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78강
제목 :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할 수 있겠는가?
본문 : 누가복음 23:46
1947년에 쓰여진 함석헌 선생님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 명시가 있습니다.
“만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 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 선생님은 독자에게 여섯 번이나 반복해서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묻습니다. 도대체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마 ‘친구’일 것입니다. 이 시를 묵상하면서 온천지에 과연 함석헌 선생님이 묻고 있는 이런 이상적인 친구가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상적인 친구 간의 우정을 표현하는 사자성어 중에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말이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에 관중은 가난하여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인물이었고 포숙아는 그의 친구였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장사를 했지만 관중이 이익을 더 많이 챙겨도 포숙아는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관중은 집안이 어려워 그럴 뿐 본성이 나쁜게 아니다”며 친구를 감싸주었습니다. 이후 관중은 정치적 싸움에서 패하여 감옥에 갇혔지만 포숙아의 추천으로 제환공의 재상이 됩니다. 관중은 출세한 뒤에도 포숙아를 잊지 않고 “나를 알아주는 이는 포숙아요, 나를 세운 이는 포숙아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관포지교는 이해와 믿음으로 이어진 우정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또 이상적인 친구관계를 막역지우(莫逆之友)라고 합니다. 서로 거스름이 없는 친한 친구 관계를 가리킵니다. 또한 간담상조(肝膽相照)라는 말도 있습니다. 간과 쓸게를 보여줄 만큼 속을 터놓는 진실한 친구 사이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세상의 우정이 아무리 진실해도 나의 전 재산을 맡길 수 있는 친구가 있을까요?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맡기고 자신의 처자식까지 맡아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있을까요? 저는 함석헌 선생님이 말하는 그런 이상적인 친구를 우리 주 예수님을 통해서 실현되었다고 봅니다. 찬송가 90장에서 예수님을 이렇게 찬양합니다. “내 친구 되신 예수님 날 구원하시려고 그 귀한 몸을 버리사 내 죄를 대속했네...” 예수님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인 우리를 위해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까지 내놓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우리가 더럽고 추하고 냄새나서 사람들이 떠나가도 예수님만큼은 보듬아 주시고 끝까지 동행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13:1절에서 예수님의 변함없는 우정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은 목숨이 위태롭자 주님을 버리고 도망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 자신을 3번 부인한 베드로를 디베랴 바다까지 찾아가서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한다 베드로야 너도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심으로 관계성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자신을 배신하여 십자가에 건내 준 가룟 유다까지도 마지막까지 사랑해 주시고 돌아올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찬양을 참 좋아합니다. “예수 보다 더 좋은 친구없네 예수 보다 더 좋은 친구없네 괴로울 때 다가와서 마음에 평화주는 신실하신 나의 참 친구 외로울 때 찾아와서 친구가 되어주는 사랑많은 나의 참 친구...”
이 세상 떠날 때 내 처자를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참 친구, 내 전 재산도, 내 영혼까지 내맡길 수 있는 유일한 참 친구는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이용의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상황과 환경에 따라 결코 변심 하지 않습니다. 한결같이 동행해 주시고, 끝까지 책임져 주시고, 변함없이 믿어주시고, 진실하게 사랑해 주십니다.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주십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의 영혼까지 부탁할 수 있는 그런 진실한 친구가 되실 수 있으셨을까요? 예수님도 자신의 전 인생을 아버지께 의탁하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영혼까지 부탁하는 삶을 하늘 아버지 앞에서 사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이신 예수님의 인격 그리고 그 분의 성품은 한결같이 진실했고 한결같이 양심의 꺼리킴이 없는 의로운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전 인생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완전무결한 삶이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를 마치는 마지막 한 마디입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절) 이 말씀 안에서 우리는 왜 예수님께 내 가족과 나의 전 인생을 맡기고 내 영혼까지 맡길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됩니다.
죽을 때의 모습은 그 사람이 일생을 어떻게 살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죽었다는 것은 그가 믿음으로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믿음으로 죽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는가 하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는가 하는 것은 더욱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일곱 마디는 예수님의 전 인생을 보여줍니다. 일언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이언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삼언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6~27) 사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 오언 “내가 목마르다”(요19:28) 육언 “다 이루었다”(요19:30) 칠언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여기 십자가 위에서 했던 칠언 속에는 원수에 대한 용서와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순종심 그리고 부모에 대한 효심, 인간의 연약함을 극복하는 절제력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다 성취하시는 삶의 완전성 그리고 아버지께 영혼을 부탁하는 신실한 아버지와 관계가 다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온전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마지막 일곱 마디 말씀은 예수님의 삶의 아름다움과 행복 그리고 뿌듯함과 완전함이 뭍어 있습니다. 이 땅에서 가장 소중했던 어머니를 부탁할 수 있었던 제자 요한이 있었고 자신의 영혼을 부탁할 수 있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마지막 칠언인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에서 아들과 아버지와 신실하고 진실한 관계를 봅니다. 영혼이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돈보다도 명예보다도 천하보다 더 소중한 것이 바로 내 영혼입니다. 이 영혼을 맡길 수 있는 대상을 가졌다는 것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하고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지켜낸 아름다운 공생애였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습니까?
첫째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면서 사셨기에 자신의 영혼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셨고 아버지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삶이셨습니다.
요17:4절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다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사셨다고 고백합니다. 심지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서 죽음을 앞두고 육신은 살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뜻을 받들고자 겟세마네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순종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를 마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도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다 이룬 것입니까?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다 지켜 행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평생이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을 의지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셨습니다. 사탄에게 시험받을 때도 말씀을 붙잡고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마귀가 40일 금식 후 굶주려있는 예수님께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 할 때에 신명기 8:3절 말씀인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여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을 살 것이라” 대답하셨습니다. 또한 마귀가 ‘하나님의 아들이다면 성전꼭대기에 뛰너 내리라’ 할 때에 신명기 6:16절 말씀인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로 대적하셨습니다. 또 마귀가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리라’ 할 때에 신6:13절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는 오직 말씀을 붙잡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있을 때 마지막 순간에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불순종한 삶을 살아온 사람은 절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하지 못합니다. 평생 불순종의 삶을 살아오다 마지막 순간에 회개한 강도는 자신의 믿음의 최고치를 발휘해서 “당신의 낙원에 갈 때 저를 기억해 주소서” 했습니다. 이 믿음도 크지만 부끄러운 염치없는 믿음입니다. 진짜 순종의 삶을 살아온 사람은 담대히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합니다” 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아버지와 늘 기도로 교통하셨기에 마지막에 자신의 영혼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는 한마디로 기도의 삶이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40일 금식기도로 시작하셨습니다. 또한 공생애 사명을 감당하는 모든 순간이 기도였습니다. 마가복음 1:35 “새벽 아직도 밝기 선제 예수께서 일어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라고 기록했습니다. 제자들이 아침에 일어나 보면 예수님을 이미 기도하러 나가고 없었습니다. 새벽기도는 예수님이 시작하셨습니다. 또한 중요하고 큰일을 앞두고는 산으로 가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특별히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늦은 밤까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는 예수님이 시작한 기도의 방법이고 형태입니다.
기도란 무엇입니까? 기독교에서 말하는 기도는 ‘관계성’에서 출발합니다. 즉 하나님과 내가 어떤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그 관계란 무엇입니까?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기도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호흡과 같다고 했습니다. 숨을 쉬는 것은 생명과 연결되어 있고 생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호흡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하나님과 자녀의 관계는 쉬지 않고 호흡하듯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관계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들어가고 죽어갑니다. 특별히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는 우리의 뜻을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가는 과정입니다. 또한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도록 수정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며 하나님의 계획에 자신의 삶을 내어드립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가 이처럼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주권과 뜻을 이루는 삶으로 내어드렸습니다.
그래서 쉬지 않고 기도하셨던 예수님은 자신의 영혼을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할 수 있었습니다. 수없이 하나님의 주권과 뜻에 자신의 삶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순간 십자가상에서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하는 기도를 하시고 숨을 거두신 이후 예수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빌립보서에서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생애를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르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6~11)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 인간의 모든 육성과 죄성과 연약함을 이기셨습니다. 더불어 성경의 모든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또한 아버지와 끊임없이 교통하심으로 아버지의 계획과 뜻에 자신의 삶을 일치시켰습니다. 이리하여 마지막 십자가상에서 자신의 영혼을 부탁하심으로 공생애를 승리로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구원의 주가 되셨습니다. 이 주님은 이제 우리의 가장 선한 친구가 되사 우리의 전 인생을 구원으로 인도해 주실 수 있으십니다.
함석헌 선생님이 쓴 “만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우리 인생에서 그럴 수 있는 분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내 대신 자신의 생명을 내놓으신 우리 주님뿐이십니다. 이 주님을 만났다면, 이 주님을 의지하면서 믿음으로 살고 있다면, 이 주님께 여러분들의 인생을 맡기시길 바랍니다. 주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 주님과 교통하면서 주님의 뜻과 계획에 여러분의 모든 기준과 생각과 감정과 뜻을 맞추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이 주님께 ‘내 영혼을 부탁합니다!’ 하고 담대히 유언적 기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런 유언적 기도는 아무나 드릴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내가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이런 아름다운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이 땅을 떠나야겠다고 굳게 결심한다고 해서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처럼 자신의 일생을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서 살아온 사람만이 드릴 수 있습니다. 행7:59절에서 스데반은 죽을 때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서마나 교회 감독이었던 폴리갑 주교도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을 당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당신께서 오늘 이 시간 나로 하여금 순교자의 반열, 그리스도의 잔에 참여하게 하시어 내 몸과 영혼이 성령의 썩지 않은 축복 속에서 영생의 부활을 얻기에 합당하게 여겨 주심을 감사하나이다 ... 나는 이 모든 일을 인하여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자, 영원한 대제사장을 통해서 당신을 찬양하고, 감사드리며 영광을 돌리나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이제부터 영원토록 영광이 있을지어다. 아멘”
주기철 목사님도 신사참배 반대하다 모진 고문당하시고 마지막으로 산정현 교회에 왔을 때 2천명의 성도 앞에서 ‘다섯제목의 나의 기도’ 라는 유언적 설교를 하셨습니다. 첫째, 나의 기도는 죽음의 권세에서부터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입니다. 둘째, 나의 기도는 장시간의 고난을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입니다. 셋째, 나의 기도는 내 어머니와 내 처자를 내 주님께 부탁합니다 입니다. 넷째, 나의 기도는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시옵소서’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다른 신에게 내 정절을 깨지 않게 하옵소서 다섯째, 나의 마지막 기도는 ‘내 영혼을 내 주님께 부탁합니다’입니다. 옥중에서든 사형장에서든 내 목숨 끊어질 때 내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붙잡고 내가 쓰러질 때 내 영혼을 주님께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곧 나의 고향이요, 아버지의 집이 곧 나의 집입니다.
매일 살얼음판을 걷듯이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온 사람만이 마지막 순간에 스데반 집사처럼, 폴리갑 주교처럼, 주기철 목사님처럼 ‘내 영혼을 내 주님께 부탁합니다’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부끄러운 삶을 살고서 어떻게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합니다’라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묵상하면서 2022년에 별세하신 부산 수영로교회 정필도 목사님께서 병상에서 성도들에게 했던 영상으로 촬영된 마지막 유언 기도가 생각납니다. “더 크게 우리를 쓰실 것입니다. 적당히 생각하지 말고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서 지난 과거의 살아온 것보다 열배 이상 열매가 나타나고 능력이 나타나고 더 놀라운 열매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한순간 한순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저도 주기철 목사님처럼, 정필도 목사님처럼 마지막 순간에 이런 행복한 유언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동일하게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마지막 순간에 행복한 유언 기도를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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