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 로마서 14장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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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브라함의 믿음2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

본문 : 히브리서11:13~16

 

우리는 앞 주에 아브라함의 믿음의 특징첫 번째로 순종하는 믿음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특징두 번째 시간으로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순종하여 나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이 지시한 땅에 가보니 그곳에는 예약된 땅도, 예약된 집도, 준비된 방 한 칸도 없었습니다. 그는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이방 땅에서 장막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얼마든지 하나님께 속았다는 느낌을 가지고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살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아브라함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얼마든지 돌아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본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약속의 땅에 거하며 자녀들과 함께 장막생활을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0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먼 훗날이라도 반드시 약속의 땅을 후손들에게 주실 것을 바라보았기에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에서 3대가 장막생활을 했다는 뜻이 있습니다. 두 번째 의미는 말 그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시공하신 천국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끝까지 약속의 땅에 거류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을 소망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자기 당대에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을지라도 장차 먼 후대에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장기적 소망을 간직했습니다. 그러나 더 본질적으로는 아브라함이 추구하는 소망은 영원한 본향 곧 하나님의 나라에 있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 3가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첫째, 본향을 사모한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은 믿음을 따라 죽었습니다.

 

13절 상반절 말씀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습니다. 여기서 믿음을 따라 죽었다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죽음이후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천국이 있음을 알고 죽을 때에 기쁨을 가지고 기대감에 넘쳐서 임종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을 따라 죽었다는 말은 죽을 때에 조금의 두려움이나 공포 혹은 불안감이 없이 평안하게 하나님이 준비하신 천국을 향해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을 따라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현재적 삶속에서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것을 확신하고 죽을 때도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 품에 안겼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교회의 장로님의 임종예배 때에 담임목사님이 천국에서 뵙자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더니 장로님이 하시는 말이 나는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라고 자백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목사님은 목회를 다시 새롭게 시작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믿음으로 죽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열심히 사는 것처럼 보여도 정작 임종시에 불안하고 두려워한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도 어렵지만 믿음으로 죽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인물 중에 시각장애인의 어려움을 딛고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역임했던 고 강영우 박사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제가 한 때 이분을 오해 한 적이 있습니다. 이분의 책과 간증을 들어보면 시각장애인의 고난을 딛고 한국최초로 장애인 교육박사 학위 취득하는 등 성공한 삶을 산 것 까진 좋았는데 성공한 이후 너무 성공위주로 현재의 형통한 복을 자랑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2011년에 췌장 암 말기로 1~2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인생 판명을 받았습니다. 의사들은 수술하면 생명을 1~2년 정도 더 연장할 수 있다고 수술을 권면했습니다. 그런데 강영우 박사님은 의사 선생님의 권유를 거부하고 본인의 삶을 마무리 짓고 벌여둔 일을 정리하는 쪽으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자신이 해야 할 일들 중에 로타리재단에 장학금을 기증하고 가족들과의 친구들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2012223일에 담대하고도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제가 이분의 마지막 임종의 때에 조금의 불안이나 두려움 없이 감사함으로 행복하게 삶을 마무리 하는 모습을 보고 이 분은 진짜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주신 형통의 삶을 감사함으로 누리고 살았구나하면서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마지막 임종을 앞두고 아내에게 보낸 이별의 편지입니다.

 

지난 40년간 늘 나를 위로해주던 당신에게 난 오늘도 이렇게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더 오래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내가 떠난 후 당신의 외로움과 슬픔을 함께 해주지 못할 것이라서...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강영우 박사님은 진실로 믿음으로 살았고 끝까지 믿음을 따라 죽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의 말씀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믿음으로 지시한 땅으로 순종하여 나아갔습니다. 또한 약속의 땅에서 흉년을 만나고 당장 순종의 열매가 없었지만 3대가 장막생활을 하면서 믿음으로 거류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믿음으로 살다가 죽을 때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면서 믿음을 따라 죽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끝까지 믿음으로 살다가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죽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 입례송으로 얼마 전까지 불렀던 찬송가 93절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시옵고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게 하소서...” 여기서 잇대어라는 말은 서로 이어져 마주 닿게 하는 것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은 현재의 삶과 천국의 삶이 서로 이어져 마주 닿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영원에 잇대어 살아갈 때 현재 우리가 당하는 고난도 슬픔도 이길 수 있습니다. 영원에 잇대어 믿음으로 산 사람만이 믿음을 따라 죽으면서 곧바로 천국의 첫 계단을 밟는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했던 말입니다. 이 땅에서 하루가 길면 천국에서 하루가 짧고, 이 땅에서 하루가 짧으면 천국에서 하루가 길다 현재 우리의 삶은 천국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의 행복은 천국의 행복에 비하면 삐비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즐거움은 천국의 즐거움에 비교하면 애들 소꿉놀이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영광은 천국의 영광에 비교하면 태양 빛 아래의 촛불과 같습니다. 진짜 행복한 삶은 본향에서의 삶입니다. 진짜 축복의 삶은 본향에서 누리는 삶입니다. 저는 우리 모든 광주동광교회 성도님들이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믿음으로 살다가 마지막까지 믿음을 따라 죽었던 아브라함의 길을 가시길 기도합니다. 어렵고 힘든 세상살이 속에서도 영원에 잇대어 현재적 고난과 슬픔을 극복하면서 항상 기뻐하며, 쉬지말고 기도하면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돌아갈 영광의 본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본향을 사모한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약속을 받았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어 주겠다. 내가 너에게 가나안 땅을 다 주겠다. 뿐만 아니라 너의 이름을 창대하게 해 주겠다! 그리고 너를 천한만민에게 복을 나누어주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해 주겠다 정말 어마어마한 축복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약속을 받지 못했습니다. 약속의 자녀는 고작 한 명이었고, 땅은 아내 사라를 묻었던 장지 막벨라 굴이 전부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에 비하면 현실은 초라하고 한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한 것이 현실에서 저 멀리 떨어져 있다할지라도, 그것이 500년 후에 이루어질 꿈 너머의 꿈같은 약속일지라도 멀리서 바라보면서 환영하고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지만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현실에서는 본토인들로부터 외국인 취급받으면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비굴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14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비록 가나안 본토인들로부터 외국인과 나그네 취급을 받았지만 주눅 들지 않았던 이유는 아브라함에게는 약속의 땅보다 더 참된 약속의 땅인 영원한 본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리위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 한 사람도 본적이 없습니다. 다리는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지나가는 다리와 같습니다. 물론 사는 날 동안 우리는 이 땅에서 집을 짓고 삽니다.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편 90편에서 모세가 했던 고백입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90:3~4)

 

이 세상의 삶은 아침에 싱싱하게 자라 피어올랐다가 저녁에 시들어 말라가는 꽃처럼 그렇게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눈 깜짝 하면 1년이 지나가고, 잠에 깨어나면 10년이 지나가고, 일하고 퇴근한 것 같은데 7080년이 지나갑니다. 순식간에 날아가는 화살처럼 금방 인생의 종착지인 황혼녘에 다다랐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의 삶을 나그네 철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전도서 714절을 보닌까 하나님께서 형통의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게 하셔서 사람이 그의 장래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예측 불가능입니다. 지금은 형통한데 금방 곤고한 날이 옵니다. 지금은 고난의 삶인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행복한 날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이렇게 형통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게 하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의존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 땅이 우리의 영원한 삶의 터가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한 본향을 찾게 하십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형통할 때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곤고할 때는 깊이 생각하면서 영원한 본향을 향해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행복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그림자입니다. 진짜 행복, 진짜 기쁨, 진짜 즐거움과 소망은 본향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누리는 그림자의 행복에 취해서 본향을 향한 소망을 놓치면 안 됩니다. 본향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삶을 내 고향으로 여기고 이 땅에 인생의 목적을 두면 반드시 후회하는 날이 옵니다. 성도는 어떤 인생의 성공이나 형통이나 행복이나 기쁨도 그림자라는 것을 알고 이 땅을 순례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순례자의 삶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의 삶의 모습니다.

 

김희보 작사 김두관 작곡의 본향을 향하여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세상 나그네 길을 지나는 순례자 인생의 거친 들에서 하룻밤 머물 때... 환란의 궂은 비바람 모질게 모질게 불어도 천국의 순례자 본향을 향하여...” 저는 이 찬양을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순례자로서 이 세상의 삶은 마치 인생의 거친 들에서 하룻밤 머물고 있는 시간이구나! 그래서 아무리 환란의 궂은 비바람 모질게 불어도 천국의 순례자는 본향을 항하여 하루 하루 발걸음을 내딛는 거구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이 본향을 향하는 순례자의 삶의 비밀을 깨달았을까요? 저는 창세기 14장에 나오는 당대 최고의 도시 문화와 문명을 가진 소돔과 고모라가 죄로 말미암아 불과 유황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아브라함은 이 세상의 보이는 것이 헛것임을 알게 되었으리라고 추정합니다. 또한 창세기 151절에서 자식 한 명 없고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믿음이 흔들릴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는 이 말씀을 들었을 때 하나님 자신이 궁극적인 상이요 인생의 본질적인 소망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본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아브라함은 당당하게 나그네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준비 해 놓으신 영원한 본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야할 영원한 본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성도들은 결코 다리위에 집을 짓지 않습니다. 내가 도착하는 본향에는 상상할 수 없는 영광과 축복과 영생과 기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본향을 사모한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15~16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으려니와 /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은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약속의 땅에서 기근을 만나고, 고난을 겪고, 당장 약속이 성취되지 않더라도 떠나온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고향과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은 과거의 육신의 삶을 상징합니다. 예수님 만나기 이전의 B.C의 삶입니다. 그 때는 우상을 섬겼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찾아 오셨고 육신의 삶에서 영적인 삶으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현재 믿음의 삶이 힘들어도 육신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삶을 살면서도 과거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을 따라 천성을 향해 가다가도 문뜩 문뜩 뒤를 돌아보면서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롯의 처입니다. 그녀는 소돔과 고모라가 불과 유황으로 불타 사라지고 있을 때에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롯의 처는 몸은 빠져 나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과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사람을 상징합니다. 출애굽기 1세대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바로의 노예의 삶에서 출애굽 했습니다. 홍해를 건너서 광야로 나왔습니다.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과거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몸은 출애굽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애굽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잘 먹고 잘 살았던 그 때의 삶을 늘 그리워했습니다. 신약에서도 과거로 돌아간 사람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4:10절을 보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했습니다. 데마는 복음을 듣고 교회에 나왔지만 신앙생활이 어렵고 힘들자 다시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9:62) 성도는 어둠의 영이 지배하는 이 세상의 나라에서 빠져나와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본향을 향해 가는 순례자들입니다. 우리는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진 자들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시민권이 바뀐 자들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과거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거류하면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 와도 과거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떠나온 본토 친척 아비집인 하란 땅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약속한 더 나은 본향이 없었다면 또는 있더라도 그것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면 믿음의 족장들은 육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불신앙의 행동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한 본향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이 있었으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고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전진해 나갔습니다.

 

결론입니다.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여겼습니까?

 

16절 하반절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가장 큰 축복은 현실 세상에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로부터 받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축복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인정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을 축복하시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심을 명예롭게 여기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을 위해 천국에서 한 성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제사장 가문을 심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면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존중히 여겨 주십니다.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 본향을 사모하면서 나그네 인생길을 걷는 성도들의 삶을 존중히 여겨 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역으로 말하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심을 자랑스럽게 여기시고 그들의 삶을 보호해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천국에서 세상에 살던 전원주택이나 아파트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시공하신 한 성을 준비해 놓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자체가 우리의 상급이십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천국이 우리의 궁극적인 보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살다가도 쉽게 넘어지고 시험에 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금 당장 손에 잡히는 현실적인 축복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내 당대에 모든 축복이 다 이루어지기 원하는 자기중심적인 믿음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심은 믿음의 순종의 씨는 먼 훗날 후손들을 통해 꽃이 피어나고, 그 열매는 하나님나라에서 최종적으로 따 먹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은 시편 3119절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면서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늘 아버지께서 하늘에 쌓아 두신 은혜가 실로 크고 놀랍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우리를 위해서 상급을 하늘에 쌓아 놓고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끝까지 믿음으로 살다가 마지막까지 믿음을 따라 죽는 아브라함의 길을 가시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영원한 본향에서 우리를 위해 준비 해 놓으신 상급의 열매를 풍성하게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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