 뽕나무와 다릅니다. 이스라엘의 뽕나무는 11미터까지 뿌리를 내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 장비로 뽕나무를 뿌리째로 뽑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그 뽕나무를 깊은 바다속에 심는 것은 더욱더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바다에 나무를 심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물에 심는 순간 그 나무는 넘어집니다. 물은 액체여서 나무를 세워지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으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명령하면 뽕나무 뿌리가 뽑혀서 바다에 심기어진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7:20절에서는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란 참믿음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생명력 있는 믿음입니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믿음이 아닙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믿음은 변합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의심하고 흔들립니다. 그런데 뽕나무를 바다에 심는 이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로 받는 참 믿음을 말합니다. 에베소서 2:8절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믿는 믿음,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을 믿고 구원받는 믿음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구원에 이르는 믿음도 선물이지만 기적을 행하도록 성령께서 은사로 주신 믿음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9절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병고치는 은사를...” 바울은 특별히 기적을 행하는 믿음을 성령께서 은사로 주신다고 설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구원을 받는 믿음을 선물로 받았든지, 초자연적일 일들을 행하는 믿음을 받았든지 그 믿음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참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때로는 기적을 일으키는 삶을 살아냅니다. 중요한 것은 좁쌀만한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도 그 믿음이 살아있는 참 믿음이라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작은 자를 실족시키지 않는 사랑의 삶, 하루에 일곱 번 나에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내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면 원수라도 무한히 용서할 수 있는 의인의 삶은 하나님이 주신 참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뽕나무가 뽑혀 바다에 심겨지는 기적도 참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내 능력이 아닙니다. 내 인격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 나오는 사랑의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있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위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불가능한 일도 능히 할 수 있습니다. 초월적인 기적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번 주 금요기도회 때 이스라엘의 왕윤성 선교사님께서 젊은 날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려 죽어갈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의 불치병을 치유했는지를 간증했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에 몸은 회복되지 않고 점점 악화되어 갈 때에 치료될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마지막 50일 유언기도하고 주님의 품에 안기자는 맘으로 새벽기도 하던 20일 째 되는 어느 날 새벽기도하고 원룸에 지쳐 누워있는데 갑자기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엑스레이가 지나간 것처럼 어떤 신비로운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몸이 시원해졌습니다. 바로 그 때 아! 내 병이 치유되었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병원갔더니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 치유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간증했습니다. 참 믿음이 생기면 병원도 고칠 수 없는 백혈병이 치유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참 믿음을 가진 믿음의 선조들의 믿음의 예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주신 참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겨자씨 한 알 만한 살아있는 믿음으로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마침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지는 기적의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생명력있는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함을 받아 경외함으로 120년 동안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했습니다. 겨자씨 같은 그 진실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90세 된 사라는 나이 많아 태가 말랐지만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얻어 잉태하는 힘을 얻어 이삭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모세는 지팡을 내밀면서 홍해를 향해 명령하자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여호수아는 아모리 족속과 싸울 때에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는 아얄론 골짜기에서 머므르라 명령하자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태양이 중천에 머물며 종일토록 내려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주신 믿음을 받아 풍랑이 거쎄게 이는 갈릴리 바다 위를 걸었습니다. 참 믿음만 있다면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수많은 기적의 일들을 해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의 사도들처럼 예수님께 우리에게 참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제자들은 자신들 안에 작은 믿음으로는 주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기에 더 큰 믿음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겨자씨 한 알만한 지극히 작은 믿음이라도 참 믿음이라면 어떤 불가능한 일도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믿음을 달라고 주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없을 때 특별히 인간성의 한계를 느낄 때 우리도 제자들처럼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귀신들린 한 어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할 수만 있다면 내 아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십시오부탁을 합니다. 이 아버지는 아홉 명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자 예수님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했습니다.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는 자신의 불신을 깨닫고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소리지르며 간청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아버지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비에게 믿음을 더하셨습니다.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주셨습니다. 그 후 제자들이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안 생기면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의심하는 믿음이 사라지고 참 믿음이 생깁니다. 그때 우리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2010년 광주 동광교회에서 50주년 희년 기념교회를 개척하는 사명을 받았을 때 3가지 기도제목을 주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주님 요즘 개척 너무 힘듭니다. 저도 예수님처럼 개척할 때 12명의 개척동역자를 주십시오. 주님 저에게는 가진 돈 2천만원 밖에 없습니다. 개척 할 때 돈 1억을 주십시오. 주님 땅 100평을 주면 제가 믿음으로 교회를 건축하겠습니다. 100평을 주십시오. 그런데 주님은 이 세 가지 기도제목을 전부 정확하게 다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개척 첫 예배를 드릴 때 35명이 모여들었습니다.

 

동광교회와 합병할 때 1년 동안 단상에 자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동광교회와 합병할 때 그 모든 과정에 하나님이 개입해 주시고 아름다운 합병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십시오무등산에 올라가 한 달 동안 산 기도도 했습니다. 그리고 두 교회가 합병되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돌아보면 기도없이 믿음을 가질 수 없었고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매일 절감합니다. 때로는 믿음이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다시 생기기도 합니다. 물론 내 안에는 항상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있습니다. 그 믿음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겠습니까? 그 믿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부모님이 반대하고 가족과 친척들이 반대하는 목회의 길을 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 믿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교회를 개척하고 합병하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도 매일 매일 고백하는 것은 내 힘으로 내 의지로 내 능력으로 내 인격으로 목회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힘으로 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면서 수없이 많은 믿음의 열매를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의 주님의 말씀이 너무나 크게 다가옵니다. 예수님은 종의 비유를 통해서 사역자가 취해야 할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르치십니다.

 

한 집에 주인과 종이 있습니다. 종은 밭에서 농사일을 하고 들판에서 양을 칩니다. 종은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주인을 섬겨야 합니다. 주인을 위해 물을 길어오고, 불을 피우고, 쌀을 씻고, 음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주인에게 정성껏 음식을 차려 대접해야 합니다. 종은 주인이 식사하는 동안에도 수종들며 섬겨야 합니다. 물을 떠다 죽고 설거지를 해야 합니다. 그 일을 하고도 주인에게 감사하다’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자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당시 종이 해야 할 당연한 삶의 태도였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명령한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종은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역자들은 다 이런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합니다. 예배도 참석하고, 기도도 하고, 헌금도 드리고, 전도도 하고, 교회에서 헌신 봉사의 일을 많이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 의가 생기기 쉽습니다. 내가 이렇게 했으니까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해 주셔야 한다고 요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사업도 잘되게 해 주셔야 하고, 자녀들의 삶을 축복 해 주셔야 한다고 당당히 요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건강도 주시고 장수하게 해 주셔야 한다는 생각도 가집니다. 또한 자신처럼 헌신하지 않는 자들을 판단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때때로 내가 열심히 했는데 축복해주시지 않으면 하나님께 불평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만 맡긴 일을 한 것뿐이라는 무익한 종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믿음으로 주와 복음을 위해 일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6절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상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상을 주시는 때나 방법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지상에서 주시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가서도 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상주심을 믿고 일을 할 수 있지만 그 보답에 대해서 하나님께 이렇게 저렇게 해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일을 하고 나서의 우리 자세는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는 일을 하고나서 나는 유익한 종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없으면 주인이 일을 못하고 밥도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유익한 종의 자세입니다. 나 때문에 교회가 잘되고 나 때문에 교회가 부흥한다는 마을 품으면 그 사람은 자기 의나 교만이 이미 생겨난 것입니다. 공로의식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아니어도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나 하나 없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 때문에 내가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이 주신 것을 돌려드린 것 뿐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을 하고 나서 무익한 종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는 본래 죄악 되어 하나님께 버림 받고 심판받을 자입니다. 이런 우리가 주와 복음을 위해 진리의 삶을 살고,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는 것이 은혜이고, 일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이 주신 믿음의 힘으로 한 것 뿐입니다. 우리는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하고, 감당한 후에는 나를 사용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돌려야 드려야 합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바울은 종의 자세가 있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지만 이 모든 것을 내가 아니요 하나님께 주신 은혜의 힘으로 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종의 자세입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은혜의 자세를 가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죄악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죄를 더 깊이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말합니다. 나중에는 나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합니다. 죽기 전에는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는 자기 의에 빠지지 않고 대신에 주님이 주신 은혜는 더욱 깊어져 갔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수록 은혜의 힘을 더 깊이 발견해야 합니다. 더불어 얼마나 죄악되고 허물많은 나를 하나님이 불러주셨는지 나의 죄인 됨을 깊이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많이 충성하고도 자신의 의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죄밖에 지을 수 없는 죄인 중의 괴수였는 하나님이 이런 나에게 믿음을 주셔서 의롭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겨자씨 같은 참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내고 그 분의 뜻을 행할 수 있고 불가능한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신 믿음의 힘으로 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 내 인격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신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하고 헌신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때문에 주와 복음을 위해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을 많이 할수록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더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더욱 감사가 넘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모든 일을 하고 나서도 무익한 종의 자세로 물러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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