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새해설교1(제목: 참 된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2026-01-04 09:42:35
김성철
조회수   22

새해 설교1

제목 : 참 된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본문 : 요한복음4:23~24

 

올 해 우리교회의 표어는 예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다시 불을 지피자, 주의 제단 위에!” 입니다. 레위기 6:12~13절을 보면 제단 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서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서 불사를지며 불은 끊임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우리의 신앙에서 예배의 불이 항상 타올라야 합니다. 제단 위의 불, 다시 말해 예배의 불이 꺼지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무너집니다. 하나님은 제단위의 불을 꺼뜨리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불을 지피자 제단위에! 라는 말은 예배의 불을 다시 지피자는 것입니다. 예배의 불이 꺼지면 교회가 무너지고 우리의 삶이 함께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익숙해지면서 처음의 뜨거움이 서서히 식어 갈 때가 있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감격이 흐려지고 기도는 하지만 간절함이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읽어도 더 이상 마음이 열리지 않고 은혜가 아니라 습관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3:15) 주님은 미지근한 예배, 미지근한 기도, 미지근한 신앙생활 기뻐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신앙은 뜨거워야 합니다. 뜨거운 신앙생활의 핵심은 뜨거운 예배에 있습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신앙생활의 열정은 회복됩니다. 예배는 신앙생활의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뜨거운 예배, 심령에 성령의 불이 타오르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먼저 예배가 무엇인지 예배의 본질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배의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신에게 경배하고 절함이라는 적혀 있습니다. 영어로는 예배를 ‘Worship’이라고 하는데 ‘worth(가치,존경) +scipe(유발시키다)’에서 유래된 말로...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예배는 사하(שׂהה)입니다. ‘상체를 굽히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 구약성에 나오는 예배라는 단어는 아바드(עבד) 인데 봉사하다 경배하다 주인 앞에서 섬긴다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예배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자주성을 버리고 그의 뜻에 허리를 굽히고 따르며 섬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보면 프로스퀴네오’(προςκύνεω) 란 단어가 있는데 손에 키스하다. 주인의 손을 핥다. 부복하다는 의미입니다. 신약에서 말하는 예배는 하나님 앞에 절하며 또 그에게 합당한 영광을 드리며 존경과 경의를 표하면서 그 앞에 엎드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종합해 보면 예배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성도가 세상의 창조주요 나를 구원하신 구원의 주님께 허리를 굽혀 존경과 영광과 찬양과 감사와 기도를 올려드리는 행위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배란 무엇인가를 직접 가르치신 내용입니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이 먼저 다가가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 여인의 사생활에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으며 예수님을 만나던 순간에도 남편 아닌 또 다른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었습니다. 마을의 다른 여인들이 저녁 무렵에 물을 길러 오는 데 반해 이 여인만 대낮에 홀로 우물가로 나온 것을 보면 왕따였고 사람들과 마주치길 몹시 꺼려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일부로 찾아가셨고 결국 그녀는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여인이 이제 묻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여인은 예배란 무엇인가?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참 예배입니까?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예루살렘 성전입니까? 아니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주장한 그리심산의 성전입니까? 아니면 다른 곳입니까? 여인은 참 예배를 드리려면 하나님이 계신 진정한 성전이 있는 곳에서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여인을 향해 예수님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수님은 참된 예배는 장소나 형식이 아니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참된 예배라고 하십니다. 신령한 진정으로 드리는 참된 예배란 무엇입니까? 엔 프뉴마티 카이 알레데이아(영어 : in spirit and in truth) 입니다. 성령 안에서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먼저 참된 예배는 반드시 성령 안에서 드려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영이시기에 우리가 예배드릴 때 성령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육체가 아니시기에 인간이 예배드릴 때 본성적으로 쫓는 육체적 방편으로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칼빈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인간이 원하는 인간이 좋아하는 인간의 방편을 가지고 드리는 우상숭배의 예배와 달라야 한다고 주석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즉 거듭나지 않은 심령은 예배를 구경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예배는 성령이 그 사람 안에 내재해 있어서 그 성령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거듭난 신자만이 가능합니다.

 

더불어서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리는 무엇입니까? 진리란 말씀이고 성경의 모든 말씀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참된 예배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 예배의 자리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폴 훈(Paul W. Hoon)이라는 신학자는 예배의 통합이라는 저서에서 예배의 핵심은 자신의 생명을 인간에게 주시어 그 생명에 참여시키기 위하여 활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계속해서 기독교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시와 그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참된 예배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거듭난 성도가 성령 안에서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구원의 복음을 붙잡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과 헌신과 충성을 올려드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드리는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예배는 엄밀한 의미에서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 나서는 행위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죄인인 사마리아 여인을 먼저 찾아와 주셨고 그 여인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에 감사해서 사마리아 여인이 예배를 드리고 싶어서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이처럼 사랑의 하나님이 먼저 나에게 다가오시고 나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신 그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응답하는 행위가 반드시 예배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에 대해서 존 맥아더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배는 본질적으로 드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일에 함께 모이는 이유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모이는 것이다. ... 따라서 당신이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예컨대 축복을 받기 위해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동기부터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 예배를 드리려고 모였다면 우리의 초점은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맞추어져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려는 타는 듯한 열망이여, 그것은 우리 자신과 마음의 태도와 우리의 소유를 드리는 것까지 포함한다

 

우리는 성경에서 인류 최초의 예배를 드린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는 어떤 사람인지 배우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가인과 아벨이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가인은 나중에 커서 땅을 경적하는 자가 되었고 동생 아벨은 양을 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 둘은 어느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되었는데 농사를 짓고 사는 가인은 자신이 경작한 땅의 열매 농작물을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드렸고 아벨은 그가 가지고 있던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물리치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습니다. 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입니까?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드린 제물이 무엇이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과거에 가인은 곡물을 드린 까닭에 그의 제사를 받지 않았고 아벨은 피를 흘리는 양의 제사를 드린 까닭에 받았다는 해석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해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의 속제 제물로 보는 신약성경의 관점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그들이 드린 제물의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창세4:4~5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은 제물보다 그 제물을 드리는 아벨의 인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실 때 우리의 정결한 삶과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을 먼저 받으시고 그리고 나서 우리가 드린 제물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왜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을까요? 하나님은 가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의 삶이 불의했고 악의 모양이 많았습니다. 히브리서는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받았으니...“ 아벨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과 그를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흠없고 순전한 예배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즉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에 대해 일상의 모든 삶과 인격 전체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세를 갖춘 예배자의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예배가 있습니다. 먼저는 삶과 유리된 예배입니다. 아모스 5:21~24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내 피파 소리도 내가 들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가 가인의 제사가 된 것은 그의 삶과 예배가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찬양도 드리고 기도도 드리고 십일조도 감사헌금도 드렸지만 그들의 삶에는 허물이 많았고 죄악이 무거웠고 의인을 학대하고 뇌물을 받고 가난한 자를 억압하고 착취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삶과 예배가 분리된 예배를 거절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는 어떨까요? 예배의 자리에 오신 한 주 동안의 여러분의 삶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정결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의로운 삶이었습니까? 주님이 나를 용서했던 것처럼 나에게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했나요?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을 회개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공감하고 섬기고 베푸는 삶을 살았나요? 자존심을 내려놓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했나요?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온 삶의 이력서를 가지고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까?

 

다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과 감사가 실종된 예배입니다. 아벨의 예배에는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와 감사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가인의 예배에는 예배의 형식은 있었지만 그 속에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와 찬양과 기쁨이 없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제1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 답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자기의 영원하신 창조자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예배의 가장 참된 목적 중의 하나가 바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그리고 나에게 생명을 주어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께,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되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택하사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그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고 찬송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 속에 늘 나를 사랑하여 자녀로 택하여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나를 예수님을 믿도록 영 안을 열어주시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교통하게 하신 성령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만약 예배 중에 이런 감사와 찬양이 없이 몸만 와 있는 형식적인 예배라면 하나님이 그 예배 중에 드린 찬양, 기도, 회개, 모든 것을 거절하실 것입니다. 이사야 29:13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으면서 형식적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책망하는 장면입니다. 형식만 남은 의식적인 예배를 하나님은 몹시도 싫어하십니다. 예배자의 진실된 마음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미 없는 몸짓에 불과한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입만 찬양하고 마음은 다른 곳에 가있는 예배를 거절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 뭔가를 받으려고만 하는 예배를 헛되다 하십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평가하고 그 예배를 구경하는 것을 성전의 마당만 밟는 예배라 하십니다. 다른 사람은 용서하지 않은 체 나의 죄는 용서해달라는 이중적인 기도에 고개를 돌리십니다. 약자를 억압하고 착취하고서는 나에게는 복을 달라고 손 벌리는 그 손을 붙잡지 않습니다. 삶과 유리된 예배를 거절하십니다. 예배의 자리를 인간적인 신의보다 가볍게 여겨 예배 중에 전화 받고, 지각하고, 예배 중에 나가고 하는 모든 행위에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가볍게 여기는 신앙의 태도가 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앞에서 인간적인 마음으로 예배를 구경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예배자를 하나님은 만나 주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중심이 오직 하나님만을 향하여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받고 싶어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찬양하는 그 찬양과 기도를 받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예배 속에서 하나님은 만나주십니다. 한 주 동안의 삶을 주님 앞에 드리고 예배의 자리에 정성을 다해 서 있는 그 성도를 기뻐하십니다. 보이지 않지만 마치 보좌에 앉아 이 예배를 받고 계시다고 믿는 그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결국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찬송을 드리다가 하나님이 내 찬양을 받으시는구나! 이런 영적 느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드릴 때 내 죄를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해 주시고 나를 깨끗하게 해 주시는구나! 이런 용서의 확신이 예배 중에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는 내가 드린 십일조 감사헌금 등 내가 드린 예물을 주님이 기뻐 받아주시는구나! 이런 영적 느낌이 들어야 합니다. 아벨이 드린 제물에 하나님의 불이 임했던 것처럼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하나님의 임재의 불이 임해야 합니다. 그런 예배를 한 번 드리면 영혼이 시원해지고 소생되고 마음이 치유되고 가벼워지고 심지어는 예배드리는 중에 질병이 치유되는 기적도 일어납니다. 특별히 설교 중에 선포된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면서 내 마음에 역사 할 때 신비로운 하나님의 영적 활동을 감지하게 됩니다. 예배는 신비로운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면서 그 신비로운 하나님의 역사하는 힘을 느끼면 우리의 삶에 엄청난 은혜가 쏟아지고 내 영혼이 살고 내 심령이 치유되고 건강이 회복되고 삶의 축복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예배 한 번 잘드리면 인생이 바뀝니다. 삶의 변화됩니다. 문제가 해결됩니다. 마음이 치유되고 불치병에서도 고침을 받습니다.

 

올해의 표어를 다시 한 번 같이 외쳐보겠습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다시 불을 지피자 주의 제단 위에!” 예배가 무너지면 우리의 신앙이 무너집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우리의 영혼이 병들게 됩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가정도 무너지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복이 사라집니다. 기도가 헛되이 올라가고 신앙생활의 생기가 사라집니다. 반대로 예배가 살아나면 삶의 모든 영역이 살아납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이 하늘에서 열리고 땅에서도 열립니다. 예배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으로 인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는 복을 받게 됩니다. 예배 속에 임재해 계시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터치를 경험해야 합니다. 예배 속에서 말씀하시는 그 음성이 내 영혼을 뚫고 들어올 때 우리의 생각이 새로워지고 삶이 새로워집니다. 주의 제단 위에서 하나님의 임재해 계시는 그 불이 내 안에도 타오를 때 우리의 삶의 부흥이 올 것입니다. 불씨만 남았습니까? 주의 제단의 불을 끄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우리 광주동광교회의 예배에 성령의 불이 삼위 하나님의 임재의 불이 타오르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 광주동광교회의 모든 성도들의 영혼이 살아나고 회복되고 육신도 치유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가 소낙비처럼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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