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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 학가다 말씀 *
  •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 사무엘상 17:47 (여/이) 8월15일~ 20일 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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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13강

제목 : 역사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본문 : 요한계시록6:1~8

 

오늘부터 살펴보게 될 6~16장은 일곱 인, 나팔, 대접 재앙 시리즈입니다. 이것은 종말의 때에 있게 되는 역사의 현상과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실 6~16장까지의 일곱인, 나팔, 대접 재앙의 환상은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일곱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의 심판 시리즈를 읽으면서 난해한 상징 언어와 두려움을 주는 심판 내용으로 공포감에 휩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곱인, 나팔, 대접 재앙 시리즈를 읽으면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 모든 재앙이 교회를 향한 심판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10재앙 심판이 내려질 때, 네 번째 재앙인 파리재앙부터는 애굽과 이스라엘 지방을 분리시키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마지막 10번째 재앙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서 장자 재앙을 가져오는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게 합니다. 이것은 마지막 때에 이루어지는 심판에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보호 하심과 구원의 은혜가 무엇인지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일곱인, 나팔, 대접 재앙을 실행하시는 분이 우리를 자기 피로 사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드린 예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누가 일곱 인을 뗍니까?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일곱인, 나팔, 대접 재앙을 진행하고 계시다면 그 심판은 정확하며, 실수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심판을 진행하고 계시기에 그의 피로 구원받은 우리는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더불어서 그 심판은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는 가운데서 예수님의 주권과 통제하에서 시행되고 있기에 안심이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심판의 주님이 우리를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구원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 사랑 많으신 분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양들을 심판의 때에 피할 길도 열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은혜가 풍성하신 우리 주님께서 세상을 심판하는 중에도 믿음의 성도들을 보호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내 사랑하는 자녀들인데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습니까? 고린도전서 10장 13절 현대인 번역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여러분이 시험 당할 때에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셔서 감당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마지막 종말의 때에 그 두려운 심판이 진행되는 중에도 택함받은 자녀들에게는 피할 길을 마련해 주시면서 심판을 진행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6~16장까지 펼쳐지는 심판의 내용들을 읽을 때 이 심판의 집행자가 어린양이신 예수님이심을 알게 될 때 평안한 마음과 안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마지막 때에 펼쳐지는 두려운 심판의 고난에도 주님을 붙잡고 넉넉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첫째 인을 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2절 말씀입니다.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첫째 인을 떼자 흰 말과 그 탄 자가 활과 면류관을 가지고 등장합니다. 첫 번째 인이 보여주는 것은 종말의 때에 벌어지는 국가 간의 전쟁을 상징합니다. 고대의 말과 활은 전쟁의 도구들입니다. 특히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은 기병대의 모습입니다. 요즈음 전쟁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탱크나 비행기 또는 잠수함 미사일입니다. 그러나 고대에는 활이나 칼 또는 창을 가지고 전쟁을 했으며 말을 타고 활 쏘는 기마병은 강력한 최첨단 전투 무기였습니다. 특히 흰 말은 전쟁에서 승리를 상징합니다. 우리가 반지의 제왕을 보면 마법사 간달프가 흰 말을 타고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오크 군대를 멸하는 것을 봅니다. 당시 로마 장군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식을 할 때는 언제든지 흰 말을 탔습니다. 그래서 흰색 말은 국가 간에 전쟁할 때 서로가 이기고 또 이기려는 승리의 의지를 상징합니다. 이것을 볼 때 국제적인 전쟁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성격이 있습니다. 국가 간의 전쟁이 표면적으로 보면 국제관계에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방편인 것 같지만 더 깊은 내면 속에는 바로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성격이 있습니다. 과거의 수많은 국가 간의 전쟁과 1차 2차 세계대전은 타락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다음 둘째 인을 뗄 때에는 어떤 심판이 열립니까? 3~4절 말씀입니다.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어린 양 되신 예수님께서 둘째 인을 떼시자 붉은 말과 그 탄 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고 서로 죽이는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특별히 붉은 말 탄 자가 큰 칼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말 탄 자가 가지고 있는 큰 칼은 땅에서 평화를 제하여 버리고 서로 죽이는 도구로 사용되는 전쟁 도구입니다. 따라서 붉은 말의 붉은 색은 핏빛 색깔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첫째 인을 뗄 때 나오는 흰 말도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고, 둘째 인을 뗄 때 나오는 붉은 말도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 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이 두 가지가 다 전쟁을 상징하는 것이지만 이 두 전쟁은 엄격한 의미에서 서로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흰 말은 국가 간의 전쟁 상태입니다. 그러나 둘째 붉은 말은 국가 내에서 일어나는 내란과 폭동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국가 내에서 서로 죽이는 내란이나 쿠데타 또한 하나님의 심판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국가 내의 집단들 사이 혹은 계층 사이에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갈등들이 증폭되면 내란 폭동의 사태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국가 내의 내란이나 폭동 또한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건을 주관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어린양이십니다. 국가 내의 계층 간, 집단 간의 소요 사태나 내란에도 하나님의 심판적 성격이 있습니다. 요즘 미얀마의 내전, 아프카니스탄 내의 민족간의 전쟁, 나이지리아 내전 등 수많은 나라들 안에 지금도 국가 안에서 내전과 폭동과 쿠데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보아도 진보와 보수의 갈등, 동서의 지역갈등, 남과 북의 이념대립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수 순천 반란사건, 6.25동란, 4.19혁명이나 5.16군사쿠데타 그리고 5.18 광주사태가 있었습니다. 같은 민족 안에도 끔찍할 정도의 살육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있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겪는 내란은 집단과 계층의 욕심과 탐욕 때문에 생기는 불상사이지만 이러한 상황 또한 그 민족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사실입니다.

 

셋째 인을 뗄 때에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5~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어린 양이 셋째 인을 떼자 검은색 말과 그 탄 자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말 탄 자의 손에는 저울이 들려 있습니다. 저울은 물건을 달아 줄 때 쓰는 도구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셋째인 심판은 기근을 상징합니다. 물건을 달아서 준다는 것은 기근으로 인한 극심한 식량의 부족함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특별히 양식을 저울에 달아 준다는 것은 양식이 부족하여 배급해 주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극심한 양식 부족 현상은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라는 말속에서 더욱 확증됩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노동한 한 사람이 온종일 일해서도 밀 한 되라는 말은 그 상황이 기근이나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보리는 가축이 먹는 사료용인데 그것까지도 저울에 달아 사람의 식량을 판다는 것은 그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줍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장면 한 그릇 값이 십만원이고 라면 한 개가 오만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일반 서민들이 살아내겠습니까? 이것은 물가가 평상시보다 8배 내지 16배가 폭등 된 상태입니다. 기근으로 인해 양식이 얼마나 비싸게 거래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아직 기근이 심각하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 모든 계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줍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밀 보리에 비해 값이 비쌉니다. 이러한 감람유와 포도주를 마음껏 쓸 수 있는 계층들은 밀과 보리의 폭등에도 서민들보다 그렇게 경제적인 타격을 받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나라도 상류층은 언제나 호화호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역사입니다.

 

이와같이 세 번째 검은 말이 나타나는 상황은 인류 역사를 이해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인류 역사는 어떤 면에서 가난과 빈곤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눈물 나는 노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공산주의가 왜 생겨났습니까? 경제적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하는 이론입니다. 공평한 분배를 통해 함께 잘 살고 잘 먹자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공산주의 혁명을 가져왔지만 오히려 독재자를 출현시켜서 가난과 빈곤을 오히려 더 심하 시켰습니다. 현시점의 역사를 보더라도 가난은 아직까지 선진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의 고통 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번 우크라이나 러시아와의 전쟁은 세계 곡물 시장의 공급을 무너뜨렸습니다. 벌써부터 가난한 나라들인 아프리카나 스리랑카 등에서는 폭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류가 달을 내 집 드나드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가난과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루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1년 동안 기아로 숨지는 사람의 숫자가 5백만 명, 하루에 약 13.700명, 6,4초당 한 명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약 1억 5천 3백만 명의 어린이들이 학교도 가지 못하고 식량을 구하고자 힘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게임중독 청소년 문제등으로 야단이지만 여전이 한쪽에서는 기근으로 가난으로 고통하면서 굶어 주어가는 인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기근과 빈곤 또한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사실입니다.

 

넷째 인을 뗄 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7~8절 말씀입니다.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어린양이 넷째 인을 떼자 청황색 말과 ê·¸ 탄자가 등장합니다. 말의 색깔이 청황색입니다. 이는 시체의 색깔로서 아주 음산하고 기분 나쁜 색입니다. 그래서 탄자의 이름도 사망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넷째 말 탄자의 등장으로 지상에 검과 흉년과 사망, 땅의 들짐승으로 지상의 인구 1/4이 죽는 참상이 벌어집니다. 이것은 앞에 나온 내용들을 종합하여 새로운 내용을 하나 추가하는 격입니다. 흰말이 국가간의 전쟁이고, 붉은 말이 같은 민족 안에서 일어나는 내전이며, 검은 말이 기근이라면 ê·¸ 결과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은 사망입니다. 그러면 이 사망은 무엇일까요? 에스겔 14장 21절 말씀을 통해 사망이 무엇인지 해석할 수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ê·¸ 중에서 끊으리니 ê·¸ 해가 더욱 심하지 아니하겠느냐”(겔14:21) 바로 요한계시록 6장 8절은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이라고 했는데 에스겔서에는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이라고 했습니다. 즉, 에스겔서는 사망을 전염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네 번째 인을 떼자 나타난 청황색 말 탄 자는 전염병 심판으로 수많은 사람을 사망으로 떨어지게 합니다. 중세시대 때 유럽 인구 1/3이 흑사병으로 죽었습니다. 또한 유럽의 스페인 포르투칼인들이 남아메리카의 마야, 아즈텍, 잉카 문명을 가진 원주민들을 정복할 때 칼이나 총으로 죽인 인구보다 유럽 천연두로 인해 남미 원주민 90%가 죽었습니다. 또한 100년 전인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5천 만명이 죽었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5억6천만명이 감염되었고 635만명이 죽었습니다.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도 요한계시록은 분명하게 예수님이 행하신 종말의 심판 중 또 하나의 징표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의 활동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전쟁, 내란과 폭동, 기근과 전염병은 인류 역사 속에 늘 되풀이되고 있는 재난의 내용입니다. 또한 현재적 우리의 인류 역사 속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재난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 역사를 늘 이런 식으로 심판해 오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첫째 인에서부터 넷째 인을 떼면서 나타나는 심판은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타락한 인류 역사는 전쟁과 내란 폭동의 역사입니다. 둘째 타락한 인류의 역사는 기근과 배고픔의 역사입니다. 셋째 타락한 인류의 역사는 질병과 전염병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종말의 기간 동안 이 세상은 지속적으로 전쟁, 기근, 전염병의 심판이 반복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종말이 가까울수록 이런 심판의 강도가 점점 더 쎄게, 더 자주, 더 광범위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최후의 심판의 때에는 주님이 오셔서 세상 나라를 멸망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을 난해한 성경책, 특별한 계시를 받은 사람만이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난해한 책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심판의 내용은 일반사람도 아는 내용입니다. 이미 공개되었습니다. 이미 인류 역사에 다 일어나고 있고, 지금 우리가 다 겪고 있는 내용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흰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은 이상한 계시의 내용이 아니라 단지 인류 역사에 지속적으로 일어났던 전쟁, 기근, 전염병으로 인한 심판의 내용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삶속에 늘 있는 내용들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언젠가 일어날 판타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많은 이단들은 종말의 때의 심판의 내용들이 감추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직통계시를 받은 자기들만이 요한계시록을 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아직 인류 역사 속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 신비한 내용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속에 인류의 과거의 역사속에 늘 있어 왔던 내용들입니다. 적그리스도가 누구입니까? 요한계시록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요한1서, 2서에만 나옵니다. 요한1서 2:2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도니 요한2서 1:7절에 또 나옵니다.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적그리스도 하면 우리는 교황이나, 히틀러, 푸틴, 혹은 세계경제를 좌지우지 하는 비밀스러운 어떤 기업의 CEO 등 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 미혹하는 자, 거짓말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 비밀스럽게 복잡하게 신비롭게 해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났다고 해서 떨지 말라고 했습니다. 환난과 핍박이 있고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고 불법이 성하고 사람의 사랑이 식는 현상들은 아담 때부터, 노아시대, 아브라함의 시대의 소돔과 고모라에서, 구약의 시대 북이스라엘의 아합의 시대에, 남 유다의 므낫세의 시대에 그리고 신약시대에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종말의 때에는 이런 현상들이 더 심해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종말의 때일수록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그대로 거하라’(딤후3:14)ê³  했습니다. 지금까지 배운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의 복음, 부활의 복음을 붙잡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살면 됩니다. 늘 했던 대로 새벽기도하고, 주일을 지키고, 말씀을 묵상하고, 하가다 하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로 물질로 헌신하고, 열심히 직장 다니고 사업하면서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고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면 됩니다.

 

바울사도는 마지막 종말의 때를 맞이하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8) 종말의 때가 왔다고 특별한 신앙생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성도들이 종말을 두려워합니다. 종말이 언제 옵니까? 어떻게 옵니까? 주님은 어디로 오십니까? 무엇을 해야 합니까? 두렵습니다. 떨립니다. 재산을 팔아 교회에 받쳐야 합니까? 직장생활 그만두고 기도원에 들어가야 합니까? 벙커를 만들고, 화성으로 이주하는 그런 노력을 해야 합니까?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그런 말씀 없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우리는 이미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해왔던 ê·¸ 믿음의 삶을 흔들리지 않고 견실하게 그대로 행하라고 했습니다.

 

왜요? 우리가 주안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신앙생활 가짜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안에서 해왔던 모든 삶은 헛되지 않습니다. 물론 차지도 뜨겁지도 않는다면 회개해서 신앙의 뜨거움을, 열정을,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깨어 기도하고, 전도하고, 말씀에 순종하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그런 삶을 살고자 몸부림치면서 믿음으로 살고 있다면 지금 하고있는 직장생활, 사업, 가정생활, 교회에서 하는 섬김과 봉사활동... 구역장으로서의 수고, 화장실 청소, 성가대봉사, 안내봉사, 식당봉사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말의 때에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가장 합당한 자세인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십시오. 그러면 요한계시록에 나온 모든 내용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다 위로요, 기쁨이요, 감사와 축복이요, 승리를 주는 음성들로만 들릴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역사의 사건에는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뜻과 계획과 목적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연히 펼쳐지는 사건 같아도 그 안에는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지금 우리 시대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와의 전쟁이 터졌는가? 왜 또다시 기술 패권과 자원 무기화를 둘러싼 미국, 중국과 패권 경쟁 그리고 러시아까지 가세하면서 신냉전 구도가 또다시 오는가?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아베 전 총리가 암살당했는가? 왜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안 되고 윤석열 현 대통령이 당선되었는가? 왜 역사는 불의가 팽배하고 어둠의 세력이 이렇게 날뛰는가? 그러나 혼란스러운 것 같아도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계획속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역사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실수함 없이 실패함 없이 역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실수함 없이 우리의 삶을 부르시고, 복음으로 구원해 주셨던 대로 계속해서 승리로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면서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됩시다.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신앙생활의 헌신, 수고, 눈물, 하나도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종말의 때를 준비해 왔고 이미 승리한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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