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 로마서 14장 8절
2021.03.03 11:05

창세기4장-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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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오늘 이야기는

에덴 밖 하나님과 사람 이야기입니다.

 

1st 에덴 밖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사람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창세기 1~3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사람을 에덴에 두셨습니다.

하나님 자신도 에덴 동산에 사람과 함께 계십니다.

 

그런데 창세기 4장을 보면

하나님은 에덴 밖에 계십니다.

에덴 밖 사람과 함께 계십니다.

왜 하나님이 에덴 밖에 계실까요?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에게 그 책임을 물어

에덴으로부터 사람을 추방하신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은 에덴에서 나오셨습니다.

 

 

피조물인 사람의 근본은 흙(티끌-먼지)입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조자의 손길이 닿을 때 그것은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다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에덴을 떠난 사람이 처한 상황이 이렇습니다.

 

사람이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사람이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도록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육체적이며 이기적인 존재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은 에덴 밖 사람에게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사실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전 안에 계신 하나님이, 성전 밖으로 나오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부정한 사람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사람은 결코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부정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직접 성전 밖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부정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시면 됩니다.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그런데 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늘 성소에 계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땅에 오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모습은 어떤가요?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공동번역>

그는 메마른 땅에 뿌리를 박고 가까스로 돋아난 햇순이라고나 할까?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다.

눈길을 끌 만한 볼품도 없었다.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때 비로써

의미있는 존재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만날 때 말입니다.

 

그는 권세있고 위험있고 두려운 존재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상 어떤 사람과도 부담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드럽고 친절하며 소탈한 가난한 목수로 오셨습니다.

 

 

 

왜요?

누구나 가까이 가서, 만지고, 보고,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안드래와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직접 나를 느껴보라

 

그 예수님을, 그 하나님을

우리는 지금 어디서 느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는 지금 에덴으로 가지 않아도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시려고 먼저 와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경청할 때

그 말씀 안에서 그분께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 마음을 만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2nd 에덴 밖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담과 하와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선악을 분별한다는 것은 지혜를 뜻합니다.

사람은 지혜의 열매를 먹은 것입니다.

지혜가 사람 중심으로 작동할 때

사람은 스스로 좋은 것을 분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삶은 두려움과 갈등과 절망이었습니다.

이 고통의 경험은 사람으로 하여금, 에덴에서 누렸던 삶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였음을 깨닫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다시 지혜를 돌려 드렸습니다.

모든 선하고 좋은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 사람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말이지요.

 

이후 아담과 하와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름을 가인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아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들은 그들의 힘이며 미래이며 복 그 자체입니다.

이 아들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고백할 때

이 아들은 그들에게 진정한 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들을, 우리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의 지혜로, 우리가 보기에 좋은 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살겠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 결과는 세상이 두려워질 것이며, 사람들과 관계가 깨지며,

일하는 기쁨도 얻지 못하고, 인생이 피곤할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고백한다면

우리의 지혜를 하나님께 돌려 드린다면,

우리가 보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을 참된 복으로 인정한다면

 

그 결과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존중할 수 있는 겸손을

사람들과 어울려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삶의 여유와 기쁨을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대하면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정리 (에덴 밖 하나님과 사람)

 

하나님은 에덴 밖에 계십니다.

에덴 밖에 있는 사람에게 소망을 주고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에게 살 소망을 주시려고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힘으로, 우리 지혜로, 우리 좋을 대로 살려고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려면

하나님께 지혜를 돌려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피조물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여기입니다.

 

실수 잘하고, 잘 틀리고, 엉뚱하며, 앞을 잘 보지 못하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리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강함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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