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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 학가다 말씀 *
  •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 사무엘상 17:47 (여/이) 8월15일~ 20일 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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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14강

제목 : 선으로 악을 이기라

본문 : 요한계시록6:9~11

 

우리는 지난주에 6:1~8절까지 일곱인 심판 중에 첫째 인에서부터 넷째 인까지 심판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첫째인 심판은 흰 말과 그의 탄 자입니다. 이것은 국가 간의 전쟁을 상징하는 심판입니다. 둘째인 심판은 붉은 말과 그의 탄 자입니다. 이것은 한 국간 내에서 발생하는 내란이나 폭동을 상징하는 심판을 말합니다. 셋째인 심판은 검은 말과 그의 탄 자로 이것은 기근을 통한 식량 대란의 심판입니다. 넷째인 심판은 청황색 말과 그의 탄 자로 이것은 전염병의 심판을 말합니다. 이 네 가지 흰 말, 붉은 말, 검정 말, 청황색 말로 상징하는 전쟁, 내란, 기근, 전염병의 심판은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심판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이 네 마리의 말 탄 자의 심판을 매일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신문 등의 뉴스를 통해서 끊임없이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구촌의 소식 가운데 전쟁, 폭동, 기근과 식량 대란, 전연병에 대한 뉴스를 보고 들을 때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첫째 인에서 넷째 인의 심판을 떠 올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현재 인류 역사 속에 나타나고 있는 전쟁, 내란과 폭동, 기근, 전염병의 현상을 단지 기후변화나, 종교분쟁, 혹은 정치가들의 잘못된 정책이나 민족주의의 확산으로 일어나는 우연한 일들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류의 미래는 4차산업혁명과 같은 정보 통신과 과학의 발달, 의료 기술의 혁신 등으로 인해 아주 잘 될 것이라 믿습니다. 특별히 21세기 과학 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인류는 지상에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는 우리는 전쟁과 내란과 기근과 전염병의 소식들을 들을 때마다 이것이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알고 종말을 준비하면서 죄를 회개하고, 깨어 의를 행하며, 진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관은 철저히 종말론적 역사관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종말은 사탄과 그를 따르는 악한 자들의 종말입니다. 또한 그날은 선이 악을 이기는 날이요,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날이요, 동시에 죄와 사망이 심판을 받는 날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영원한 진리의 나라인 새 하늘 새 땅이 도래하며,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완성됩니다.

 

오늘 말씀은 다섯째인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9~10절 말씀입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다섯째인 심판은 지금까지의 심판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첫째~넷째인 심판의 무대는 땅이었으나 다섯째인 심판의 무대는 하늘로 옮겨집니다.

 

먼저 어린양이 다섯 번째 인을 떼자 순교자들의 영혼이 하늘 성전의 제단 아래에서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순교자들의 영혼이 하늘 성전의 번제단 아래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본래 지상 성전의 번제단은 속죄의 피가 부어진 곳입니다. 그리고 ê·¸ 피는 성도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지금 순교자들의 영혼이 하늘 번제단 아래에 있다는 것은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신 예수님처럼 그들도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았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25)ê³  했습니다. 순교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다가 제 목숨까지 잃었습니다. 그러나 목숨은 잃었는데 사실 잃은 것이 아니라 찾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늘성전 번제단에서 예수님이 준 승리와 영광의 흰 두루마리를 입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순교자들은 죽었지만 살았습니다. 첫째 사망은 누구든지 죽습니다. 자연사하든지, 질병으로 죽든, 사고로 죽든, 순교로 죽든지 누구든지 첫째 사망은 다 겪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 번 죽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죽음 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자신의 삶을 결산하고, 죄가 있다면 둘째 사망 곧 지옥에 던져지는 영원한 죽음이 또 한 번 기다리고 있습니다. 의인은 한 번 죽으면 그것으로 끝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한 번 죽는 것으로 끝내고 바로 영생으로 들어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순교자들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마10:28) ê³  했습니다. 순교자들은 죽었지만 살아서 하늘 번제단 아래에서 악의 종말과 새 하늘 새 땅의 도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순교자들은 죽임을 당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죽었습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예수님을 증거한 삶 때문에 순교했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첫 순교자 스데반과 12 사도 중 첫 순교자 야고보가 왜 죽임을 당했습니까? 더불어 교회사의 모든 순교자들이 왜 죽임을 당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고, 예수님을 증거 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감리교 신학교의 이덕주 교수님은 순교에 대해 세 가지로 정의했습니다. 첫째 죽음 자체가 복음 증거와 연관이 되어야 한다. 사고사, 졸도, 질병에 의한 죽음이 아니다. 둘째 순교자의 죽음은 박해자에 의해 피살되어야 한다. 셋째 회유나 회피가 가능하지만 유혹과 위협으로부터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스스로 선택 해야 한다. 이렇게 주와 복음을 위해 살다가 박해자들에 의해 피살당하는 순교자들이 많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그들의 죽음은 비참합니다. 때로 가족과 교우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을 안겨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증거 하다가 순교한 자들의 삶은 오히려 교회에 믿음 힘을 넣어주고 부흥의 불씨가 됩니다.

 

초대 교부 터툴리안은 교회는 순교의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타락하고 쇠퇴하고 무너져 갈 때 깨어서 복음을 증거 하다가 순교의 피를 흘린 그 한 사람의 삶으로 말미암아 다시 교회를 순결하게 하고 복음의 능력을 회복시키십니다. 순교자의 피가 뿌려질 때 교회는 다시 담대하게 일어섭니다. 순교자의 피가 교회를 다시 세웁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도 순교자가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저도 그 속에 포함되기를 원합니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는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뿌려지고 있습니다. 북한에는 30만 명의 지하교회 성도가 있습니다. 그중 2006년에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 중에 16,984명이 순교했다고 합니다. 현재 북한에는 최소한 5만 명의 기독교 신자가 수용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2021년에 미국 고든-콘웰 세계기독교연구센터는 최근 박해받는 크리스천에 대한 연례 보고서를 통해 지난 10년간 전 세계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키려다 순교한 크리스천의 수가 90만 명에 달한다고 보도했습니다. 또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에는 총 9만 명이 순교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6분마다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 신앙을 이유로 순교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전쟁과 전투, 우발적인 살인과 집단 학살을 통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혹은 복음을 증거 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순교자들이 나오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WWL(World Watch List:세계 기독교 박해 순위) 2020년 연간 보고에 따르면 73개국에서 극심하게 높은 수준의 박해가 일어났으며, 이중 상위 50개국에서는 2억 6천만 그리스도인이 심각한 박해를 경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편안한 환경에서 신앙생활하고 있기에 현재 세계적으로 교회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고 기독교인들 안에 어떤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오직 우리 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이 마치 기독교의 모든 세계인 것처럼 여기며 믿음 생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광주동광교회의 60년 역사가 기독교의 모든 역사가 아닙니다. 광주에 있는 교회들의 소식들이 기독교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의 눈이 전 지구촌으로, 우주적으로 열려야 합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지금도 상상할 수 없는 박해와 무차별적인 테러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고,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고, 심지어 생명까지 잃는 아픔을 겪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분발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넓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헌신과 수고가 더 깊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악인들에게 억울한 고난을 당하다가 순교까지 한 성도들은 지금 하늘의 번제단 아래에서 어떤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지금 큰 소리로 울부짖으면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순교자들은 하늘 성전 번제단에서 자신들의 억울한 피를 갚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사적인 복수를 호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빨리 실행해 달라는 호소인 것입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였을 때 하나님은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ì°½4:10) ê³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지상에서 억울하게 죽은 가인 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의인들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호소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더불어서 천상에서도 순교자들의 핏소리가 하나님께 매일 호소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악한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의 피를 빨리 갚아 주십시오!” 하나님은 매일 의인들의 피가 땅에서 호소하고 하늘에서는 순교자들이 자신들의 피를 빨리 갚아 달라는 기도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매일 매일 악인들을 빨리 심판해 달라는 의인들의 호소가 하늘 보좌에 상달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매일 이 한 맺힌 기도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반드시 심판하지 않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다섯 번째 인을 뗄 때 세상에 대한 심판은 없고 하늘에서 의인들의 핏소리가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호소하는 장면만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다섯째인 심판은 지상에 심판이 가해지지 않고 하늘에서 순교자들의 핏소리가 한 맺힌 기도로 하나님께 공의를 실행해 달라는 기도 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앞으로 지상에 임할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의 성격이 얼마나 무섭게, 두렵고, 엄청나게 벌어질지를 예상하게 해 줍니다. 그래서 의인들의 핏소리가 하늘의 번제단에서 우리의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에 대한 응답으로 여섯째인 심판은 이렇게 펼쳐집니다.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싼 상복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떨어지며...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심판을 낳습니다. 중요한 것은 의인들의 핏소리가 반드시 응답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곧 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ê·¸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11절) 주님은 순교자들의 기도에 대답하시기를 너희는 흰 두루마리를 입고 잠시동안 쉬라고 하십니다. 흰 두루마리는 승리와 영광을 상징합니다. 순교자들은 이 땅에서는 쓰레기 취급받고, 벌레 취급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흰 두루마리를 입고 승리와 영광의 자리에서 왕 노릇 하며 쉬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순교자들의 기도에 대해서 순교자들의 수가 차기까지 잠시 동안 쉬라고 말씀하신 의미가 무엇일까요? 순교자들의 수가 아직 덜 찼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세상의 악이 아직 덜 찼다는 뜻도 됩니다.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창세기 15장 16절에 있습니다.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이 말씀은 가나안 땅을 심판하려고 하는데 아직은 때가 차지 아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400년이 지난 후에 ê·¸ 땅의 죄악이 가득 ì°° 때 이스라엘 자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실행하겠다고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실행하는 때가 역사 속에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악의 행위들을 봅니다. 악인들의 천인공노할 범죄가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악인들이 저렇게 까불고 있는데, 악인들 저렇게 득의만만하게 죄를 저지르면서 의인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죽이고 있는데 하나님은 무엇하고 계십니까? 이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최고의 질문입니다.

 

시편 42편에 ë³´ë©´ 악인들이 의인을 향해서 종일토록 조롱했습니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더니 네가 어찌 그리 쫄딱 망했냐? 심판하신다던 네 하나님이 주무시고 계시냐 졸고 계시냐?” 원수들의 비방하는 이 소리는 마치 뼈를 찌르는 칼같이 시편 기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때 시편 기자는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72편 아삽의 시에서도 의인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ë³´ê³  오만한 자들을 질투하였음이라.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ê·¸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시73:2~9) 악인들이 얼마나 득세합니까? 악인들이 잘되고 형통하기까지 하는 것을 ë³´ê³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합니다. 적자생존의 세계라고 합니다.

 

그러나 의인은 마침내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고 믿음으로 외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하늘 보좌에서 역사를 하나님의 섭리와 뜻 가운데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한나는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들에게 이런 믿음의 찬양과 신앙고백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세상의 악이 찰 때에 불현듯 심판의 칼을 드시고 세상을 공의로 재판하실 것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이런 말 있습니다. “하늘의 법망은 크고 넓어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악인은 빠짐없이 걸러낸다 악행을 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터득한 노자도 악인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고 하는데 하물며 성경의 말씀이 틀릴 수 있겠습니까? 지상에서 행해지고 있는 악은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하늘의 법망을 피할 수 있는 악인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반드시 악은 심판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악인들에 의해 박해받고 고난당하고 심지어 순교까지 당해야 하는 성도들은 악인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박해받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1~12) 주님은 우리가 원수들에게 욕먹고 박해당하고, 순교당할 때에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받을 하늘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더불어서 성경은 성도들이 개인적으로 원수를 갚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ê·¸ 이유가 무엇입니까? 때가 되면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원수들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장 19~21절 말씀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ê·¸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 악에게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공의를 실행하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친히 내 손으로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집시다.

 

저는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는 이 말씀이 너무나 크게 은혜가 됩니다. 우리가 친히 내 손으로 원수갚으려고 하면 원수보다 더 악해져야 하고, 원수보다 더 독해져야 하고, 원수보다 더 음모와 술수에 능해야 하며, 원수보다 더 잔인해져야 합니다. 만약 내 손으로 원수를 갚고자 한다면 결심하는 그 순간부터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삶의 감사를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대신에 내 가슴에 미움과 분노와 잔인한 감정을 채워야 합니다. 살기를 채워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영혼이 먼저 망가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수에게 피뭍히는 것은 내가 하겠다. 원수에 대한 심판은 내가 하겠다. 너는 원수를 갚지 말고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렇게 해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은 악에 대해서 도망치지 말고, 오히려 선으로 악을 대항하고, 감사로 악을 대항하고, 사랑으로 악을 대항하고, 온유로 악을 대항하고, 자비로 악을 대항하고, 긍휼로 악을 대항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악인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 놓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악을 선으로 대항할 때 악인들의 얼굴을 뜻뜻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선이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머리에 하나님의 진노 불을 더 크게 타오르게 해서 어느 순간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 그들의 삶을 소멸시켜버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악인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고통을 줄수록 우리는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빛이 어둠을 이기고 진리가 불의를 이깁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다섯째인 심판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필연성과 정당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바로 의인들을 죽인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원수 갚음입니다. 둘째, 최후의 심판의 시기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음을 보여줍니다. 최후 심판의 날은 순교자의 수가 차기까지 로 표현된 때입니다. 이때는 오직 주님만이 아시고 계십니다. 반면에 지상에서 믿음으로 살다가 낙원에 들어간 성도들의 영혼은 잠시 동안의 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ê·¸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4)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수고하고 애쓴 우리의 모든 헌신은 하늘에서 쉼을 얻는 시간으로 보상받고, 새하늘 새 땅이 열릴 때 우리는 새 몸을 입고 영원한 안식과 복락을 누리며 세세토록 왕노릇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절하고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구속사를 대적하면서 사는 자들에게는 마지막 날 공의로운 심판이 있을 것이며,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는 둘째 사망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주와 복음을 위한 믿음의 삶만이 영원한 축복의 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바울 사도는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죽의 것이로다”(롬14:8~9)ê³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니 하나님의 이름과 ê·¸ 영광을 위해 살고자 다시 한 번 결단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와 복음을 위한 삶만이 영원히 남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고난 중에도 담대 합시다. 환난 중에도 담대 합시다. 질병 중에도 담대 합시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겼듯이 우리도 선으로, 진리로, 사랑으로, 담대하게 세상의 악을 이깁시다. 주님은 매일 하늘의 번제단에서 순교자들의 핏소리가 하나님의 공의를 빨리 시행해 달라는 기도 소리를 듣고 계시고 땅에서는 의인들의 피가 호소하는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다섯째 인은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실행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의 종말이 매일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이 칠흑같이 어두울수록 새벽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빛의 갑옷을 입고 깨의 의를 행하면서 이번 한주도 진리의 길을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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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전세대통합예배 (제목: 죽고 사는 것 혀의 힘에 달렸다) 김성철 2022.04.24 70
48 부활주일말씀(제목: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김성철 2022.04.20 32
47 세례주일말씀(제목: 세례의 의미) 김성철 2022.04.09 46
46 요한계시록6강(제목: 죽도록 충성하라) 김성철 2022.03.27 61
45 요한계시록5강(제목: 첫 사랑을 회복하라) 김성철 2022.03.22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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