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 잠언 16장 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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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7:14~20 제목 : 믿음의 도약

찬양 : 357, 나의 기도하는 것보다

 

사순절 기간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묵상하며 그 은혜의 감사하고 더욱 주님의 말씀대로 뜻대로 살기로 다짐하며 세상을 향한 섬김의 삶과, 말씀으로 나의 절제된 삶을 살아가는 기간입니다. 이번주는 종려주일이며 고난주간의 시작되는 날입니다. 사순절 기간중 특별 새벽기도회를 통해 기도로 나아가는 시간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육신이 참 피곤합니다. 그러나 피곤한 가운데에서도 주께 나아갈수록 주의 은혜로, 주의 능력으로 새 힘을 얻고, 새 능력을 덧 입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는 줄 믿습니다.

 

믿는다는 것! 참 어렵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보이는 것을 보고 믿는 것도 틀리고, 잘 못된 것도 많은데,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믿음장이라고 하는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에 대한 정의와 믿음의 조상들에게 나타나는 믿음의 아름다운 행적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과연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믿음의 선진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으로 살았는가를 열거하면서 11:1절은 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면서 믿음의 본질에 대해 규명, 즉 밝히고 있습니다.

먼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라는 말씀은 조금 쉽게 풀어보자면 믿음이란 소망을 지탱해주는 토대, 기초로서 소망하는 바가 허상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이루어질 것을 보증해 주는 실체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것은 다른 성경 역본으론 눈으로 볼 수 없는 일들의 증거”, NEB(New English Bible)우리가 보지 못하는 실체에 대해 확신을 가지도록 만들어준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종합해 보면 믿음이란 성도가 자신이 바라는 것, 즉 하나님의 약속들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미래의 일이기는 하지만 믿음으로써 그것들에 대해 확신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사실 보이는 것도 믿기 힘든데,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다는게 보통 힘든게 아닙니다. 20장에서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도마에게 찾아오시어 주님은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시며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도마일지 모릅니다. 아니, 도마이고 싶어 합니다. 믿습니다라고 고백하지만, 보여 달라고, 역사해 주시라고 늘 눈에 보이는 것, 우리의 삶에서 그 현상을 경험하게 해 주시라고 외치는 모습이 주님의 손과 옆구리를 직접 만지는 도마와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실 이것만큼 확실한 증거, 확실한 방법이 없겠지만, 주님은 도마에게 하신 말씀처럼 믿음이 작은 자가 아닌 한 단계 믿음의 도약을 하여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의 성숙한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처음 주님을 믿었던 그 믿음의 열정과 기쁨으로 작은 믿음이 아닌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주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삶으로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네 말에 믿는 구석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할 때 그 사람의 무모한 행동이나, 예상치 못한 행동들, 때론 죄를 짓고도 당당하게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럼 그렇지 믿는 구석이 있으니 그렇게 했지!”라며 이야기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단지 마음으로 믿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행동이나 말로도 표현됩니다. 그래서 믿는다는 것이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지난번 주일 설교 때 김성철 목사님의 설교 기도는 믿음을 완성합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셨는데 기억하십니까? 말씀가운데 믿음과 기도는 바늘과 실의 관계라고 말씀하시면서, 온전한 믿음은 기도로 완성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성장해서 기도로 나아가고, 기도의 삶을 통해 믿음의 삶,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기도의 삶이란 나를 내려놓고 주님을 붙드는 시간이요, 믿음의 삶은 내 삶을 주께 맡기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주님의 뜻대로 살기위해 힘쓰고 애쓰는 삶입니다.

믿음의 도약~ 우리는 믿음의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야 합니다. 믿어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믿음은 기도로 완성된다라는 말씀이 믿어야 구하고, 믿음으로 부르짖으며 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그 기대가 삶 가운데 축복으로, 삶의 평안과 감사와 기쁨으로 나타나게 되는 줄 믿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든 삶의 기본이 믿음으로 더욱 견고해 져서 주님의 크신 뜻이 내 삶에 이루어지길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178절 이하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보면,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의 전투력은 미미합니다. 감히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그들은 싸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그들의 준비는 싸울 사람을 택하고,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는 것입니다.

전략, 전술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모세가 산꼭대기에 올라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의 팔이 피곤하여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가 모세를 앉게 하고 양쪽에서 그의 팔을 이쪽 저쪽에서 붙들어 올려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애굽에서 양을 치며 짐승을 치던 목동에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 때에는 성을 짓는 노예의 생활을 하던 그들이 전쟁으로 승승장구하는 아말렉을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승리했습니다. 그들이 행한 것은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나아갈 때 전쟁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와 이기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아무리 강한 적이, 아무리 강한 악한 영과의 싸움이 있어도 우리는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직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내게 힘 주시고 능력주시는 주님을 의지할 때, 내게 능력 주시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고백하며 우리는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스라엘이 변해버립니다. 아니, 처음부터 그들은 그들에게 닥친 어려움이 있을 때 만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모습을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삼상 8장의 사건입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은 누구였을까요?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구하는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삼상 8:5입니다. 새번역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사무엘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른께서는 늙으셨고, 아드님들은 어른께서 걸어오신 그 길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이방 나라들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주셔서, 왕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

그동안 그들을 보살폈던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제 없습니다. 그들에게 신의(信義)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의리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자신들의 삶을 지키시고 그 안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그들은 이제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나이 들어 늙었고, 그의 아들들이 사무엘과 같이 살지 않음을 핑계로 그들은 이제 하나님을 떠나가겠다는 것입니다. 예전 애굽에서 나온 그들의 조상이 모세가 잠시 하나님을 만나러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그들을 위해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것처럼 이제 자신들을 위한 왕을 버리고, 자신들만을 위한 왕을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눈에 보이는 현실을 좇는 자가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의 모습과 반대로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법규를 가져간 블레셋의 모습은 이스라엘과 정반대입니다.

 

법궤를 가져간 블레셋! 그들의 신전에 법궤를 놓았을 때 기이한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삼상 5:6~8절 말씀입니다. 6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 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7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8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그들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여호와로 말미암음을 그들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삼상 5:10절 중반부터 11 보면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11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하게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그들은 지금 이 사건이 왜 일어나고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틈만 생기면 하나님을 떠나려고 하는 이스라엘 민족과 반대로 그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있는 저 이방민족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인 눈을 떠야 합니다. 깨어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눈앞에 현실만 쫓기도 바쁜 세상이지만, 우리는 영적인 싸움을 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의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는 사건을 통해서 믿음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어떠한 현상이나 어떠한 일을 잘 알 때 ~ 귀신같이 잘 안다. 귀신같네.”라고 말을 합니다. 귀신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사실 우리의 능력으론 이 영적인 존재를 이기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기적과 이적을 보며 그들도 예수님과 같은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만큼이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들은 예수의 능력을 알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능력을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 깊게 볼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19절부터 20절까지 보겠습니다. “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이 작음과, 겨자씨 만한 믿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크고 작음이 문제인 것 같지만, 겨자씨 만한 믿음에 대한 말씀을 보면 크고 작음보다 믿음에 대한 진실함과 진정성을 말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작은 것 보다 큰 것이 더 좋겠지만, 그 안에 주님을 의지하고 믿는 믿음의 진정성과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귀신들도 예수님을 안다”. “귀신같이 안다는 표현대로 그들은 누구보다, 무엇보다 예수의 능력을, 예수의 권능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며 나아갈 때 우리에게 일어날 모든 능력은 예수를 앎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19장에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 바울을 통한 놀라운 능력을 보고 사람들은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 병든 사람에게 얹을 때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는 일을 경험합니다. 그러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 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예수의 이름을 불러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할 때에 유대의 한 제사장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게 됩니다.

이때 악귀가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그들을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행하는 것은 그저 지식으로 아는 예수를 부르짖는 것 뿐 이었습니다. 지식으로 아는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려 할 때 그들은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중요한 것이 이 말씀 앞 부분에 있습니다. 19:13절 말씀입니다. “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함아 그들은 믿은 것이 아니라 단지 아는 것으로 이 일을 행하려고 합니다. 믿음이 없고 자신들의 지식이나 지혜, 정보로 행하는 것은 크나큰 실수, 잘못입니다.

오늘 본문 마 17:20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제자들의 믿음에 대한 진정성과 그 믿음의 견고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9:23에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역사를 기대한다면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가라믿음으로 담대하게 선포하시길 소망합니다.

성경은 생명의 책입니다. 성경은 믿음의 책입니다. 모든 말씀이 믿는 만큼 이루어지는 놀라운 능력의 책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그래서 믿음에 대해 말씀하며 강조하고 있습니다. 열 두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겠다고 믿었던 사건,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백부장의 믿음의 고백, 가나안의 혼인잔치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던 사건, 풍랑가운데 물위를 걸었던 베드로, 성전 문 앞의 앉은뱅이를 일으켰던 제자들의 사건등 성경의 놀라운 사건은 오직 믿음으로 간구하고 간절히 믿는 믿음의 역사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지혜도 필요하고, 지식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믿어야 그 말씀이 내 것이 되고 내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기적은 믿음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과 맺었던 언약, 하나님의 약속도 믿음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던 제자들의 사역가운데 일어났던 모든 일들도 믿음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성경은 피의 책이라고 합니다. 구약성경의 짐승의 피, 신약시대의 예수의 피. 이 모든 걸 나의 것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믿음의 책입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역사,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도 믿음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인간의 지식과 지혜는 말씀을 더 잘 이해하고 더 많은 것을 알기위해 도움은 됩니다. 그러나 그 말씀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기적의 역사, 은혜의 역사는 지식으로, 지혜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경곳곳의 놀라운 기적과 이적의 역사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행하였기에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믿음이 이깁니다. 믿음이 역사를 이룹니다. 80이 넘은 갈렙이 헤브론을 여호수아에게 요청할 때 그는 믿음으로 주께서 약속한 땅을 요청합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구할 때 그는 헤브론 땅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찬양입니다. “주님이 주신 땅으로 한 걸음씩 나아 갈 때에 수 많은 적들과 견고한 성이 나를 두렵게 하지만, 주님을 신뢰함으로 주님을 의지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담대함으로 큰 소리 외치며 나아가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그날에 주께서 말씀하신 이제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그 땅을 취하리니

 

주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갑시다. 우리의 삶이 힘들고, 곤하여도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아갈 때에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는 담대히 승리를 이루며 나아갈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참으로 쉽고도 어렵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왜 믿어야 하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믿으며, 나를 위해 행하신 구원의 역사, 나를 위해 행하실 내가 상상하지도 못할 위대한 역사를 나를 위해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구할 때 지금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한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믿음의 도약! 믿음의 성숙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나아갈 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것,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 그리고 과학적으로 이미 검증이 끝난 사실들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의심 없이 믿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의 일들이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등은 믿음이라는 장치를 가져야만 신뢰가 가능합니다. 믿음의 성숙이라는 믿음의 도약을 통해 신뢰를 확신으로 바꾸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지인이 보내준 글 중 함께 나누고 싶은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마음에 대한 글입니다.

우리가 아껴야 할 마음은 "초심"입니다.

어떤 훌륭한 일을 성취할 목표는 아닐지라도

우리 삶을 보다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마음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초심, 둘째는 열심, 셋째는 뒷심.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마음이 초심입니다.

그 이유는 초심 속에 열심과 뒷심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초심에서 열심이 나오고 초심을 잃지 않을 때

뒷심도 나오기 때문입니다.

초심이란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처음 품는 마음입니다

처음에 다짐하는 마음입니다.

첫 사랑의 마음입니다. 겸손한 마음입니다.

순수한 마음입니다. 늘 배우는 마음입니다.

싱그러운 봄날에 품는 첫 마음입니다.

봄날과 같은 동심입니다.

피카소는 동심을 가꾸는데 40 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심처럼 좋은 것이 없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삶은 영원한 초심자로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우리가 무엇이 되고 무엇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

바로 그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그때 우리가 점검해야 할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초심입니다.

우리 인생의 위기는 그 초심을 상실할 때 찾아옵니다.

초심을 잃었다는 것은 교만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열정이 식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정기적으로 자기마음을 관찰해야 합니다.

초심과 얼마나 거리가 멀어져 있는지, 초심을 상실하지는 않았는지,

늘 자기성찰 해 보아야 합니다. 초심은 사랑과 같아서 날마다 가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랑은 전등불이 아니라 촛불과 같습니다.

 

우리 다함께 초심을 잃지 마시고 근심 걱정 날들의 교차 속에 마음은 희망과 행복과 사랑을 품고 오늘도 주님을 향한 크신 소망을 가슴에 가득 담고 하늘의 크신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초심! 믿음을 회복합시다. 우리 몸속의 총 혈관의 길이는 10km로 지구를 두 바퀴 반 돌수 있는 길이라고 합니다. 심장에서 나온 피가 심장으로 돌아오기까지 약 25초 가 걸린다고 합니다. 피가 제대로 흐리지 않고 어느 한곳이 막히거나, 잘 흐르지 않으면 우리 몸에 이상이 생기고 병이 생기게 됩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주님과 잘 소통되어야 믿음의 한 단계 성숙한 자리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믿음의 도약을 통해 들을 귀 있는 자, 믿음의 순종하는 자로 날마다 하늘의 축복을 누리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가 자격이 되어서 주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의롭기에 주께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쳐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주의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주께 믿음으로 부르짖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더 크게 응답하시고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내가 믿음으로 주께 구할 때 주님은 나의 한계를 넘어 내게 넘치도록 채우시는 주의 능력을, 주의 권능을 행하십니다. 믿음으로 주께 나아가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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