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4일 어린이주일설교
제목 : 다음 세대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세대로
본문 : 창세기5:1~5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교회는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 다음세대를 믿음의 세대로...”라는 표어로 하나님의 구속사에 쓰임받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다음세대를 믿음의 세대로 섬기고자 대안학교인 새숲청어람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유치부 아동부 중고등부 청년부의 부흥을 위해서 교역자들과 교사들이 함께 헌신하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교회는 저출산에 따른 인구절벽과 급속한 세속화로 인하여 다음세대의 교회 이탈이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형섭 교수님은 “청소년 복음화율이 3.8%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현장은 그보다 더 심각하다. 미션스쿨임에도 한 반에 교회 다니는 아이가 1명도 없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다음세대를 믿음의 세대로 세울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으로 먼저 예수님을 믿는 부모님을 믿음의 부모로 양육하고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신형섭 교수님은 “자녀의 신앙에 가장 영향을 주는 요소 중 가장 큰 것이 부모다. 부모가 자녀의 신앙에 끼치는 영향이 2014년에는 57%, 2021년엔 77%였다”며 “그런데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교육의 우선순위가 인성, 지성, 진로, 그 다음이 신앙이었다. 코로나 이후 현장 예배 회복률이 73%인데, 가장 심각한 세대가 3040으로 33%다. 바로 지금 교회학교의 부모 세대”라고 지적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코로나 펜데믹 이후 3040세대의 신앙회복율이 33%로 가장 적다는 것입니다. 결국 3040세대의 신앙심의 후퇴는 다음세대를 신앙의 불모지를 만들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한국리서치 정기조사 ‘여론속의 여론’에서 2024년 1월부터 11월까지 진행한 22번의 조사결과 종교인구비율은 개신교가 20%, 불교17%, 천주교11%, 종교없음51%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근거해서 보면 청소년복음화율도 20%에 육박해야 합니다. 그런데 청소년 복음화율이 3.8%라는 것은 기독교가정에서 신앙의 대물림이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모두는 부모님을 통해 이 땅에 태어나게 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사람이 부모입니다. 결국 자녀들은 부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게 됩니다. 그러기에 부모는 이 세상에 살면서 모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3살 이하 때 사람의 성격이 80%형성된다고 합니다. 결국 인간은 부모님의 역할에 의해서 80%의 운명이 결정되어 버린다는 뜻도 됩니다. 부모님이 어떻게 자녀를 양육하느냐에 따라 자녀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창세기 5장 말씀은 부모님의 역할이 자녀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사람의 첫 부모님은 누구였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첫 부모이셨습니다. 인간이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탄생되었습니다. 즉, 인간의 기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음받았습니다. 창세기 1:26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의 붕어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볼 때 그의 아버지를 닮았다. 그 엄마를 닮았다. 그 할아버지 할머니를 닮았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붕어빵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붕어빵이었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DNA가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성이, 하나님의 예술성이, 하나님의 진리가, 하나님의 지혜가, 하나님의 거룩성이,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우리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확연한 차이점은 인간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내재 되어 있고 동물 안에는 그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 자신의 영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빛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빛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영원하신 진리이신 하나님을 만나려면 “네 자신 밖으로 나가지 말라 네 자신 안으로 들어가라 인간 내면에 진리가 거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결코 진리가 인간의 마음 속에 있다든가 그 안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거스틴이 말하고자 한 의미는 우리가 진리를 파악하는 길은 인간의 마음을 통해서라야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을 통해서 진리의 영이신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5:2절에서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복입니다. 사람은 고귀한 존재입니다. 아담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아셨기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러 이 땅에 내려오실 때 천사나 어떤 신비한 모습이 아닌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토록 가치있고 천하보다 소중한 사람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의 잔재만 남았을 뿐 대부분을 잃어버렸습니다. 요즘에는 많은 과학적 심리학적 이론들이 사람을 생물학적 존재로만 보고 접근합니다. 육적인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인간을 물질적으로만 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면 사람은 육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짐승보다 악해집니다. 사람들은 마음의 정욕대로 행하고 부끄러운 욕심을 따라 행합니다. 이것은 아담이 타락하면서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하는 사건에서 나타나고 창세기 4장의 가인의 후예들의 족보에서 더 명확하게 보여집니다.
더불어서 3~5절도 이 사실을 확증해 줍니다. “아담은 백삼십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타락한 아담은 자기 모양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1절의 하나님의 모양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모양대로 아담을 만드셨는데 아담은 타락한 죄성을 지닌 인간의 모양을 닮을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흔히 창세기 5장의 아담에서부터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에 이르는 족보를 죽음의 족보라고 합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살다 죽었더라’만 반복되는 족보입니다. 창세기의 5장의 아담의 족보는 아무리 은혜를 많이 받고 아무리 무병장수한다 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죄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아담은 타락 후 필연적인 죽음을 선고받은 존재이므로 그가 자기 모양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곧 죽음이라는 죄책이 후손에게 전가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아담의 족보 안에는 죽음이 없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에녹입니다. 24절 말씀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바로 하나님 곁으로 갔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300년 동안 살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동행한다’는 의미는 서로 떨어질 수 없어 함께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에녹은 서로 사랑했습니다. 나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없고 하나님도 나 없이 살 수 없고 에녹과 하나님은 이런 사랑의 관계속에서 동행하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녹이 언제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시작했다고 했습니까? 65세 때 아들 므두셀라를 낳고 난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했습니다. 왜 에녹이 무드셀라를 낳은 후부더 하나님과 동행하고자 작정했을까요? 자의적인 해석일 수 있지만 아마도 이런 연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세상 사람들은 죄악이 관영하고 생각하는 것이 항상 악하여 방탕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에녹은 자식을 낳은 후부터 그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기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자녀 앞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본이 보이겠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했을 거라는 해석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에녹과 동행하지 않고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이 에녹과 동행하려면 하나님이 에녹의 수준에 맞추어 자기를 낮추고 성육신해야 합니다. 그러나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에녹이 자기 생각, 자기 기준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에녹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추는 거룩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히11: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이 하나님의 수준으로 자기를 맞추어서 그 분의 뜻과 그 분이 기뻐하는 기준으로 살려고 거룩한 영적투쟁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죽음을 끊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적 유산이 아들 므두셀라에게 흘러갔고 무드셀라의 아버지 에녹을 닮은 삶은 그의 아들 라멕에게 흘러갔으면 라멕은 그 영적 유산을 그의 자녀 노아에게까지 흘려보냈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에녹의 신앙은 그의 증손자 노아에게까지 흘러서 세상이 대홍수 심판을 받을 때 증손자인 노아와 그의 가족을 구원받게 하는 신앙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는 다음세대를 어떻게 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담처럼 자녀들을 자신을 닮게 하려고 안달을 냅니다.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면서 과보호하거나 강압하거나 징벌하면서 키우는 것은 모두 자기의 의도를 따라 자녀들을 키우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마치 아담이 자기 자녀들을 자신의 모양대로 낳았던 것처럼 우리는 자식들을 자신의 모양대로 키우고자 합니다. 그러면 결과는 허무하게 죽음으로 끝납니다. 아무리 잘살아도 죽습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으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삽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양육하면 자녀들의 미래는 하늘의 신령한 복으로 채워집니다. 고린도전서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보아야 합니다.
자녀들은 3세까지 부모님의 삶의 모습을 80% 그대로 닮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커가면서도 부모님의 말의 영향력은 그들의 생각과 사상과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데 77%의 영향력을 끼칩니다. 결국 가정의 신앙교육은 부모님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우리 가정의 족보가 생명의 족보로 천대까지 흐르게 할 것인지 아니면 죽음의 족보로 흘러가게 할 것인지 오늘 우리 부모님들의 책임하에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책임도 있습니다. 다음세대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세대로 양육하기 위해서 부모님들이 먼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 때 그 삶의 본이 자녀들에게 흐릅니다. 자녀는 부모의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을 보고 자랍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님이 가르치는 말보다 부모님의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것입니다. 상담학에서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는 말은 정설에 가깝습니다. 결국 자녀의 운명은 부모님의 삶의 태도와 가치관의 영향력 아래에 있습니다.
우리교회의 다음세대 부흥은 결국 부모님의 신앙부흥이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질 때 자녀의 삶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함께 빚어지는 것입니다. 아담의 모양과 조상의 망령된 행실이 흘러가는 죽음의 가계도의 어둠의 세력을 끊고, 빛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흘러가는 생명의 가계도를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감으로 만들어 가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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