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누가복음58강(제목 : 의롭다 인정받는 믿음의 기도)
2025-11-26 18:12:22
김성철
조회수   18

 

누가복음58

제목 : 의롭다고 인정받는 믿음의 기도

본문 : 누가복음18:9~14

 

오늘은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의 결과로 중세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와 지금의 개신교가 생겨났습니다. 왜 종교개혁이 일어났는가? 사실 가톨릭교회도 구원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총의 선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따른 인간의 협력도 중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즉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지만 선행, 성례전참여, 고해성사를 통해 죄의 사함을 받은 후 기도 봉사 희생 등... 인간의 행위를 통해 완성된다고 본 것입니다. 문제는 중세가톨릭이 점차적으로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그 결과 선행이 나타나야 함을 강조하고 그 선행의 열매가 구원의 조건이 되어버렸다는 점입니다. 우리 개신교는 선행이 참된 믿음에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그것은 조건이 아니라 열매로 본 것입니다. 반면에 가톨릭은 선행의 열매를 구원의 조건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달랐습니다.

 

흔히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적 사상을 다섯 가지의 ‘Five Solas’로 요약된다.

첫째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입니다. 진리냐 비 진리냐의 최종 권위는 오직 성경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만이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원천으로 봅니다.

두 번째는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으며, 오직 십자가에서 모든 인류의 죄 값을 다 갚으시고 하나님의 의를 완성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신앙의 선포입니다.

세 번째는 오직 은혜’(Sola Gratia)입니다. 구원은 오직 삼위 하나님께서 인간을 새롭게 하시는 사역으로서 하나님이 인간 쪽에서 아무런 조건을 찾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네 번째는 오직 믿음’(Sola Fide)입니다.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은혜는 오직 믿음을 통해 받을 뿐이지 다른 어떤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오직 주만 영광 받으심’(Soli Deo Gloria)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시작하고 완성하시는 일이며 거기에 인간이 참여하는 부분은 단 0.00001%도 없기 때문에 모든 영광을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지난 2주 동안 가을 특별새벽기도를 하면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의미를 롬1~6장까지 말씀으로 살펴보았습니다. 특별히 마틴 루터가 로마서를 연구하다 재발견했던 종교개혁의 원리인 이신칭의 교리가 담겨있는 롬1: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을 반복해서 묵상했습니다.

 

루터는 처음에 17절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의라는 표현을 오해해서 영혼의 고뇌를 느꼈습니다. 루터는 로마서 역주에서 하나님의 의에 대한 자신의 영혼의 고뇌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는 심히 근심하면서 로마서 1:17절에 나오는 바울의 말을 이해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거기서 그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한다. 나는 그 하나님의 의라는 표현 때문에 오랫동안 탐구하였고 너무나 근심한 나머지 녹초가 되어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심지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복음으로 고통에 고통을 더하시고 또한 그 복음에 의하여 당신의 의와 진노로 우리를 위협하시다니하면서 복음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불평하고 저항했습니다. 복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의 성품으로 오해했던 것입니다. 빛 되시고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신 하나님, 너무나 의로우사 죄를 차마 바라보실 수 없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의 앞에 섰을 때 루터는 자신의 구원이 불가능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에 루터는 복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루터가 깨달은 하나님의 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온 의’,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의를 뜻합니다. 우리의 죄를 심판하는 하나님의 성품인 공의로운 그 의가 아닙니다.

우리가 복음을 즐거워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는 하나님에 의해서 마련되고 그의 아들 예수님의 순종으로 완성된 의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모든 요구를 다 만족시켰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완성한 이 의는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하는 의입니다. 이 의는 하나님께 열납될만한 의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복음 안에 나타난 이 의를 우리가 믿으면 하나님은 이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십니다. 의를 전가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는 의로움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서 마치 그 사람의 것인 것처럼 인정해 준다는 뜻입니다.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그 의를 받아들이는 그 믿음도 하나님이 주신다는데 있습니다.

 

에베소서 2: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복음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믿는 믿음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신 선물인 믿음을 받아서 복음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인 그 의를 우리의 것으로 계산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의 빚을 청산하십니다.

 

이것을 한 문장으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입니다. 오늘 말씀도 동일한 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이 의인으로 인정하는 기도는 오직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믿음으로 드린 기도자를 의롭다고 받으시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려면 예수님께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로 말씀하시고 나서 그 결론으로 8절에서 하신 말씀을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예수님께서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에서 응답받는 기도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갑자기 믿음으로 결론 짓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의 핵심 진리가 기도에 있다기보다 믿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나라 백성의 믿음이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임을 알게 하시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이러한 믿음의 기도의 원리를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의 비유를 통해서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의 비유 결론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으로 내려갔느니라”(14) 이 비유의 목적은 기도에 대한 교훈을 주려는 데 있지않으며 또한 바리새인의 종교적 행위를 비판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서 사람이 어떻게 해야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느냐? 라는 중요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사람이 어떻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느냐? ‘이신칭의의 진리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기도라는 어떤 신앙의 행위를 많이, 자주, 긴 시간 동안 하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에 의해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데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9절입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이 비유의 관점은 자기를 의롭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의 기도와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던 세리의 기도를 비교하면서 구원을 얻는 바른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먼저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바리새인의 기도입니다. 바리새인이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11~12)

 

여러분 이 바리새인의 기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얼른 보기에 너무나 경건하고 율법적으로 흠이 없고 책잡힐 일을 행하지 않는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완벽한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우리 주변에 이 정도의 신앙생활을 하는 분이 있다면 존경심이 저절로 생기지 않겠습니까? 교통질서 잘 지키고, 불의를 행하지 않고, 늘 의로운 삶을 추구하며, 바른 말을 하고, 새벽기도 한 번 빠지지 않고, 주일예배 한 번도 지각하지 않고 지키며, 일주일에 두 번 금식기도하고, 십일조생활 뿐만 아니라 감사헌금도 잘하고 전도도 잘하고 늘 교회에서 봉사활동 열심히 하는 성도 우리 주변에 있나요? 그런 분 보면 존경심 생깁니다. 우러러봅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의 기도의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면 매우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가 비록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기도하고 있지만 사실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을 향하여 기도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실제로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자기 자랑이요 자기 의를 드러내면서 자아도취에 빠져있습니다. 다음으로 기도의 본래의 목적은 과부의 기도에서 보듯이 필요를 얻기 위한 간청하는 것이며 간구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치면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했습니다. 기도에는 간절함과 끈질김 절박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의 기도에는 그 어떤 절박함도 간절함도 끈질김도 없습니다. 오직 기도하는 목적이 자기를 과시함에 있습니다. 또한 그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 다른 사람에 비해 우월함에 빠져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함으로 같은 공간에서 기도하는 세리를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리가 들으라고 크게 소리내어 기도했습니다. 저 세리 같이 아니함을 감사합니다 신앙생활과 기도에 자신감에 차있고, 당당하고, 남에게 꿀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리새인이 드러내고자 하는 자기 의와 자기 자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서의 의,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전가해 주신 하나님의 의, 구원의 의, 용서함의 의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자기 행위를 자랑하는 자칭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이 바리새인의 기도는 사실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는 기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바리새인은 사람으로부터 받는 평가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평가를 혼돈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의를 내세우는 이런 기도를 받지 않으십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일 뿐입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울로 달아보면 모두가 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입니다.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보니 다 부족하여 심판만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바리새인이 완벽하게 신앙생활하였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받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적 신앙에 대해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도다!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23:23~26)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들도 혹시 바리새인의 기도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나 있지는 않은지... 혹시 나의 공로, 나의 업적, 나의 의를 공치사하면서 자기에게 향하고 있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세리의 기도입니다. 바리새인의 기도와 비교할 볼 때 세리의 기도는 참으로 처절합니다. 그 기도 가운데는 애절함과 간절함 그리고 안타까움을 배여 있습니다. 세리는 로마제국의 앞잡이로서 악랄한 방법을 세금을 착취하는 사람입니다. 한정된 금액을 로마 정부에 바치고 나머지는 자기 마음대로 하도록 되어 있었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죄인 취급받았고 심지어 구걸하는 거지들까지도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세리의 돈은 받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세리는 모든 사람에게 왕따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리가 성전에 올라와서 기도를 합니다.

 

그는 먼저 거룩하신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그는 감히 보지도 못하고 멀리 서서 가슴을 치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기도합니다. 세리라는 직업 때문에 받는 멸시와 천대와 고통을 변명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옆에서 거룩한 바리새인이 자신을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도 ... 그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오직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만 고했습니다. 세리의 이 기도에는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자비와 긍휼을 받아야겠다는 간절함이 담겨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리의 이런 기도에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낫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4)

 

주님께서 규정하신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을 겸손하게 하여 하나님께 지은 죄에 대해 깊은 슬픔과 애통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간곡하고 간절하게 나아갈 때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그런 믿음으로 나오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를 의롭다 하시고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는 바리새인이 세리보다 의로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해 철저히 절망한 성도일수록 은혜에 대한 확신을 가장 절실히 고백한다는 사실입니다. 때로 하나님 앞에서의 강력한 죄인 의식은 그 영혼이 하나님을 느끼는 정도를 재는 척도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최후의 심판의 날에 대한 말씀을 오늘 본문에 바리새인과 세리를 비교하면서 다시 보아야 합니다. 최후의 심판의 날에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심판주이신 주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십니다. 불의를 행하고, 우상 섬기고, 귀신을 따르던 자들이 악인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자들중에도 악인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악인들에게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다 말씀합니다. 그 때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악인들이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른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했습니다. 악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을 보면 그들도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자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사람들이 최후의 심판의 날에 악인으로 저주를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교회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의롭게 여기고 다른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오늘의 바리새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기를 의롭게 여기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간 간절한 마음으로 여러분들에게 권면합니다. 혹시라도 오랫 동안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을 했다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 의와 자기 교만과 자기 자랑에 사로잡혀 진정한 의미의 구원을 누리지 못하는 분들 없습니까? 자신을 의롭다 확신하며 살고 있으면서 실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여김을 받지 못한 분들은 없습니까? 그런 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언해 주시는 의입니다. 우리도 세리처럼 가슴을 치며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합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오늘 예배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으로 돌아갑시다. 그리고 최후 심판의 날에 주님으로부터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는 말씀을 듣고 기뻐뛰며 새 하늘 새 땅에 들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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