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9강
제목 : 내 안에 예수님의 권세가 있습니까?
말씀 : 사도행전 3장1~8
오늘 말씀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입니다. 이름에는 권세가 있는 이름이 있고 권세가 없는 이름이 있습니다. 죽은 이름은 아무리 위대한 이름이라 할지라도 어떤 힘도 권세도 발휘 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대통령의 이름이라 할지라도 죽은 이름은 힘이 없습니다. 더불어 산 사람의 이름도 은퇴하면 힘이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게 가장 권세있는 이름이 누구일까요? 당연히 이재명 현 대통령의 이름일 것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안 되는 일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대통령이 이름에는 권세와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의 이름도 우리나라 영토를 떠나면 그 이름의 권세는 현저히 줄어듭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는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중국 영토에서 가장 힘있고 권세있는 이름은 시진핑의 이름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나라와 하늘과 땅과 바다와 모든 물질세계 심지어 지구를 넘어 온 우주와 영적 세계까지 장악하고 통치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28:18)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또한 빌립보서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는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 모든 물질세계, 우주 끝까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까지, 안 미치는 영역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권세는 무엇이든지 가능합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4) 말씀하신 이유는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는 인생의 생사화복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까지 만물과 영의 세계까지 주관하고 다스리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 된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인생을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선포하며 모든 것을 해내는 삶을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잘 사용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조선시대 때 암행어사가 지방의 탐관오리를 들을 혼 낼 때 마패를 들고 ‘암행어사 출두요!’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면 지방의 관리들이 벌벌 떠는 것을 역사극에서 종종 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가장 권세 있는 통치자의 이름! 그 마패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기의 때에 모든 문제 앞에서 암행어사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출두하신다!’ 외쳐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이름 권세로 40년 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던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는 믿음의 법칙을 배우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잘 사용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예수님의 이름 권세는 기도로 준비한 자에게 나타납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여기서 제 구 시는 오후 3시를 말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오후 3시만 되면 규칙적으로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을 체험한 사도들은 기도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과거에 십자가를 앞둔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했을 때, 그들은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잠만 꿀꿀 잤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자 그들 안에 기도에 대한 갈망으로 충만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과 교제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합니다.
오순절 날 성령의 불세례를 받았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규칙적으로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는 이처럼 기도하는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적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기적의 사건이 일어나도록 믿음의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지 않으면 국물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가 내 안에 있어도 사용하지 못합니다. 옆에 마패가 있어도 암행어사 출두요 하고 외치지 못합니다.
E.M 바운즈는 기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다른 모든 것이 실패해도 기도는 실패가 없다. 기도에 힘쓰는 사람은 성공할 수밖에 없고 기도에 실패하면 모든 것에 실패한다. 영적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직접 나오는데, 기도는 하나님을 직접 붙드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기만 하면 주시려고 무한한 보화를 쌓아놓고 계신다. 그분이 가지고 계신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오직 우리의 기도만이 그 능력을 움직일 수 있다”
다시 한 번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기적을 보내주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성이 메말라 죽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 손에 있는 영적인 마패,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지 못할뿐만 아니라 외치지도 못합니다. 우리 다시 기도의 자리로,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시다. 규칙적으로 기도합시다. 무시로 쉬지 않고 기도합시다.
둘째로, 예수님의 이름 권세는 성령의 감동에 순종할 때 나타납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앉은뱅이가 날마다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을 했습니다. 4장 22절에 보면 이 사람은 40세 된 중년의 나이였습니다. 그는 나면서부터 40년 동안 앉은뱅이로 살아야 했고 성전 미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건네주는 몇 푼의 돈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불쌍한 사람이였습니다. 성전 미문이란 오늘날로 말하면 광화문 사거리나 홍대 사거리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번화가 입구를 말합니다. 그곳에서 수십 년 동안 거의 매일 동냥을 했던 이 사람을 예루살렘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하러 성전을 드나들면서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이 앉은뱅이를 자주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앉은뱅이를 보면서 단 한 번도 일어나 걷도록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불쌍한 앉은뱅이가 있네~! 에휴 안타깝다” 호주머니에 동전이 있을 때는 앉은뱅이 손에 돈을 쥐어주고 기도하러 갔습니다. 동전이 없을 때는 미안한 마음으로 무심코 지나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주목 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유달리 눈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3~4절 말씀입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오늘도 성전 미문을 통과해서 성전에 기도하러 가는데 그날따라 앉은뱅이가 “한 푼 줍쇼!” 하고 애처롭게 외치는데 그 목소리가 가슴을 파고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육신의 장애로 무너진 상처투성이인 불쌍한 한 영혼의 아픔이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애끓는 눈물이 그 속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그 영혼 눈망울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40년 동안 세파에 시달리면서 살 소망마저 끊어진 체 하루하루 한 푼 두 푼 얻어서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한 인간의 고통을 들여다 본 것입니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고 이 영혼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순간적으로 이글거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와 요한의 마음은 성령에 사로잡혔습니다. 성령께서 주신 마음에 이끌렸고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불일듯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적은 성령께서 우리 속에 힘있게 역사 할 때 일어납니다. 기적의 때가 있습니다. 사건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나의 혼례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어머니 마리아가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습니다” 말하면서 도움을 구하자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때가 있습니다. 영적 환경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의 다급한 전보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틀 더 유하시면서 나사로가 죽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처럼 기적은 때가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시점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몇 명이 고침 받았습니까? 소수가 질병으로부터 고침 받았습니다. 모두를 다 치료해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질병을 고칠 능력이 있으셨지만 다 고쳐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죽은자를 살려 낼 수 있으셨지만 다 살려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때 복음이 증거되어야 할 때, 바로 그때에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기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질서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개입입니다. 우리가 자칫 모든 일에 하나님 개입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한다면 우리의 삶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성과 능력과 지혜와 재능을 주셨습니다. 땀과 노력으로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의 영광이 필요할 때는 홍해를 가르고, 여리고 성을 함성으로 무너지게 하고, 심지어 태양과 달도 멈추게 하는 기적을 일으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복음을 드러내고 교회를 세우고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하십니다.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사건은 초대교회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적 기적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어떤 사람을 구원해 내고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자, 내 안에 있는 복음이 진리임을 나타내고자, 기적을 행하시려고 하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고 기회를 주실 때 오직 성령의 사람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오직 기도의 사람만이 그 기회를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 권세가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는 특별한 기회에 순종해야 합니다. 지금 성령께서 40년 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워서 초대교회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복음의 능력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드러내고자 베드로와 요한의 마음속에 기적을 일으키고자 합니다. 만약 이 강력한 성령의 역사 앞에서 믿음이 없었다면 베드로와 요한은 도망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의 역사 앞에서 믿음이 준비되어 있었고 확신했고 순종했습니다. 이 일은 결코 베드로와 요한이 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강하게 믿음의 확신을 주면서 역사할 때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기회를 주시면서 도전하라고 충동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믿음의 사람은 과감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합니다.
6절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성령의 사람은 은과 금이 없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빈 호주머니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기적은 은과 금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할 때 일어납니다. 기적은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고 믿음을 일으킬 때 담대히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선포하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님이 인도하는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성령께서 기회를 만들어 주실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일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이름 권세는 믿음의 행동을 보일 때 나타납니다.
7절입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외치고 나서 앉은뱅이에게 다가가서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외쳤고, 그대로 될 줄 믿고서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외쳤으면 그렇게 될 것을 믿고 믿음의 행동을 해야 합니다.
불임증 여성이었던 한나는 엘리 대제사장으로부터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삼상1:17) 말했을 때 그렇게 될 것을 믿고 이후부터는 얼굴에 다시는 근심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확신을 얻었다면 그렇게 행동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는 그 이름을 알고 있다고 자동적으로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귀신들린 자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이렇게 선포합니다.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귀신아 떠나라가라” 그러자 귀신이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면서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집으로 도망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알고 시험 삼아 그 권세를 사용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지식으로 알고 선포하는 예수님의 이름과 믿음으로 선포하는 예수님의 이름은 다릅니다. 예수님과 온전히 연합되어야 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연합된 자만이 그 이름의 권세가 나타나고 역사하고 힘있게 활동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어떤 일이든지 가능하게 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질그릇과 같이 보잘것없고 한없이 연약한 자들입니다. 은도 없고 금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자들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습니다.(고후4:7) 보배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값진 인생을 살 수가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 이름은 당시에 멸시받고 천대받는 이름이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 이름은 온몸이 발가벗겨진 채로 십자가에 매달려 못 박혀 죽은 수치스러운 이름이요, 부끄러운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로 앉은뱅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인생을 삽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로 교회를 세우고, 가정을 세우고, 무너진 자녀들의 삶을 세웁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을 통치하도록 항상 깨어서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담대하게 선포하고, 믿음의 행동을 옮깁시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 어떻게 기적을 일으키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의 이름 권세가 21세기에도, AI시대에도, 인생의 생사화복과 세상 역사를 통치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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