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64강
제목 : 산 자의 하나님
본문 : 누가복음20:34-38
오늘 설 명절에 있는 주일예배를 드리고자 고향 교회를 찾아 부모님과 함께 이 복된 예배의 자리에 오신 모든 자녀분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부모님이 계신 고향이 있다는 것은 마음에 안정감을 주고 부모님이 섬기는 고향교회가 있다는 것은 영적 행복을 줍니다.
고향의 진정한 냄세는 나를 낳아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부모님이 존재한다는 따뜻함에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 교향인 천국이 주는 진정한 위로는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나를 구원해 주고자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내놓으신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하늘 아버지의 존재함에 있습니다. 부모가 존재하기에 고향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기에 천국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산 자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살아계십니다. 창세 전에도 살아계셨고, 창조 때에도 살아계셨으며, 과거 5000년 전에도 살아계셨고, 지금도 살아계시고, 앞으로 천년만년 아니 종말 이후에도 하나님은 항상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시작도 끝도 없으시는 영원히 항상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 있는 자도 항상 살아있습니다.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죽는 자는 없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살았느니라”(눅20:38)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우리의 삶에 너무나 중요합니다.
영존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도 부활할까요? 예, 부활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육체는 죽지만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전도서 3:21절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육을 가진 짐승이나 육을 가진 사람이나 육체의 죽음에서는 똑같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혼은 땅으로 내려가고 인간의 혼은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을 아는 자가 많지 않습니다.
인간은 죽음으로 소멸 되는 존재가 아니라 죽음 이후 부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활이 하나님 안에서 부활하느냐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서 부활하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부활하면 영광의 부활이요 생명의 부활이요 기쁨의 부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밖에서 죽으면 심판을 받기 위한 부활이므로 그 부활은 저주의 부활입니다. 성경은 이것이 둘째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살아서도 죽는 자요 죽어서도 죽은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눅9:59~60) 예수님은 지금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자들 중에서 믿지 않는 자들은 죽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죽었다고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있어도 하나님과 관계성이 단절되어 있으면 죽은 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이들은 살아서도 죽은 자요 죽어서도 죽은 자입니다.
반면에 하나님 안에 있는 자들은 살아있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예수님을 믿으면 항상 살아계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항상 살아있는 자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시면서 죽은지 나흘째 된 오빠 때문에 울고 있는 마르다에게 이렇게 질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죽은지 나흘째 된 나사로를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 말씀하심으로 예수님 안에 죽은 자는 항상 살아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4:13절에서는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살아서도 산 자요, 죽어서도 산 자입니다. 살아서 참 행복을 누리고 죽어서도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자들이 바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관계성을 회복한 우리 믿음의 성도들의 삶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부터 예수님 안에서 산 자로 살고 있고 이 산자의 삶이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됨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죽은 자에게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의 묘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사두개인들이 부활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예수님을 공격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유대교의 소수파로서 당시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는 제사장 계급이고 귀족 계급이었습니다. 이들은 당대 최고 권력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성경도 모세 오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했습니다.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부활을 믿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믿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이 정경으로 인정하는 모세 오경에 부활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만일 부활이 있다면 설명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괴상하게 지어 만든 이야기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만일 어떤 사람의 형이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그 둘째와 셋째가 그를 취하고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그 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28-32절)
아주 먼 옛날 한 마을에 칠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맏이가 아내를 취했으나 자식이 없이 죽었습니다. 그러자 모세의 율법대로 그 동생이 형을 대신해서 형수님을 아내로 취했는데 또 죽고, 셋째도 그 형수님을 아내로 취했는데 또 자식 없이 죽고... 결국 일곱 형제 모두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칠 형제가 모두 한 여자를 아내로 취하였고 자식을 낳지 못한 상태에서 죽었다면 부활 때에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이 질문으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 문제에 대해 대답하실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일곱 중 어느 한 사람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고 대답하신다면 사람들이 듣고 조롱할 것이 뻔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있다면 설명할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들이 일어난다면서 부활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의 괴상망측한 질문을 받은 예수님은 그들이 부활의 문제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34-36절)
예수님은 먼저 부활의 세계는 지금의 세계와 차원이 다른 세계임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갑니다. 이는 육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사두개인들이 이 세상에서의 삶을 천국에서도 동일한 삶의 연속이라고 가정했다는 점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장가가고 시집간다면 천국에서도 그런 똑같은 삶이 계속된다고 생각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세상에서는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되면 더 이상 육신의 생활은 하지 않고 영적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부활하게 되면 천사와 부활하신 예수님과 같은 영광스러운 영적인 존재로 변화됩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은 새로운 변화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부활할 때 우리는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는 새로운 몸으로 변화됩니다. 가장 고상하고 가장 순수하고 가장 아름다운 자들이 됩니다. 우리의 육신은 이 땅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썩을 육신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맞도록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육신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몸이 장차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하게 될 것을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전15:42~44) 현재 우리의 육신은 썩고 욕되고 약하고 추하지만 장차 부활할 몸은 썩지 않고 영광스러우며 강하고 신령한 몸이 됩니다. 그때는 다시는 죄의 소욕에 지배당하지 않고 또 더 이상 장가가고 시집가는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질병이나 죽음의 고통으로 시달릴 필요도 없습니다. 그때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우리 주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토록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은 문을 잠갔는데 들어가고 갑자기 사라지기도 했으며 공중에서 뜬 상태에서 한 번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게도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몸보다 더 좋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을 덧입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지금 세계의 연장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37~38절 말씀입니다.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보였으되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이삭의 하나님이요,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사두개인들은 모세 오경에는 부활이라는 말이 없다고 해서 부활의 진리를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정경으로 인정하는 출애굽기에서 부활의 진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은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찾아오신 장면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3:6) 이 말씀이 왜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모세가 당시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사오백 년 전에 이미 죽어서 이 세상에 흔적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흔적도 없는 존재라고 하면 하나님은 더 이상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하고 자신을 소개하실 수 없습니다.
저의 아들은 김바울 김다니엘입니다. 그래서 어디 가면 ‘저는 바울이 아버지요 다니엘의 아버지입니다’ 라고 현재형을 써서 나를 소개합니다. 그러나 만약 내 자녀가 사고로 죽고 이 세상에 없다면 저는 바울이 아버지요 다니엘의 아버지라고 나를 소개하지 못하고 과거형을 써서 ‘나는 한 때 바울이의 아버지였고, 다니엘의 아버지였습니다’ 라고 과거형으로 소개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500년 전에 죽은 아브라함이 썩어져 없어졌다면 하나님은 자신을 현재형을 써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 소개해서는 안 됩니다. ‘500년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던 내가’ 이렇게 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을 지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십니다. NIV 영어 성경에는 “I am 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I am” 모두 현재시제입니다. 이는 500년이 지난 지금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죽지 않고 주님 안에서 현재 살아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또한 모세에게 “I am”으로 소개하신 이유는 하나님 자신도 5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계신다는 뜻입니다. 5백년 전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5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살아서 모세 너와 함께하고 있는 영원히 살아있는 하나님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사두개인들처럼 죽은 생각을 하는 자들 안에 하나님은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 안에 하나님은 살지 못합니다. 니체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죽었다! God is dead”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니체 is dead” 이 말은 “하나님이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죽었다고 생각한 니체가 죽은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두개인이나 니체처럼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어떤 자가 살아 있는 자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자가 살아 있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말씀하심으로 믿는 자 안에 항상 살아있는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NIV 영어 성경으로 보면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입니다. 여기에서도 “I am” 현재형입니다. 현재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 안에서 항상 살아 있는 자입니다.
오늘날에도 사두개인이나 니체처럼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은 확실히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후에 부활하사 부활하신 몸을 마리아에게 직접 보여 주시고 그 후에 베드로에게 보여 주시고 그 후에 도마가 빠진 10명의 제자에게 그 후에는 도마가 포함된 11명의 제자에게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여주시고 심지어는 예수님의 혈육인 동생 야고보에게 보여 주셨으며 맨 나중에 다메섹으로 예수님 믿는 자들을 핍박하러 간 사울에게 부활이 있음을 증거해 주셨습니다. 저는 주일마다 사도신경 마지막 고백 부분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라고 이 부분을 고백할 때 가장 설레이고 기쁘고 감격스럽습니다. 여러분! 정말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까?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산자의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산자로 살아야 합니다. 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백기완 선생님이 썼던 임의 행진곡이 있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아가던 뜨거운 맹세...”그리고 후렴에서 이렇게 명령합니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대학생 시절 임의 행진곡을 부르면서 데모할 때 뜨거운 청춘의 힘이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이 ‘임의 행진곡’이 마치 우리 주님께서 부활의 영광을 보여주고 나서 산자의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에게 산자여 나를 따르라! 라는 예수님의 외침으로 들립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썩고 더럽고 쇠하여질 것들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이 약속한 것들은 영광스럽고 영원하고 이 세상 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답고 복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얻으려 하지 말고, 영원한 산 소망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급을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 성도들에게 바울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9) 산자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지금 내 안에 역사하고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산 자로 삽시다. 산자는 희망을 말하고, 산자는 거룩한 삶을 살며, 산자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산자는 겸손하며, 산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고, 산자는 잘 되면 감사 안 되면 더 감사하며, 산자는 죽음의 두려움까지 이깁니다. 오늘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오늘 이 말씀이 우리의 성도님들의 삶을 항상 산 자로 살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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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 누가복음61강(제목 :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 김성철 | 2025-12-07 | 69 | |
| 79 | 누가복음60강(제목 : 진짜 믿어지면 나타나는 현상) | 김성철 | 2025-11-30 | 80 | |
| 78 | 누가복음59강(제목 : 왜 어린아이 같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까?) | 김성철 | 2025-11-26 | 70 | |
| 77 | 누가복음58강(제목 : 의롭다 인정받는 믿음의 기도) | 김성철 | 2025-11-26 | 73 | |
| 76 | 누가복음57강(제목: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 김성철 | 2025-10-12 | 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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