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누가복음45강(제목: 무엇이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냐?)
2025-06-25 18:01:04
김성철
조회수   13

누가복음 45

제목 : 무엇이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냐?

본문 : 누가복음 14:1~6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한 바리새인 집에 식사 초청을 받아 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초청한 사람을 한 바리새인 지도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어떤 바리새인 지도자가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초대한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을 대표해서 예수님을 안식일 만찬에 초대했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서를 읽으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예수님과 바리새인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사람들이라고 자주 비판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라고 거듭해서 아주 강하게 그들을 비판하자 바리새인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11:53~54) 여기서 거세게 달려 들었다는 말은 아주 집요하게 공격했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의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는 말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조금이라도 빈틈만 보이면 목을 눌러 죽이려는 것처럼 그렇게 해칠 기회를 찾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이런 긴장 관계에 있었음을 염두 하면서 해석해야 합니다. 안식일에 한 바리새인 지도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한 것은 불편했던 관계를 좀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안식일 만찬에 예수님만 귀빈으로 초대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3절에서 언급된 것처럼 많은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이 초대되었고 그들은 예수님과 만찬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약점을 잡을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살벌한 식사 자리입니까?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그 안식일 만찬 자리에 수종병 든 병자가 예수님 앞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수종병은 근육과 혈관 속에 물이 고여서 몸이 부어오르는 병입니다. 당시에는 고칠 수 없는 불치병으로 유대인들은 이 병이 죄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의 저주의 결과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늘 정결하고 거룩하다고 자부했던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부정한 병에 걸린 사람을 식사 자리에 초대할 리가 있겠습니까? 만약 제 발로 들어왔더라도 부정한 자라 하여 내쫓았을 것입니다. 왜 수종병 든 자를 예수님 앞에 앉게 했을까요? 어찌하든지 예수님을 곤경에 빠지게 하려는 다분히 의도적인 식사 자리 배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정상적인 식사 자리가 아닙니다. 이건 아주 기분이 더럽고 밥맛 나지 않는 식사 자리였던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 나타나지 않지만 2절에 맨 앞에 원문 성경은 카이 이두라는 말을 써 놓았습니다. ‘그런데 보라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분위기는 이렇습니다. 바리새인의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을 안식일 만찬에 초대해서 그 집에 들어가시는데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보라! 거기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떡 하니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수종병 든 사람을 떡하니 예수님 앞에 앉혀두고 예수님께서 과연 어떻게 행동하나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이런 식사 자리가 얼마나 힘듭니까?

 

인천 공항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가장 빠른 시간에 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랑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12시간도 10분처럼 빠르게 지나갑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은 10분도 하루처럼 길게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지금 자신을 책잡아 범죄자로 만들려고 수작을 부리고 있는 기분 나쁜 안식일 만찬에 초대받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이 자리가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습니까? 저 같으면 안 갑니다. 혹시 몰랐더라도 이런 음흉과 계획이 있는 식사 자리라고 판명되면 기분 나빠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처음부터 이 사람들이 나를 범죄자로 만들고자 계획을 가지고 이 식사 자리를 만들었구나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에 조금도 괘의치 않으시고 그 집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13장에서 바리새인들은 이미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자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하면 협박했던 전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으시고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13:32)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자신이 감당해야 해야 할 사명을 감당하십니다. 오늘 본문처럼 기분 나쁜 음흉한 계략이 있는 식사 자리도 한 영혼이라도 구원할 수 있다면 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구속사의 의미, 하나님의 참 사랑과 뜻을 가르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당당하게 거기 모인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무슨 말씀입니까? 사람들은 자신을 책잡아 올무에 걸리게 하려는 계책으로 그 상황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지금 고통 중에 있는 한 수종병 든 병자를 먼저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이 사람들은 수종병으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는 이 사람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예수님께서 고쳐주신다면 안식일에 의료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자신들의 안식일 법을 들먹이며 예수님을 고발하고 올무에 채우고자 한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무려 39가지의 안식일 법을 만들었고 그 하위 규정으로 234가지 세부 규칙을 만들어 지켰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안식일에는 병을 고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그 병자의 고통을 보셨습니다. 그리고는 이 병을 고쳐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물으신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무엇이 더 합당한 일이냐?’

 

새번역 성경에는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아니하냐?”로 되어 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일이 율법에 어긋나느냐 어긋나지 않느냐로 되어 있습니다. 이 질문을 종합해보면 이 상황에서 무엇이 더 옳으냐는 물음이기도 하고 혹은 이 상황에서 무엇이 더 합리적이냐는 물음이기도 합니다. 또는 이 상황에서 무엇이 더 선한 일이냐? 무엇이 더 하나님의 뜻에 맞느냐? 무엇이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냐?’는 물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이 물으심에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수종병 걸린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고 치유하여 돌려보냈습니다. 그런 후에 또다시 그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5)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는데 안식일이라고 해서 끌어내지 않고 두 눈 멀쩡히 뜬 채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보는 즉시 우물에 뛰어내리든지 아니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우물에 내려가서 곧바로 건져내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고 철저하게 안식일 법을 지켰지만 자신의 아들이나 자신의 소가 우물에 빠지면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들어 건져냈습니다. 이것이 당시에 불편한 진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아들이나 소나 양이 우물에 빠져 죽어간다면 안식일이라도 율법이 뭐라 하든 생명이 위급한 이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지체하지 않고 자신의 아들이나 소를 사랑하여 구원하여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의 아들이나 소는 이렇게 사랑으로 잘 돌보면서 왜 수종병 든 사람을 질병의 웅덩이에서 끌어내지 않는가? 책망하신 것입니다. 만약 자기 아들이 수종병 들었다면 예수님께 나아와서 안식일일지라도 고쳐달라고 간구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안식일 법을 남에게는 엄하게 적용하면서도 자신들에게는 합리적이고 유연성있게 적용했습니다. 예수님은 눈 앞에 있는 수종병 든 자를 우물에 빠진 것처럼 시급한 상황으로 보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시급하지 않겠지만 수종병 든 본인에는 하루빨리 고쳐야 하는 시급한 병인 것입니다. 수종병 든 사람의 부모의 입장에서도 하루빨리 고침 받아야 할 시급한 병입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이나 율법교사들의 문제는 자기 자녀들이나 자기 양이나 염소는 사랑하면서 자신과 관련이 없는 수종병 든 자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기적인 자였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같았지만 실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하는 외식하는 위선자들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범하는 중대한 과오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절대기준을 자신의 기준으로 삼아 절대자 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자신의 기준으로 삼으면 나도 모르게 내가 하나님의 행세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심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절대기준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준이 자기 기준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하는 위선적 신앙의 함정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님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현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대로 간음한 여자를 돌로 쳐 죽이는 것이 옳다는 여기고 간음한 여인을 향해 분노했습니다. ‘저런 더러운 여자는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이것이 율법이고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뜬금없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치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진정한 율법의 기준이 되시고 집행자가 되시고 심판자가 되십니다. 그런데 율법의 제정자이신 예수님은 율법의 기준을 집행하는 대신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십니다. 율법의 정신은 심판에 있지 않고 살리는데 있음을 가르치려는 의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사랑의 법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율법의 핵심을 2가지로 요약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율법은 사랑의 법이며 사랑을 놓쳐버리면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됩니다. 바울은 로마서 13:10절 말씀에서 율법의 핵심을 다시 하나로 요약했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즉 율법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절대기준을 자기 기준으로 삼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절대기준이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는 사람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기준으로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의 핵심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자기 절대기준으로 삼고 그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산다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 하나님의 절대기준을 가지고 하나님 행세를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왜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했습니까?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리는도다채소 즉 깻잎 10장 뜯으면 그 중에 한 장은 십일조를 드릴 정도로 종교형식에는 철저했지만 정작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버렸습니다. 왜 율법교사들에게 화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하면서 책망했습니까?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짐에 대지 않는도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자 많은 규례를 만들어서 백성들에게 짐을 지워 숨막히게 했으면서 정작 자신들이 만든 규례는 잘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신앙의 이중성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요나처럼 왜 저 나쁜 니느웨 사람들을 심판하지 않느냐고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불순종하게 됩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의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도 모르게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들에게 율법의 돌을 던지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이니”(2:5) 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진심으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본체이신 지극히 높으신 분이 자기를 비워 종을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셔서 죄인들의 친구가 되고 죄인들의 허물과 약점을 감당하고자 저주의 십자가까지 지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통 생명을 살리는데 있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 예수님의 마음에 조율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에 조율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바리새인이나 율법교사들은 하나님의 절대적 기준을 가졌지만 자신들은 그 절대적 기준대로 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절대기준으로 판단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신앙을 위선적이라고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 인간 자체가 상대적 존재입니다. 우리는 부분적인 것을 봅니다. 부분적인 것을 경험합니다. 부분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분적인 윤리만 지키고 있습니다. 편협한 사랑을 가지고 부분적인 사랑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인간입니다.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상대적 존재입니다. 실수하고 무너지고 약속을 어기고 사랑에서도 늘 실수하는 허물과 약점투성입니다. 능력도 부분적인 능력입니다. 절대적 기준, 절대적 능력, 절대적 사랑, 절대적 지식, 절대적 존재, 절대적 진리, 절대적 윤리는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 하가다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우리는 이 세대의 가치 기준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대의 가치 기준은 사실 사탄에게서 나왔습니다. 사탄이 하는 짓이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이 되어 밤 낮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비판하고 부정하고 불평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겸손한 마음으로, 가난한 마음으로, 애통하는 마음으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온유한 마음으로, 청결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늘 생명을 살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율법은 사랑의 법이고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밖에 있는 율법은 정죄하고 죽이고 심판합니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율법의 핵심은 생명을 살리는데 있습니다. 안식일 법은 사람을 살리는데 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법의 근본적인 사상은 사람을 살리는데 있습니다. 율법을 가지고 심판하는 영역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원수 심판하는 일까지도 우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19~21)

 

오늘 예수님은 안식일 법의 근본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동일하게 율법의 핵심이 무엇인지 우리들에게 묻습니다. 안식일에 병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예수님은 안식일을 지키는 핵심은 사람을 사랑하고 살리는데 있음을 가르쳐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무엇이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냐?” 물으면서 우리 모두가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함으로 율법을 완성하는 삶을 살아내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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