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즉 누구든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 고린도후서 5장 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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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일 수요예배(항존직피택자교육3)

제목 : 믿음의 성장과 성숙

본문 : 요한일서5:4~8

결단찬양 : 십자가를 질 수 있나(461) / 약한 나로 강하게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야 합니다. 그래서 청소년기를 거쳐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자라야 할 때에 자라지 못하거나 어른으로 살아야 할 사람이 어린아이 행동을 한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영적인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신영혼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면 이후에는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야 합니다. 그리고 변화를 통하여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1~4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유치한 어린아이의 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바울은 고린도성도들을 육신에 속한자라고 합니다. 또한 영적으로 어린 아이들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초보적인 성경지식인 젖만 먹을 줄 알지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깊이 있는 말씀의 세계에 해당하는 밥을 먹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기와 분쟁이 있어서 나는 바울파다, 아볼로파다, 베드로파다, 그리스도파다 서로 당 짓고 분쟁을 일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성숙했다면 초보적인 성경지식에서 자라나 스스로 큐티도 하고, 말씀도 묵상하고, 연구하면서 깊이 있는 말씀의 세계를 알았을 것입니다. 또한 당 짓지 않고 서로 사랑하면서 서로를 격려하면서 아름다운 한 몸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신앙은 자라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성숙함의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영적으로 성숙해 진다는 것은 작은 예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성장하여 작은 예수가 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요한일서5:4~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7: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졌다는 증거가 셋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성령과 물과 피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성숙되었느냐 기초단계에 있느냐를 확인하는 방법은 피와 물과 성령 이 세 가지 증거를 가졌는지 확인해 보는 것입니다.

 

먼저 피의 증거입니다. 피의 증거는 십자가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의 문제가 해결된 사람인지 먼저 확인 해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았는지 확인해 보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내가 죄를 지으면 양의 머리에 안수하고 양을 잡습니다. 안수하는 행위는 내 죄를 양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붙잡고 죄를 고백하면 즉각적으로 내 죄를 예수님이 가져가시고 그분의 십자가의 은총이 우리에게로 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신적교환이라고합니다. 예수님이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용서를 받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낫게 되고, 예수님이 대신 죄를 지심으로 우리가 의롭게 되고, 예수님이 대신 죽으시므로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되었으며, 예수님이 수치를 당하시므로 우리가 영광에 이르게 되었고, 예수님이 대신 거절 당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영접되었으며, 예수님이 대신 저주당하심으로 우리가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으로 먼저 피의 증거가 확실해야 합니다. 분명한 피의 증거를 가지고 십자가에서 죄 문제가 해결된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십자가에서 신적교환이 이루어진 사람이 세상을 이깁니다. 매일 매일 피의 증거를 가지고 내 죄문제가 처리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보혈의 능력이 세상에서 활동하는 악한 영들의 죄책감과 수치감과 열등감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피의 증거만으로는 세상을 이기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피의 증거는 성숙으로 가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두 번째는 물의 증거도 있어야 합니다. 물의 증거는 세례를 말합니다. 세례는 자기를 수장시키고 자기를 내려놓는 자기부인입니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단계는 첫 번째가 번제단입니다. 번제단에서 죄를 처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담 안에서의 죄와 내가 행한 자범죄를 번제단에서 처리하는 것입니다. 번제단은 피입니다. 그러나 성전에 들어가려면 물두멍을 통과해야 합니다. 물두멍은 물입니다. 성전의 구조를 보면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는 것은 옛 자아를 처리하는 곳입니다. 출애굽기 구조에서 보면 12장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죄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은 은혜로 구원받음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하고 나서 14장에서 홍해바다를 건너게 합니다.

홍해는 세례입니다. 고린도전서 102절에서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했습니다. 홍해 바다에서 민족적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홍해바다를 지나면서 애굽에서 형성된 옛 자아를 수장시키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했습니다. 피로 내 죄가 용서함 받고, 물로 내 옛 자아를 처리하는 자기부인 곧 애굽에서 살던 나의 옛 자와의 습관과 행실을 처리하는 세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5~18장을 보면 홍해에서 세례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데려와서 훈련시킵니다. 수르광야-신광야-르비딤광야-신광야에서 광야 훈련은 세례 받은 사람들에게 자기 부인하는 훈련입니다. 내 안에 숨은 애굽의 악한 행실, 애굽에서 형성된 옛 자아를 처리하는 훈련입니다. 광야훈련을 통해서 몸까지 배인 상처들 옛 자아의 미숙한 부분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자기를 내려놓고 주권을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교회도 예수님의 피의 증거를 확실하게 묻고...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고백한 사람에게 물세례를 줍니다. 세례 받을 때 이제부터는 세상에서의 삶의 습관과 아직도 처리되지 않는 옛 자아를 처리하고 이제부터는 공식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겠습니다라고 결단하는 시간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날마다 세례의 정신으로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 83~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부할 했습니다. 이제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함께 장사 되었으닌까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어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부인과 결단이 있는 물의 증거를 받은 사람의 삶입니다. 신앙이 성숙하다는 것은 세례의 정신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물의 증거가 있는 사람이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입니다.

 

세 번째로 성령의 증거까지 있어야 합니다. 출애굽기의 구조를 보면 15~18장까지 광야훈련을 통해서 자기가 부인되어지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겠다는 원칙이 세워지면 이제 19장에서 시내산에 도착하게 됩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법 진리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언약을 맺는 백성들에게 성막을 짓게 하고 그 성막에 하나님이 거주하십니다. 성막은 신약에서 성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성전에는 성령님이 머물러 있고 우리 속에 집을 짓고 영원토록 함께 거하십니다.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성숙한 성도로 자란 사람은 내 속에 성령님이 내주해 계심을 인식하고 그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성령의 증거란 무엇입니까? 육신의 충동이나 감정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의 질서를 따라 사는 삶을 말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8:5~6)

성령이 주는 생각을 하고, 성령이 주는 감동, 성령이 느끼게 하는 어떤 것들을 예민하게 반응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이 나를 통제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의 증거는 두가지입니다. 외적으로는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고 내적으로는 성령의 9가지 열매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성령충만의 개념을 오로지 신비로운 성령의 은사적인 측면만 강조합니다. 물론 성령 충만하며 각종 은사가 나타납니다.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 병고치는 은사, 예언의 은사, 영들 분별함의 은사, 각종 방언의 은사, 방역통역의 은사들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외적인 신비적 은사 외에 내적으로는 성품적인 9가지 성령의 열매도 함께 맺어야 합니다. 결국 성령의 증거는 내 생각, 내 기준이 아니라 말씀의 기준, 말씀의 감동 속에 역사하는 성령을 따르는 삶입니다. 무엇보다 성령의 생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서 성령의 내적 열매를 맺는 성숙한 삶을 살아내는 증거가 있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며 그런 성숙한 사람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33절에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께서 세상을 승리하셨습니다. 여기서 세상이란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한 영들이 활동하는 세상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이런 세상에서 승리하는 인생을 산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힘에 눌려서 세상을 따라 사는 자는 믿음의 어린아이입니다.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을 이기는 자가 믿음의 성숙한 자입니다. 이런 믿음의 성숙한 자는 피, , 성령의 증언을 다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피로 죄 문제가 처리되고, 물로 자기부인와 자기십자가를 지는 옛 자아가 처리 된 사람이여, 어떤 상황에서도 성령의 생각을 하면서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서 성령의 열매를 내적으로 맺어가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이런 성숙한 성도가 많으면 교회는 한 마음 한 뜻 한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건강한 교회가 됩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예배하며,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해 헌신하고 다음세대를 믿음의 세대로 섬기는 영광스러운 주님의 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성숙한 믿음 생활의 실제를 보여주는 창세기에서 3명의 인물과 그와 반대되는 3명의 인물을 비교해 보면서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구체적으로 믿음의 성장과 성숙의 길이 무엇이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아브라함의 길, 롯의 길 = 말씀을 좇아 산 사람과 세상을 좇아 산 사람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의 3중 약속과 3중 포기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낵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자입니다. 성도는 복음을 붙잡고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자들입니다. 말씀의 질서를 따라 사는 자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 하나님을 아브람에게 그것을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잡고 따라 갈 때 그것을 의로 여겨주십니다.

아브람의 믿음의 여정 : *칭의 : 믿음은 아들에 대한 약속을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횃불언약(편무언약) *할례언약 (아브람이 아직 생식 능력이 있음을 의지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그것을 자르라고 하십니다) -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림

*하나님의 인정 :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가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그 결과로 주신 약속 :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을 것이다. 네 씨가 네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니라

 

롯의 믿음생활 세상을 좇아 산 사람

창세기 12:4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의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세였더라

아브람이 말씀을 따라갔다면 롯은 사람을 따라 갔습니다. 사람을 따르고 세상을 따르고 안목의 정욕을 좇아 산 사람입니다.

창세기 13:10~11요단지역의 풍요로움을 보았을 때 에덴동산 같고 그들이 경험하고 왔던 애굽 땅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사느냐? 무엇을 가치있게 생각하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길이 사망의 길이요 저주의 길이어도 넉넉한 땅, 에덴처럼 보여 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무너지기 전에 생각이 먼저 무너지고 가치관이 먼저 헷갈리게 됩니다.

 

롯이 고통당하고 그의 의로운 심령이 상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베드로후서 2:6~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8.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의로웠던 심령이 자꾸 상하고 무너졌습니다. 우리의 문화생활이 중요합니다. 매일 보고 듣고 느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문화에 젖어 그 사람들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그 생각, 그 가치관 안에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원칙이 새겨져야 하나님의 축복, 보장이 따라옵니다.

결국 롯이 소돔성에 거하면서 얻게 된 왜곡된 가치관이 무엇입니까? 소님을 보호하기 위해 두 딸을 내어준 이해 할 수 없는 잘못된 가치관을 보게 됩니다. 거듭난 사람, 영적인 사람도 악한 것을 보면 영혼이 상처를 받고 망가져 갑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듣는가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롯은 소돔 사람이 동성연애 하는 것을 보면서 가치관이 무너져갔습니다. 결국 자기 딸을 그런 자들에게 넘겨주고자 말하는 모습을 봅니다. 더불어 롯의 두 딸은 씨를 남기려고 아버지와 근친상간의 죄를 짓습니다. 또한 심판이 임박했을 때 롯은 자꾸 머뭇거렸습니다.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롯의 처는 소돔성이 멸망하고 있을 때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소동성에 쌓아놓은 출세, 물질, 두 딸과 정혼 사위들,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머뭇거렸습니다.

얼마나 그 가족들이 다 망가져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롯이 두 딸과 근친상간하여 낳은 모압과 암몬족속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출애굽 때에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세속의 가치관이 아닌 하나님의 원칙, 기준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에 대하 분명한 말씀의 중심의 원칙을 가지십시오.

 

2)이삭의 길, 이스마엘의 길 은혜냐, 율법이냐

이삭은 어떻게 태어났습니까? 은혜를 따라 낳은 사람입니다. 반면에 이스마엘은 어떻게 태어났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라와 공모하여 인간적인 방법으로 낳았습니다. 이삭은 은혜의 열매이고 이스마엘은 불신앙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살아야 하는데 자신의 생식 능력을 믿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존하는 것은 언제나 우상이 되고 하나님을 주로 모시는 일에 장애가 됩니다 그것을 자르기까지 은혜는 제한을 받습니다.

은혜 없이 행동하고 기도 없이 말씀 없이 사는 행위들을 찾아서 잘라 내십시오. 기대했던 자식이 아닌 엉뚱한 이스마엘이 나온 이후에 아브라함의 가정에 샬롬이 깨지고 가정에 위기가 닥쳤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은혜의 열매가 아닌 자기 힘으로 율법적인 의를 쌓으면 교만해집니다. 이스마엘을 낳은 하갈은 사라를 무시하고 가정의 샬롬을 깼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보다 더 의지하는 것을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을 잘라 내십시오. 광야훈련은 내가 의지하는 것을 내려놓게 하는 훈련입니다. 하나님은 가끔 우리를 광야로 데려가서 내가 의지하고 붙잡고 내 힘으로 낳은 열매들을 손보십시다. 가지치기 하십니다. 은혜의 열매인 이삭을 낳아야 합니다. 그러면 감사와 찬양할 것 밖에 없고 그것을 내놓으라 하면 이삭이라도 번제로 드릴 수 있는 순종이 생깁니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야곱의 길, 에서의 길 영성을 좇아 산 사람과 육상을 좇아 산 삶

야곱은 영적소원을 가지고 영적세계와 영적인 복을 추구한 사람입니다. 야곱의 관심과 갈증은 장자의 명분에 있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복이 없이는 못사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에서는 충동과 욕망을 따르는 육신의 혈기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는 장자권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에서에게 장자권의 가치는 얼마짜리였습니까? 팥 죽 한 그릇 값으로 취급했습니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았고, 사십세에 헷 족속의 브에리의 딸 유딧고 헷 족속의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이것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고 했습니다(26:34~35) 결국 에서는 장자로 태어났으나 장자권을 잃고 망령된 자로, 눈물을 흘리며 구하였으나 버린바 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하나님의 장자권을 귀하게 생각했습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분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신앙 안에 붙어 있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되어 나중에 창대해지고 정금처럼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받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27:28~29)

에서가 장자권을 잃고 나서 주어진 복의 내용입니다. 네 주소는 땅의 이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땡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27:39~40) 하나님의 축복없이 살아가는 에서의 삶은 자신의 힘과 칼을 의지하는 인생입니다. 얼마나 피곤합니까?

육신의 생각은 사망으로 우리를 끌고 갑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않게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육신의 삶을 벗고 영적 삶을 살게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함을 받고 그 삶이 하늘에서 오는 신령한 복들로 차고 넘치게 됩니다.

 

켄 가이어의 영혼의 창에서 나온 글입니다.

새집으로 이사 가려면 옛 동네, 옛 친구들, 옛 추억과 이별해야 한다. 결혼하려면 혼자만의 세계를 버려야 한다. 직장에 들어가려면 그 특별한 대학 시절, 그 특별한 친구들, 그 안전지대의 울타리를 떠나야 한다. 자녀를 낳으려면 아이 없는 부부끼리만 있을 때의 비교적 복잡하지 않고 방해받지 않는 삶의 장을 마감해야 한다. 승진하려면 좋아하던 부서, 좋아하던 도시나 지역을 떠날 수 있어야 한다. 직장에 남은 동료들은 여전히 친구겠지만 그 우정의 차원 또한 뒤로해야 한다. 자녀들이 대학에 가거나 직장을 잡거나 가정을 이룰 때가 오면 그들 역시 뭔가를 남겨 두고 떠나야 한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세상 속에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고 영원한 복음을 붙잡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천성을 향해 가려면 우리가 놓아야 하고 버려야 하고 때로는 결단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믿음의 삶은 끝없는 도전이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축복의 지경을 향한 모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것들을 붙잡고 살지만 영안을 열어서 보이지 않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상급, 영원한 의의 면류관을 추구하면서 살도록 우리를 현재의 믿음보다 더 성장하고 성숙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영원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누리기 위하여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 우리가 가지치기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아브라함의 길을 갈 것인가 롯의 길을 갈 것인가? 이삭의 길을 갈 것인가 이스마엘의 길을 갈 것인가? 야곱이 길인가 에서의 길인가? 우리는 날마다 선택해야 합니다. 믿음이 성숙하다는 것은 선택의 순간에 말씀을 따랐던 아브라함의 길, 이삭의 길, 야곱의 길을 선택하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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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호수아6강(제목: 요단강을 밟아야 갈라집니다) 김성철 2021.05.21 25
5 여호수아5강(제목:언약궤 뒤를 따르라) 김성철 2021.05.21 17
4 여호수아4강(제목: 라합을 통해서 본 믿음의 3단계) 김성철 2021.05.08 45
3 여호수아3강(제목: 순종할 때 열리는 약속의 땅) 김성철 2021.05.02 25
2 여호수아2강(제목: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김성철 2021.04.26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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