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 시편 23장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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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에 붙잡혀 행(18:1-8)

 

얼마 전에 이재철 목사님하고 같이 이야기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요사이 jtbc 싱 어게인에 나오는 30호 가수에 대해서 묻기도하고 다른 이야기도 하는 가운데 요사이 그분의 근황을 말씀을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그분도 수많은 책을 저술하시고 하셨지만 결국은 성경밖에 없더라.

그래서 요사이는 성경낭독 녹음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녹음실을 보여 주셨습니다.

홍성사를 통해서 그분의 성경 낭독이 곧 링크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에 그분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목사님의 책을 읽고 설교를 들으면 너무나 다른 차원에서 영적인 깨달음을 갖게 되는데 목사님은 다독입니까 아니시면 깊은 묵상입니까?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다 보인다.

세계 역사가 보이고 인간이 보이고 사건이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저의 신앙고백을 이렇게 합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개입하셔서 내 운명을 설득하시고 내 육체를 설득하시고 내 이성을 설득하시고 나를 이끌어 가시는 과정이다.

신앙이란 내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이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설득을 당하는 것이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쫒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 말씀입니다.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지난 주에 김성철목사님께서 설교중에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덱거의 말을 인용하시면서 ‘언어는 인간 존재의 집’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이덱거의 유명한 말입니다.

저도 사실 금년 들어서 내가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모르지만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 가장 큰 수학이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단어와 문장을 통해서 내 삶의 문제가 정리되고 나의 신앙이 정립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5절 말씀을 다시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오늘 주목해야 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라는 동사입니다.

명사가 생각이라면 동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붙잡혔다는 것은 사로잡혔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 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언 하고 잇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말씀에 붙잡혔기 때문에 그렇게 위대한 복음 전파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속에 입력되지 않는 생각은 행동으로 드러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입력되어 있는 생각은 행동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선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선한 행동을 하기 마련입니다.

악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선하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1:15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이라는 작은 생각이 결국은 죽음을 가져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타락한 인간을 홍수로 심판하실 때 타락한 인간을 심판하시는 기준의 내용이 나옵니다.

창세기 6:5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생각하는 모든 기준이 악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죄악이 가득함과 마음과 생각하는 것이 다 악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과 말씀에 대한 생각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승천 하신 이후에 성령님께서

요한 14:26절 에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의 말씀을 담고 살아가는 사람은 보혜사 성령께서 모든 것을 생각나게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충만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산기도 가서 악을 쓰면서 기도 많이는 사람입니까?

청산 유수처럼 말을 잘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영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성령 충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에 두드려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습관적인 종교인일 뿐이다.

그런 사람은 오래 다니면 다닐수록 믿음은 더 없어집니다.

자기 생각 자기 고집만 더 강화시킬 뿐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해서 믿음이 더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했지만 내 마음 속에 근심과 염려와 불안으로 새해를 맞는다면 여전히 묵은 해의 반복일 뿐입니다.

 

저는 고백하기를 내 인생은 허무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저는 고백합니다.

가난이 주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가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병들어서 살아가는 ‘나’라는 인간의 실존은 근심과 염려와 불안과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몸부림치면서 허무에 붙잡혀 살아갔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이러한 언어가 나의 존재의 집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에게 갇혀서 살아갔다는 말입니다.

 

하이덱거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인 키엘케골은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하이덱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표현을 하였고 키엘케골은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매일 근심 속에 살고 매일 염려 속에 살고 매일 불안 속에 살고 매일 허무 속에 살고 매일 고독 속에 살고 이런 생각들의 존재의 집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나의 삶이었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지만 실상은 죽음으로 떠내려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병들었는데 염려 안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내가 지금 부도가 났는데 근심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지금 내가 암병에 걸렸는데 절망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절망이라는 병에 걸려서 죽음에 이르지 않겠습니까?

 

지난해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6개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하루 평균 37.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입니다.

 

통계청이 24일 발표한 '2018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에 의한 사망자 수는 총 1만3670명으로 전년보다 1207명(9.7%) 증가했다.

저도 20대 때 자살을 생각했기 때문에 그 심리적인 상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키엘케골의 말을 저는 이해합니다.

무엇이 절망으로 이끌고 절망이라는 병이 죽음으로 이끌어 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때 나에게 생각이라는 것이 양심적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왜 내가 살아있음으로 내 가족들이 고생을 하기때문에 내가 사라져 줘야 덜 고생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윤리가 아님을 압니다.

신앙은 지식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의 사건이 바로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윤리화 해서는 안됩니다.

신앙을 지식으로 착각 해서도 안 됩니다.

지식이 있다고 신앙을 갖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성에서 영성으로 옮겨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온통 근심과 염려와 불안과 고독과 허무 속에 살아가는 나에게 무슨 희망이 있었겠습니까?

이 존재의 집안에 갇혀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존재의 집을 헐어 버리면 되는데 그 방법을 몰랐던 것입니다.

나를 가두고 있는 근심이라는 집. 염려라는 집. 불안이라는 집에서 탈출을 하면 되는데 탈출 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그런데 나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만 알면 자유케 되는데 나는 예수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나를 가두고 있는 집에서 그렇게 몸부림치면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를 가두고 있는 우리들의 생각 존재의 집인 그 생각의 감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자살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자살률 세계 1위가 아니겠습니까?

요한복음14: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진리 되신 예수를 알았더라면 나의 존재의 집인 허무에서 염려에서 불안에서 절망에서 해방되어 자유의 삶을 살지 않았겠습니까?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났더라면 내가 근심이라는 감옥에서 해방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 하나 해결을 하지 못하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염ㅂ려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우리 들에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 할 수 있겠느냐

28: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자주 설교 중에 인용했던 예호입니다.

헛셀 포드 목사가 쓴 <참새와 물새의 대화>라는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물새가 참새에게 말을 걸었다.

"참새야, 저 아래 땅 위에서 허덕거리며 걸어 다니는 인간들의 모습을 봐. 저 아우성치며 허우적거리면서 사는 인간들의 꼴을 보란 말이야"

이 말을 들은 참새가 대꾸했다.

"물새야, 아마 쟤들은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없는 모양이지?"

 

염려는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염려하게 되면 점점 더 소심하게 되고 두려움만 늘어나게 됩니다.

의학적으로 살펴보면 근심, 걱정, 염려를 즐겨하는 사람은 저항력이 떨어지고, 병이 많이 생깁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질병은 심장병인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30만 명이 전사했을 때, 같은 기간 동안 200만 명의 사람들이 심장병으로 죽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200만명 중에서 절반인 100만 명은 남편이나 애인,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뒤 정신적 긴장과 불안, 염려로 인하여 심장 질환이 발생하여 죽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벧전5;7)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주님께 아뢰라.”(빌4;6)

문제는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가?

물새도 참새도 돌보시는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근심의 밥에 걱정의 국, 그리고 염려의 반찬으로 매일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고후 5: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새로운 생각을 갖고 살아 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무엇이었습니까?육신의 생각 육신을 위하여 생각하는 것들이 가져다 주는 모든 생각들 말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그래서 생기는 모든 생각들이 여러분이 살고있는 집이 아닙니까?

진리를 모르고 근심이라는 감옥에 염려라는 감옥에서 불안이라는 감옥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모르고 길이신 예수님이 없기 때문에 인생을 방황하는 것이 아닙니까?

시간을 낭비하고 물질을 낭비하고 인생을 낭비하면서 절망하고 살아가면서 인생을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생각을 담고 살아가는 사람이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사람이 위대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사람의 기도가 위대한 기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사람이 근심을 떨치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잊어보자고 술을 먹는 것이 아닙니까?

허무해서 고독해서 술을 마셔 보지만 허무의 자리가 메꾸어지던가요? 아니면 허무의 자리가 더 커지던가요?

기도한다고 하지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수준의 욕심으로 기도하는 기복주의 신앙을 가지고 기도하는 그런 분들이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까요 그 분들이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까요? 그 분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서 기도할까요?

우리가 예수 앞에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가져다주는 것은 모두가 나를 절망으로 이끌고 가는 생각들이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287장

예수 앞에 나오면 죄사함 받으며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 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찬송 : 390장 예수가 거느리시니

(1)

예수가 거느리시니 즐겁고 평안하구나

주야에 자고 깨는 것 예수가 거느리시네

주 날 항상 돌보시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

주 날 항상 돌보시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

 

나를 가두고 있는 집에서 해방을 받기 위해서 예수앞에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매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면서 물새와 참새만도 못하게 살고 있다면 나를 거느리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16:13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나를 근심으로 몰고 가고 나를 염려로 몰고 가고 나를 절망으로 몰고가고 자살로 몰고 가는 세력이 나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고전15:55절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 5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방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를 감싸고 있는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존재의 집을 짓고 이제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무엇에 붙들려서 살아갑니까?

당신의 생각이 가져다주는 염려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서 평안입니까?

당신의 생각이 가져다주는 미움의 감정 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살아가는 용서와 사랑입니까?

저는 히브리서 11:1절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희망을 살았습니다.

저는 빌립보서 4:13절의 말씀을 붙들고 나라가 부도가 나고 교회가 부도가 나고 우리 가정이 부도가 났지만 가난에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7년 165번의 송사에 시달릴 때 내 감정을 붙들고 내 기질을 붙들었다면 나는 무너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입니다.

고후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왜 바울이 이런 삶을 살았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기에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여유로워지고 편안하여지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기커녕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는 어리석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오래 다녔던 교우들이 무너집니까?

그런데 역으로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집은 어떤 집입니까?

마4:4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떡 때문에 우리는 절망하고 떡 때문에 우리는 싸우고 떡 때문에 우리는 교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방을 받고 이제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을 붙들어야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마7:24: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오늘 나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 교만한 내 생각인데 왜 내 생각을 붙들고 교회 생활만 열심합니까?

무엇이 내 신앙을 무너뜨렸습니까?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횟수가 믿음을 보장해 주던가요목사라는 타이틀이 장로라는 타이틀이 무너지지 않게 하던가요?

아닙니다!!!

말씀에 붙들리지 않는 교만함이 자기 자신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인간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한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다시 죄악 된 자기 생각으로 존재의 집을 짓고 살아 간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아니다라는 자기 부인 없이 주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욕심만 부인하고 말씀을 붙들었다면

교만함을 부인하고 말씀을 붙들었다면

가벼운 자기생각을 부인하고 말씀을 붙들었다면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을것입니다.

갈3:3절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자기 생각을 부인하지 않고 말씀을 붙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근심하고 염려하고 있는 당신이라면 예수 앞에 나와서 자유를 경험하고 해방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여 다시 교만하여 욕심 때문에 말씀을 버리고 육체로 마치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절망하는 당신이라면 이제 새로운 존재의 집을 하나님의 희망의 말씀으로 새로운 집을 지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여러분의 실존 다시 말해서 여러분이 지금 당신을 붙들고 있는 것이 생각 무엇입니까? 존재의 집말입니다..

육신의 생각입니까 아니면 영의 생각입니까?

하나님이 없는 나라는 죄된 인간의 생각이 가져다 주는 모든 생각이 바로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갈5:

19: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오늘 내 생각에 대해서 절망을 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나는 정답이 아니다.

예수 안에서 주어지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나를 가두고 있는 절망의 집에서 해방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존재의 집을 짓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살아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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