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 잠언 16장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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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예수로 해석하라 (18:5-8)

 

요사이 저는 은퇴를 앞두고 중학교 3학년 때 일이 기억됩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올 때 일인데 얼마나 파도가 심했는지 모릅니다.

물이 갑판 위로 넘실거리고 모든 사람들이 죽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간신히 제주항에 도착하여서 여관에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바다를 보니 아직도 파도가 잠잠하지 않고 산더미처럼 높은 파도가 넘실거렸습니다.

저곳을 헤쳐 나왔구나

은퇴를 앞둔 나의 모습이 그런 모습입니다.

인생은 고해와 같다고 말합니다.

내 삶 전체를 집어삼킬 만큼 큰 파도를 헤쳐 왔습니다.

죽음이란 파도를 헤쳐 나왔고

가난이란 파도를 헤쳐 나왔고

절망적인 환경을 헤쳐 나왔고

그리고 너무나 힘든 고난의 파도를 헤쳐 나왔습니다.

이 노래가 생각이 납니다.

Hard Times Come Again No More - 힘든 시절은 다시 오지 않으리...

가사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인생의 즐거움을 잠시 멈추고 눈물들을 생각해 봐요

우리 모두 가난 때문에 눈물을 삼켜야 했을 때

우리 귓가를 떠나지 않았던 노래

오 힘든 날들은 다시 오지 않으리

 

그건 녹초가 된 한숨의 노래

힘겨웠던 시절 고통의 세월은 다시 오지 않으리

그건 녹초가 된 한숨의 노래

힘겨웠던 시절 고통의 세월은 다시 오지 않으리

우리가 환희와 아름다움에 취해 가볍고 들뜬 음악을 찾을 때

문 앞에는 사람들이 힘없이 쓰러지고 있었지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간곡히 말하는 것 같았어

오 힘든 날들은 다시 오지 않으리

오 힘든 날들은 다시 오지 않으리

 

힘든 날들은 다시 오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의 노래입니다.

 

눈물도 있었고 초라한 모습으로 한숨 몰아쉴 때도 있었지만 그러나 분명합니다.

내 앞길에 어떤 파도가 몰아쳐도 어떤 시련이 와도 사도바울이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나도 이 고백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분명 살아가면서 우리는 죽음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음을 압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내가 나에게 낙심하고 절망해도 절망하지 않으시고 나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두 번 죽기를 각오한 적이 있습니다.

내 아버지가 몸 져 누워 계실 때입니다.

내가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다면 죽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한번은 바로 우리 교회 사건을 만났을 때입니다.

내가 이 교회를 위한다면 내 목숨을 바치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설교가 너무나 강하게 할 수밖에 없었지만 영국의 에딘버러에 다녀오면서 언약도들의 신앙을 배우고 돌아와서 한 설교입니다.

교회를 파괴하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그런 설교를 한 것입니다.

내 목을 쳐서 발로 차고 다녀라

 

나는 사도바울이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복음은 가난한 갈릴리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5: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여기보면 마태복음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그리고 누가복음에는 그냥 가난한자에게는 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심령이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자기 자신을 더 이상 의지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 상태가 자기 절망으로서 자기 자신을/ 자기가 가진 것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고 의지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 전도의 시발점으로 삼은 것은 예루살렘에서가 아니라 갈릴리였다는 사실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갈릴리는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고 자기 자신에게 믿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달랐습니다.

학력과 그리고 경제적인 재력과 경력 신분 등 너무나 믿을 것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서울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믿을 것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갈릴리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가장 낙후된 지역입니다.

하루하루 먹을 것이 문제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학력이나 재력이나 경력도 없는 배우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가난과 질병 무지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삶의 곤궁함과 비천함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믿을 것이 많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자기 지식을 믿고 자기 재력을 믿고 자기 경력을 믿습니다.

그러나 믿을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9: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이 비치도다

여기 나오는 스불론땅과 납달리 땅은 갈릴리 지방을 말하는 것입니다..

후에는 해변 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나는 그랬습니다.

병들었습니다

병들었기 때문에 남들은 취직하고 공부를 할 시간에 나는 아무 것도할수 없었습니다.

절망이었습니다.

어둠이엇습니다.

방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초라함과 비참함과 어둠이었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이 비치도다

그러나 전에 고통을 받는 자에게는 흑암이 없다는 것입니다.

후에는 해변 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들은 갈릴리 사람들로서 가난과 무지와 비천함 속에서 고통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 입니다.

철저하게 자기에 대해서 자기가 가진것에 대해서 절망한 사람 자기자신에게는 소망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해서 자기의 능력에 대해서 철저하게 절망한 사람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절망하면 절망할수록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 함으로 진리와 사랑과 생명으로 충만하여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이란 돈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믿을 구석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갈릴리란 고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자신이나 자기 것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신뢰하는 이렇게 고리가 되는 사람은 갈릴리 사람인 것입니다.

저는 내 인생은 허무와 절망에서 시작되었다고 설교를 하였습니다.

육체가 병들었습니다.

노동력도 상실했습니다.

육체도 경제력도 배움도 경력도 내가 세상을 살아갈 만한 그 어떤 것도 믿을 것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고리로 하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되어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믿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가난 속에 육체가 무너지고 육체가 무너지자 정신이 무너지고 정신이 무너지자 절망이 찾아오고 절망이 찾아오자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서 허무감 속에서 가난과 멸시의 땅인 갈릴리 땅을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복음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자기 자신 에게는 절망하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 안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전체가 복음이신 예수에 대해서 시작합니다.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1;1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2;11절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행전1: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1;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우리는 수많은 문제를 가지고 고해와 같은 인생을 살아갑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인생의 정답을 아는 것처럼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자기 지식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인생의 문제를 풀지 못하고 인생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낭비하고 그래서 인생을 실패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낭비합니다.

인생을 방황합니다.

인생을 실패합니다.

인생이 무너집니다.

왜 입니까 복음이신 예수를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살지 않기 때문입 니다.

나는 아니다 라고 나에 대해서 절망하고 이제 지성에서 영성으로 여행을하면서

인생의 수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드디어 인생의 영적인 여행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씀으로 여행을 말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모든 문제를 주관하고 있고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이야 말로 문제의 시작이고 끝임을 인정할 때 우리는 영적인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우리의 영적인 여행을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인생 여행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여행을 하게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죄에서 해방을 주시고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방황하지 않고 길을 찾게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죽음의 삶에서 참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육체를 위해서 노력하고 애쓰는 세상의 물질과 명에와 권력이 자유를 가져다줄 줄 알지만 그것들은 우리를 결코 자유에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그것들을 쫒아 가다가 인생을 실패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대통령도 실패합니다.

장관도 실패합니다.

국회의원도 실패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살아갑니까?

인생의 정답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를 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방황하면서 살아갑니까?

그것도 길이신 예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그렇게 물질의 노예로 죄의 노예 붙잡혀 살아갑니까?

자유를 주기 위해서 오신 진리이신 예수를 모르기 때문에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무거운 짐에 시달리며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왜 삶을 예수로 해석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유명한 사도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잘압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고백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 고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고백이 있었던 곳은 어디입니까?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곳입니다.

이곳은 황제가 도시를 건설한 곳입니다.

역사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도시라는 곳은 인간의 역사는 고작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끝나버립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에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인간의 역사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기에 인간이 무엇을 하든지 인간은 야심과 야망과 야욕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한 세상에서 그 영욕을 향해서 줄달음치다가 죽어가는 인간들에게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살리고 세우려는 사명자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행전18: 5절 말씀입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증언의 핵심은 간단 명료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

예수 그리스도 즉, 예수가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야심과 야망과 야욕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바울 자신이 그렇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길리기아 다소에서 엘리트중에 엘리트입니다.

3: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3: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사도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은 모두 배설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세상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자신있게 증언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 자신이 그렇게 예수님에 의해서 죄와 죽음과 사망에 덫에서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행전13:25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세례 요한은 인생의 막을 내릴 때가 되었음을 요한이 달려갈 길을 마칠 때 라고 표현을 하였습니다.

 

우리말 달려갈 길 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드로모스는 인생 여정을 마치다라는 뜻이고 플레레오는 가득채우다 라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의 인생이 막을 내리는 것을 그가 그의 인생 여정을 가득 채웠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가득 채웠겠습니까?

인생의 자기 인생 여정을 자기 삶으로 채워 가는 것입니다.

누구도 자신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채워줄 수도 없습니다.

이처럼 인생은 자기 책임입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결과를 놓고 남의 탓을 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가치는 인생의 겉모양에 있지 않습니다.

인생의 겉모양이 아무리 화려해도 자신의 인생 여정을 물거품처럼 허망하게 사라져 버릴 욕망과 쾌락의 삶으로 채우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의 인생은 악취가 나는 오물통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를 향해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일평생 가난 속에서 남루한 옷을 입고 살아도 자신의 인생 여정을 생명과 진리로 삶을 채워가는 사람이라면 그의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보물 상자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질그릇 속에 보배라는 말입니다.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 무엇으로 가득 채우며 살았습니까?

전 그랬습니다

절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한숨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온통 허무였고 온통 절망이었습니다.

그런 것으로 가득한 인생이 능력이라는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러한 인간에게 무슨 희망을 말하겠습니까?

내 능력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짓는 능력과 절망하는 능력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삶을 예수의 말씀으로, 예수가 주시는 능력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에게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에게 사랑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근심하는 능력, 절망하는 능력, 분노하는 능력 이것이 우리들의 능력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들의 경험하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바로 가난이 가져다주는 문제입니다.

가난이 가져다주는 근심을 어떻게 할 것인가?

가난이 가져다주는 불안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을 헤쳐나갈 능력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지식으로 윤리로 우리의 종교적인 직분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능력은 오직 그리스도가 주시는 능력으로 밖에 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탐욕에 무너지고 염려에 무너지고 교만에 무너지고 절망감에 무너집니까?

오늘 본문 5절에 나오는 실라와 디모데는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도님들 중에 혹시 지금이 가장 힘들고 절망적인 분이 계십니까?

나는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 예수님은 전혀 나타나시지 않아서 더 힘든 분은 없으십니까?

이제 절망해 버리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런 분이 계시다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절망해 버리고 그것을 고리로 하여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이 능력을 더하여 줄 것입니다.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73:28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욕망으로만 질주하는 이 타락한 도시 한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혼을 소생케 하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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