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푸른초장말씀
제목 :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말씀 : 요한복음3:16~17
한 아버지가 결혼식장에서 딸과 팔장을 끼고 신랑을 향해 나아갑니다. 단상 앞에 서 있는 신랑에 이르자 아버지는 사위 될 신랑에게 딸을 보내면서 이런 부탁을 합니다. “혹시 자네의 마음이 바뀌게 되어 내 딸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었을 때에는 상처주지 말아주게 그때는 나에게 다시 보내주게...내게 돌려보내주면 되네...그게 전부네” 이 때 사위가 장인께 눈물을 흘리며 말합니다.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장인은 사위에게 말합니다. “이제 소중한 내 딸을 자네에게 맡기겠네” 딸을 보내는 아버지의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부탁이었습니다. 이 영상을 보면서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에 울컥했습니다. 저에게는 4명의 손녀가 있습니다.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이 마음에서 품어 나올 때가 많습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님의 사랑은 자식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깊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으로 4가지 사랑이 있습니다. 에로스(Eros)사랑, 스토르게(Storge)사랑, 필리아(Philia)사랑, 아가페(Agape)사랑이 그것입니다.
에르스는 남녀간의 성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감정으로 시작하여 마음이 가는대로 뜨겁게 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정적인 에로스의 사랑도 눈에 콩깍지가 벗겨지면 그 순수한 사랑도 철회되고 변질됩니다.
스토르게 사랑은 부모와 자식간의 혈육의 사랑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흐로몬 보다도 강하다고 합니다. 부모 자식 사이는 피를 나눈 사랑입니다. 그러나 스토르게 사랑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기도 하고 자식이 부모님께 폐륜을 행하기도 합니다.
필리아의 사랑은 친구간의 우정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특히 사춘기 시절의 열정과 순수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친구 관계에서 꽃피우는 우정입니다. 성경에서 이 사랑이 다윗과 요나단의 사랑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둘의 사랑은 연인의 사랑보다 더 아름다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정도 때론 금이 가고 서로를 배신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희생적인 사랑 조건없이 베푸는 사랑으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의지적인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사랑했는지 아가페의 사랑이 한 문장으로 나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3장 16절은 성경 66권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말씀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요한복음 3:16절을 가리켜 작은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성경 66권을 줄이고 또 줄여서 한 구절로 표현한다면 바로 요한복음 3:16절 말씀이 될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다섯가지 아가페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나를 이처럼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자 찾아 오셨습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께서 먼저 시작하신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은 여기있으니...’ 라고 했습니다. 이 사랑은 에로스의 사랑이나 스토르게의 사랑이나 필리아의 사랑과 다른 차원의 사랑입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그런 감성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그 마지막이 상처와 이별과 아픔으로 끝나는 사랑은 더더욱 아닙니다. 자기중심적인 이기적 사랑도 아닙니다. 이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변화되지 않습니다. 언제까지나 가슴속에 머물면서 살아 역사하는 진실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생명까지 주는 사랑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랑으로 먼저 나를 사랑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진실한 사랑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세상모두 사랑없어’(찬송가503) 찬송가입니다. “세상모두 사랑없어 냉냉함을 아느냐 곳곳마다 사랑없어 탄식 소리 뿐일세... 2절후렴 : 사랑없는 까닭에 사랑없는 까닭에 사랑없는 까닭에 저들 실망하도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세상이 사랑이 없다고 탄식합니다. 진실한 사랑을 받지 못해 실망하고 속이고 거짓된 사랑 앞에서 상처투성인 체 살아갑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랑을 먹어야 삽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 안에는 사랑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간 안에는 사랑이 없어서 사랑을 하고 싶어도 사랑에 서툴고 상처받기를 잘하고 삐지기를 잘하고 사랑했다고 철회하고 사랑했다가도 변심하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진실한 사랑을 받으면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마치 달이 스스로 빛은 내지 못하고 태양을 받아서 빛을 내듯이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으면 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사람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참된 사랑이 없어 탄식하고 실망하고 서로 미워하고 원수관계에 있는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참되고 진실하고 영원한 사랑을 가지고 우리 가운데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받으면 우리도 참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랑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랑입니까?
둘째, 하나님은 그 사랑은 내가 죄인되었을 때 먼저 사랑한 조건없는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에는 모두 조건이 있습니다. 부모는 내가 낳은 내 피가 섞여 있는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도 서로에게 끌리는 사랑의 매력 포인트가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얼굴이 예쁘다든지 공감능력이 있다든지 유머가 있다든지 경제력이 있고 능력이 있다든지 좋은 학벌이나 좋은 집안 배경을 갖추었다든지 뭔가 사랑할만한 조건이 있어서 그 사랑에 끌리게 된 것입니다. 친구간의 우정도 서로에게 뭔가의 끈이 되는 조건이 있기에 우정이 싹트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은 선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진실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능력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예의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세상의 사랑은 조금만 흠이 있고 어벙하면 가정배경이 없으면 무시합니다. 소외시키고 말도 섞지 않습니다. 진실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금방 마음이 떠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아니, 죄인이기 때문에 더욱 나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하나님의 사랑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왜 저입니까? 지금도 생생합니다. 고3 대입시험 앞두고 일요일도 등교했던 때였습니다. 광천동 종점에서 117번 타고자 큰 길에 들어설 때 상가건물에서 주일 찬송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때 저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미친놈들 목사에게 속아서 헌금하고 사람이 만든 종교에 놀아나는 바보같은 놈들” 이렇게 교회를 욕하면서 나는 똑똑해서 절대 안 속는다!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던 자였습니다.
이런 저를 하나님은 사랑해 주셨고 1987년 12월 성탄 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과 성탄절 카드 말구유 위에 누워있는 그 한아기가 창조주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요 나의 구원자이심을 깨닫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교만한 나를 심판하지 않고 기다려주고 따뜻한 사랑으로 안아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지금도 흠이 많고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그래서 늘 주님께 왜 저입니까? 저같이 부족한 자를 왜 주의 종으로 불러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으면 언제든지 말씀만 해 주십시오. 순종하겠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늘 기회를 주셨습니다. 아내가 뇌종양으로 쓰러질 때도 기적같은 수술로 회복하게 해 주셨습니다. 아내가 쓰러졌다면 목회를 그만둘 생각이었습니다. 3년 전에 경주에서 혼자 88고속도를 타고 지리산 휴게소를 지나 오던 길에 깜빡 졸았습니다. 그리고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습니다. 뻥 소리가 났고 눈을 떴는데 뒤에는 8톤 트럭이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아 여기서 대형 사고가 나겠구나 했는데 차가 휘청거리며 갈지자로 흔들리다 제자리를 잡았습니다. 다행히 타이어가 찢어졌지만 터지지 않아서 무사히 옆길에 정차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 때 타이어가 찢어지고 8톤 트럭과 충돌했다면 목회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압니다. 만약 주님이 저에게 목회자의 삶에서 내려오게 하려고 한다면 한순간에 아웃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여전히 저를 세워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게 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죄인된 자 자격없는 자 무능력하고 허물투성이인 저를 부르시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함께 해주시는 그 사랑에 이제 늘 감사뿐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는 135장 어저께나 오늘이나 찬송입니다. 특별 3절 “허물많은 베드로는 용서하시고 의심많은 도마에게 확신 주시고 사랑하는 그의 제자 가슴에 안고 부드러운 사랑으로 품어주셨네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 무궁히 한결같은 주예수께 찬양합니다” 이 찬양만 하면 마음에 눈물샘이 고입니다. 우리 주님은 허물많고 의심많은 우리 여전히 죄인인 우리를 아무 조건없이 변함없이 사랑해 주십니다.
마치 부모가 아픈 자녀에게 마음이 더 가듯이 하나님은 죄인인 자녀에게 더 마음이 가고 사랑하십니다.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와 같이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끝까지 찾고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허물 많은 나를 위해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놓으신 그 사랑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기 전에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 믿은 후에도 많은 죄를 짖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용서하시고 변함없이 사랑해 주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사랑의 증거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의 증거로 돈을 줍니다. 우리는 돈을 받을 때 사랑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증거로 돈을 주지 않고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주시되 독생자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놓으셔서 우리의 죄 값을 치루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돈은 주어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줄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원수에게 죄인에게 미워하는 자에게 더더욱 줄 수 없습니다.
최근에 며느리가 우리 집에 쇼파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집에 들어와 쇼파에 앉을 때마다 며느리에게 고마움을 갖게 되고 시부모를 사랑해 주는 그 마음 때문에 늘 감사가 되었습니다. 쇼파를 선물해 주어도 사랑이 느껴집니다. 누군가로부터 새로운 모델 자가용 한 대를 선물 받았다고 합시다. 혹시 새 차를 선물 받아 본적 있으십니까? 그 차를 타고 다니는 동안 그 분에 대한 사랑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혹시 새 아파트를 선물로 받아본 적 있으십니까? 만약 받으신 분 있다면 그 아파트를 선물해 주는 분의 호의와 사랑에 대해서 죽을 때까지 감사가 되지 않을까요?
내가 흉악한 죄를 저질러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내가 달려 죽어야 할 그 사형대에 내주고 내 생명을 구원해 주었다면 그 사람이 내게 베푼 그 큰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 사랑은 십자가 사형틀에 메달려 저주받아 죽어 지옥에 불 못에 던져져야 할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그 십자가에 대신 매달려 죽게 하고 나를 구원해 주시는 그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나 대신 지옥까지 내려가서 내가 받아야 할 그 지옥 형벌까지 받게 되었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사도신경 영어 성경에 한글 사도신경에 없는 한 문장이 더 있습니다. “He descended into hell.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rom the dead”(그분은 지옥으로 내려갔습니다. 사흘째에 그분은 죽은 이들로부터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받아야 할 죄의 삯인 사망과 지옥 형벌을 독생자 예수님이 대신 받게 하여 나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 있다며 그 외아들을 원수의 생명을 구원하고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큰 선심을 써서 대신 병원비를 내줄 수는 있어도, 새 차를 사주고 집을 선물해 줄 수는 있어도 하나밖에 없는 자녀를 죄인들에게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감정이 없다구요? 하나님이시닌까 가능해요? 하나님도 우리와 똑같은 감정 의지 생각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셨습니다. 왜요? 우리를 독생자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에 대해서 영 안이 열려야 합니다. 신앙생활이 깊을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커지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 신앙이 성숙할수록 하나님은 커지고 나는 지극히 죄인 중의 괴수로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내가 커지고 하나님이 작아지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위험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고, 보이게 되면 신앙생활 단 하루도 감사하지 않는 날이 없을 것입니다. 단 하루도 기뻐하지 않는 날이 없을 것입니다. 평생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때문에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이 찬양을 흥얼거릴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은 아들을 주시는데 우리에게 단 한 가지 요구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돈이나 선행이나 고행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보내신 예수님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랑의 결정체인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받습니다.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선물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위해서 피 흘리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예순미을 믿을 때 두 가지 전가를 가져옵니다. 먼저는 내 죄가 예수님께 전가되어 내 죄는 없어지고 예수님이 나 대신 죄인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전가는 예수님의 의가 내게 전가되어 나도 예수님처럼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도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믿음까지 갖도록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이 믿음은 성령의 감동으로 갖게 되는 선물입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내가 구원받는다면 나의 구원받음에서 내가 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다섯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열매는 나를 멸망에서 구원합니다.
어떤 인간의 희생적인 사랑도 그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지 못합니다. 어떤 숭고한 부모님의 사랑도 자식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내지 못합니다. 아무리 순수한 남녀 간의 불타는 사랑도 서로를 불과 유황으로 타는 지옥에서 구원하여 주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죄에서 자유하게 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죽음에서 부활로 우리를 구원해 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여 자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지금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장차 부활의 새 몸을 입고 새 하늘 새 땅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신 이 사랑의 열매를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숭고한 에로스의 사랑도 아무리 위대한 부모님의 자식을 향한 희생적인 사랑도 아무리 친구간에 생명을 내놓은 우정도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인간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오직 조건 없이 죄인 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만이 죄에서 우리를 용서하고 사망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합니다. 죄인 된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내놓으신 그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만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단 한순간도 잊지 말고 감사하면서 그 은혜에 보답하면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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