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 잠언 4장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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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항존직교육7)

제목 : 그리스도의 주재권

본문 : 로마서14:7~8

결단찬양 :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314) / 사명

 

주재권(主宰權)이라는 말은 주인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만물의 주가 되시므로 그의 지배를 받지 않는 영역은 존재 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은 한순간도 주님 없는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한 가지라도 주인이신 예수님 모르게 행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잘 못 생각하면 굉장히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마치 스토커처럼 내 삶을 간섭하고 통제하고 잘못하면 심판하고 정죄하는 그런 주재권으로 오해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주님의 주재권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예를 들어 나를 가장 사랑하는 백마 탄 왕자 같은 사람이, 그것도 전지전능한 힘과 지혜를 갖춘 슈퍼맨 같은 정의의 사자가 나를 항상 경호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나를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대통령을 24시간 밀착 경호하고 있는 특수부대처럼 나를 위해 생명을 받쳐서 보호하고 있는 경호원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평안하고 든든합니까? 얼마나 자신감이 생기겠습니까? 어디를 가든지 안정감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시각 장애인이나 다름없는 우리가 인생의 핸들을 잡고 우왕좌왕하느니 보다 전능하신 주님의 손에 핸들을 맡기고 순종하는 편이 얼마나 안전합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성도들에게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 되신 주님께 나의 마음과 생활 전 영역을 내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영역에서는 주님을 열렬하게 환영하며 그 분을 높은 보좌에 모시지만, 어떤 영역에서는 한사코 그분을 멀리 두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을 대단히 슬프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내 삶의 전 영역을 주님께 내어 드리고, 그 분의 주재권 앞에 겸손히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주권자가 되시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이사야서 43: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 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그들을 지었고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이 사실을 단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셨고, 동일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여기서 특별히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이 말의 의미는 나의 소유다라는 히브리적 표현입니다. 모든 인생들이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소유인 줄을 모르고 마치 생명이 내 것이고, 인생도 내 것이고, 내가 낳은 자녀도 내 것이고, 내게 등록된 소유물도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사는 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 생명도, 내 삶도, 내 자녀도, 내 소유물도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라고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삶을 마치는 시점에 가면 우리는 단지 흙에서 나와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한없이 연약한 피조물임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살벌하게 생존 경쟁하는 세상살이를 하면서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생각하고, 인생을 내 것으로 생각하면서 더 많이 소유하고자 올인 했는데, 결국은 죽을병에 이르면 다 놓고 갑니다. 죽음이 찾아 올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가 없습니다. 다 놓고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공수레 공수거의 인생입니다. 그토록 화려하게 살았던 솔로몬이 탄식하면서 했던 말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전도서1:2~3)

 

긴 인생 같은데...너무나 짧은 인생입니다. 하루가 때로는 1년처럼 길 때도 있지만, 30년이 찰라 처럼 스쳐 지나가기도 합니다. 인생은 나를 살면 한없이 헛되고 후회가 막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존하면서,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면서, 영존하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살 때...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때 나이가 들고 인생의 노년이 와도 해 저무는 황혼 석양녁이 아름다운 것처럼 아름다운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산다는 것은 황홀합니다.

 

빌립보서 29~11절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을 예수님께 주셔서 모든 만물이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주라 시인하도록 만드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넘겨주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주권자가 되십니다.

 

예수님 스스로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늘 아버지께서 내게 주셨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를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16:17~18)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는 우주를 통치하고 다스리고 뿐만 아니라 물질계와 영계까지도 통치하면 모든 피조물들이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권세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의롭다 함을 받았고, 예수님을 영접하여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어서 예수님의 권세가 우리에게 그대로 임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가 내 안에 적용되고, 시행되기 위해서는 내가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에 무릎을 꿇고 주권을 주님께 이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내 삶의 통치자로 모셔 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통치 아래에서 내가 살 때,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가 내 인생 가운데 적용되고 시행되는 것입니다.

 

비가 올 때 우리는 우산을 씁니다. 우산 안에 들어오면 소낙비도 맞지 않습니다. 우산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보호를 받습니다. 예수님의 통치권이라는 우산 아래에 우리가 들어가야 합니다. , 내 인생의 주권을 주님께 올려 드릴 때 주님께서 내 삶을 다스려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136절에 보닌까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고 했습니다.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말미암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 온 우주만물의 시작과 과정과 끝이 주님의 손에 붙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만물이 주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의 인생도 주님의 손에 붙잡혀 있지 않겠습니까? 내 생명이 주에게서 나왔고, 주로 말미암아 내 인생이 유지되고 있고, 다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갈 것을 알고 있잖습니까? 결국 현재 내 삶은 주님께서 붙잡고 있고, 주관하고 계시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손바닥에서 우리의 삶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역사의 주인이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다윗은 자신의 전 인생을 주님께 의탁하면서 주권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하나님의 주재권을 고백했습니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게 속하였사오니 /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1~12)

 

다윗의 인생이 위대하게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그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아래에서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음을 믿었습니다. 천지의 것이 다 주의 것임을 인정했습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의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펼쳐짐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에게 생사화복의 주권이 없음을 알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따라 살고자 했습니다. 다윗이 쓴 시편을 보면 무수하게 발견되는 것이 하나님의 나의 반석이요, 산성이요, 피난처요, 나의 보호자이심을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인생을 푸를 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고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들 때도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닐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시편27:1~3)

 

다윗은 만물의 주관자이시고 역사의 주인이시며 인생의 생사화복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의 주권아래에서 살았습니다. 다윗은 결코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노력과 지혜와 성실과 재능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어렵고 힘들 때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달라고, 용기를 달라고,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어서도 하나님이 자신의 왕이요 이스라엘의 왕이요, 자신은 하나님의 청지기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왕의 자리에서 밧세바와 불륜을 저지르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 보내 살인하는 죄를 범하고서 감쪽같이 위장하고 살 때... 나단 선지자로부터 그의 사악한 죄를 책망받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나는 죄인입니다회개했습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은 절대군주의 자리에 있을 때도 하나님의 주권아래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있었기에 하나님은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인정하고 그의 삶을 책임져 주시고 그를 위대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도록 축복해 주셨던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주재권을 가장 깊이 있게 경험했던 사건 중에 하나가 개척 1년 되던 11월 말에 있던 사건으로 저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찬양팀 리더를 떠나가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그 때 막 교회건축을 마치던 때였습니다. 분명한 것은 저의 부족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개척 맴버 11명이 줄줄이 엮여서 떠나갔습니다. 나중에는 건축위원장 부부도 떠나가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개척교회에서 가장 진실하게 헌신하고, 가장 많이 헌금 하고, 가장 많이 의지의 대상이 되었던 분이셨습니다. 이 분이 떠나가겠다고 결심을 굳혔을 때 1년 더 함께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했습니다. 그 때 마음을 정하고 12월 말에 떠나가겠다고 한 분을 상담하고 나서 곧바로 그 날 주일오후 찬양예배 때에 축복하고 떠나보냈습니다. 떠나보낼 때 교회의 앞날을 생각하니 앞이 깜깜했습니다. 다음 주일에 마지막 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1년만 십일조를 보내주시면 좋겠다고 부탁하려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그 말을 꺼내지 않고 그냥 축복하면서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개척했던 새숲교회가 어떻게 될지 막막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5억에 가까운 빚을 어떻게 갚아 나갈 수 있을까였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개척교회 해 본 것만도 감사합니다. 개척교회 하면서 건축한 번 해 본 것도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에게 많은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1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개척교회가 파산되면 그리고 빚을 못 갚고 혹시 감옥에라도 가라고 하면 가겠습니다. 교회개척자로 한 번이라도 살게 해 주셨음에 감사하고 실패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 이렇게 고백하자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 교회의 미래를 맡기겠습니다.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개척 2년째 되던 다음 해에 여기저기서 성도님들을 30명 가깝게 보내주시고 2년 만에 교회자립을 할 수 있도록 재정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 교회는 하나님이 하신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는 이 비밀을 배웠습니다. 목회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를 통해 일하고 계시기에 나는 하나님께 통로로 내 드리면 된다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욕심이 납니다. 내 계획, 내 생각, 내 뜻, 내 꿈이 앞설 때가 있습니다. 날마다 내 인생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더불어서 광주동광교회를 하나님이 세워가시도록 하나님이 이 교회를 이끄시도록 주재권을 하나님께 내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어떻게 인정해야 하는지를 로마서 147,8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이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다

 

여기서 바울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주님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왜 바울이 주와 복음을 위해서 그토록 목숨을 아끼지 않고 헌신했습니까? 바울이 주를 위해서 살았던 이력서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1:24~27) 바울 사도가 이처럼 목숨을 걸고 주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면서 살았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주재권을 철저히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인생의 주인을 예수 그리스도로 모셨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인정하는데서 나옵니다. 무엇보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다 주님을 자신의 인생의 왕으로 주인으로 모셔 들이고 주를 위하여 산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인정하면서 그 분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고 죽을 수 없다고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는 사람들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17세기에 작정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1문 답은 이렇습니다.

1: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반면에 종교개혁당시에 독일에서 작성된 하이델 베르크 요리문답은 많은 성도들이 잘 모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1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보다 훨씬 더 직설적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고백해야 할 가장 첫 번째 신앙고백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철저하게 나는 주님의 소유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나의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내 삶도 사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619~2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 생명의 피 값을 지불하고 하나님의 소유로 등록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은 이제 우리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도 이제 우리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의 피 값을 지불하고 하나님의 소유로 우리를 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우리의 삶으로 우리의 생명으로 우리의 모든 재능과 힘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빌브리이트 박사가 만든 예수님의 주재권을 중심으로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비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들은 마음의 왕좌에 자기 자신이 앉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의 주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마음 밖에 서 계십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대소사 모든 인생의 일들이 바른 가치와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혼돈이 계속됩니다. 마음의 방황 인생의 방황이 끝이 없습니다. 평안함이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불안이요 근심이요 두려움이요 그 결국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그림은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주님을 마음 속에 받아 들였지만 자신이 여전히 주인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왕권을 양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교회 안에 가장 많이 있는 유행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들은 미숙하고 유치한 그리스도인들로 거듭났지만 육신의 본성과 옛 자아가 그들을 끌고 다닙니다. 마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환경과 상황이 힘들고 어려우면 불평과 원망이 나오고 여전히 애굽의 질서 바로의 통치 사탄의 유혹에 이끌려 다닙니다. 거듭났지만 몸은 출애굽 했지만 마음은 아직도 온전한 출애굽이 이루어지지 않은 광야 백성과 같은 모습입니다.

 

셋째 그림은 성령에 속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인생의 왕자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통치하고 있습니다. 삶이 안정적이고 늘 성령의 생각을 함으로 마음에 생명과 평안이 가득합니다. 어떤 환난과 시련속에서도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있고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쉬지않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으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에 잘되면 감사 안 되면 더 감사하는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은 성령의 속한 사람들에 대한 가장 정확한 표현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권을 이양한 성도는 이제 더 이상 육체 가운데 살지 않습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시기에 이제는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이 이끄시는 대로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따라서 믿음 안에서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동광교회 모든 임직자들이 주재권을 주님께 드리고 이제는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그 분이 내 인생의 핸들을 잡게 하고 우리는 그 분의 뜻에 순종하여 사는 인생의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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