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26년맥추감사주일 (제목 : 만 가지 이유로 하나님께 감사하라)
2026-07-05 10:16:06
김성철
조회수   9

2026년 맥추감사주일

제목 : 만 가지 이유로 하나님께 감사하라

본문 : 시편107:1~9

 

7월 첫 주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사실 성경적으로 이게 맞나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국교회 초기에 구약의 맥추절과 한국교회의 맥추감사절을 바로 연결해서 설명했습니다. 한국교회의 맥추절의 유래는 출23:16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여기에서 한글 개역성경과 개역개정성경은 모두 맥추절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즉 맥추절, 칠칠절, 오순절을 같은 절기로 소개합니다. 그러나 영어성경은 출23:16절의 맥추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모두 수확절혹은 추수절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ESV “Feast of Harvest” NIV “Festival of Harvest” NAS “Feast of the Harvest”로 번역했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칠칠절에 드린 첫 곡식은 보리가 아니라 밀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기적으로 칠칠절은 우리나라의 보리 수확시기와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경직목사님은 차라리 71일 맥추절을 성령강림주일로 지키는 것이 더 좋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사실 출23:16절을 공동번역은 맥추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밀 곡식을 처음 거두어드릴 때 추수절을 지키라 했고 새번역은 너희는 밀을 처음 거두어 드릴때에는 칠칠절을 지키고 우리말 성경에도 칠칠절, 곧 밀을 처음 수확하는 절기를 지키고 번역했습니다. 즉 맥추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칠칠절이라는 절기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밀 수확시기를 맥추절로 번역한 것은 상당한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차라리 유월절을 보내고 안식 후 첫날에 보리의 첫 열매를 드리는 초실절을 맥추절로 부르는 것이 옳은 번역일 수 있습니다. 대신에 보리 이삭을 첫 열매를 드린 날로부터 정확히 7주 후에 밀 이삭의 첫 열매를 드린 칠칠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셨고 신약의 교회가 탄생했기에 7월 첫 주를 성령강림주일 지키는 것이 해석학적으로 올바른 이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지키는 맥추감사절은 잘못된 전통인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추수감사절이 미국에서 만들어진 전통인 것처럼 맥추감사절도 한국의 농경사회에서 만들어진 전반기 농산물에 대한 감사의 절기였습니다. 맥추감사절은 2모작 하던 한국 농경사회에서 유래했습니다. 봄철의 주된 농산물이 보리였는데 주로 5월 하순에서 6월 초순에 수확했습니다. 그래서 수확을 끝내면서 7월 첫 주일에 맥추감사절로 지키며 소출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11월 셋째 주에는 추수감사절로 벼 수확의 소득을 받쳤습니다. 이것이 농경사회의 주된 소산물이었기에 맥추감사절과 추수감사절을 지킴으로써 고대 이스라엘 사회처럼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는 절기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1970년 이후 급격한 도시화로 말미암아 대부분의 국민이 월급생활을 함으로 소득의 십일조와 헌금을 주로 월 단위로 드리게 되었습니다. 현재 80%가 도시화된 사회에서 농촌 지역 외에는 이런 감사절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맥추감사절과 추수감사절은 더 이상 필요 없는 절기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맥추감사절에는 반년 동안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드리는 날로 지킬 수 있고 추수감사절은 일 년 동안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지키면 됩니다. 미국에서도 동일한 사회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미국 사람들은 추수감사절을 폐지하지 않고 한해 돌아보며 감사드리는 절기로 계속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한국교회의 좋은 전통인 상반기 6개월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맥추감사절기와 한해를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추수감사절기를 계속 지킴으로 신앙생활에 큰 유익을 도모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준비하면서 지난 반년 동안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서 감사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만 가지 이유로 하나님께 감사하라인데 지난 반년 동안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신 만 가지 감사제목은 무엇인가? 찾고 찾아보았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만 단위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무수히 많은 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와 우리의 삶 속에 베풀어주신 헤아릴 수 없이 무수히 많은 감사제목들은 무엇인가요? 찬송가 429장은 우리가 힘들고 낙심될 때 주님으로부터 받은 복이 얼마나 많은지 세어 보라고 합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은 네가 알리라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지난 반년 동안 주님께서 내려 주신 복을 세어 보려고 하는데 생각이 나지 않아서 하나도 셀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나에게 무엇이 문제일까요?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는 시작하는 1절에서부터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3번이나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합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많았으면 입만 열면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외칩니까?

 

사실 시편 107편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구원받은 자들의 감사시입니다. 시인은 포로 생활의 역경과 고통을 인생의 네 가지 여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광야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피곤한 상태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둘째는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인 자들에게 오셔서 놋 문을 깨뜨리시고 쇠 빗장을 꺽으셔서 감옥에 갇힌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셋째는 미련하여 죄악을 길을 따르고 악을 행하다 고난받아 음식물도 삼킬 수 없는 그들을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져 내시는 하나님입니다. 넷째는 바다 한가운데서 광풍을 만나 높은 파도로 배가 뒤집힐 지경에 이르자 영혼이 녹고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는 그들에게 찾아오셔서 광풍을 고요하게 하시고 물결을 잔잔하게 하사 그들이 바라는 소망의 항구로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시편 107편 기자가 경험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고통을 주고 미련하여 하나님을 떠나 죄악의 길을 따르고 악을 범하는 자들에게 고난받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33~34절에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게 하시고,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통 중에 회개하고 여호와께 부르짖는 자에게는 다시 광야가 변화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게 하십니다. 가난한 자들이 하나님을 의지해 거룩히 살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비옥한 땅에서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십니다. 반면에 고관들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악하게 살면 그들을 낮추셔서 능욕을 받게 하십니다.

 

시편 기자는 바로 이 역전의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으로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무너지고 하나님의 성전을 불태워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살해당하고 집은 훼파되고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포로생활 70년 동안 그들은 삶의 소망을 잃었습니다. 마치 시인이 고백했던 대로 그들의 삶의 터는 강이 변하여 광야가 되었고 샘이 변하여 마른 땅이 되었으며 옥토가 변하여 염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짖어 기도하자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고레스 칙령을 내려 다시 약속의 땅에 돌아오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광야가 변화여 못이 되고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되는 역전의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의 인생을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07편은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바벨론 포로 귀환자들의 환희의 감사시이고 포로의 신분에서 자유인이 된 기쁨의 찬양시입니다. 경이로운 구원을 경험한 사람의 합당한 반응은 만 가지로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찬송과 감사는 우리를 사랑하사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왜 감사가 메말라 버렸을까? 왜 찬양이 도망쳐버렸을까요? 저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리고 또다시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하면서 우리들에게 여호와께 감사하고 여호와를 마음을 다해 찬양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지난 반년 동안의 감사 제목을 찾으려고 하는데 감사 제목이 한 가지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목회의 현장에 슬픔과 아픔의 소식들이 많습니다. 매주 긴급한 기도 제목들, 수술을 앞둔 병자들의 기도 제목들이 들려옵니다. 갑자기 뇌종양이 발견되어 서울 세브란스 병원으로 올라간다는 권사님! 심방하여 안수 기도하다 눈물이 납니다. 갑자기 1년 사이에 오빠를 잃고 또다시 어머니를 보내는 한 집사님을 장례식장에 뵐 때 아픔이 느껴집니다. 갈렙학교에 참석하려 교회 오다 교회 입구에서 쓰러져 119에 실려 가는 권사님, 중풍병으로 쓰러져 수년째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안수집사님, 치매 걸린 아내를 수년째 돌보다 자신의 건강마저 무너져 예배에 못 나와 전화드렸더니 집안 꼴이 말이 아니라면서 심방 오는 것이 부담된다는 안수집사님의 사정, 췌장암에 걸려 췌장 전체를 드러내는 수술을 앞둔 한 권사님의 소식을 듣고 전화로 기도하는데 울기만 하시는 모습에서 마음이 아립니다. 토요일은 이왕헌 집사님 심방 다녀왔습니다. 겨우 몇 발자국 걷는 모습 보여주면서 곧 있으면 집으로 갈 것이라며 설레며 그날을 기다리는 모습 그러나 뇌에 문제가 생겨 시술을 받아야 하는데 그 수술을 거절한다는 아내 되는 권사님의 말을 들으면서 저도 애가 탑니다. 그리고 토요일에 또다시 들려오는 한 원로장로님이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은 저의 마음을 아연실색하게 했습니다. 몇 개월 전에 뇌경색으로 오른쪽 팔 다리 마비로 매일 재활치료 받으면서 일어나고자 고분분투하시는 유정용 장로님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노년에 건강이 무너져 1년여 동안 교회 못 나오신 이성애 권사님, 신장투석중인 전경자 권사님 박재옥 장로님 김용규 안수집사님 한경은 집사님...그 외에도 폐암으로 전립선 암으로 혈액암으로 유방암으로 항암 치료중에 있는 많은 교우들이 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성도들이 알까 봐 아예 기도 제목도 못 내놓으신 분들 그래서 홀로 끙끙 앓으면서 홀로서기 하고 계시는 분들... 자녀문제로 경제문제로 직장문제로 침체기에 있는 사업체로 힘들어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교회를 생각하면 온통 신음소리 아픈소리 고통소리가 가득합니다. 교회 안에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이 더 많은 반년이었습니다.

 

주님, 산 넘으면 또 산이 나타나는 교회 문제들... 매일 들려오는 무거운 소식들, 아파 신음하고 있는 성도들의 탄식 소리를 생각하면 감사할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네요! 이것이 솔직한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교회에 오는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그래서 토요일 교역자 회의 시간에 여름휴가 준비 중인 교역자들에게 진정한 휴가는 교회에서 멀어질수록 좋다. 교회에서 멀리 떠나는 휴가 다녀오세요 했습니다. 우스개로 한 말이었지만 저의 진심이 담긴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준비하면서 주님께서 불현듯 이런 생각들을 넣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가 꼭 좋은 상황과 행복한 환경으로 바뀌어서 오는가? 하나님은 가끔 고난과 실패를 통해서 더 놀라운 은혜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지 않는가? 아담과 하와는 부족한 것 하나 없는 완전한 낙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불평하다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는가?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진짜 무너진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정착하면서 풍성하고 형통하고 모든 것이 잘 될 때에 영적 암흑기를 겪지 않았는가? 오히려 결핍과 실패와 고난과 아픔의 현장이 영적인 은혜를 더 풍성히 공급해 주지 않는가? 한나는 브닌나로부터 자녀를 잉태하지 못한 불임여성이라는 조롱과 멸시를 받음으로 한 맺힌 기도를 하다 사무엘을 얻지 않았는가? 욥은 삼중의 고난을 통해 귀로만 듣던 하나님에서 눈으로 보는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이전보다 두 배의 복을 받지 않았는가? 사사시대 때 나오미는 남편 잃고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잃고 나서야 룻이라는 며느리와 함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회복하고 모압 땅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와 결국 다윗의 가문을 여는 새 시대의 별들이 되지 않았는가? 이것을 깨달았던 하박국은 모든 것을 잃고 가장 밑바닥의 상황에서 이렇게 찬양하지 않았던가?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7~18) 진짜 감사는 상황과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는 영적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107편 시편 기자는 진정한 감사와 찬양의 힘의 근원이 좋은 상황과 환경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9)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깊어질 때 감사와 찬양이 터진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약속의 땅에 거하게 된 사실로 인해 그리고 다시 성전을 재건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감사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의 깊은 내면의 감사는 나라를 빼앗기고 성전이 불타고 바벨론 포로가 되고 결국 그 상황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회복함에서 오는 것임을 봅니다. 환경에서 오는 기쁨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의 회복에서 오는 영혼의 기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성보다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의 열매인 좋은 상황 형통 성공에 관심이 많습니다. 관계성보다 열매 형통 능력에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성만 회복되면 나머지 환경과 상황은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역전시켜주십니다. 오늘 시편 기자가 고백했던 것처럼 광야가 변화여 못이 되고, 마른 땅이 변하여 샘물이 됩니다.

 

왜 내 안에 이토록 감사와 찬양이 사라졌는가? 사실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의 단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면서 그 분 안에 깊이 빠져들어가는 영적 사귐의 시간이 저에게 부족했다는 것을 주님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상황과 환경은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맹인이며 귀머거리요 벙어리라는 삼중의 장애를 가졌던 헬렌켈러는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자신의 인생 가운데 불어닥친 엄청난 고난에도 불구하고 세계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생을 살았습니다헬렌켈러가 한 말입니다.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에그 모든 것을 가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헬렌켈러는 육신의 삼중의 고난을 가지고 살았지만 말 못한다고 해서, 듣지 못한다고 해서, 보지 못한다고 해서 그의 영혼까지 그 고난에 빼앗기지 않았습니다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깊은 신앙인들의 삶의 해석입니다오히려 헬렌켈러는 이렇게 말합니다나는 받은 것이 너무 많아 못 받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 할 겨를도 없이 살아왔다 얼마나 위대한 믿음의 고백입니까? 헬렌켈러는 가장 고통스러운 육신의 삼중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음으로 오히려 감사하며 남을 돕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지난 반년을 돌아보면서 주님은 받은 은혜를 세어 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고 찬양해야 할 만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하십니다. 광주동광교회 안에 하나님께서 수많은 성도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찬양하라고 하십니다. 고난과 아픔과 질병 중에 있는 성도들을 하나님께 고쳐주시고 치유해 주시고 회복시켰다고 말씀하십니다. 실패하고 무너진 자리에 있는 성도들을 하나님께 붙잡아 주시고 다시 일어서게 했다고 하십니다. 고통과 아픔 중에 인생의 밤 인생의 겨울을 보내고 있는 성도들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서 그들을 위로하고 있기에 그들이 무너지지 않고 여전히 새 아침 새 날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수많은 시련과 고난 중에도 우리 교회가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광주동광교회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허물 많고 부족한 제가 여전히 목회를 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붙잡고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나는 네가 모르는 엄청난 일들 기적의 일들을 지난 6개월 동안 너와 너의 가정과 교회 위에 행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영적인 눈을 열어서 하나님이 너와 가정과 교회와 성도에게 행하신 기적을 헤아려 보라고 하십니다. 주님! 제가 광주동광교회의 책임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광주동광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십니다. 제가 목회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보살피고 계시고 붙잡고 계시고 심방하고 계시고 성도의 기도에 응답하면서 열심히 목회하고 계십니다. 저는 주님의 종이요 청지기일 뿐입니다. 주님이 다하고 계셨네요!” 이런 영적 깨달음이 왔습니다.

 

이제 이런 기도가 나옵니다. 주님 남은 하반기는 주님께 목회를 맡겨드리고 저는 기도하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믿고 기대하고 구경하겠습니다. 주님께서 광주동광교회를 세워주십시오. 성도를 보살펴주시고 아픈 지체들을 치유해 주시고 가정과 직장과 사업터와 일터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주십시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우리 교우들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하반기 추수감사절을 맞이하게 해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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