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돼게 하려 함이니라
    - 출애굽기 9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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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일 주일설교

제목 : 믿음으로 의의 상속자가 된 노아

말씀 : 히브리서11:7

결단찬양 : 이 세상 험하고(263) /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406)

 

우리는 지금 믿음에 대해서 함께 묵상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111절에서 성경이 말하는 믿음을 정의하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바라고 소망하는 것들을 실상화 시키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현실로 나타나게 하는 능력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만 있다면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약속한 것들이 보증으로, 확증으로, 증거로, 현실로 손에 잡히도록 나타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망원경과 같아서 멀리 있는 희미한 것들을 눈앞으로 나타나게 하고, 현미경과 같아서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를 보여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능력과 약속한 세계는 믿음이라는 통로로 우리의 삶의 현장에 적용되고 열매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할 수 있으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는 가정법이 없습니다. 믿음은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근거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일하시는데 할 수 없는 일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내게 능력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정의하고 난 이후 그 다음절부터 믿음의 조상들이 어떻게 믿음으로 살면서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나게 했는지를 다양한 예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했습니다. 아벨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경외하면서 참된 예배를 드린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참된 예배의 현장에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 예물을 흠향하셨습니다. 에녹의 믿음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300년 동안 마치 옆에 계신 것처럼 동행하면서 살았던 믿음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나라로 옮겨졌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세계가 너무 넓고, 깊고, 높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경험한 믿음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세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광대한 세계입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로 믿음을 정의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끝없는 세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노아의 삶을 예로 들어 또다시 믿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믿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7절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노아의 믿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았을 때 노아는 그 말씀을 믿고 방주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어느 날 하나님으로부터 앞으로 120년 후에 대홍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때까지는 한 번도 비가 내린 적이 없었고, 홍수의 개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서 홍수로 인류를 심판하신다는 그 경고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노아의 믿음입니다.

 

창세기 6장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세상을 심판하여 끝내고자 한다는 말씀을 무려 4번이나 반복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창세기 63절에서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년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 120년 후에 인류를 심판하겠다는 것입니다. 7절에서도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3~14절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하나님은 노아에게 대홍수로 세상을 심판할 것이니 너는 고페르 나무로 방주를 만들되 너를 위하여 만들고, 역청으로 그 안팎을 칠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17절에서도 반복하여 말씀했습니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노아는 무려 4번이나 120년 후에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반복하여 들었을 때 이것이 반드시 일어날 일임을 알았고, 이 심판을 확고하게 믿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5060년 후에 당신은 죽게 되고, 죄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고 말해도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120년이라는 까마득한 세월이 지난 후에 일어날 일인데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산에 올라가서 고페르 나무로 방주를 짓는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창세기 6장을 보면 구원의 방주를 짓는 설계도를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고페르 나무를 가지고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물이 새지 않게 방주의 안과 밖에는 역청을 발라 방수처리를 잘 하도록 했습니다. 방주의 규모는 길이가 300규빗으로 약 150m, 너비가 오십 규빗으로 약 24m, 높이는 삼십 규빗으로 약 14m입니다. 또한 통풍을 위해 위에서 약 50cm에 창문들을 만들고, 그 문은 옆으로 내며, 전체 구조는 상중하 삼층으로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방주는 오늘날의 배수량으로 보면, 2만 톤 정도 되는 거대한 나무 상자에 가까웠습니다.

 

아마 노아가 산위 평지에서 거대한 방주를 짓고 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그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방주를 짓고 있는 곳으로 관광하듯이 구경하러 온 수 많은 사람들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그러면 노아는 구경하러 온 사람들에게 확신있게 120년 후에 하나님께서 대홍수로 인류를 심판하실 것이니 심판의 날을 준비해야 한다는 경고의 말을 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노아의 식구 8명이 매일 산위의 큰 평지에서 2만 톤이나 되는 거대한 방주를 짓는 모습을 보고 신기하기도 하고 웃기는 일이고 해서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너희들 그 말을 진짜로 믿냐? 해 빛이 이렇게 쨍쨍 비추고 날씨는 매일 화창한데 어떻게 너는 그런 말을 믿느냐? 너 제정신이냐?” 이렇게 비아냥거리고 조롱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수없이 반복하여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이상했습니다. 그럼 너희들은 안 믿느냐?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우리 증조부 에녹께서도 우리 조부의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짓지 않았냐? ‘그가 죽을 때 심판이 온다고 하지 않았냐? 또한 우리 증조부 에녹할아버지께서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리어 올라가는 것을 너희도 알지 않느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심판의 날이 온다! 후회하지 말고 너희도 방주를 지어라!”노아는 방주를 짓고 있는 노아의 가족들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전도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고, 너희도 방주를 지어라고 권면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노아시대 때의 사람들이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했는지 그 시대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6:3) 노아시대 사람들의 삶의 특징은 그들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을 가진 인간의 기능이 상실되고, 고깃덩어리처럼 동물적인 삶만 추구하고, 육신의 본능만을 따르는 삶으로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경외하던 셋의 후손들까지도 세상의 쾌락을 따라 육신적 결혼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가정들이 사라져갔습니다. 11절을 보면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라고 했습니다. 온통 세상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육신의 쾌락을 따라 재미를 추구하는 삶에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삶은 부패했고, 포악했고, 폭력이 넘쳐났습니다. 불의가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의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가진 영적 존재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성적 삶이 살아지고 동물적 삶이 팽배해져 갔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창6:9절을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패역하고 부패한 시대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의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물론 노아에게도 허물과 약점이 많았습니다. 노아도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노아는 홍수이후 어느 날 포도주를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발가벗은 모습으로 자기를 통제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노아도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가 부패하고 패역한 시대에 모두가 육체의 본능을 좇아 사는 시대에 의인으로 완전한 자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 수 있었던 근거는 창세6:8절에 그 비밀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은혜를 덧입혀 주셔서 타락한 그 시대를 거슬려 살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선택해서 타락한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의롭게 살 수 있는 경건의 능력을 공급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노아를 통해서 새로운 인류를 시작할 수 있도록 노아를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다는 뜻도 됩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구원의 방주를 짓게 하십니다. 육체로 살아가는 시대의 분위기를 거슬려서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영적인 힘을 주십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로 노아시대처럼 구원의 방주를 짓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부패하고 타락한 시대 속에서도 노아처럼 구원의 방주를 짓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앙생활 하면서 느끼는 것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지 않고서는 이 시대의 죄의 홍수를 거슬려서 살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시대처럼 부패하고 타락하고 육체의 삶이 팽배하고 음란하고 타락한 시대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보는 것 같습니다. 들려오는 뉴스를 보기가 겁납니다. 매일 매일 들려오는 소식이 우울하고 끔찍하고 두렵습니다.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1980년대에 타락해 가는 미국사회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미국을 심판하시지 않는다면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만큼 당시 미국 사회는 마약과 음란으로 타락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오늘날의 세계, 그리고 우리나라를 보면 어떻습니까? 믿는 사람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이 시대를 말세라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시대는 노아 시대와 같이 부패함과 포악이 넘치고 있습니다. 음란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주일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면서, 성경 말씀을 붙잡고 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하는 것이 우리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매일 매일 우리들의 삶을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믿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성령의 불로,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보호 해 주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은혜가 공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아에게 임한 은혜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은혜 받은 노아는 방주를 짓는 삶을 어떻게 감당했습니다. 창세기 6:22절 말씀을 보면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노아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설계대로 방주 짓는 모든 일에 절대 순종하여 그대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준행했습니다. 제가 새숲교회를 건축하면서 느끼는 것은 건축할 때 절대 설계도면 그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건물이 올라가다 보면 수없이 많은 설계변경이 일어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계속해서 설계변경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노아는 하나님이 계시해 주시고 가르쳐 주신 그 설계도면 그대로 다 준행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순종입니다. 사실 노아시대에는 기계장비도 없었고, 배를 그토록 크게 지어 본 전문가도 없었습니다. 오직 8명의 가족이 축구장 1.5배나 되는 지금까지 없었던 역사상 가장 큰 방주를 120년 동안 그것도 산위에서 지어야 했습니다. 이것을 지켜 본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웃음 당하고 조롱당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기후로는 대홍수라는 기상이변이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 매일 해가 쨍쨍 비추고 날씨는 너무나 좋았습니다. 남들은 날마다 자기 삶을 즐기면서 술 마시고, 유흥을 즐기고, 낚시하러 가고, 골프 치러 가고, 해외여행 떠나고, 온갖 취미생활을 즐기는 때에 120년 동안 노가다만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감정적인 사람 같으면 차라리 홍수 심판을 받아 죽는 것이 낫겠다고 불평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준행했습니다. 하나님이 설계해주신 그대로 준행을 했습니다. 피곤하다고, 자녀들이 힘들어 한다고, 설계도면을 변경해 달라고 떼쓰지 않았습니다. 왜 꼭 모든 동물들을 다 방주에 싫어야 하느냐고, 왜 방주는 이렇게 크게 만들어야 하냐고, 1/2로 축소하면 안 되냐고 하나님께 농성하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일러 주신 그대로 다 준행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다 준행하면서 구원의 방주를 짓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신앙생활하는 것 힘듭니다. 좁은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입니다. 주일마다 다른 친구들은 놀러 다니는데 주일을 지키기 위해 교회 나오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십일조, 선교헌금, 감사헌금, 장학헌금...예물을 들고 나옵니다. 뿐만이 아니라 교회에서 봉사도 해야 하고, 전도도 해야 하고, 사회에서 소금과 빛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놀립니다. 지금도 교회 다니냐? 전광훈 목사 봐라! 그것도 목사냐? 왜 교회는 코로나 방역 안 지킨다냐? 신천지나 교회나 똑같은 거 아니야? 정신차려라!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믿고, 썩어 빠진 목사의 말을 믿냐?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조롱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있습니다. 노아의 시대 때에 있었던 대홍수 심판처럼 오늘날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후서 38~9절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는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속히 오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오시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 거짓말이 아닐까? 의심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더디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약속대로 주님은 매일 매일 속히 오고계십니다. 우리가 속히 오고계시는 주님의 발자국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끝없이 회개의 기회,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 상급을 쌓고 영원한 새 하늘 새 땅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또 주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회개치 않을 때 철저하게 심판하십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일이고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10절을 보닌까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마지막 날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심판대 앞에 설 그 날을 생각하면서 옷깃을 여미며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성경의 약속을 믿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세라고 믿습니다. 노아처럼 그리고 그의 가족들처럼 대홍수의 심판을 믿고 두렵고 떨림으로 방주를 지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구원의 방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와 복음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고도 그 말씀을 다 준행하여 구원의 방주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과 그의 가족을 다 구원해 냈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장난으로 알고 비웃었던 그 시대 사람들을 심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증명 해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시퍼렇게 살아계심을 확증해 냈습니다.

 

마침내 120년이 차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날이 왔습니다. 40주야 동안 하늘 문이 열려서 양동이로 퍼붓듯이 비가오고, 땅에서 지하수 샘들이 터져 나오고, 지진과 해일이 밀려오고, 걷잡을 수 없는 대홍수로 물이 순식간에 불어나자 사람들은 그제야 노아가 방주를 지으면서 했던 말이 생각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 전에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노아의 방주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노아의 방주를 향해 뛰어 가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노아가 경고했던 대홍수의 심판이 진실이었다는 사실을 그 때서야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120년 동안 노아의 방주를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노아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대홍수의 심판이 시작되자 그들은 후회했습니다. “그때 노아의 말을 들을 걸” “그 때 교회 다니면서 신앙생활 잘 할 걸” “그 때 예수님을 믿고 나도 구원의 방주를 지을 걸

 

그러나 심판이 시작되고 나서 하는 후회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창세기 6:16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여기서 핵심적인 구절은 여호와께서 방주의 문을 닫으셨다는 사실입니다. , 노아의 가족 8명과 택정된 짐승들이 방주로 다 들어가자 하나님께서 재빨리 방주의 문을 닫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구원의 문이 항상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닫힌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삶의 여유가 있을 때, 신앙생활 하리라! 나이가 들고 은퇴하면 하나님을 찾으리라 생각하며 자꾸 뒤로 미룹니다. 그러나 구원의 문이 한번 닫히게 되면 영원히 열리지 않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구원의 방주를 짓는 인생을 살아냄으로서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유산으로 받는 상속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 받았을 때 그 말씀을 믿음으로써 방주를 짓는 인생을 산 것이 의롭다고 인정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김을 받았습니다. 결국 이 세상이 심판 받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하는 의는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경고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구원의 방주를 짓는 삶에 있습니다. 저는 우리 광주동광교회 성도님들 중에 단 한분도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는 이 삶에서 탈락하는 분들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혹시라도 우리 광주동광교회에 성도님들 중에 복음을 건성으로 듣고 믿음의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해서 구원의 방주가 닫히는 날 그 때 예수 잘 믿을 걸... 신앙생활 잘 할 걸... 이런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새벽에 고영춘 장로님이 올린 아프카니스탄 지하교회 성도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요청하는 눈물의 유트브를 보았습니다. 이 시대가 얼마나 치열한 영적전쟁터요, 사느냐 죽느냐의 진리의 싸움인가를 절실히 깨닫습니다. 육신을 죽이는 자도 두렵지만 영혼과 함께 육체까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더 두려운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로써 의롭다 함을 받는 그래서 의의 상속자가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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