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동광행복나눔잔치 선포식 말씀(제목: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2026-10-04 16:07:51
김성철
조회수   9

동광행복나눔잔치 선포식 말씀

제목 :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본문 : 사도행전 18:9~10

 

오늘은 동광행복나눔잔치 선포식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교회는 매년 가을이면 모든 성도가 아직도 믿지 않는 우리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 신앙생활하다 쉬고 있는 영혼들을 예배의 자리로 초청하는 전도 잔치를 합니다. 우리가 왜? 이런 전도 잔치를 해야합니까?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 사실 전도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해야 하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럼에도 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간을 정해서 함께 해 보자는 것입니다.

 

고전 1:21절에서 하나님은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택한자들을 구원하시되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그들을 부르십니다. 중요한 것은 구원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구원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17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렇습니다. 참된 믿음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복음을 듣도록 전파는 것은 사람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이 하시지 않습니다. 믿는 자들이 복음을 전파하면 그 복음을 믿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은 내 지성으로, 내 논리로, 내 설득력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게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복음을 깨닫고 믿게 하는 영역은 하나님의 영역임을 아는 것이 전도자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도는 사람이 하지만 구원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택한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구원의 출발점은 내가 예수님을 믿는 시점이나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신 시점임을 반복적으로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1:4~5절은 이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구원의 출발점은 구원의 대상자가 태어나기도 전인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했다고 합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이것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구원은 나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창세 전에 미리 아시고 이미 선택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예정 교리는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구원 받을지 못 받을지가 결정되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신데 예정 교리를 보면 너무나 불공평한 하나님의 처사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영적 흑수저로 태어나고 누구는 영적 금수저로 태어나는가? 누군 산삼 먹고 누군 무 쪼가리 먹기로 결정되었다니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교리다고 반박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반복적으로 예정 교리를 말씀합니다.

 

로마서 8:30절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리라”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구원하기로 미리 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를 전도를 통해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정된 자는 전도를 통해 복음을 듣게 되고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에게 복음을 들을 때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은혜를 주시고, 복음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면 의롭다 인정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며, 그를 마지막에는 몸의 부활인 영화의 단계까지 인도해 주신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이 예정 교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15:16) 또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선택해서 믿게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선택했기 때문에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창세 전에 구원받기로 선택된 사람은 복음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영접하고 순종하여 따른다고 했습니다.

 

이 예정 교리는 사도행전에도 나옵니다. 사도행전 13:48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했습니다. 즉 바울이 복음을 전하자 창세전부터 구원받기로 작정되고 예정된 자는 그 복음을 다 믿었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오늘 본문도 예정 교리를 말씀합니다.

 

9~10절 말씀입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성령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보고 유럽으로 전도의 방향을 돌렸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배를 타고 유럽으로 건너가 유럽의 첫 성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데살로니가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 핍박이 심하자 베뢰아로 가서 또 복음을 전했고, 발걸음을 옮겨 아덴에서도 복음을 전했고 마침내 고린도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당시 고린도는 60만이 넘는 거대한 신흥 항구 도시였습니다. 고린도는 상업과 향락의 도시였습니다. 그곳은 물질적으로는 번영하였지만 도덕적으로는 극히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당시 고린도에는 유명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전에 1천 명의 여사제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창녀들이었다고 합니다. 고린도는 음란의 도시였고 향락의 도시였으며 복음을 전파하기에 거칠고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영미권에서 ‘Corinthian’(고린티안)은 방탕한사람, 쾌락을 좇는 풍유가라는 부정적인 대명사로 쓰입니다. 고린도전서2:3절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하려 할 때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핍박이 심하자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떠날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환상 가운데 주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잠자코 있지 말고, 입을 열어 말하라” 하였습니다. 또한 주님이 바울과 함께 있을 터이니 아무도 너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도시에는 하나님이 택하신 구원받을 백성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바울아 너는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해라! 그러면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들은 복음을 믿고 구원받을 것이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입을 열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바울이 해야 할 영역이고 그 복음을 믿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누가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기로 작정 된 자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파하면 그들이 누구인지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생을 주기로 작정 된 자들은 교회로 오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정 교리야말로 확실하게 전도하게 만드는 원동력임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예정 교리와 선택된 자들을 부르는 방법을 구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도를 통해 선택한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선택은 하나님이 하시지만 선택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은 전도라는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택과 구원이 마치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이 택하신 자를 전도를 통해 찾으라고 하십니다. 구원받을 자가 예정되었다는 것은 전도를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택한 예정 교리가 없다면 전도하러 나갔다가 열매가 없을 때 실망하고 포기하려 할 것입니다. 특히 선교사들에게는 더더욱 문제가 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도 열매가 없을 때 점점 자신감이 떨어져 선교를 포기하고 싶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예정 교리를 믿는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씨를 뿌릴 것입니다. 싹이 트고, 자라고,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정론은 오히려 전도와 선교의 용기를 불러일으킵니다.

 

저는 견고한 개혁주의 신앙의 기초인 칼빈주의 5대 교리를 받아드리고 있습니다. 첫째로 전적타락설(Total depravity)입니다. 인간은 아담의 타락 이후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며 결코 자력을 통해 의롭게 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입니다. 만약 구원이나 의에 이를 수 있는 길에 인간이 아무것도 동참할 수 없다면 선택은 무조건적이어야 합니다. 무조건이라 함은 인간의 어떤 선이나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선한 뜻에 의해 선택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어떤 구원받을 가능성있는 도덕성, 윤리성, 혹은 인간 조건을 고려한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롭고 사랑에 근거한 일방적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 15~16절 말씀입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9:15~16절) 셋째로 제한적속죄(Limited atonement)입니다. 모든 인류가 믿음과 상관없이 구원을 얻는다는 보편구원론을 거부합니다. 오직 믿는 자만 죄의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넷째로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입니다. 구원의 주도권이 사람에게 없고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불가항력적 은혜는 하나님의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거절할 수 없고 능동적 순종과 수용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다섯 번째로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입니다. 택함 받은 자들은 영원토록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을 가졌던 성도가 불신자가 되었거나 이단으로 갔다면 어떻게 된 일인가? 하나님의 구원이 실패한 것인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때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그는 처음부터 거듭남을 경험하지 못한 구원 받지 못한 사람으로 문화적 그리스도인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 택한 자들의 구원을 반드시 성취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혁주의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로서 칼빈의 5대 교리를 지지합니다. 그리고 개혁주의 입장에서 우리가 왜 전도해야 하는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왜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해야 합니까? 왜 이번 가을에 온 성도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주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창세 전에 택한 백성을 부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택함받았는지 죽을 때까지 모릅니다. 다만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되어서 때가 되매 내가 구원받았다는 이 사실에 감격하면서 주님이 주신 이 은혜를 보답하는 마음으로 복음의 전도자로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술을 벌려 복음을 전하면 믿게 하는 영역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 하나님의 백성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부르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입을 열면 그 다음은 주님이 하십니다. 이것을 믿고 전도 대상자를 정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나오도록 믿음으로 초청합시다. 이번 주 하가다 말씀처럼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는 동광행복나눔잔치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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