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누가복음72강(제목: 실패를 극복하는 3가지 영적법칙)
2026-06-07 07:58:11
김성철
조회수   11

누가복음72

제목 : 실패를 극복하는 3가지 영적법칙

본문 : 누가복음22:54~62

 

인간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실수하고 실패를 경험합니다. 단 한번도 실수하지 않거나 실패를 경험해 보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는 대학에서 계속 낙제 점수를 받았습니다. 교수들은 그에게 배우기를 포기한 젊은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지혜를 얻은 그는 전쟁과 평화라는 명작을 남겼습니다. 프랑스 조각가 로댕은 예술학교 입학을 세 번이나 거부당한 꼴찌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통탄했습니다. ‘이런 바보가 왜 우리집에 태어났는가 그러나 그는 조각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미국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의 이력서입니다. 22세에 사업에 실패, 23세에 주의 의회 의원 선거에 낙선, 24세에 사업에 또 실패, 25세에 주 의회 의원에 당선되었지만 26세에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27세에 신경쇠약과 정신분열증으로 고생함, 29세에 의회 의장 선거에서 낙선했으며, 31세에 대통령 선거에 낙선, 34세에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 37세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지만 39세에 국회의원 선거에 또다시 낙선함, 46세의 부통령 선거에 낙선, 49세에 상원의원 선거에 낙선함 51세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링컨은 인생에서 10번의 실패와 낙선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매번 다시 일어났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언24:;16) 왜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은 실패해도 다시 일어납니까? 왜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서 승리의 삶을 살아냅니까? 이사야 41:9,10절에 보닌까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왜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납니까? 하나님께서 의인과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고,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눈이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는 기도에 기울시고 응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34:15절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도다 왜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납니까? 요한복음 13:1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예수께서...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13:1) 하나님께서 의인을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악인은 왜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탄 마귀가 그들의 인생을 무너뜨리고자 작정하고 악인의 삶을 멸망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10:10)라고 했습니다. 악인의 삶의 주관자는 마귀요 의인의 삶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기에 이토록 실패의 자리에서도 결과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전에 택함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고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그의 백성들임을 자랑스러워합시다. 하나님께서 어떤 실패의 자리 무너짐의 자리에서도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는 사실에 감사합시다. 그래서 요나는 불순종하여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죽음의 자리 실패의 자리에서도 이렇게 희망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요나2:4) 우리도 불순종하여 바다에 던져져 죽음의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다시 성전을 바라보고 기도하면 회복되어 요나처럼 새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읍시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하며 철저히 믿음의 삶에서 무너진 베드로가 어떻게 다시 일어서게 되는가를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베드로는 왜 무너졌고 어떻게 다시 일어서게 되는지를 묵상하면서 신앙의 실패를 극복하는 3가지 영적법칙을 배우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님을 가까이서 따라야 합니다.

베드로가 왜 신앙생활에서 실패했습니까? 예수님을 너무 멀찍이서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54절말씀입니다.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예수님께서 잡히게 되자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은 자기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모두 도망쳤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도망가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습니다말했고 자신의 말에 대해 의리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의리는 거기까지였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되 멀찍이 따라가는 그 선까지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갔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실패한 삶을 살게 된 것은 예수님을 따라갔지만 너무나 멀찍이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멀찍이 예수님을 따르는 그 영적 거리감이 마침내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 부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어느 정도의 거리로 따라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실패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따르기는 하지만 가까이서 따르지 않고 적당한 선을 지키면서 따르는데 있습니다. 코로나19 펜데믹 때 사회적 거리두기를 했습니다. 마스크를 쓰게 하고 2m를 건강거리 두기로 장려했습니다. 이렇게해서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을 막았습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면 감염되지 않습니다. 영향력이 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의 적당한 거리두기를 한다면 예수님으로부터 감염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물들지 않습니다. 세례의 영어 표현인 Baptism은 그리스어 밥티조(Baptizo)에서 왔습니다. 밥티조는 본래 천을 염색하기 위해 물에 푹 담가서 물들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례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이고, 예수님이 내 안에 사는 것이고, 예수님께 내 영혼이 완전히 물들여지고 염색되어 예수님 화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15:5,7)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님과 함께 동거동락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연합되어 살면 반드시 신앙의 승리를 경험합니다. 반대로 예수님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적당한 선을 그으면서 따르면 반드시 신앙생활에서 실패할 때가 옵니다. 사탄은 지금도 우리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합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바로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5:1) 그러나 바로는 끊임없이 타협안을 내 놓습니다. 이 땅에서 예배하라.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양과 소는 남겨 두고 사람만 가라 사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에 온전히 나아가지 못하도록 적당히 하나님을 섬기도록 경계선을 정해주고 거기까지만 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섬기라고 합니다. 사탄의 전략은 에수님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되 멀찍이서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사탄은 적당한 선을 긋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헌신없이 쉽게 섬기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한 때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 때 그는 예수님 안에서 많은 능력을 체험하고 영생에 대한 약속까지 받았습니다.(18:30) 그러나 멀찍이 예수님을 따르는 순간 3번 부인하고야 말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되 바짝 따라가야 합니다. 아니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 온전히 연합되어야 합니다. 그 때 믿음의 열매 기도의 열매 구원의 열매를 맺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멀찍이 따르던 베드로에게 마침내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베드로가 불을 쬐고 있었을 때 한 여종이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알고 주목하여 말합니다.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베드로는 순간적으로 놀라 부인합니다.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또 다른 사람이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알고 소리칩니다. 너도 그 도당이라 베드로가 두 번째 부인합니다.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한 시간쯤 지나 또 한 사람이 이번에는 장담하면서 확신을 가지고 말합니다.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그러자 베드로는 이번에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면서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 하고 시치미를 뗐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특별한 제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했을 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신앙고백했던 사람이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설령 예수님을 부인할지라도 베드로만큼은 예수님을 시인하면서 나는 예수님의 제자다라고 고백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지금 자신의 신분을 숨긴 체 예수님을 모른다고 연거푸 3번이나 부인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후에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렸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벧후2:8) 우리는 하나님이 태초부터 그의 자녀로 선택받은 자들입니다. 우리의 신분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황태자들이요 황공주들입니다. 우리는 보배롭고 존귀하고 가치있고 사랑받는 하나님의 걸작품들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으로서 예수님의 가치를 가진 주님 지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하심과 영생의 축복을 받았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신령한 복을 이미 받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는 상속자의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거처가 있고 앞으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될 하나님 나라의 가족입니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나의 정체성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왜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하게 된 것입니까? 철저하게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은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은폐할 때 쉽게 죄짓는 일에 동참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내가 장로요 집사라는 직분을 숨기게 될 때 쉽게 술자리에 동참할 수 있게 되고 부정직한 일을 도모하는데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한다면 공개적으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례받을 때 하늘에서 들려오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이 음성을 들으셨고 공생애 동안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저주받아 죽어야 할 법정에서도 빌라도 총독이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는 질문에도 조금도 흔들림없이 네 말이 옳도다하면서 자신이 만왕의 왕이시요 자신이 메시야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선포하는 일에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아그립바 왕에게 복음을 전하자 아그립바 왕은 바울을 향해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라며 비난하자 바울은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26:29) 선언했습니다. 바울은 죄수의 몸이지만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이방인의 사도라는 사실에 대해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그립바 왕도 죄수로 결박된 것 외에 당신도 나와 같은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갖기를 원합니다!’ 라고 왕의 신분보다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가지라고 권면했습니다. 우리도 어떤 상황 어떤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실패의 자리에서 말씀을 기억하고 회개할 때 새 인생이 열립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베드로가 다 주님을 부인해도 나는 목숨을 걸고 따르겠습니다 했지만, 예수님은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라고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째 부인했을 때 닭이 울었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께서 얼굴을 돌이켜 베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의 눈과 베드로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눈길이 어떠했을까요? 따뜻한 시선 사랑의 시선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 사랑의 눈빛을 보는 순간 동시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하셨던 이 말씀도 생각났을 것입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2) 베드로는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면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회개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시면서 여전히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실패한 우리를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시면서 받아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금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주님을 부인하고 죄를 지으면서 실패하고 있는 그 자리에 있습니까? 그 때 주님의 눈길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실패한 우리를 비난하고 책망할지 모르지만 우리를 구속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나는 너를 여전히 사랑한다. 결코 너를 포기하지 않으며 세상 끝까지 너와 함께 갈 것이다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실패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기억나야 합니다. 마치 교통사고가 났을 때 우리를 보호하는 에어백이 터지듯이 실패의 때에 기억 속에 있던 말씀이 에어백처럼 터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말씀이 우리 속에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늘 통독하고 하가다 하면서 말씀이 내 안에 새겨져 깊이 뿌리를 내리게 해야 합니다. 말씀이 내 안에 저장되어 있을 때 신앙의 사고가 나고 실패의 자리로 무너져 내렸을 때 그 말씀이 터져 나와 나의 생각을 장악하여 다시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많은 믿음의 선조들도 하나님의 부르신 자리에서 무너졌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야곱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고 다윗이 그랬으며 엘리야도 그랬습니다. 요나는 너무 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회개하고 돌이켜 승리의 새 삶을 살아냈습니다. 반대로 신앙생활에서 실패하고 무너져서 영영 다시 일어나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점점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가다 결국 멸망으로 가는 예들이 많습니다. 사울이 그랬고, 롯이 그랬으며,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그랬고, 아합 왕도 그랬고, 가룟 유다가 그랬습니다. 왜 이들은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멸망으로 나아갔을까요? 말씀이 그들을 돌이키게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들었지만 한쪽 귀로 듣고 흘러버렸기 때문입니다.

 

실패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실패란 당신이 삶을 낭비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새롭게 시작해야 할 이유를 가졌다는 뜻입니다. 실패란 당신이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실패란 당신이 결코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뜻입니다. 실패란 하나님께서 당신을버리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더 나은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가 크고 작은 일에 실패를 경험하기 때문에 낙심하며 의기소침해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실패한 것이 실패가 아님을 일깨워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에 당신의 자녀로 예정하시고 택하사 부르셨다면 어떤 인생의 실패 속에서도 베드로처럼 다시 일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말씀처럼 예수님을 적당히 거리를 두고 멀찍이 쫓는 신앙생활을 했다면 바싹 달라붙으십시오. 아니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혹시 오늘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숨기면서 세상 속에 카멜레온처럼 양다리를 거쳤다면 분명하게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드러내면서 사십시오. 그리고 신앙의 실패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을 흔들어 깨운다면 그 말씀 앞에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우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실패를 극복한 여러분을 더 큰 은혜로 채워주시고, 더 아름답고 축복된 삶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아무리 크게 실패하고 무너져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시 기회를 주는 새 아침이 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새 아침은 그 자체로 기적입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든 오늘부터 또 새로 시작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들에게 매일 새 아침을 주시고, 영광의 새날 승리의 새 인생을 살게 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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