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설교2
제목 : 공예배가 살아야 삶의 예배도 산다
본문 : 로마서 12:1~2
새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교회의 표어 “예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다시 불을 지피자, 주의 제단 위에!” 기도제목을 가지고 예배의 회복을 위해서 한 마음, 한 뜻, 한 비전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찾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돈도 아니요 보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멋진 풍경도 아니며 맛있는 음식도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충만합니다. 지식이 충만하고 능력이 충만하고 사랑이 충만하고 영광이 충만하고 존귀함과 거룩함과 재물이 차고 넘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애타게 찾고 싶은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예배자입니다. “아버지께서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요4:23)
하나님은 성령 안에서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들을 만날 때 하나님은 너무 기뻐서 은혜와 기적과 능력을 베푸시고 하늘의 신령한 모든 복을 공급해 주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은 그런 심령에 능력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은혜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마워하면서 그들의 삶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말은 예배 속에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그 사람의 삶이 무너진다는 뜻입니다. 예배는 쇼가 아닙니다. 예배를 보러 오지 마세요! 예배를 드리러 오세요! 혹시 누가 “예배보러 갈께요” 하면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예배보러 오는 사람은 교회 마당만 밟고 계단만 밟고 카페트만 밟고 교회 분위기 구경하고 돌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정작 예배 속에 임재 해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사람만 만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찬양속에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를 구원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고 존귀하고 영화롭고 감사와 찬양을 받을만하신 분인지 알고 그 분 앞에 무릎을 꿇어 존경을 표해야 합니다. 단상에서 말씀이 선포될 때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습니다. 마음으로 무릎을 꿇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내 심령을 뚫고 들어오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십자가 앞에서 한 주 동안 나의 삶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용서받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예배 중에 느껴야 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늘 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을 느끼고 경험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그런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요한삼서 1:2절에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을 잘되려면 영혼이 잘되야 합니다. 영혼이 잘되면 삶의 모든 아픔과 고난을 극복하고 행복하고 기름지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혼이 잘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면서 여호와를 앙망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이런 약속을 하셨습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30~31절)
우리가 참되게 하나님을 예배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에 새 힘을 주십니다. 어떤 상황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독수리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영혼의 힘을 주십니다.
예배는 바로 영혼의 힘을 얻는 시간 마음에 힘을 얻는 시간입니다. 영혼을 기름지게 하고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만드는 시간입니다. 아무리 인생의 짐이 무거워도 영혼의 힘이 생기면 모든 고난과 상처와 위기를 넉넉히 이깁니다. 그러나 아무리 육신이 건강해도 마음이 무너지면 그 사람은 한순간에 쓰러집니다. 더 이상 내일을 살 힘을 잃어버립니다. 육신의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보약을 먹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마음의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마음의 힘 영혼의 힘을 얻습니까? 맛있는 음식을 먹고 보양을 하고 운동을 한다고 해서 영혼이 지켜집니까? 영혼의 힘은 예배에서 옵니다. 예배중에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내려주시고, 죄를 용서해 주시며, 상처 난 마음을 치료해 주시고, 무너진 심령을 일으켜 세워주시고, 다시 일어나 달려 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은 하나님을 만날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신령과 진정으로 여호와를 앙망하는 예배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여러분은 언제 가장 자존심이 상하던가요? 사람들에게 무시당할 때입니다. 가난하다고 흙수저라고 능력이 없다고 배경이 없다고 무시당할 때 얼마나 서럽고 억울하고 큰 상처가 됩니까? 사람도 무시를 당하면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상하는데 하나님이 무시를 당하신다면 어떠실까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무시한 적이 없으십니까?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가장 무시 받는 때가 형식적인 예배, 눈가림만 하는 예배를 받으실 때였습니다. 말라기 1장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오면서 눈 먼 짐승, 다리 저는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형식적인 예배들 드렸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셨던지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차라리 저런 자들 안 보게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눈가림의 예배자, 형식적인 예배자들이 올 때 나는 무시 받는 느낌이 든다. 영적 분별력이 있다면 누군가 차라리 예배당에 못 들어오도록 문을 닫아서 나를 무시하는 예배를 못 드리게 하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면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 죄를 회개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찬양하라! 헌금도 정성을 다해 감사한 마음으로 드려라! 대충 형식적으로 눈 가름식으로 마당만 밟는 예배 감사도 감격도 없는 예배 그런 예배는 나를 무시하는 예배다! 그런 예배자는 차라리 내가 안 보게 예배당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청와대 대통령을 만나러 가듯이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백악관에 가듯이 정성을 다해 마음도 준비하고, 목욕도하고, 속옷도 갈아입고, 깔끔한 옷도 준비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끗이 정돈하고, 나를 초대해주신 대통령님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만나듯이 그렇게 나를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 자녀 삼아 주신 주님께 최선을 다해 정성을 다해 힘과 뜻을 다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12:1절은 바로 예배자의 태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오늘 본문에 ’그러므로‘ 라는 접속사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 말은 사도바울이 로마서 1~11장까지 강조한 말씀에 대한 결론입니다. 지금까지 사도바울이 강조한 말씀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 하나님과 화목하고 구원과 영생을 얻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과 영생을 얻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리고 그 사실을 아멘으로 영접한 성도라면...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이런 연결입니다.
사도바울은 구원받은 성도가 구원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신앙인으로서 삶의 윤리를 가르치는 전제로 먼저 예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후에 가장 마음을 쏟고 신경을 써야 할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여기에서 나온 ‘예배’는 헬라어로 ‘라트레이아’입니다. ‘드린다, 바친다’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 구원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우리의 마음과 진심을 주님께 드리고, 흠 없는 거룩한 삶을 바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러면 구원 이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영적 예배는 무엇입니까? 여기서 영적 예배란 이성적으로 합당한 예배, 합리적 예배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예배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그것은 곧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몸은 복수형으로 우리의 인격 전체를 가리킵니다. 즉,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의 삶을 통하여 우리의 전인격적 삶을 하나님께 흠 없는 제물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합리적인 예배란 뜻입니다. 그동안 예배하면 예배당 안에서의 예배로 제한시켰습니다. 그러나 영적 예배는 그게 아닙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이 예배의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주일예배시간만 예배가 아니라 예배당 문을 나간 그 이후의 월~토요일까지 우리의 삶 전체를 예배의 연속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몸으로 드리는 산 제사, 영적 예배를 드리다가 오늘 주일에 교회에 와서 의식적인 예배인 공적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의식적인 공적주일예배와 주중에 우리의 삶 전체를 산 제사로 드리는 영적 예배가 있습니다.
이제 예배에 대한 의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가령 오늘 이 주일예배를 마치고 나아가면서 ‘야 이제 예배가 끝났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주일예배가 끝나고 교회를 떠날 때 이제 한 주 동안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예배의 시작이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일예배 때 가졌던 경건한 마음 그대로 유지하고 삶의 터로 나가야 합니다. 교회에서 경건한 모습이었다면 집에 가서도 그런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웃는 모습을 했다면 직장에 가서도 계속 그런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친절했다면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계속 그런 친절한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 와서 천사와 같았다면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 앞에서 천사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만 나가면 우리의 얼굴이 바뀌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교회에만 하나님이 계시고 집에는 안 계신가요? 집에서는 직장에서는 하나님이 안 보시나요? 왜 교회에서의 예배의 태도와 밖에서 삶의 예배가 다른가요? 그럴 때 하나님은 무시당하는 기분을 느끼십니다. 하나님을 정말 믿는 사람이라면 불꽃 같은 눈으로 나의 모든 삶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과 거짓된 행동을 하면서 살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에서 드리는 공예배도 중요하지만 세상 속에서 살면서 삶 전체가 거룩하고 구별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삶의 예배도 중요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대인관계도 영적예배이고, 가정생활도 영적인 예배이고, 직장생활이나 사업도 영적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시간 모든 장소에서 나는 지금 여기서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있는 중입니다! 라는 자세로 하나님 앞에서 산 제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6:13절에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 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것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바 된 내 인생 전체를 일상의 모든 삶 속에서 기꺼이 주님께 드리고자 소원하고 결단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영적 예배자의 태도입니다.
초대교회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여러분의 눈으로 하여금 나쁜 것을 쳐다보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 눈은 산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혀로 하여금 누추한 말이나 악한 말을 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 혀가 산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손이 무법한 일을 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손이 산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손으로 다른 사람을 도우십시오. 나를 향해서 비난하고 욕하는 자들을 내 입으로 축복하십시오.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머리로는 그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제물이 되도록 힘쓰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 시간과 물질을 주님을 위한 거룩한 제물로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바울은 우리가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영적 예배를 드리고 위해서는 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대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디모데후서 3:2~5절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능력을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이 세상의 죄악된 가치관을 본받지 말고 분명하게 싸워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서 적극적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내 모든 일상의 삶에서 산 제사의 예배자가 되는 것은 치열한 영적 전투입니다. 정말 피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야 하는 것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서의 영적예배입니다.
영국의 아더왕은 그의 기사들이 전쟁터에서 돌아왔을 때 몸에 상처가 없이 돌아오면 ‘다시 가서 상처를 입고 오라’고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화살이 빗발치고 적과 백병전을 벌이는 전쟁터에서 싸우다 돌아온 사람이 상처가 없이 매끈하게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일주일 동안 영적전쟁터와 같은 직장에서 가정에서 삶의 현장에서 내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영적싸움을 하다 보면 상처가 납니다. 불의와 싸우다 조롱당하고 멸시받고 핍박도 받습니다. 세상의 대세를 거스리다 직장에서 짤리고 쉽냐는 위협도 받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의 연약한 모습에 가슴을 치기도 하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주일예배의 자리에 올 때 일주일 동안의 영적싸움의 흔적을 가지고 앉아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받들고자 치열한 영적싸움을 싸웠던 그 흔적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진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너희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사의 합당한 예배인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주일예배인 공적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공적예배가 죽으면 그 이후의 삶의 예배도 죽습니다. 공적예배를 눈가림식으로 드리면서 어떻게 삶의 예배를 온전히 드릴 수 있겠습니까? 어떤 분은 공적예배는 하나의 형식이기 때문에 정성을 다하지 않고 삶의 예배에 정성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공적예배가 살아야 삶의 예배도 살아납니다. 주일예배를 눈가림식으로 대충 적당히 드려도 삶의 예배만 잘 드리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에 은혜가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이 삶입니다. 로마서도 1~11장까지가 은혜이고 그 이후가 바로 산제물로 드리는 영적예배자의 삶의 이야기입니다. 공적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남으로 그 분이 공급해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복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충분히 내 심령을 적셔야 그 이후의 삶의 예배도 성공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주일공적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림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그 이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삶의 예배에서도 승리하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참된 예배자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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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 새해설교2(제목: 공예배가 살아야 삶의 예배도 산다) | 김성철 | 2026-01-11 | 22 | |
| 85 | 새해설교1(제목: 참 된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 김성철 | 2026-01-04 | 41 | |
| 84 | 2025년 한 해를 마치며(제목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 김성철 | 2025-12-28 | 37 | |
| 83 | 성탄감사예배((제목: 한 아기, 우리를 위해 나셨다!) | 김성철 | 2025-12-28 | 28 | |
| 82 | 25년 성탄설교1(제목 : 말씀이 육신이 되어) | 김성철 | 2025-12-21 | 40 | |
| 81 | 누가복음62강(제목: 돌들이 소리지르기 전에) | 김성철 | 2025-12-21 | 45 | |
| 80 | 누가복음61강(제목 :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 김성철 | 2025-12-07 | 48 | |
| 79 | 누가복음60강(제목 : 진짜 믿어지면 나타나는 현상) | 김성철 | 2025-11-30 | 57 | |
| 78 | 누가복음59강(제목 : 왜 어린아이 같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까?) | 김성철 | 2025-11-26 | 50 | |
| 77 | 누가복음58강(제목 : 의롭다 인정받는 믿음의 기도) | 김성철 | 2025-11-26 | 47 | |
| 76 | 누가복음57강(제목: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 김성철 | 2025-10-12 | 114 | |
| 75 | 누가복음56강(제목: 누가 천국에 가고 누가 못 가는가?) | 김성철 | 2025-09-21 | 94 | |
| 74 | 누가복음55강(제목: 감사를 미루지 말자) | 김성철 | 2025-09-21 | 84 | |
| 73 | 누가복음54강(제목: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 김성철 | 2025-09-07 | 116 | |
| 72 | 누가복음53강(제목 :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성숙한 신앙) | 김성철 | 2025-09-02 | 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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