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내일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오늘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내일은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 시편 126장 5~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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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13

제목 : 회개하면 풀립니다

본문 : 여호수아7:10~26

찬양 :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오늘 말씀은 회개하면 풀립니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성 전투에서 한 명의 전사자도 없이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여리고 성보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아이성 전투에서는 충격적인 패배를 했습니다. 사상자가 36명이나 나왔습니다. 성문 앞에서 스바림 비탈길까지 도망치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이 한 번의 실패는 모든 백성들과 군사들의 마음을 절망과 공포로 떨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했다면 이런 패배는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원인 때문인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아이성 전투에서는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실패의 때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앞 주에 실패의 때에 여호수아는 옷을 찢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저물도록 있다가 기도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실패의 때에는 말씀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왜 실패했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씨름해야 합니다. 실패의 때에 인간적인 생각은 우리의 삶을 끝없는 절망과 두려움으로 몰아갑니다. 생각은 상상의 날개를 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의 뇌는 지각에서 현실과 상상을 구분해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생각으로 상상만 했을 뿐인데 뇌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드립니다. 그래서 실패의 때에는 부정적인 느낌을 따라 생각이 아무렇게나 상상의 날개를 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또 그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낳으면 사실은 사라지고 생각이 사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실패의 때에는 여호수아처럼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것이 최고의 해결책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내 생각 안으로 들어오면 그 말씀이 생각의 기준이 되어 실패를 하나님 편에서 보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지금의 실패는 새로운 발전과 새로운 기회를 향한 과정일 뿐입니다. 그러면 여호수아가 실패의 때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묵상하면서 기도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0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실패의 때에 말씀을 붙잡고 묵상하면서 기도하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여기서 일어나라는 것은 단순히 몸을 일으켜 세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일어나라는 것은 마음속에 깊이 각인 된 패배의 고통과 절망감에서 일어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 실패의 자리가 오히려 새로운 승리의 문을 여는 축복의 자리가 됩니다. 실패의 때에 기도하면 일어나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새 마음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삶은 불신자들의 삶과는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이것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붙잡고 읊조려야 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실패로 끝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불행으로 우리 인생을 마칠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섭리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의 미래에 대해서 빌립보서 1:6절에서도 동일한 확신을 선포했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한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한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그 착한 일이 중도에 실패가 된다든지, 중도에 죄의 유혹과 사탄의 공격으로 무너진다든지 그런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 번 시작하시면 우리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승리로 이끄십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8~39)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어떤 실패나 고난이나 시련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승리합니다. 이것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실패의 때에 인간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포기할 생각도 품지 않습니다. 내가 정말 예수님을 믿고 있고, 내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섭리 안에서 인도되고 있다면 우리는 실패의 때에 나를 부르시고 택하신 하나님께 나와서 물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실패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실패를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 안에서, 기도를 통해서 해석하고 해답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살 길이 열립니다. 작은 생각 한 조각에 죽기도 하고 작은 생각 한 조각에 살기도 합니다. 생각이 그리스도 중심으로 작동되게 해야 합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켜야 합니다(고후10:4). 생각이 말씀중심으로 가면 위대한 승리의 길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가르쳐 준 아이성 실패의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11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왜 아이 성 전투에 패배한 것입니까? 여리고성 전투에서 획득한 전리품을 하나님의 곳간에 두라는 명령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첫 소산을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에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 성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13절 말씀입니다.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희 가운데에 온전히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너희가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가운데에서 제하기까지는 네 원수들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리라 이스라엘이 아이 성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거룩을 회복해야 합니다. 어떤 거룩입니까? 하나님께 온전히 받쳐야 물건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다시 드려야 합니다. 너희 안에 하나님의 거룩을 손상시키고 있는 한에서는 네 원수들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리라고 확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안에 하나님의 거룩이 회복될 때 네 원수들을 쳐서 이길 것이다고 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했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그 싸움에서 실패하도록 아이 성 사람들에게 능력과 용기와 담대함을 공급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가나안 족속은 하나님이 행하신 능력과 권능과 기적의 일로 정신을 잃고 마음이 녹았습니다. 그렇게 견고한 철옹성을 쌓은 여리고 사람도 공포에 떨면서 문을 잠그고 방어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런데 철옹성 여리고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 작고 초라한 아이성 사람들이 어떻게 성문을 열고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나옵니까? 간이 부은 것입니까? 미쳤습니까? 하나님이 아이성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기도 하고 실패를 허락하기도 합니다. 다윗은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역대상29:12)고 고백했습니다. 또한 원수 브닌나로 부터 받은 설움과 고통을 기도와 믿음으로 이기고 사무엘을 낳았던 한나는 하나님을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2:7)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십니다. 부와 존귀가 다 주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승리와 크고 강하게 하심이 다 주님의 손에서 나옵니다. 더불어서 실패도 주님의 손 안에서 나옵니다.

 

환경과 상황을 배열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내가 범하는 죄까지 하나님이 행하게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은 분명히 가롯 유다가 생각하고 선택한 그의 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팔아 넘겨져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우리는 이 둘 사이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죄의 책임 실패의 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유의지를 가진 우리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실패와 승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모세의 시대에 요셉을 사랑하고 존경했던 샘족 계열의 힉소스 왕조가 무너지고 요셉을 알지 못하는 함족 계열의 18왕조 신왕국 시대가 시작되었을까요? 왜 그들은 그토록 이스라엘의 번성을 두려워하면서 태어난 사내아이를 죽이는 사악한 박해를 했을까요? 그런 고난의 환경이 왜 갑자기 시작되었을까요? 그 속에는 출애굽이라는 구속사를 완성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과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서 역사의 환경과 개개인의 삶의 환경을 배열하실 수 있습니다. 아이성 전투의 실패는 하나님의 손에서 이루어진 환경이라는 사실에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성 전투에서 승리했다면 이것은 가나안 정복전쟁이 인간의 힘의 대결, 전략의 대결, 무기의 대결, 군사력의 대결의 장으로 변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과 가나안 사이에 벌어진 이 전쟁이 인간의 욕망과 야망이 동기가 된 피비린 나는 혈과 육의 정복전쟁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 전쟁은 동방원정을 떠난 알렉산더 대왕과 같은 야망의 전쟁이 아닙니다. 징기스칸이나 나폴레옹이 꿈꾸는 제국건설을 위한 그런 욕망의 전쟁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는 공의를 세우고, 죄를 심판하는 싸움이며, 누가 참 신이냐는 하나님과 우상의 싸움이며, 진리와 불의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싸움에 죄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2천명 밖에 되지 않는 그 조그마한 아이성 전투에서 60만 대군을 가진 이스라엘이 패합니까? 어떻게 보면 패한 것이 기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실패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시험에 떨어지고, 사업에 실패하고, 어렵고 힘든 고난이 오고, 꼬리를 물면서 불행이 겹쳐서 올 때... 인간적인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면, 내가 정말 하나님의 선택받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섭리 안에서 해석하십시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해석하십시오. 그러면 문제가 무엇인지 보이게 될 것입니다.

 

욥기서를 읽어보면 욥은 삼중 고난을 갑자기 당했습니다. 한 순간에 재산을 잃고, 자녀들을 잃고, 건강을 잃었습니다. 왜 그런 일이 한꺼번에 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23:8~10) 저는 이 말씀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너무 고통스러운 고난의 환경에서는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를 인도하고 계시는 그 분의 섭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를 드려도 나의 하나님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신해야 합니다. 내가 가는 길을 나는 모르지만 내 인생의 주인 되신 하나님은 아십니다. 지금은 아무 뜻도 모르겠지만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승리자로 다시 서게 될 것을 믿습니다. 이 말의 뜻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나는 믿습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지금 내 인생의 현장에서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 때문에 고통스럽고 답답하고 심히 힘드시다면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나는 섭리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항상 옳은 일만 행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틀림없이 무슨 뜻이 있겠지요! 틀림없이 저를 통해 무슨 할 일이 있나보네요! 내 힘으로 결단 할 수 없기에 이 실패를 통해서 주변 환경을 정리해 주시는군요! 주님~ 잘되면 감사 안 되면 더 감사하는 이유는 안 되는 것이 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틀림없는 하나님의 뜻을 믿으면서 이런 믿음의 고백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배열하신 환경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풀어 주셔야 풀리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왜 승승장구하던 이스라엘이 그 작은 아이성 하나 정복하지 못하고 실패했습니까? 이스라엘 안에 죄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꼬이고, 간발의 차이로 실패하게 하고, 아슬 아슬 하게 성공의 문이 열리지 않는 그 어떤 상황 속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욥처럼 더욱더 믿음을 성장시키고자 하는 의로운 고난도 있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성군으로 세우고자 사울이라는 대적자를 붙여서 억울한 고난을 당하게도 합니다. 풀무 불에 던져진 다니엘의 세 친국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고난도 있습니다.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지하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과 실라처럼 사명을 위한 고난도 있습니다. 모든 실패와 꼬이는 환경이 꼭 죄 문제 때문에 발생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배열하신 고난의 환경이 분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의 인생에 닥치는 실패라든지 꼬이는 환경은 우리 속에 있는 죄 문제로 인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실패할 때는 먼저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문제해결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약속된 말씀을 내 삶과 연결하는 접촉점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르 광야로 인도함을 받았을 때 3일 길을 가는 동안 물을 공급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마라에서 큰 저수지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기쁜 마음에 뛰어 들어가 물을 벌컥 마시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물은 안타깝게도 쓴 물이었습니다. 기대치가 무너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숨은 욕망을 아십니다. 우리 속에 감추어진 동기를 아십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신앙도 아십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 속에 있는 잘못된 신앙의 동기를 고치고자 우리의 기대치를 무너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을 주시고자 우리에게 실패를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마라의 쓴물을 경험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어떻게 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15:25절에 보면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한 나무를 가리키시면서 물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문제가 꼬이는 환경, 기대치가 무너지는 환경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쓰디 쓴 그곳에 나무를 던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를 적용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십자가 앞에서 물어야 합니다.

 

문제를 푸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회개하는 것입니다. 나의 잘못된 동기, 나의 세상적인 욕망, 내 안에 숨겨진 야심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그 무엇을 십자가를 적용하면서 회개 할 때 쓴물이 단물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너희가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가운데에서 제하기 까지는 네 원수들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지게 하는 죄 문제를 처리하기 까지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의 환경, 실패의 환경, 꼬이는 환경, 아말렉과 같은 까다로운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인간관계의 아픔을 풀어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거룩하지 못한 것을 제거하기 전까지는 원수들을 결코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았는데도 잘 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지 않았는데도 형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순종하지 않았는데도 기가 막히게 앞날이 순적하게 열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축복일까요? 재앙일까요? 만약 다리가 끊어져 있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이 있다고 합시다. 속도를 내도록 놔둔다면 그것은 재앙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끊어진 다리를 향해 달리는 차를 구원하고자 한다면 그 차를 멈추게 하고자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할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품고도 성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저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가는 길이 죄로 인해 위험 할 때는 징계하십니다. 히브리서 12: 5~6절 말씀입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라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간섭하시는 징계가 있습니다. 택함 받은 자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실패하고, 깨지고, 무너지는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을 경험할 때 십자가 앞에서 나아가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이 하실 말씀이 있다면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하는 마음으로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자신의 허물과 약점을 깨닫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복이 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출발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처절하게 돌아보고 회개를 통해 심령을 새롭게 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재기 할 수 있는 은혜를 공급해 주십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안에 죄 문제가 있음을 알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가까이 나오게 해서 하나님이 가르쳐 준 방법으로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랬더니 12지파 중에 유다 지파가 뽑혔고, 유다 지파 중에서도 세라 족속이 뽑혔으며,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오게 하여 뽑았더니 삽디가 뽑혔고,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해서 뽑았더니 삽디의 손자와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습니다. 아간이 가나안 땅의 첫 소산인 여리고 성의 전리품에 손을 댔습니다. 그것은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되는 금덩어리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동자 앞에서 우리는 죄를 숨길 수 없습니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완전범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이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139:2~4)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감출 수 없음을 알고 날마다 죄를 시인하고 고백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요한일서 1:8~9절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 주님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왜 아간이 심판을 받았습니까?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60만 명 되는 군사들 속에서 어떻게 나를 찾아 낼 것인가? 그는 자만했고 교만했고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동자를 무시했습니다. 먼저는 이스라엘이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 했을 때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여호수아에게 나아가 죄를 자백했다면 용서함 받았을 것입니다. 왜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은 아간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을까요? 그날이 저물도록 그리고 그 다음날이 되도록 아간의 이름을 하나님은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아간에게 살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제비뽑기 하는 과정에서도 만약 아간이 유다지파가 뽑혔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다면 그는 분명 죄 사함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 해 볼 테면 해 보세요 하고 버텼습니다. 그것이 아간의 죄입니다.

 

사람은 죄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아서 망합니다. 사람은 죄 때문에 실패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아서 그 실패를 만회하지 못하고 광야백성으로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편 34:18절에 보닌까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도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로운 삶의 기회를 열어주십니다. 회개는 좋은 것입니다. 회개는 우리를 살게 하고 모든 인생의 문제를 푸는 해결키입니다. 아무리 견고하게 닫힌 문도 회개하면 열립니다. 아무리 어려운 인생의 문제도 회개하면 풀립니다. 문제해결의 십자가입니다. 꼬이면 십자가를 적용하십시오. 십자가 앞에 나아가 회개함으로서 문제를 푸십시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아간과 그의 가족들 그에게 속한 모든 것들을 아골 골짜기에 묻었습니다. 그 후에야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서기 위해서 우리 속에 숨어 있는 아간을 붙잡아 아골 골짜기에서 무덤을 만들어야 합니다. 스스로를 성결하게 하면서 죄로부터 자신을 거룩히 구별시키는 일을 잘 해낼 때 문제가 풀립니다. 우리는 거룩해야 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왜 우리의 삶에 실패가 있습니까? 왜 약속으로 주신 축복의 땅 가나안에서 연단, 시련, 심판, 저주가 있습니까? 감추어 둔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위반한 죄는 언제나 우리의 삶 속으로 재앙을 이끌어 들여 우리의 삶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결단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는 일, 아담 안에서 살아왔던 옛 습관과 문화를 버리고 새롭게 변화되어 예수님의 성품을 닮는 삶은 우리가 잃어서는 안 될 절대가치입니다. 구원이란 지옥에서 천당으로 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질서에서 하나님의 질서로, 사악한 문화에서 거룩한 문화로 가는 모든 과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실패가 있습니까? 감사합시다. 잘되면 감사 안 되면 더 감사해야 합니다. 대학에 떨어지면 오히려 감사헌금 해야 합니다. 저는 대학에 떨어지고 나서 오히려 더 큰 복을 받았습니다. 재수하고 경주로 가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곳에서 믿음의 아내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실패는 없습니다. 다만 배움만이 있을 뿐입니다. 실패가 오히려 우리를 더 큰 기회로 이끕니다. 그래서 실패의 때에는 이렇게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허물이 있다면 저를 깨뜨려 주십시오. 다시 시작하게 해 주십시오. 냄새나는 죄가 있다면 저를 부숴 주셔서 새롭게 빚어 주십시오. 불의가 있다면 저를 실패하게 해 주셔서 거룩을 회복하게 하시고 더 성장하게 해 주십시오. 내 안에 있는 아간은 붙잡아 아골 골짜기 묻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왕 같은 제사장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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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항존직피택자교육1(제목:목회철학=목회자의 역활, 교회의 본질) 김성철 2021.06.24 30
10 여호수아 10강(제목:확신, 감사, 침묵, 함성) 김성철 2021.06.24 20
9 여호수아9강(제목: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신발은 벗어라) 김성철 2021.06.10 24
8 여호수아8강(제목: 내 수치가 떠난 곳) 김성철 2021.06.03 16
7 여호수아7강(제목: 기념비를 세우라) 김성철 2021.06.03 14
6 여호수아6강(제목: 요단강을 밟아야 갈라집니다) 김성철 2021.05.21 25
5 여호수아5강(제목:언약궤 뒤를 따르라) 김성철 2021.05.21 17
4 여호수아4강(제목: 라합을 통해서 본 믿음의 3단계) 김성철 2021.05.08 45
3 여호수아3강(제목: 순종할 때 열리는 약속의 땅) 김성철 2021.05.02 25
2 여호수아2강(제목: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김성철 2021.04.26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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