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65강
제목 :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라
본문 : 누가복음21:10~19
저는 역사를 좋아했습니다. 고3 때 친구들은 국.영.수 공부에 집중할 때 저는 국사 세계사 공부에 집중했고 다른 과목을 몰라도 역사는 시험 볼 때마다 대부분 1개 틀리던지 만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사를 배울 때 정말 공부하기 싫어지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영조.정조 조선 르네상스 시대가 끝나고 순종 헌종 철종으로 이어지는 구한말 쇠퇴기를 걷다가 나라가 망하는 19세기 우리 역사는 정말 공부하기 싫었습니다. 특별히 일제 강점기에 들어가면 화가 나서 국사 교과서를 펼쳐보기 싫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 분단의 역사, 6.25전쟁 그리고 보리고개를 넘어서 잘 살아보세 외쳤던 근대화를 위한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근대사에 대해서도 흥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학 2학년 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신학교를 가서 역사신학을 공부하고 한국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한국 근대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었습니다. 특별히 재일교포인 강재언 교수가 쓴 ‘한국의 개화사상“을 읽으면서 많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미국선교사인 마르타 헌트리가 쓴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라는 한국초기교회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눈물이 났습니다. 또한 민족사관으로 쓴 민경배 교수의 한국기독교회사는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에 어떤 의미가 숨어있는지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일본에 의한 반식민지 5년 한일합방후 36년의 일제강점기역사를 치욕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사 편에서 근대사를 공부하면서 일본에 의한 식민지화가 오히려 기독교가 뿌리내리게 하고 우리 민족 안에 복음이 확장되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아시아 식민지 국가는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화 됨으로 기독교는 서구의 종교요 선교사는 서구의 스파이로 여겼습니다. 서구제국주의자들의 군함과 총 대포와 함께 들어온 기독교의 복음은 식민지 백성들에게 상처요 아픔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일본에 의해 식민지화됨으로 기독교는 민족을 해방시키고 자립적인 근대화를 위한 사상석 기초로 받아드려졌습니다. 그래서 3.1운동 때 기독교인들이 민족 33인 대표중 16명이나 되었고 3.1운동 이후 기독교는 민족의 종교로 그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제강점기의 치욕의 역사가 하나님편에서 보면 우리 민족안에 복음이 들어오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사의 환경이 되었습니다. 1784년부터 시작된 가톨릭은 100년 동안 신해박해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 병오박해로 2만명의 신자들이 유교 성리학을 정신적 뿌리로 둔 기득권세력에 의해 순교 당했습니다. 만약 일본의 강점기 역사가 없었다면 개신교도 유교와 불교가 뿌리내린 이 민족 안에 가톨릭 100년의 핍박의 역사에서 보듯이 결국 뿌리내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한말의 일본에 의한 식민통치가 유학층의 기득권세력을 와해시키고 새로운 평민 천민 중심의 기독교를 꽃피우게 한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로 나라가 망한 것이 하나님의 구속사 편에서 보면 우리 민족에게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유익인 된 것입니다.
더불어 해방 후 남북한 분단의 역사와 6.25전쟁 후 휴전상태인 이 나라의 상황 또한 우리 민족에게 유익이 되었습니다. 저는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독일이 45년의 분단을 끝내고 통일되는 현장을 뉴스로 목격했습니다. 정말 독일이 부러웠습니다. 저는 우리 민족도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 쯤에는 바벨론 70년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나라를 세웠던 이스라엘 민족처럼 우리민족에게도 통일이 올 것을 내심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통일되지 못하고 냉전 이념 갈등으로 인한 세계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지지리도 복없는 우리 민족의 역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분단과 휴전상태가 오히려 우리 민족을 끊임없이 깨어있게 만들어서 마침내 개발 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변경된 역사상 유일한 사례의 민족이 되게 하는 에너지가 되었음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난이 유익이 되는 사례입니다. 우리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생각하면 치욕의 역사라고만 기억하는데 사실 우리나라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문학이나 한글을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아픔과 고난의 역사가 물리적으로는 후퇴하는 것 같지만 인간의 내면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창조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역사의 발전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손양원 목사님은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 거부로 옥중에 갇혀있을 때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써 보냈다고 합니다. ”나는 솔로몬의 부귀보다도 욥의 고난이 더욱 귀하게 보이며, 솔로몬의 지혜보다 욥의 인내가 더욱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것은 솔로몬의 부와 지혜가 나중에는 타락의 매개가 되었으나, 욥의 고난과 인내는 최후에 영화가 된 까닭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옥중에서 솔로몬의 부귀영화보다 욥의 고난을 더 아름답고 귀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우리가 역사의 주인이시오 인생의 생사화복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면 부귀영화보다 고난이 더 유익하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온실 속에서 키우지 않고 광야에서 훈련시키고 흉년과 기근과 질병 속에서 고난과 징계와 채찍질을 통해서 인간을 성숙시키고 역사를 발전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완성시켜 나가는 것을 봅니다.
이 사실을 깨달았던 히브리서 저자는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안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12:6~8)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구속사의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 종말의 때에 나타나는 시대적 현상에 대해서 오늘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류 종말의 때에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난리와 소요의 소문이 들리고 사람들이 불안해 할 때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내가 구원자라고 많은 사람들을 미혹한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가짜 메시야가 나타나서 내가 구원자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났습니다. 통일교 문선명, JMS정명석,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신천지의 이만희...등등 수많은 거짓 메시야들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10~11절을 보면 말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종말의 때에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치는 전쟁이 더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1차,2차 세계대전이 거의 30년 간격으로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오늘날에는 중동지역에서 전쟁,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태국과 캄보디아 전쟁 그리고 미국과 이란과의 전쟁임박설이 있습니다. 중국의 대만침략 준비 그리고 일본의 개입에 대한 정치적 입장들으로 국제사회가 불안합니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 지진과 쓰나미 기근 전염병이 생겨납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전세계가 공포에 떨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로부터 큰 징조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자연재해가 일어납니다. 가뭄과 홍수와 이상기온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왜 이런 전쟁과 지진 기근 전염병 자연재해 등 무서운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멸망의 징조를 주실까요?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라는 뜻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재난을 줍니다. 이 세상은 썩어지고 더럽고 쇠하여질 곳입니다. 멸망해서 사라질 세상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 안에서 영원한 산 소망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 길입니다. 다리 위에 집 짓는 사람 없습니다. 다리는 지나가는 곳입니다. 이 세상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사도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2~13) 하늘이 불에 타 사라지고 모든 물질로 구성된 우리의 소유물이 불에 타 녹아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종말의 때에 일어날 징조를 말씀해 주신 이유입니다.
더불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종말에 때 나타난 특별한 또하나의 징조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전쟁과 지진 기근과 전염병 자연재해의 현상은 그가 그리스도인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모두가 당하는 환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자들만이 받는 핍박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가려니와“(눅21:12) 16~17절도 말씀합니다.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예수님은 성도들이 이런 핍박은 받는 이유가 예수님의 이름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내 이름을 인하여‘ 라는 말을 두 번이나 쓰고 있습니다. 우리의 핍박은 우리의 게으름이나 죄악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회당에 끌려가고 감옥에 갇히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합니다. 일제 강점기 때 신사참배하지 않는다고 많은 성도가 죽었습니다. 공산주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죽어갔습니다. 지금도 북한에서 중국에서 무슬림 지역에서 불교권에서 흰두교권에서 많은 신자들이 핍박을 받고 교회가 불타고 구타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순교당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기독교 박해 감시 단체들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라 살해당하는 기독교인의 수가 약 4,500~5000명 이상인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그러면 성도들에게 예수님 이름 때문에 이런 핍받을 받도로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곧 복음을 증거 할 기회를 얻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신앙을 보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이 핍박을 받으면서 증언하고 동시에 의지하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겸손해져서 회개하고 복음을 영접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보고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사울이 스데반을 핍박한 후에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이 핍박을 받을 때 성령께서 그들에게 지혜의 말씀을 주심으로 핍박자들이 본래 학문이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고 이상히 여겼고 오히려 복음이 증거되어 믿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로마시대에 성도들을 콜로세움에서 죽이면서 그들을 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핍박을 받을 때 나를 통해 복음이 어떻게 증거되게 하실지 기대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핍박의 현장에 일하시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실 성령님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핍박의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심지어 너희 머리터럭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핍박의 때에 하나님이 함께하사 할 말을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머리터럭 하나 상하지 않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때로 순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까지도 이기는 담대함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갖게 된 믿음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우리는 그 믿음으로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핍박의 때에 복음이 전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고난을 인내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핍박의 때에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말씀하십니다. 공동번역에서는 “너희는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 했습니다. NIV성경에서는 “By standing firm you will gain life” (굳건하게 섬으로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인내는 핍박을 당할 때, 시련과 고난 중에도 흔들림 없이 믿음에 굳게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종말의 때에 인내가 구원을 완성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13) 누가는 열매 맺는 조건으로 인내를 언급했습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8:15) 우리는 인내함으로 구원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이 인내는 주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주님께께서 고난과 환난의 때에 핍박의 때에 나를 머리 터럭 하나 상하지 않고 지켜주시리라는 바로 이 믿음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이 믿음까지도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가지고 고난의 때에 인내로 영혼의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핍박과 환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순수 복음을 소유하게 하십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었던 거짓 희망들을 버리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축복받고 평안하면 신앙생활을 잘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죄악 되어서 이런 고난과 핍박이 있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진실하게 찾고 의지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핍박의 대가를 치르고서야 정금보다 귀한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인격이 성숙합니다. 이런 고난과 시련과 핍박을 통하여 예수님만이 우리의 그리스도라는 것을 깊이 영접하게 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사랑이요. 소망이요. 생명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뿐만아니라 핍박의 때에 우리에게 인내하게 함으로 우리 주위의 사람도 구원을 받게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끝까지 인내했을 때 온 인류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복음을 붙잡고 믿음으로 끝까지 인내하면 우리의 주위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해야 합니다.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온실 속에서 성장하게 하지 않습니다. 광야에서 성장하게 합니다. 죽을 것 같은 홍해 바다 앞에 세워서 참 믿음을 증명하게 하십니다. 실패 속에서 우리 안에 덕지덕지 낀 세상의 때와 탐욕에 찌든 지방을 벗겨냅니다. 환난과 핍박 전쟁과 기근 전염병이라는 고난의 환경 속에 역사의 성장이 있고 하나님의 구속사의 발전이 있습니다. 역사의 주인이시오 인생의 생사화복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과 환난과 핍박의 상황에 두어서 우리안에 심어진 믿음이 참임을 입증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하지 못할 환난이나 핍박이나 시험은 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험을 감당하게 하심으로서 우리의 믿음을 더욱더 진실되고 참되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습니다. 종말을 향해 갈수록 환난과 핍박과 압력과 고통과 갈등과 손해를 더 많이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주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신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종말의 때에 나타나는 모든 환난과 핍박의 상황에서 끝까지 인내함으로 영혼을 지키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사랑을 끝까지 신뢰함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인내하신 것처럼, 사도들과 믿음의 선진들이 주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끝까지 모든 환난을 인내한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끝까지 신뢰함으로 고난의 모든 상황을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고 주님 앞에 서게 되기를 바랍니다.
|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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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 | 누가복음65강(제목 :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라) | 김성철 | 2026-02-22 | 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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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 누가복음63강(제목: 우리의 삶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 김성철 | 2026-02-08 | 31 | |
| 88 | 새 해 교회 사명선언문 설교(제목 : 되살아나게 하는 교회) | 김성철 | 2026-02-01 | 30 | |
| 87 | 새해말씀3(제목: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예배자가 되라) | 김성철 | 2026-01-18 | 51 | |
| 86 | 새해설교2(제목: 공예배가 살아야 삶의 예배도 산다) | 김성철 | 2026-01-11 | 58 | |
| 85 | 새해설교1(제목: 참 된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 김성철 | 2026-01-04 | 8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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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 | 성탄감사예배((제목: 한 아기, 우리를 위해 나셨다!) | 김성철 | 2025-12-28 | 52 | |
| 82 | 25년 성탄설교1(제목 : 말씀이 육신이 되어) | 김성철 | 2025-12-21 | 62 | |
| 81 | 누가복음62강(제목: 돌들이 소리지르기 전에) | 김성철 | 2025-12-21 | 72 | |
| 80 | 누가복음61강(제목 :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 김성철 | 2025-12-07 | 73 | |
| 79 | 누가복음60강(제목 : 진짜 믿어지면 나타나는 현상) | 김성철 | 2025-11-30 | 81 | |
| 78 | 누가복음59강(제목 : 왜 어린아이 같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까?) | 김성철 | 2025-11-26 | 71 | |
| 77 | 누가복음58강(제목 : 의롭다 인정받는 믿음의 기도) | 김성철 | 2025-11-26 | 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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