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 이사야 43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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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브라함의 믿음3 (시험을 통과 한 믿음)

본문 : 히브리서11:17~19

찬양 :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314) / 주님 주실 화평(327)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들어 하고 지쳐가는 2021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추석 명절은 힘든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보름달 같은 풍요로움을 가족과 함께 나누는 행복한 시간을 갖길 바랍니다. 행복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성도들 안에는 무한한 행복의 요소가 있습니다. 영생이 있고, 구원의 감격이 있고, 승리하는 복음의 능력이 있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보호가 있으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충분히 기뻐하며 감사하며 승리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내재 되어 있습니다. 이번 추석 연휴기간 동안 우리 성도님들이 만나는 모든 분들에게 행복의 바이러스가 되고, 기쁨의 통로가 되고, 위로를 주는 소망의 공급처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배우는 세 번째 시간으로 시험을 통과 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탄의 유혹으로 인한 시험입니다. 이것을 영어로 ‘temptaion’ 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의 시험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으로 영어로 ‘Test’ 라고 합니다. 사탄의 유혹으로 인한 Temptation과 하나님께서 믿음을 연단하기 위해 주는 Test 는 한글로 같은 시험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성도님들이 시험 당했다”, “시험 들었다”, “불시험이다라는 표현들을 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이 시험이 은연중에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여기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결코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13절 말씀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그러면 의문이 생깁니다. 도대체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수많은 시험거리들은 뭔가? 이 부분에 대해서 성경은 우리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서 시작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14)

 

야고보서 1:13~14절에 나오는 '시험은 영어로 ’temptation‘ 유혹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나오는 시험을 유혹으로 대치해 보면 본문의 뜻이 명확해집니다. 사람이 유혹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유혹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한 자로부터 유혹받도록 하지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유혹하지 아니하시느리라! 오직 각 사람이 유혹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 되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유혹하여 멸망케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유혹의 원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욕심에 있으며, 그 욕심을 통하여 역사하는 마귀 사탄의 간교한 활동에 있습니다.

 

반면에 Test가 있습니다. Test는 하나님이 주관하며 성도들의 신앙의 수준을 점검하기 위한 것입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성취도를 측정하기 위해 꼭 시험을 봅니다. 이 시험은 학생들을 망하게 하고, 실패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학생들의 실력과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은 성도들의 신앙을 Test 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신앙을 성장시키고, 더욱더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완성시켜 나아갈 선한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어 가실 목적으로 성도들의 믿음을 Test 합니다. 그 가장 좋은 예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을 시험하는 예입니다.

 

오늘 본문 17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NIV 영어성경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When God tested him...” 시험을 Test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시험하고자 했습니까?

 

첫째로, 아브라함의 사랑의 최우선순위가 하나님이신지 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사랑의 질서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 때, 90세 된 아내 사라의 생리가 끊어진 상태임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외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인생의 기쁨을 주는 사랑의 1순위였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얼마나 이삭을 사랑하고 있는지... 금쪽 같이 여기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금쪽같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번제란 죽여서 각을 떠서 불에 태워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명령입니다. 시험치고는 너무나 잔인합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이해가 되지 않는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까? 아브라함의 마음의 1순위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겼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삭 때문에 축복의 통로요 생명의 근원이시며 아브라함의 전부가 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면 안 됩니다. 이삭은 분명히 기적의 열매, 축복의 열매이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되면 불행해 집니다. 하나님은 그저 축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위기의 순간에 있었습니다. 아들이 우상이 되고, 하나님은 부수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주 위험한 인생의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 첫 자리에 계셔야 하고, 아브라함이 최고로 사랑해야할 대상이십니다. 혹시라도 아브라함처럼 우리들의 마음 첫 자리가 사랑하는 자녀가 되어 있고, 배우자가 되어 있고, 물질이 되어 있고, 나의 꿈과 이상이 차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들의 마음의 첫 자리에는 항상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신명기 64~5절은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사랑의 제1순위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으뜸이시오, 영광의 으뜸이시오, 가치의 으뜸이시오, 사랑의 첫 번째 대상이시오, 인생들이 경배해야 할 예배의 첫 순위이십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존재로, 최고의 가치로, 최고의 위치에 서 계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이사야 42:8절은 말씀합니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을 최고의 가치요, 섬겨야 할 으뜸의 존재로 높이 올려 들이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의 제 1순위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학자 마르바 던은 진정한 예배란 하나님을 높이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무한한 광휘에 완전히 잠기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예배는 우상일 뿐이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서도 우리는 내 마음의 첫 자리가 하나님이신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어떤 것이 내 마음을 차지한다면 그것은 영적간음이고 거기에서부터 삶의 무질서가 시작됩니다. 마치 남편에게 아내보다 더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그 가정이 파탄 나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똑같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내 안에 들어 올 때 그것은 영적 불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 우상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탄 나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삶이 부패하게 됩니다.

 

이삭을 너무나 사랑했던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던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우리들의 사랑의 우선순위를 시험하실 수 있습니다. 아무게야 네의 마음에 으뜸을 차지하는 그것을 번제로 드려라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사랑의 우선순위가 주님이신지 알고자하는 테스트인 것입니다. 마치 학창시절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치르듯이 우리가 지금까지 3040년 쌓아 올린 믿음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의 신앙의 실력, 우리 신앙의 순수성을 테스트 해 보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유혹이라는 시험을 통해 성도들의 삶을 도둑질 하고, 실패하게 하고, 무너뜨리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더 성장시키고, 성숙시켜서 우리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하고 더 축복되게 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그의 믿음을 더 성장시키고,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며, 천하 만민에게 복을 나눠주는 복의 근원의 인생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이번 시험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test는 믿음으로 pass하여 하나님이 준비한 선물을 받아야 합니다. 반면에 사탄의 temptation은 기도와 말씀과 어린양의 보혈로서 승리해야 합니다.

 

둘째로 이 테스트를 통해 앞으로 이루어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계시하길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과 이삭의 믿음의 여정을 보면 가끔씩 앞으로 이루어질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 때 그리고 태의 문이 닫힌 사라의 나이 90세 때 이삭이 태어난 것은 불가능한 가운데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태어난 예수님의 탄생도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태어난 것으로 이삭의 탄생과 유사성을 갖습니다. 처녀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수태고지를 받았을 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 때 천사 가브리엘은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이나 예수님이나 다 불가능한 상황에서 출생한 것입니다.

 

또한 이삭이 번제물로 모리아 산에서 드려지는 것은 예수님께서 모리아 산 근처 골고다에서 십자가형에 못 박혀 속죄 제물로 드려진 것과 유사합니다. 더불어서 이삭이 모리아 산에서 번제물로 드려질 때 17살 나이였고, 아버지는 늙은 117세 정도 되었기에 충분이 힘으로 아버지를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삭은 순종하여 아버지 뜻에 복종하여 밧줄에 묶이고 말없이 아버지의 칼을 받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하는 것과 동일한 순종입니다. 예수님도 묵묵히 아버지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은 후 아브라함은 3일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으로 갑니다. 사실 이 3일 길은 예수님이 장사 된지 3일을 지칭하는 죽음의 시간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 편에서 보면 이미 죽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칼을 내리칠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급히 부르시면서 멈추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한 숫양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에 대해서 히브리서 11:19절에서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말했습니다. 이삭은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이삭을 다시 살아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삭은 예수님처럼 부활한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과 이삭은 앞으로 예수님이 하실 일의 그림자로서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먼저 갔고 예수님의 부활을 먼저 맛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더 깊이 생각 해 보아야 할 부분은 아브라함한테는 독자 이삭을 죽이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막으셨지만 2000년 후 골고다에서 온 인류를 위해 대속의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막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사랑하는 독생자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해도 하나님은 아들의 기도에 귀를 막으셨습니다. 다른 기도는 다 들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울부짖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를 위한 속죄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가혹한 요구라고만 생각한다면 2000년 후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을 십자가에 내 놓으시고 저주 받아 죽게 내버려 두신 하나님을 향해서도 가혹하고 이해 할 수 없는 냉혹한 처사다라고 해야 옳습니다. ?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까요? 바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왜 이삭을 요구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앞으로 2000년 후 아버지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미리서 아브라함을 통해 예행연습을 시킨 것입니다. 그것도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시고는 아브라함이 온전히 순종할 때 멈추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2000년 후 자신의 독생자가 희생제물이 되는 그 일은 멈추게 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아들이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서 속죄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렸던 아브라함의 마음에서 우리는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속량 제물로 드리는 하나님의 마음까지 보아야 합니다.

 

결국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이삭을 드리자 하나님께서 이 시험의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22:17~18)”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대적 마귀에게 빼앗겼던 천국의 성문을 되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시험에 통과함으로서 독자 이삭 한 사람만 살려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종 되었던 모든 인류를 죽음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구원의 문을 아브라함이 열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예수님이 오셨고 그 분이 죽음을 파하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이런 엄청난 목적을 가진 하나님의 테스트에 어떻게 통과한 것입니까?

 

17절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다는 것은 19절에서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고 이삭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시험을 통과하는 믿음을 가지려면 시험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21:12)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면 그 약속을 뒤집는 시험에는 틀림없이 무슨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 내뱉은 말씀을 뒤집는 시험이 있다면 그 시험에는 틀림없이 감추어진 선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해가 되지 않는 인생의 시련이 있을 때, 혹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으로 느껴진다면 주권을 하나님께 맡기고 내 생각, 내 뜻, 내 계획을 내려놓는 것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믿음의 시작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이삭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삭을 주신 분은 결코 이삭을 빼앗으려는 목적으로 시험을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삭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용규 선교사님의 내려놓음이라는 책에 한 몽골 소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몽골 이레교회에서 개척한 베르흐 지역의 예배 처소를 방문해 예배드리던 중에 있었던 일이다. 벌러르라는 소녀가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예배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에 소를 잃어버린 소녀는 소를 찾으러 뛰어다니다가 예배 시간이 임박하자 말씀을 듣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려두고 달려왔다는 것이다. 그 때 나는 하나님께 소가 아닌 예배를 선택한 믿음의 결단을 부끄럽게 하지 말아 달라고, 그래서 그 소녀가 소를 찾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원하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자마자 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가 예배 처소를 먼저 찾아온 것이다.”

 

소가 아닌 예배의 기쁨을 선택한 벌러르 소녀는 소와 예배, 두 가지를 함께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들에게 소냐 하나님이냐를 선택하는 순간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합의 시대 때 하나님과 바알을 동시에 섬겼던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엘리야 선지자는 분명한 결단을 요청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18:21) 하나님인가 소인가? 하나님인가 바알인가? 우리는 이 둘 사이에서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면 됩니다. 둘 다 섬길 수는 없습니다.

 

1956년 짐 엘리엇과 네 명의 친구들은 에콰도르의 밀림 아우카 족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를 두고 미국의 언론들은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What a waste?" 이 얼마나 무모한 낭비인가? 그러나 짐 엘리엇이 휘튼대학 2학년 때 기록한 일기장(19)에는 이런 글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주님 성공하게 하소서...높은 자리에 오른다는 것이 아니라 제 삶이 하나님을 아는 가치를 드러내는 전시품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이런 글도 있었습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서 영원하지 않는 것을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휘튼대학을 수석으로 나온 수재가 젊은 나이에 아내와 아들을 두고 아마존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목숨을 잃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게는 어리석지 않았습니다. 영원한 보화 되신 예수님을 얻었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그리고 아마존의 무지한 영혼들을 구원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짐 엘리엇과 함께 순교한 4명의 선교사님들은 영원한 예수님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버리는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는 것 둘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의 순간에 그들은 영원한 것을 선택한 지혜로운 삶을 산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아브라함의 믿음의 특징 3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했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순종하여 떠난 믿음입니다. 두 번째는 본향을 향하는 믿음을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거류하면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 와도 떠나온 본토 친척 아비집인 하란 땅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아니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약속의 땅 가나안 보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순종하여 이삭을 드림으로 시험을 통과한 믿음을 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여정에서 만나는 혹독한 시련이나 고난 앞에서 하나님께 대한 신의를 잃어버리고 믿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브라함의 3가지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지금은 납득이 되지 않고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반드시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을 것을 믿고 아브라함처럼 순종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 역사를 보아도 자신이 섬기는 주군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신하들이 많습니다. 고려역사를 보면 태조 왕건을 살리기 위해 부하 신숭겸은 왕건의 갑옷을 입고 후백제와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 자신이 섬기는 주군을 살리기 위해서 주군의 갑옷을 입고 싸우다가 죽은 것입니다. 삼국지에 보면 조자룡은 조조 군대와의 전투 중에 주군 유비의 아들 아두를 잃어버립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조자룡은 목숨을 걸고 혈혈단신으로 적진에 뛰어 들어가 아두를 구해옵니다. 유비가 이런 조자룡을 충성을 보고 아두를 내동이 칠 정도로 감격했습니다. 세상 역사에도 자신이 섬기는 주군에게 목숨을 바친 예가 수두룩합니다.

 

우리의 주군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나를 위해 독생자까지 내놓으셨습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가장 소중한 아들의 생명 값 까지 내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이 주님을 위해 신앙의 의리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깊어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마음을 알아갈 때... 그분이 내 인생 속에 행하신 신실하심을 체험하게 될 때, 우리는 주님을 향해 그 어떤 것도 순종하면서 의리를 지키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때때로 우리의 중심을 알기 원하셔서 우리의 신앙의 우선순위를 시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의 인생의 최고의 가치가 하나님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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