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누가복음 80강(제목: 몸의 부활=몸의 신앙)
2026-08-09 09:45:04
김성철
조회수   5

누가복음 80

제목 : 몸의 부활 = 몸의 신앙

본문 : 누가복음24:36~43

 

미국 속담에 젊었을 때는 부모가 주신 얼굴을 갖고 살지만 40대가 되면 자신이 만든 얼굴을 갖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삶의 이력서입니다. 얼굴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한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의 사상과 가치관과 세계관과 경험과 기준과 지금까지 선택해 온 삶의 흔적이 새겨져 있습니다.

 

얼굴이란 얼()이 들어오고 나가는 굴()이란 의미에서 '얼굴'이라고 합니다. 즉 얼은 영혼이라는 뜻이고 굴은 통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얼빠진 이란 얼이 빠진 사람이란 의미를 갖습니다. 얼간이는 얼이 간 사람이고, 어른은 얼이 큰 사람이란 뜻입니다. 어린이는 얼이 이른 사람, 어리석은 이는 얼이 썩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얼이 제대로 박혀있는지 빠져있는지, 평안한지 불편하지는 얼굴 표정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속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이 사람 현 상태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신체 근육 가운데 얼굴의 근육이 80개로 가장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변화되어지는 얼굴의 모습은 7천 가지의 표정을 지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한 얼굴 표정 안에 7천 가지 언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났을 때 첫인상은 0.1~3초 사이에 결정되며 이후의 그 사람과의 관계는 첫인상에 받았던 그 직감대로 갑니다.

 

그래서 삼성그룹 창업자였던 이병철 회장은 신입사원 면접 때 항상 옆에 관상을 보는 사람을 두었다고 합니다. 물론 관상 보는 사람의 말에 전적으로 휘둘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첫 인상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인재를 발탁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이력서입니다.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흔적입니다. 그 사람 안에 있는 내면의 생각이 얼굴에 표현됩니다. 정직한 생각을 많이 하면 정직이 얼굴에 새겨지고, 희망을 품고 미래를 향해 달리면 그 얼굴에 진취적 기상이 서려 있게 됩니다. 반면에 거짓된 생각을 많이 품으면 얼굴에 이중성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굴을 잘 관리하기 전에 내면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라고 함부로 품으면 안 됩니다. 고린도후서 10:5절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모든 생각을 복음에 복종시키고 말씀에 복종시켜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는 생각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말씀 중심의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얼굴에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증언입니다. 즉 몸의 부활은 몸의 신앙, 얼굴 신앙과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36-43절입니다.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열한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시면서 평강을 빌어 주었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열한 제자요 범위를 넓혀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믿는 자들에게 평강을 줍니다. 이 평강은 단순한 심리적으로 안정상태인 평안을 넘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바르게 회복되면서 오는 근본적인 영적 조화와 온전한 축복을 의미합니다. 다시말해 환란과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누리는 초월적인 마음의 안정적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은 이 땅에서 죄와 사망 권세에 사로잡혀 두려움과 고난 속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평강을 가져다주는 소식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알리는 천사가 외쳤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2:14)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모든 사람에게 평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다시 말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평화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도 오직 하나님의 택함받은 제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평강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평강을 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사는 여러분들에게 지금 평강이 있습니까?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오히려 놀라고 무서워하였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예수님을 영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귀신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 때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의 무서워하고 의심하는 마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분명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시체가 되어 무덤에 묻힌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죽었던 예수님이 다시 몸으로 살아났다는 것을 그들의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환영이거나 유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이 아니라 몸으로 부활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몸으로 부활하신 것을 두 가지로 증거하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귀신으로 생각하고 무서워하는 그들에게 자신의 손과 발을 보여 주심으로 자신이 영이 아니라 몸을 가지신 것을 증거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손과 발을 만져 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살과 뼈가 있는 몸으로 부활하셨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몸은 이전의 몸과 다른 새로운 몸으로 영광스럽고 강하고 썩지 않는 신령한 몸이었습니다. 문이 닫혀 있어도 문을 열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몸이었습니다. 공중으로 날아다니는 몸이었습니다. 칼이나 총이나 암이나 교통사고로도 죽지 않는 강한 몸이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순간이동 할 수 있는 몸이었습니다.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몸이었고, 물속 1만 미터를 들어가도 끄떡없는 몸이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장애를 받지 않는 강하 몸 신령한 몸 썩지 않는 몸 영광스러운 몸이었습니다.

 

둘째, 너무 기뻐서 아직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음식을 드심으로 몸으로 부활하신 것을 확실하게 증거 하셨습니다. 여전히 눈으로 보고도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믿을 수가 없어 하자 예수님은 이들에게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들이 구운 생선 한 토막을 예수님께 건네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받으사 잡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운 생선 잡수심으로 몸의 부활을 분명하게 증거 했습니다.

 

지금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 일 만에 살아나사 제자들에게 보여 주시고 있는 영광스러운 이 몸은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동일한 그런 몸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가지고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몸의 부활은 사도신경에도 나오는 아주 중요한 신앙의 핵심 중의 핵심 진리입니다. 우리가 몸으로 부활할 것을 믿을 때 우리의 신앙생활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몸과 영이 하나로 존재함을 알게 됩니다. 영뿐만 아니라 몸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몸으로 부활했다는 것과 우리가 몸으로 부활할 것은 우리가 몸의 신앙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뜻도 됩니다. 로마서 12:1절은 몸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 우리의 신앙은 마음의 신앙, 생각의 신앙, 입술의 신앙이 아니라 몸의 신앙 행위의 신앙입니다. 아무리 생각이 거룩하고, 생각이 옳고, 생각이 멋지고, 순교까지 각오하는 희생이 있어도 몸으로 그것을 표현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 신앙은 죽은 신앙인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2:26)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이나 하나님은 우리의 몸의 신앙 즉 행위의 신앙에 따라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시편 62:12 주여 인자도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에스겔 33:20이스라엘 족속아 나는 너희가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 베드로전서 1:17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했습니다. 성경의 결론인 요한계시록 22:12절도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대로 갚아 주리라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마음의 신앙만이 아니라 행위의 신앙까지 가야 그것이 진짜 신앙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지 않고 잠자는 제자들에게 마음은 원이로도 육신이 약하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에 기도하고 싶은 원함이 있어도 육신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빠지고 사탄 마귀가 밀 까부르듯이 가지고 놀게 됩니다. 마음에만 원함만 있고 육신의 행함이 없으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지는 신앙인이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짜 신앙인은 이것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나니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7:8~19) 여기서 말하는 열매란 말씀에 순종하는 행위, 곧 몸으로 실천하는 신앙을 말씀합니다. 행위신앙을 보고 저 사람은 진짜 그리스도인이다 혹은 가짜 그리스도인이다 판단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진실한 사람인지 거짓인지 구분하는 방법은 말을 들어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는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극단적으로 행위가 없는 신앙은 구원받을 수 없다면서 이렇게까지 말씀 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행위적 구원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진짜 내면의 믿음이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입으로 말한 신앙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그가 말한 신앙은 지식입니다. 성경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신앙일 뿐입니다. 알고 있는 성경의 지식이 삶을 변화시키는 행위까지 가지 않으면 단지 주여주여 하는 입술의 신앙인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영지주의 이단이 있습니다. 이들은 몸으로 오신 예수님을 부정합니다. 소위 가현설을 만들어냈습니다. 예수님은 영으로 오셨고 단지 사람처럼 보이거나 환영으로 나타났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영지주의 신학의 특징은 영혼이 육체의 감옥 안에 감금되어 있으므로 이 영혼이 육체에서 벗어나서 영혼의 본래의 세계로 복귀하는 것을 구원이라고 보았습니다. 영지주의는 철저히 이원론적 세계관입니다. 물질세계는 악하고, 영적이며 신비적인 것만 선하다고 보았습니다. 심지어 물질로 구성된 육체를 가진 인간은 악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이원론은 항상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는 악한 물질로 구성된 육신을 억압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극단적 금욕주의입니다. 또 하나는 육신은 어차피 영혼과 무관하므로 육신으로 짓는 죄는 상관없다는 극단적 반율법주의입니다. 이러한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이단이 구원파입니다. 그들은 한 번 구원받았으니 이후로는 어떤 죄를 지어도 용서받기 때문에 함부로 살아도 된다는 구원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신천지와 같은 이단은 영적인 일만 신령하다고 생각하고 가정이나 학교 공부나 직장의 일은 육적이기에 무시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전도를 위해 거짓말하고, 부모님까지도 형사 고발하는 것을 거룩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오직 교회 일하고, 전도하고, 성경 가르치는 영적인 일만 구원받는 조건으로 보는 것입니다.

 

물질주의자들이 판치는 오늘날에도 영지주의가 추구하는 이원론적 구원관을 가진 성도가 교회 안에도 종종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에서 하는 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현재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을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몸으로 부활할 것을 믿을 때 일상의 모든 삶이 다 소중하고 신령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의 관계도 중요하고 나와 이웃과의 관계도 중요함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이웃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몸까지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는 항상 일원론입니다. 영혼만 참 자아이고 육신은 비 자아라고 생각하는 이원론을 배격해야 합니다. 영혼과 육신이 다 같이 참 자아입니다. 영혼과 육신은 하나의 자아로 연결되어 존재합니다. 서론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얼굴은 영혼의 통로입니다. 눈은 영혼의 창입니다. 마음과 육신은 하나입니다. 마음의 신앙과 행위의 신앙의 일치입니다. 하늘의 뜻이 내 삶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이 내 몸에 새겨져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의 얼굴에 형상화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토마스 왓슨은 성도는 걸어다니는 하나님의 초상화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성도가 세상 속에서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을 드러내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세상에 보여 주는 살아있는 증거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육신은 죽어 흙이 되지만 하나님은 그 형상을 그대로 살려냅니다. 이미 하나님의 영이 그 육신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8:11) 말씀합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현재 예수님을 담고 있고 하나님의 형상을 새겨 넣은 우리 몸은 비록 죽어서 화장터에서 불살라져 한 줌의 흙이 될지도 그 육신은 다시 살아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못 박힌 그 흔적을 가진 육신, 창에 찔린 허리의 그 흉터를 가진 옛 육신의 몸을 그대로 가진 체 부활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은 알아보았습니다. 현재 우리 육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육신은 죽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 안에 하나님의 영이 머물고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져 있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구현 낸 얼굴이기에 다시 부활합니다. 그 때 우리는 서로를 알아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생전에 알았던 그 얼굴로 우리는 천국에서 다시 만납니다. 서로 만질 수 있고 안을 수 있고 악수할 수 있는 그 몸으로 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마음으로만 영으로만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한 신앙이 먼저입니다. 그리고나서 반드시 힘을 다한 신앙 곧 육신의 힘을 다해서 말씀에 순종하고 실천하는 삶의 신앙이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에 하나님의 형상을 새겨넣어야 합니다. 우리의 얼굴에 하나님의 거룩함이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영혼관리도 잘해야 하지만 몸 관리, 건강관리도 잘해야 합니다. 깔끔하고 단정하게 옷도 잘 입어야 합니다. 음식도 구별해서 먹어야 합니다. 몸이 나의 존재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십니다. 이분의 얼굴에 무엇이 보입니까? 저는 이분의 얼굴을 볼 때마다 이 분 안에 하나님이 임재해 계심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그 얼굴에 나타나 있습니다. 평생 말씀에 순종하면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긴 얼굴입니다. 이 얼굴이 곧 로이스존슨 목사님의 삶의 이력서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왜 몸으로 부활하셨을까요? 우리의 영혼만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도 구원하고자 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마음으로만 생각으로만 영으로만 하는 영지주의 신앙생활이 아니라 내 심령에 임한 성령님이 내 삶 속에서도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한 신행일치의 몸의 신앙생활까지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있다면 그 영이 내 얼굴에서 내 몸에서 내 손과 발에서 행위로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에서만 신앙생활이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가족과 친족과의 관계에서 성령의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가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인 몸의 부활 = 몸의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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