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누가복음61강(제목 :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2025-12-07 06:38:11
김성철
조회수   7

누가복음 61

제목 :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말씀: 누가복음 19:11-17

 

중국의 알리바바 회사를 창업한 마윈 회장이 했던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유를 주면 함정이라 얘기하고, 작은 사업을 얘기하면 돈을 별로 못 번다고 얘기하고, 큰 사업을 얘기하면 돈이 없다고 불평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자고 제안하면 경험이 없다고 변명하며, 전통적인 사업에 대해 제안하면 경쟁이 치열하다고 두려워하고, 새로운 사업모델을 말하면 다단계라고 몰아가며, 상점을 같이 운영하자고 하면 자유가 없다고 말하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자 말하면 전문가가 없다고 한다 ... 가난한 사람들은 공통적인 한가지 행동 때문에 실패한다. 그들의 인생은 기다리다 끝이 난다 저는 마윈 회장이 말한 이 말이 오늘 본문의 한 게으른 종을 향한 주님의 책망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불평하고, 못한다는 핑계를 찾고,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이상적인 환경이 갖추어지길 기다리다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끝 나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1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란 예수님께서 세리장 삭개오를 만나 그의 집에서 하신 말씀을 듣고 있었던 때를 말합니다. 세리장 삭개오는 뽕나무 위에 올라가 예수님의 얼굴만이라도 보기 원했는데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셨고 그의 집에 하루 머무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삭개오는 너무 기뻐 예수님을 그의 집에 초대하였고 주님이 자신의 집에 오셨다는 사실에 감격하여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습니다”(19:8) 라고 자신의 삶을 회개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라하시며 삭개오가 구원을 받았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함이라는 의미 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의 비유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구원을 선포한 이후 곧바로 은 열 므나의 비유의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까지 하루길 입니다. 이제 일주일 후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습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어 보면 대부분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반의 행적을 전반부에 기록하고 마지막 후반부에 1주일간 예루살렘에서의 사역 즉, 마지막 다락방 강화, 최후의 만찬, 체포, 고난과 십자가에서 죽으심, 장사 되고 부활과 승천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경우 1~19:27절까지가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반의 말씀과 표적의 행위를 그리고 19:28~23장까지가 마지막 예루살렘에서의 1주일간의 사역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구조로 볼 때 은 열 므나 비유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기 전에 마지막 가르침으로 누가복음 전반부의 결론으로 주신 비유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의 인식입니다. 당시 제자들과 따르던 무리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정권을 차지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것을 기대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이 나타내 보이는 능력과 기적의 힘을 볼 때 그 분은 메시야 이심을 분명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께서 다윗 왕국을 재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재건하길 소원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기대감이 마태복음 20장에 세베대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와서 절하며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라는 청탁이 그 예입니다. 그로 인하여 제자들 사이에 시기심과 분쟁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벌어지곤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신 의미와 무리들이 기대하고 있는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던 것이 은 열 므나 비유의 배경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곧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자신을 왕위를 받아오려고 먼 나라로 가는 귀인에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후에 부활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여 먼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로 가십니다. 그리고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면 재림하사 큰 왕의 권세로 세상을 심판하고 영원한 만왕의 왕이 되사 믿음을 지킨 충성된 자들을 새 하늘 새 땅으로 인도하여 함께 세세토록 왕노릇 하게 할 것입니다. 오늘 므나의 비유는 그 날을 기다리면서 제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에게 그 나라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사탄이 활동하고 있고 세상은 불의와 포학이 가득합니다. 여전히 죽을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완성되지 않는 하나님 나라 즉,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관계 속에서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와 아직사이에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신앙생활의 태도를 가르치기 위해서 은 열 므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비유되는 귀인이 먼 나라로 가면서 종들에게 한 므나씩을 주며 장사하라고 했습니다. 한 므나는 100데나리온으로 1데나리온은 장정 하루 품삯입니다. 하루 품 삯을 15만원 계산하여 100을 곱하면 천오백만원에 해당합니다. 결코 크지 않는 돈입니다. 중요한 것은 돈의 양이 아니라 한 므나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입니다. 므나의 비유는 달란트 비유와 다릅니다. 1달란트는 한 므나의 60배에 해당 되는 큰 돈입니다. 달란트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준 것으로 재능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은 한 달란트, 어떤 사람은 두 달란트, 어떤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므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구원은 차별이 없기에 바로 한 므나는 모두에게 차별을 두지 않고 거저 주시는 구원의 복음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준 한 므나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통해 주신 새 생명입니다. 므나로 장사하라는 것은 복음으로 구원받은 이후 거듭난 새 생명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라는 영적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4복음서를 읽어 보면 늘 결론은 복음전파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라는 주님의 유언적 부탁의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명령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는 너희는 이 모든 일에 증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내 어린양을 먹이라는 부탁의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적으로 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너 내 증인이 되리라 명령하셨습니다. 동일하게 삭개오에게 구원을 선포한 후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10) 이 말씀을 하시고 곧바로 은화 열 므나의 비유를 하신 것은 4복음서의 결론과 똑같이 구원받은 성도가 앞으로 해야 할 사명이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 전파의 삶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3절 말씀을 봅시다.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무엇을 장사하라는 것입니까? 복음으로 구원받은 새 생명으로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왕같은 제사장의 삶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8절에서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탁의 말씀하시고 나서 주님은 오늘 본문 15절에서 또 말씀 하십니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되어 재림하시는 날 각 사람에게 준 구원받은 새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를 결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날 각각 주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주님이 값없이 주신 복음으로 새 생명의 삶을 너는 어떻게 살았는지 물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으로는 너 내가 준 은화 한 므나로 어떻게 장사했니?‘라고 우리 각자를 심판대 앞으로 부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드시 결산의 날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6:27절에서 주님은 말씀합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대로 갚으리라또 요한계시록 22:12절에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우리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온전히 선물입니다. 우리의 공로가 하나도 없는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은 새 삶을 잘 살아야 합니다.

 

귀인이 오셔서 각각 한 므나로 어떻게 장사했는지 각 사람을 불렀습니다. 이 때 첫째가 나아와 보고합니다.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그러자 둘째가 와서 또 보고합니다.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왕이 말씀합니다.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왕권을 가지고 온 귀인은 첫째와 둘째의 보고에 흡족하여 칭찬하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종이 와서 보고합니다. 그는 앞선 종들의 보고와 사뭇 달랐습니다.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습니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 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두지 아니한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분입니다 이 종의 보고는 주인의 마음을 몹시 상하게 했습니다. 그는 전혀 장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받은 한 므나를 그대로 수건으로 싸서 보관해 두었다가 그 돈 그대로 반납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귀인에 대한 나름대로의 평가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인을 두지 않는 것을 취하고 심지 않는 것을 거두는 착취자로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에게 이용당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을 세 번째 종의 장사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핑계를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니라“(23) 이 종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무능해서가 아니라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들은 열심히 장사해서 열 므나와 다섯 므나를 남겼고 그에 상응하는 상을 받았습니다. 능력이 모자라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게으른 것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부지런하게 열심히 하면 모두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이 거저 주시는 복음의 가치와 사명을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첫째 종과 둘째 종처럼 받은 사명에 충실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셋째 종처럼 자기 방식대로 예수님을 해석하고 자기 합리화에 빠져 변명과 궤변을 일삼는 자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장차 우리 모두가 다시 오실 주님 앞에서 평가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10명의 형들의 시기를 받아 애굽의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이 삶이 얼마나 불공평하고 억울하고 화가 납니까? 하나님은 왜 나를 노예로 팔려 가게 하셨는가? 왜 잘해 볼려고 하는데 왜 또 강간범으로 지저분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까지 가야만 하는가? 그는 일하지 않고, 난동을 부리며, 충성하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떻게 했습니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에게도 하소연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어디를 가든,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 나를 거기 보내시나 보다!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 이런 일을 맡기시나보다! 하면서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보디발 집에서 가정의 제반 업무를 다 감당했습니다. 감옥에서 궂은일은 도맡아서 다 했습니다. 그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침내 하나님이 그를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열 고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내 인생의 주인되신 하나님께 대해서 함부로 대적하거나 거스르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첫째 종이나 둘째 종이라고 왜 할 말이 없었겠습니까? 그들도 힘들 때도 있고 불황도 겪었을 것입니다. 장사하다 실패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충성된 일군들은 말이 없는 법입니다. 일하지 않는 말꾼, 훼방꾼들이 말이 많습니다. 자신의 악한 말로 스스로 함정을 파는 것입니다.

 

오늘 결론인 24절 말씀입니다. 주인은 곁에 섰는 자들에게 말했습니다.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주인은 감사가 없이 원망하는 자에게서 한 므나를 빼앗아 말없이 충성하는 자에게 주어 버렸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25절에서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명령하셨습니다. 결산의 날에 이런 수치를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산의 날에 불충한 자들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 각자를 돌아봅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한 므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가?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본문에 나오는 셋째 종처럼 장사할 생각도 않고 수건에 고이 싸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래전에 읽었던 김남준 목사님이 썼던 게으름이란 책에 나온 내용입니다.

매일 전철에서 복음을 전했던 한 전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과거에 노동운동을 했습니다. 이 사람의 삶에 감동한 한 기독교 잡지에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기자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전도자에게 희망사항을 물었습니다. 기자의 마지막 질문에 그 전도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배운 것도 없고 갖춘 것도 없어서 더 크게 주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언감생심 하나님께서 저를 크게 써 주시도록 기도도 못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혹시 하나님께서 귀한 사명을 맡겨 주신 사람 가운데 게을러서 그 일을 제대로 안 하면 주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게으른 그 사람 굳이 쓰지 마시고 저를 대신 그 자리에 보내 주세요! 잘하는 것은 없지만 정말 열심히 주의 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게으름 이란 책 내용이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이 세상은 마지막 한 사람 한 영혼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듣고, 알고, 깨닫고, 하나님을 만나 모두가 구원을 받아야만 하는 거룩한 선교지입니다. 우리는 이곳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결코 하잘 것 없는 것이 아닙니다. 대충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은 순간적이지만 결코 순간적이지 않습니다. 그럭저럭 살 가치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고 구원받은 인생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순간 순간의 삶은 반드시 영원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새 생명의 삶을 성실하게 부지런히 삽시다.

 

서론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알리바바 회장 마윈도 세상에서 가장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다고 했습니다. 가난한 마음은 모든 환경이 완벽하게 갖추어지면 장사하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들 안에는 부정적인 마음, 불평하는 마음, 무엇을 시도하기도 전에 할 수 없다는 수 백가지 이유를 찾는 게으름이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지 맙시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게으른 마음입니다. 반대로 부자의 마음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이 하신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는 말씀을 엄중하게 듣고 현재 내게 있는 한 므나로 잘 장사하여 우리 모두 주님으로부터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고을 차지하라는 상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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