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67강
제목 : 자신의 삶을 죄에게 내준 사람들
본문 : 누가복음 22:1~6
이 번 주에는 백정자 권사님의 시아버지요 김성규 안수집사님의 아버님 고 김학수 장로님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또한 211구역의 윤성경 집사님의 시아버지 곽현우 성도의 아버지인 곽영국 성도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목회자로 장례 예식을 집전할 때마다 걱정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추모할 수 있는 할 말이 있는 장례 예식을 맡을 때는 안심이지만 할 말이 없는 장례식을 맡을 때는 어떻게 장례 예식의 말씀을 준비해야 할지 걱정이 생깁니다. 특별히 무슨 말씀을 나눠야 할지 할 말이 없는 분의 장례식을 집례할 때는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장례식을 집례할 때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누군가 내 장례식을 집례할 때가 올 것인데 그 때 할 말 있도록 잘 살아야겠다.”
비행기가 추락하면 가장 먼저 항공기 블랙박스를 찾습니다. 왜냐하면 블랙박스에는 사고당했을 때 마지막 순간의 조종실 대화와 고도, 속도, 방향, 기기 작동상태에 대한 비행 데이터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블랙박스를 찾으면 사고 경위를 알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인간에게도 자신의 삶을 낱낱이 기록하는 인생 블랙박스가 있습니다. 뇌의 대뇌피질에 우리의 삶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하늘의 블랙박스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행위의 책에도 우리의 삶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너를 바라보는 한 눈이 있다. 너에게 귀를 기울이는 있는 한 귀가 있다. 너의 말을 기록하고 너의 행위를 그림으로 그리는 한 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살도록 하라”(미쉬나 피르케이 아보트2장 1절) 나의 삶을 나의 뇌가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행위의 책에서도 나의 모든 행위를 쓰고, 그리고,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생은 한 번뿐입니다. 한 번뿐인 인생 잘 살아야 합니다. 한 번뿐인 자신의 삶을 죄에게 내 준 사람이 있고 의를 위하여 내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한 번뿐인 자신의 삶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해석할 수 있는 중요한 말씀이 로마서6:12~13절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의 지체인 입과 눈과 손과 발을 의의 무기로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 몸을 죄에게 내주지 말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이 한 번뿐인 자신의 삶을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줍니다. 오늘 본문에는 한 번뿐인 자신의 삶을 죄에게 내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로 자신의 삶을 죄에게 내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이야기입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 궁리하니 이는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죽음의 사자가 애굽의 모든 장자를 심판하여 죽게 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집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랐습니다. 그때 죽음의 사자가 어린양의 피를 보고 넘어갔습니다. 영어로는 pass over입니다. 위로 넘어갔다는 뜻입니다. 한자로는 넘을 유(逾), 넘을 월(越), 절기 절(節)로서 죽음의 사자가 그냥 넘어가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어린양의 피 때문에 그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애굽에서 빠져나와 해방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노예 백성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양을 잡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유월절에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게 됩니다. 이날을 위해서 주님은 이 땅에 오셨고, 이날을 위해서 공생애 3년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신앙고백 한 이후부터 자신의 죽게 될 것을 제자들에게 무려 4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 일이 사탄의 도구가 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 의해 진행됩니다. 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사형시키길 원했을까요?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은 기존의 종교체계를 뒤엎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기득권을 위협하고 율법 중심의 종교체계를 거슬렸습니다. 율법에서 가까이하지 말아야 하는 죄인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안식일에 사람을 치료하면서 안식일 법을 범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고 확신했던 자신들을 향해 ‘외식하는 자들이다. 소경을 인도하는 소경들이다. 회칠한 무덤이다’ 비난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이라며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 말씀하며 하나님과 자신을 동등하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던 더 심층적인 원인에 대해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함이라”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했기에 죄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사탄 마귀가 사로잡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마귀가 그 사람을 사용합니다. 돈 있는 사람, 힘 있는 사람, 나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사람, 마치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할 것 같은 사람을 두려워하면 사람이 비겁해집니다. 진실을 버리게 됩니다. 양심을 버리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하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종교지도자들인 자신들을 따르지 않을까 봐, 예수님을 인정하고 자신들을 버릴까 봐 두려웠습니다. 특별히 기적과 능력을 행하면서 백성들로부터 메시야로 인정받고 환호받는 예수님을 향해 시기와 질투심이 불타올랐습니다. 그들의 기도, 그들의 금식, 그들의 종교 행위는 늘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민감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신앙은 사람의 눈앞에서만 잘하려는 형식주의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그들의 중심을 뚫어보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하면 사탄의 올무에 빠집니다.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줏대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지 마십시오. 상황과 환경에 휘둘리는 사람의 마음을 잡을 수 없습니다. 명심하십시오. 사람들의 마음은 하루에도 수없이 변심합니다. 사탄이 그 사람을 사로잡으면 사람을 두려워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사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사람을 더 두려워하면서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는 인생을 살게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우리를 책임지지 못합니다. 결국 사람을 두려워하다 망하는 길로 갑니다.
우리는 조금만 힘들고 어려우면 믿음이 약해지고 눈에 보이는 사람을 따르고 의지하고 싶어집니다. 사탄은 우리의 이런 약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삶이 어렵고 힘들 때 자꾸 보이는 사람의 힘을 의지하도록 유혹합니다. 힘있고 능력있는 사람이 우상이 되게 합니다. 그러면 사탄이 쳐놓은 올무에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내 중심을 보고 계시고 내 생각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 때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내 인생을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는 첫걸음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두려워하지 않으면 세상 모든 것이 다 두렵습니다.
둘째로 자신의 삶을 죄에게 내준 가룟 유다의 이야기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사탄이 가룟 유다에게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에서는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고 했습니다. 왜 사탄의 가룟 유다에게 들어갔을까요? 그의 생각이 거짓과 위선과 탐욕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얼마나 탐심과 거짓으로 가득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 요한복음 12:4~6절에 나옵니다.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유다는 예수님의 돈궤를 맡은 자였습니다. 계산에 밝고 돈 욕심이 많은 자로 제자공동체의 공동재정을 자주 훔치는 자였습니다. 사탄은 유다의 이런 거짓된 모습을 잘 알았고 그것을 이용해 예수님을 팔 생각까지 넣은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라는 말씀이 현실적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사탄은 그의 탐심을 자극해 배반의 기회를 엿보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유다는 예수님을 버리기로 작정했습니다. 그에게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보다 당장의 물질이 더 중요했습니다. 유다의 생각 속에 사탄이 들어가자 이제는 생각에 머물지 않고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줄 방도를 의논하여 넘겨줄 기회를 찾는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면서 우리의 생각을 알아내고 그 생각 속으로 들어가서 활동합니다. 사탄이 생각 속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신앙 고백하고 난 후 예수님이 인자의 고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그 길을 가지 말라고 막아섰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마16:23,막8:33) 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중심의 생각, 세상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추구하는 인본주의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면 사탄이 우리의 생각 속에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예수님을 무슨 방도로 죽일까 궁리할 때 사탄이 그들의 생각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생각속에서 활동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결국 영적 전쟁터입니다. 이것에 대한 한 예화가 있습니다.
「한 체로키 인디언 노인이 손자에게 삶에 대해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에서 늘 싸움이 일어난단다” 그는 손자에게 말했습니다. “너무 끔찍한 싸움이어서 마치 두 마리 늑대가 싸우는 것과도 같단다 하나는 악마 같은 놈인데 분노,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교만, 분개, 자기연민, 죄의식, 열등감, 거짓, 허영, 잘난체 하고 자신의 거짓자아를 나타낸단다. 다른 놈은 선한 놈이지. 이 놈은 기쁨, 평화, 사랑, 희망, 친절, 선의, 고요함, 겸손함, 동정심, 관대함, 진실, 신뢰를 나타낸다. 이 같은 싸움이 내 안에서도 일어나고 모든 사람의 마음에서도 일어난단다.” 손자는 잠시 동안 그 말을 생각하다가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할아버지는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긴단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우리의 생각의 전쟁터에서 악마와 의인의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누가 이기는가? 에 대한 해답을 줍니다. 결국 먹이감을 많이 받아먹은 자가 승리합니다. 거짓된 생각 악한 생각 탐욕을 부추기는 생각을 많이 하면 악의 힘이 점점 커져 선한 힘을 이기고 선한 생각 진리와 사랑의 생각을 많이 하면 선한 힘이 악의 힘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결국 어떤 생각을 많이 하느냐가 마음의 전쟁터에서 승패를 좌우한다는 뜻입니다.
마틴 루터도 동일한 말을 했습니다. ”새가 우리의 머리 위를 지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새가 우리의 머리 위에 동지를 틀게해서는 안 된다“ 매일 생각 속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수 많은 악한 생각들이 있습니다. 마치 우리의 머리 위를 스치는 새와 같이 나쁜 생각을 막아낼 도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악한 생각이 내 마음속에 머물면서 둥지를 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우리가 악한 생각을 선택할 수도 있고 쫓아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나쁜 생각 악한 생각이 우리의 머리를 스칠 때에 그것이 내 마음에 자리잡고 들어앉지 못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가룟 유다가 사탄 마귀의 종의 되었을까요? 왜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쓰임 받았을까요? 왜 그들이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한 삶을 죄에게 내주는 불행한 삶이 되었습니까? 그들의 생각이 거짓과 탐심과 시기심과 교만으로 인간적인 생각으로 가득찼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받아 멸망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땅이여 들어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렘6:19)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을 당한 것은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고 말씀합니다. 생각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을 잘해야 합니다. 죽을 각오로 생각을 잘하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10:4~5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우리가 마귀 사탄을 이기게 하는 최고의 무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씀 중심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 사람은 한 번뿐인 인생을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면서 축복되게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의 힘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선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 준다 해도 하나님의 뜻을 망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종교지도자들과 가룟 유다가 거짓과 악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대적해도 하나님의 뜻 곧 진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는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달립니다. 그것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사탄 마귀는 예수님을 죽이면 하나님의 계획을 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보혈의 피가 믿는 자들의 죄를 속량합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십니다. 문제는 마귀에게 이용당한 종교지도자들과 가룟 유다만 손해 본 인생, 저주받은 인생, 불행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아무런 손상이 없습니다.
악의 세력이 하나님의 구속사를 꺽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무너지게 할 수 없습니다. 역사의 주인이시요 인생의 생사화복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마침내 구속사를 완성하시고 새 하늘 새 땅을 여시면서 끝내 창조의 목적을 완성할 것입니다. 악이 대세라고 해서 진리가 약하게 보인다고 해서 진리를 버리고 악의 편에 서지 마십시오. 갈대처럼 줏대 없이 상황과 환경에 따라 수없이 흔들리는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마십시오. 세상의 기준, 가치관, 세계관에 동조하지 마십시오. 한 번뿐인 내 인생을 불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마십시오. 오직 진리이신 말씀을 기초로 내 인생을 하나님께 의의 도구로 드리십시오. 우리의 삶은 기록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평가를 받습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 곧 네 생각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고 했는데 생각을 잘 지킴으로 우리의 삶을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림으로 축복의 통로의 삶이 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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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 | 누가복음67강( 제목 : 자신의 삶을 죄에게 내준 사람들) | 김성철 | 2026-03-08 | 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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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 | 누가복음65강(제목 :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라) | 김성철 | 2026-02-22 | 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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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 누가복음63강(제목: 우리의 삶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 김성철 | 2026-02-08 | 4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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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 2025년 한 해를 마치며(제목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 김성철 | 2025-12-28 | 77 | |
| 83 | 성탄감사예배((제목: 한 아기, 우리를 위해 나셨다!) | 김성철 | 2025-12-28 | 71 | |
| 82 | 25년 성탄설교1(제목 : 말씀이 육신이 되어) | 김성철 | 2025-12-21 | 78 | |
| 81 | 누가복음62강(제목: 돌들이 소리지르기 전에) | 김성철 | 2025-12-21 | 83 | |
| 80 | 누가복음61강(제목 :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 김성철 | 2025-12-07 | 86 | |
| 79 | 누가복음60강(제목 : 진짜 믿어지면 나타나는 현상) | 김성철 | 2025-11-30 | 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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