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6강
제목 : 성령이 임하면 일어나는 일들
말씀 : 사도행전 2장14~21
교육학적 관점에서 외적인 환경적 요인과 내면적인 마음의 요인 중에 무엇이 인간을 변화시키는데 더 큰 영향을 미치는가는 오랜 기간 논쟁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행동주의의 교육가였던 존 왓슨은 “나에게 건강한 아이 12명과 이들을 키울 수 있는 특정한 체계를 준다면 그들의 재능, 기호, 인종과 상관없이 의사, 변호사, 심지어 도둑으로도 만들 수 있다”라고 극단론적인 환경론을 펼쳤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줌으로 올바른 행동을 유도할 수 있고 때로는 결핍되고 고달픈 환경을 통해서 극단적으로 도둑으로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리적 심리적 환경이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맹모삼천지교가 그렇습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맹자를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해 줌으로서 자녀를 위대한 학자로 키웠습니다.
반면에 외부의 환경보다 인간의 내면에 어떤 의미나 동기를 부여하느냐에 의해 삶과 행동이 바뀐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학자로 2차세계대전 당시 죽음의 수용소에서 정신력으로 이겨낸 빅터 프랭클 박사가 있습니다. 그가 남긴 명언입니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인간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본인의 신념과 생각이라는 필터를 통해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외부 환경에 자동적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선택적 반응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이론입니다. 여러분은 환경 결정론적 교육 방법과 인간의 생각의 변화를 추구하는 교육방법론 중에 어떤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교육학에서는 인간을 변화시키는 힘은 단기적으로 외부적 환경도 영향력을 주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재를 변화시키는 힘은 마음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그러면 성경은 인간을 변화시키는 요소가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인간의 내면에서 불어오는 성령의 임재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환경을 변화시킴으로 삶을 바꾸는 환경 결정론적 역사가 아닙니다. 인간의 내면에, 심령에, 영혼에 복음의 힘 생명의 힘 소망의 힘을 넣어서 인간의 존재를 바꿉니다. 마가다락방에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성령님, 뜨거운 불같은 성령님이 임재하셨습니다. 그 영적인 기운은 하늘에서 불어오는 하나님의 생기였고, 하나님의 능력의 불이었으며, 인간의 심령을 변화시키는 영적 태풍이었습니다.
17절 상반절을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라고 했습니다. 말세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습니다. 그 기름 부으심 충만함의 역사는 나이가라 폭포수가 떨어지는 것처럼 거대하게 쏟아집니다.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왕에게만 하나님의 영이 조금씩 이슬비처럼 임했습니다. 그러나 말세에는 모든 육체에 부어주시되 나이가라 폭포수처럼 차고 넘치게 은혜와 능력을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왜 말세에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에 성령충만의 기름 부으심을 주시는 것입니까? 말세의 때가 되면 사탄 마귀가 발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의 세력이 길길이 날뛰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사람들의 마음에 거세게 불어올 것입니다. 죄의 홍수가 온 세상을 덮을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말세에 일어날 죄악의 태풍에 대해서 이렇게 경고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1~5)
말세는 너무나 사악하고 패역한 시대입니다. 인간의 심령에서 불어오는 성령의 생기, 하나님의 생명의 호흡, 영적 태풍이 없다면 인간은 다 죄의 홍수에 떠밀려 갈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말세의 때에 부패한 시대를 거슬려 나갈 수 있을까요? 강력한 성령의 바람이 우리의 심령에 불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는 영적 양극화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복음을 붙잡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살 것인지 아니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쫓으면서 살 것인지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창세전부터 미리 예정되고 택하심 바 된 모든 육체에 나이가라 폭포수처럼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한 상태에서 죄를 거슬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복음을 붙잡고 세상을 승리하게 합니다. 오늘 말씀은 말세에 모든 육체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을 부어주실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말씀입니다.
첫째, 성령님이 사람의 심령에 임하면 담대해집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성령님이 오시기 전 베드로는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겉으로는 큰소리 뻥뻥 치면서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잡혀가시자 대제사장의 뜰에서 계집종의 추궁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열 한 명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삼십육계 했던 자들이요, 문을 꼭 닫고 로마 군병들이 자기들도 잡으러 오지 않을까 숨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임하시자 달라졌습니다. 베드로가 열한 제자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하나님의 큰일을 증거 했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무리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경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 성전 앞에서 그것도 백주의 대낮에 예수님을 믿으라고 외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면 환경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변합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담대해집니다. 더 이상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왜 기죽고 삽니까? 성령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우울하고 부정적이고 소심해집니까? 성령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역사하고 있습니다. 담대 합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신 이유는 우리도 예수님처럼 세상을 이기게 함입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 한마디 주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심은 복음을 붙잡고 세상을 이기게 함을 믿읍시다.
둘째, 성령님이 임하면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사건을 해석하는 영적 분별력이 생깁니다.
15~17절 말씀입니다.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 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20명의 성도들이 다른 언어들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기 시작할 때 어떤 사람들은 놀라 당황하여 이 어찌 된 일이냐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면서 그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미친놈 취급했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때가 제 삼시가 아니냐? 여기서 제 삼시는 오전 9시를 말합니다. 술을 마셔도 저녁에 마시지 오전 9시부터 술 마시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도 1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거룩한 절기인 오순절 날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취하겠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루 세번의 기도의 시간이 있는데 오전 9시는 첫 기도의 시간입니다. 특히 안식일이나 절기 때는 오전 9시 이전에는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순절에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취했겠느냐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희들이 목도하는 이 엄청난 일은 요엘 선지자가 예언했던 그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말합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어떻게 요엘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생각해 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현재의 상황을 이렇게 기가 막히게 요엘 말씀으로 해석해 냈는지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성령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 안에서 말씀이 선포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 충만한 상태가 되면 모든 사건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하는 영적 분별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또한 인생의 생사화복의 주권자 되십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속에는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삶에 우연은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주관하시면서 구속사를 완성해 가시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해석할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해석할 수 있는 눈은 성령충만한 사람들에게만 나타납니다. 여러분! 현재 내 삶이 해석되고 있습니까? 내가 왜 광주에 살고 있는지 해석이 됩니까? 내가 왜 이 직장에 다니고 있는지 해석이 됩니까? 내가 왜 이 사람과 부부로 살고 있는지 해석이 됩니까? 내가 왜 이런 어려움과 아픔을 겪고 있는지 해석이 됩니까? 내가 왜 이런 성공을 거두었는지 해석이 됩니까? 내가 왜 이런 질병을 갖게 되었는지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해석이 안되도 틀림없이 하나님의 무슨 선한 뜻이 있을 것이다! 믿어지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삶이 해석되고 사건이 해석되고 고난이 해석되고 만남이 해석되는 사람은 성령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삶이 해석 안 되고 고난이 해석 안 되는 사람은 아직 영 안이 온전히 열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내 삶의 모든 환경과 상황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담대하게 살 수 있고, 사명을 붙잡고 살 수 있으며, 동요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현재의 상황을 도전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셋째, 성령이 임하면 우리의 자녀들이 예언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 자녀들이 예언하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언이란? 어린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다섯 살 어린이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합니다. 유치원 아이들이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초등학생들이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깨닫고 헌신합니다. 이런 일들이 정말로 일어납니다. 세상의 자녀들은 지금 스마트 폰 게임에 몰두해 있습니다. 유트브와 각종 오락 영상에 빠져있습니다. 그들은 이기적이고 욕을 하지 않으면 언어가 연결이 안 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한 아이들은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고 예수님이 구원의 주님이시다고 증언합니다. 손을 들고 찬양합니다. 성경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안에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교회는 다음 세대를 믿음의 세대로 세우자는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다니는 모든 자녀들이 예언하도록 기도합시다. 그들이 손을 들고 시대와 민족을 위해서 중보기도 할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 자녀들 중에서 모세나 다윗과 같은 인물들이 나오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주여 우리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성령충만하여 예언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영적 진지함을 주옵소서! 게임의 영에서 타락한 세속문화의 영에서 벗어나서 거룩한 세대로 믿음의 세대로 일어나게 해 주옵소서!
넷째로 성령이 임하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봅니다.
20대 청년들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일까요? 노컷뉴스에서 20대 청년들의 최대관심사는 ‘일자리 곧 취업과 이를 통한 부의 축적 및 경제적 안정’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청년들의 가장 큰 관심은 돈 버는 것입니다. 불안한 미래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청년들에게 성령님이 임하면 청년들이 환상을 봅니다. 여기서 말하는 환상은 비전입니다. NIV 영어 성경은 “Your young men will see visions” 비전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앞으로 하게 될 일들입니다. 좋은 직장 편안한 삶을 위해 살겠다던 청년들에게 성령님이 임하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품고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시작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매이는 인생이 아니라 사명을 위해 도전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에콰도르 선교를 하다 29살에 순교했던 ‘짐 엘리엇’은 대학 다닐 때 그의 일기책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는 것을 버리는 자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성령충만했던 그는 하나님의 비전을 본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롬8:24)
여러분 눈에 보이는 소망이 진짜 소망이 아닙니다. 그래서 청년 시절에 모세는 애굽의 황태자로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 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히11:24~25)라고 표현했습니다. 청년들이 환상을 보면 영원한 것을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는 것을 버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교회 청년들이 영원한 가치인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소경이었던 헬렌 켈러는 “두 눈을 가지고서도 비전을 보지 못한 자는 아무것도 못 보는 소경보다 더 불쌍한 자다” 고 일갈했습니다. 청년들이여 성령충만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위대한 일을 시도하는 하나님의 비전에 매인 인생을 사십시오.
마지막으로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습니다.
청년들이 꿈을 꾼다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데, 노인들이 꿈을 꾼다고 하면 뭔가 어색하게 들립니다. 으레 노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과거지향적인 인생이 됩니다. 내가 과거에 무슨 일을 했고, 어디를 가 보았고, 우리 자녀들이 어떻게 되었고 다 과거 자랑입니다. 때로는 과거에 대한 한풀이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임하면 노인의 언어가 달라집니다. 삶이 달라집니다.
말세에 하나님의 영이 모든 육체에 부어지게 되는데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꿈을 꾸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75세 된 나이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믿음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모세는 80세 때 부름을 받아 출애굽의 사명을 시작했습니다. 갈렙은 85세의 나이 때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늘 내가 팔십 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수14:10~12) 갈렙의 나이 85세 이지만 하나님의 꿈을 품고 살 때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똑같다는 것입니다. 85세 된 노인의 나이이지만 지금도 싸울 수 있고 개척할 수 있고 도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품고 살면 85세에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의 내면에 성령의 바람이 불면 모든 사람이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게 됩니다. 성령의 불이 그 심령에 떨어지면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황량하고 어두워도 이 세상 속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고 희망찬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저는 우리 광주동광교회 모든 세대가 성령 충만하여서 예언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위대한 일을 시도하는 담대한 삶을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환경이 바뀌어야 우리가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에 우리의 심령에 성령의 바람이 불면 하나님의 능력의 불이 떨어지면 우리는 아름답고 위대한 새 삶의 행진이 시작됩니다.
마지막으로 영국의 탐험가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의 유명한 기도문인 “우리를 귀찮게 하소서 주님!” 이라는 시로 오늘 설교를 끝맺겠습니다.
우리가 너무 우리 자신에 만족해 있을 때,
우리가 너무 작은 꿈을 꾸었기 때문에
우리의 꿈이 쉽게 이루어졌을 때,
우리가 해변을 끼고 너무 가깝게 항해하여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했을 때,
우리를 귀찮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여
생명수에 대한 갈증을 상실해 버렸다면,
우리가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하여
영생을 꿈꾸는 것을 잊어버렸다면,
새 땅을 건설하기 위하여 우리가 노력하느라
천국에 대한 소망이 어두워졌다면,
우리를 귀찮게 하소서 주님!
더욱 용감하게 모험하도록, 너무 해변에 가까이 있지
말고 바다 먼 곳으로 가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를 밀어내소서
더 이상 땅이 보이지 않을 때 별을 볼 수 있도록
그리고 소망의 지평선을 보게 해달라고 간구할 수 있도록
우리를 밀어내소서
미래를 위한 힘과 용기와 소망과 사랑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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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 | 사도행전4강(제목: 성령의 시대가 열렸다) | 김성철 | 2026-09-08 | 51 | |
| 120 | 사도행전3강(제목: 교회를 세우는 세 가지 준비) | 김성철 | 2026-08-30 | 6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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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 누가복음78강(제목: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할 수 있겠는가?) | 김성철 | 2026-07-26 | 102 | |
| 111 | 누가복음77강(제목 : 하늘 문이 활짝 열리다) | 김성철 | 2026-07-22 | 119 | |
| 110 | 누가복음76강(제목: 한 사건, 두 반응) | 김성철 | 2026-07-12 | 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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