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누가복음71강(제목: 일어나 기도하라)
2026-05-31 13:30:46
김성철
조회수   10

누가복음71

제목 : 일어나 기도하라

본문 : 누가복음22:39~46

 

지난 2주 동안 당회에서 논의하여 7년마다 있는 안식년을 매년 2주 안식년 휴가로 대체하는 것을 허락받아서 2주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첫 주는 베트남 다낭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6대 해변으로 꼽히는 다낭 미케비치 해변이 보이는 로즈미아 호텔에서 3일 머무르면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4일동안 다낭 패키지 여행을 했습니다. 금요일 아침에 김해공항에 와서 울산으로 가서 나를 전도했던 울산문수교회 목사님 사모님을 뵙고 하루 종일 영적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포항 처제집에서 1박 머무르면서 처형 처제들과 오랜만에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경주선교교회 원로목사님이신 박다니엘 목사님 집에서 1박하고 다음날 주일 모 교회인 경주선교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녁 늦게까지 믿음의 동역자들과 교제하고 새벽 1시쯤 광주에 도착해서 하루 자고 다음 날 성남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님 집에서 이틀 동안 자면서 많은 영적교제를 나누고 남한산성과 인천 영종도 용유도 무의도를 여행하고 광주로 와서 무등산 산기도를 하고 주일에는 다음세대를 잘 양육하고 있는 합동측 청사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번 2주 휴가를 보내면서 가장 행복했던 것은 잠을 푹 자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새벽 350분쯤에 일어나 새벽 기도하면서 중년 이후 불면증까지 겹쳐 늘 수면 부족으로 머리가 무겁고 뒷골에 통증이 오고 점식 식사 후에는 천근만근 몸이 가라앉아 인사불성이 되는 현상이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그것이 사라졌습니다. 2003년 목사안수 받고 나서 2주 동안 쉬어 본 적이 없는데 2주를 연속 쉬닌까 목회 은퇴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육신의 쉼도 좋지만 진정한 쉼은 영적 쉼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주일예배의 자리가 그렇게 소중하고 새벽기도 할 수 있는 교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되었습니다. 육신의 쉼도 필요합니다. 23Km 되는 해변을 멍 때리면서 바라보고 그 해변 길을 달려보고 다낭의 좋은 경치를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니 마음이 즐거웠습니다. 또한 따뜻한 사람과의 만남은 삶을 기름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쉼은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인 예배 속에 있고 순간순간 읽은 성경 말씀에 있고 주님 앞에 섰던 무등산 산 기도의 자리가 그렇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모든 쉼에 가장 깊고 행복하고 따뜻한 쉼은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인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말씀을 먹는 그 시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주님을 불러 기도하오니 나는 주님에게서 돌아설 때 넘어지게 되고, 주님을 향해 되돌아 설 때 일어나게 되며, 주님 안에 머물 때 든든히 서게 됩니다. 주님을 떠날 때 죽게 되며, 주님에게 되돌아 갈 때 다시 소생하게 되고, 주님 안에 거할 때 참으로 살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향해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내 마음이 주님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편안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풍성하게 하고 복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은 결국 주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무너지면 영혼이 불안해집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깨지면 아무리 노후준비가 잘되고 건강해도 가슴이 텅비게 되고 영혼에 허무감이 생기고 내일이 설레이거나 기대가 되지 않습니다. 최고의 휴식은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교제에 있습니다. 최고의 휴가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하루 하루의 믿음의 여행입니다.

 

오늘 말씀은 일어나 기도하라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어도 일어나 기도하면 새 힘을 얻습니다. 마음을 추스릴 수 없는 슬픈 상황에서도 일어나 기도하면 영광의 새 아침이 열립니다. 실패가 지속되는 두려움의 자리에서도 일어나 기도하면 기회의 문이 열립니다.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짐도 그 자리에서 일어나 기도하면 감당할 내면의 힘이 생깁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오늘 말씀을 통해서 슬픔에 빠져 낙심한 영혼, 고난에 늪에 빠진 심령, 어둠에 잠든 영혼, 시험 들어 무너진 영혼들이 일어나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 후 감람산에 가셨습니다. 감람산은 예루살렘에서 1.1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산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실 때마다 늘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시며 영적 쉼을 가졌습니다. 이 습관을 따라 예수님은 오늘도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39-4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지금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종교 지도자들에게 잡히시기 직전입니다. 내일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습니다. 그동안 계속해서 말씀하셨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기도하러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몸에 새겨진 습관에 따라 자동적으로 한 행동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습관적으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자주 나옵니다.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습관을 따라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메시야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세례받으실 때도 기도하셨고(3:21), 열 두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도 기도하셨습니다(6:12), 변화산에서 영광스럽게 변화되실 때(9:28),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용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삶 전체가 기도에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날 정도로 기도하는 삶이 습관화 되셨습니다.

 

습관이 천성과 본성을 이긴다고 했습니다. 공자가 한 말입니다. 性相近也 習相遠也 인간은 누구나 비슷하게 태어나지만 무엇을 반복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점점 다른 길을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성공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천성도 본성도 아이큐도 학력도 키도 생김새도 돈도 직업도 아닌 매일 매일 무엇을 꾸준히 반복적으로 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거룩한 습관이 영성입니다. 거룩한 습관이 곧 성화의 열매입니다. 거룩한 습관이 인생의 실패에서 일어나게 하고 고난을 극복하게 하고 사탄의 유혹과 시험을 이기게 합니다. 경건의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은 어떤 상황 환경에서도 거뜬히 일어납니다.

 

한 목사님이 베델교회 손성현 원로목사님과 함께 해외여행 하면서 겪은 일화를 말해 주었습니다. 목사님들과 미국 교회 탐방 갔을 때 한 번은 숙소에서 새벽에 화장실에 갈려고 문을 열었는데 그 화장실에서 손성현 목사님께서 쪼그리고 앉아 아침 큐티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은 목사님들이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불편해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때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세웠던 영성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열역학제2의 법칙인 엔트로피 증가법칙이 있습니다. 자연은 항상 질서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 이동한다는 것입니다. 이 법칙을 영적으로 적용하면 우리가 거룩한 습관을 만들지 않으면 우리의 육성은 자동적으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6:12~13) 했습니다. 우리 몸을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않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방법은 우리 몸에 경건의 습관을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되도록 매일 아침마다 몸을 새벽기도의 자리에 가져다 놓는 것입니다. 예배가 습관이 되도록 어떤 상황에서도 주일예배의 자리에 몸을 가져다 놓는 것입니다. 잠자기 전에 감사제목 3가지를 찾고 잠자리에 들도록 몸을 세팅해 놓는 것입니다. 점심 식사 후에는 몸이 성경책을 읽도록 훈련 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한 습관이 몸에 베이면 그 경건의 습관이 나를 죄에서 지켜 냅니다. 사탄의 유혹에서 지켜 냅니다. 시련과 고난의 때에도 그 거룩한 습관이 나를 일으켜 세웁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내일 처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도할 맛이 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을 따라 감람산으로 가셔서 기도의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이것이 결국 십자가의 고난을 이겨내게 하신 것입니다. 가룟유다가 배신하고 팔아 넘겨도 제자들이 다 도망쳐도 심지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쳐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침뱉음을 당하고 뺨을 맞고 조롱과 멸시를 당해도 감정에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습관은 처음에는 의지로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벽마다 기도하는 습관이 몸에 배이자 자동적으로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형성된 습관이 몸을 자동적으로 통제합니다. 그래서 거룩한 습관이 몸에 새겨지면 그 사람은 어떤 상황 환경에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의 세력에서 승리합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거룩한 습관이 영성입니다. 거룩한 습관이 성화의 열매입니다. 거룩한 습관이 사탄을 이기는 에너지입니다. 거룩한 습관이 성품입니다. 그 거룩한 습관이 결국 미래를 바꾸고 운명을 이기게 합니다.

 

기도가 습관이 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40절에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46절에서도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성경은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사단은 예수님도 유혹하고 시험했습니다. 40일을 금식하시고 주리신 예수님에게 돌을 떡으로 만들라고 시험했습니다. 자신에게 절하면 세상 영광을 주겠다고 유혹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서 하나님이 지켜 보호해 주시는지 시험해 보라고 유혹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시험한 사단은 제자들도 유혹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시험을 물리치셨지만 그러나 제자들은 사단의 시험에 빠졌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팔아넘겼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으며, 다른 제자들도 잡히신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사단의 시험에 들어 넘어질 것을 아셨습니다. 사단의 시험에 들면 인간의 힘으로 결심으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제자들은 기도하지 못하고 잠들었을까요? 기도가 습관화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자리가 어색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힘은 한 번의 기도로 나오지 않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영적인 힘은 한 번 감람산에서 3시간 기도했다고 나오지 않습니다. 죄를 이길 수 있는 영력은 한순간의 영성으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한 시간씩 세 번 기도했다고 해서 그 기도가 십자가를 지게 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가 기도의 삶이었고 수많은 기도의 시간이축적되면서 매일 매일의 시간이 하나님께 밀착되어 있었고 그 기도의 시간을 통해서 수없이 하나님께 반복하여 순종했기에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그 상황에서도 기도했고 그 기도의 영성으로 하나님과 깊이 교제했고 그 기도의 깊이가 그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입니다. 41~44절입니다.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십자가를 앞둔 상태에서 슬픔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은 예수님일지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를 지려면 사람들에게 비방과 모욕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멸시를 받아야 합니다. 침뱉음도 당하고 발길질도 당합니다. 발가벗겨지는 수치도 받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도 여섯 시간을 매달려 있어야 합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이 십자가를 앞두고 심히 놀라시고 슬퍼하셔서 내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도 살고 싶은 생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쉽게 죽음의 공포 십자가의 고통을 이겨냈으리라고 상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몸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육체의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이런 두려움과 슬픔이 육신의 소원에서 오는 유혹인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육신의 소욕과 싸워서 이기고자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자신의 소원을 진실 되게 고백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라면 이 십자가의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미사여구를 쓰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좋은 기도는 자신의 육신의 소원을 진실하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고통스럽습니다. 주님 제가 죽게 되었습니다. 주님 힘듭니다. 왜 저의 상황을 돌아보지 아니합니까? 이 상황이 너무나 슬프고 낙심이 됩니다. 주님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서 왜 이 고통을 주십니까?” 내 감정에 솔직한 기도여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솔직한 감정을 아뢰는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더 나아가서 예수님처럼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때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기도하는 심령에 힘을 줍니다. 육신은 십자가를 지지 못하게 방해하지만 천사는 기도할 때 힘을 주사 십자가를 지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에 순종하고자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통곡하며 기도했다고 나옵니다. 예수님은 피와 땀과 눈물로 기도의 싸움을 싸우셨습니다. 그만큼 육신의 소욕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결국 육신의 소원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기도해야 합니까? 육신의 소원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힘을 얻기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되기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얻기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겟네마네의 기도의 자리에서 육신의 소욕을 이기는 승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이기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사탄의 시험에서 승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똑같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을 잤습니다. 육체의 피곤함에 코를 골았습니다. 슬픈 마음 때문에 기도의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깊은 기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기도에는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는 하늘 보좌까지 뚫고 나아갔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도를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기도의 화살을 새들이 날아다니는 첫 번째 하늘을 지나고 악령이 다스리는 두 번째 하늘을 뚫고 거룩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세 번째 하늘에 이르기까지 쏘자 어떤 기도는 매우 큰소리로 부르짖어도 허공에 흩어지는 기도가 있고 어떤 기도는 간절한 기도 속에 그 기도가 첫 번째 하늘을 뚫고 악령이 다스리는 두 번째 어둠의 공간을 뚫으며 세 번째 하늘인 하나님 보좌에 다다르게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한나의 기도가 그러했고 갈멜산에서 엘리야의 기도가 그러했으며 오늘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도록 자신의 육신의 소욕과 싸워 승리한 예수님의 기도가 그러했습니다.

 

기도의 영력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습니다. 매일 거룩한 습관을 따라 기도의 양이 쌓이고 기도의 힘이 생기고 기도의 깊이가 뚫어질 때 마귀의 시험과 유혹을 이기는 영력이 주어집니다. 임계점 3시간 기도의 법칙을 쓴 박종기 목사님은 그 책에서 한 시간 기도하면 나 자신을 이기고 두 시간 기도하면 사탄 마귀를 이기고 세 시간 기도하면 기적이 일상이 된다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성도님들 안에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는 습관적인 기도가 드려지기를 소망합니다.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는 이 주님의 음성이 들려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기도로 육신의 소욕을 이기셨던 예수님처럼, 기도로 마침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습관을 따라 애써 더욱 기도함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짐으로 사탄 마귀를 짓밟고 승리의 길 영광의 길을 가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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